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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또 한 조각의 '은의 루트'
2007년 4월 말, 인야는 세 번째 봄 까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한국에서부터 한 친구와 함께 출발했는데, 그는 아라곤 코스를 마친 뒤 개인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후 인야는 홀로 프랑스 코스부터 다시 길을 이어갔다.
6월 초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에는 대서양 해안의 무시아(Muxía)와 피니스떼레(Finisterre)까지 다녀온 뒤, 갈리시아 지방에 사는 스페인 친구의 집에 사흘 정도 머물고... ‘은의 루트(Vía de la Plata)’ 출발점인 세비야(Sevilla)로 향했다.
물론 이번에도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표 날짜는 보름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은의 루트 일부를 걷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세워 둔 계획의 일부였다. 인야는 이미 3년 전인 2004년 초, 은의 루트 약 300km를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 출발지인 세비야에서 처음 길을 시작했던 메리다(Mérida)까지 약 200km를 걷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8일 만에 그 일정까지 마치고 나니, 인야는 은의 루트 1,000km 가운데 절반 정도를 걸은 셈이 되었다. 나머지 500km는 숙제로 남았고, 그는 그것을 다음 길, 곧 네 번째 까미노인 가을 길에서 이어 걸을 생각을 품게 되었다.
세비야 도심을 지나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의 다리를 건널 때였다. 예전에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자리 옆 공터에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비닐봉지를 몇 개씩 들고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 보니 제법 큰 간이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인야는 다소 흥분했다. 원래도 시골장만 보면 마음이 들뜨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그 전날 밤버스 대신 비행기를 타고 세비야에 도착한 참이었다.
“밤버스를 타면 너무 피곤하니 내가 항공편을 알아보겠다”라며 나섰던 이사벨의 남자친구 크리스티안 덕분에, 인야는 산티아고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세비야로 왔던 것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고, 도착하자마자 대성당을 찾아가 끄레덴시알을 받은 뒤, 도심의 아스팔트 길을 걸어 나왔으니 이미 몸은 꽤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시장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인야에게 시장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짐을 줄여야 하는 처지라 이것저것 살 수는 없었다. 다른 것은 더 보지도 않고 세레사(cereza, 체리) 1kg만 샀다. 주로 집시들이 물건을 떼어다 파는 장이라 시중보다 훨씬 쌌고, 다른 물건들에도 마음이 끌리긴 했지만 결국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세레사 한 봉지가 전부였다.
그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인야는 다시 은의 루트 길을 걸어 나갔다. 강 건너에는 박람회장의 독특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걷는 길은 어느새 영락없는 시골길 같았다. 그는 손에 든 세레사를 하나씩 꺼내 먹으며 걸었다.
‘아, 나는 역시 이렇게 떠돌아야만 흥이 나는 사람인지도 몰라…….’
어느새 그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까미노 프랑스 코스에서도(특히 빨렌시아 지방에서도) 해바라기 벌판을 보았지만, 여기하고는 그 규모 면에서 다르다.
이 많은 해바라기를 어떡한다냐?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바라기 꽃들이 하나하나가 생명인데, 저렇게 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이 많은 생명들이 해를 바라고 서 있는데... 이를 어찌 한다냐?
나는 마치 차렷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대군(大軍) 사이로 열병을 하는 장군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엄숙한 모습이기까지 했다.
6 . 17
며칠째 걷는 동안, 인야는 달력의 날짜를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마치 제대를 앞둔 말년 병사가 그러듯.
이 길을 끝내면 바르셀로나로 간 뒤 이삼 일 쉬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올 것이었다. 그렇게 인야는 이 길을 떠돌고 있으면서도 내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가 보았다.
그런데 첫날 길에서 만난 영국 청년 J와, 그날 저녁 알베르게에 들이닥친 세 명의 미국 청년 등, 다섯 명이 일행이 되어 이틀째도 함께 걸었다. 걷는 건 각자 나름대로였지만 같은 알베르게에 도착하다 보니 낯이 익어갔다. 그날 저녁, 인야는 혼자 요리를 하느니 다섯이 함께 먹을 것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다들 환영이었다.
그렇게 시장을 함께 보고, 인야가 요리에 들어가는 사이 서양 청년들은 옆에서 거들기를 희망했다. 마늘과 양파를 까고, 탁자도 준비하고, 상도 놓고. 그러다 보니 축제 기분이기도 했는데, 갈리시아를 떠나올 때 선물로 받았던 특산주 '오루호'까지 곁들이다 보니 정말 축제의 밤이었다.
오늘도 나는 수첩의 날짜 하나를 지우면서...
'그러고 보니, 내가 졸병 네 명을 거느린 하사 같네?'
공교롭게도 군대에서 나는 다섯 명의 분대원을 거느린 중화기 분대 분대장이었었다.
혼자 피식 웃었다.
6 . 20
사흘째부터 인야는 혼자 걸었다.
새벽에 살짝 빠져나와, 쉬지도 않고 걸었다.
어제까지 함께 했던 그들이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도록.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도 다시 떠났다.
왜 혼자 걷느냐고?
슬픔을 느끼기 위해서.
자학이냐고?
그건 아니었다.
슬픔을 느끼고 나면 나머지 감정들이 다 우스워지는 것이어서.
그런 궤변을 인야는 늘어놓기도 했다.
한 나그네가 구름을 머리에 이고 고개마루를 넘어간다.
짐은 무거운 듯, 구름은 가벼운 듯...
고개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무심하게 나그네는 구름을 떨쳐버리고 고개마루를 넘어가버렸다.
내가 큰 고개마루에 오르니, 앞에 산이 턱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웃으며 농담처럼,
'저 산을 넘어야 한단 말이지?' 했었다.
그런데 길을 가다 보니, 구불구불 정말 그 산을 넘어가는 모양새다.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
오후 두 시 반.
바짝 말라 하얗게 보이는 안달루시아 산길의 햇볕은 밝고 투명하기만 하다.
6 . 20
추수가 끝나 황토빛에서 짙은 갈색까지 보여주는, 이 황량하다 못해 가슴이 뭉클하도록 아름답기까지 한 구릉 벌판 한 마루에 앉아...
나는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만 듣는다.
어디선가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만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하늘엔 구름 몇 점.
'여기가 이 세상인가? 내가 살아있는 건가? 어디 낯선 세상에 내가 뚝 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아, 이 너른 세상에 내가 있고 내가 간다... 저기 땅과 하늘이 맞닿은 선 위의 한 마을로 내가 걸어간다.
6 . 21
이렇게 혼자 걷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인야는 생각했다.
어제 그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면 이런 감정은 결코 느낄 수조차 없을 거야. 혼자이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는 거고, 혼자이기 때문에 이런 감정까지도 나에게 스며들 여유가 있는 거야. 그들과 함께라면 산만해서 이런 분위기가 조성될 리 없으니까.
아, 그래서 내가 혼자 걷는지도 몰라.
스페인 엑스뚜레마두라 지방의 하늘은 어쩌자고, 구릉 벌판을 가는 나그네에게 구름 한 점 보여주지 않고, 살벌한 햇살만 내려쬐는지......
6 . 22
그러던 어느 날, 알마덴 델라 쁠라따(Almaden de la Plata)에서 새벽부터 걸었더니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에 열 시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알베르게 비용이 비쌌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야는 20km를 더 가기로 했다.
마을 복판으로 나갔는데,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서 잤던 사이클 여행자가 나타났다. 그는 인야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날아서 왔느냐고 물었다.
이미 천 km 가까이 되는 프랑스 코스를 마치고 온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걷는 일엔 이골이 난 사람이기도 했다.
헤어지고 나서 인야는 지루한 숲길로 접어들었다. 가이드북도 없었고 이 길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네 명의 동행이 있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아마 내내 혼자 걸을 것이었다.
외로움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한국에 가면 무엇을 해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음식을 해서 실컷 먹어볼까. 묵은 김치를 쓸어 넣고 이런저런 야채도 넣은 비빔국수를 해먹겠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그것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딱히 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웃기네, 했다.
그렇게 걷다가, 인야는 스페인 친구 M과 동행이 되었다. 올리브나무 그늘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데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주변 농작물이나 야생초에 해박한 사람이었다.
그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야는 그의 가이드북을 보고서야 자신에게 이틀 일정이 남아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했던 마음과,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공존하는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건 아이러니였다.
그런데 그날, 예기치 않은 고생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푸엔떼 데 깐또스(Fuente de Cantos)의 사설 알베르게 노파가 하도 장삿속을 드러내는 바람에 그게 싫어서 훌훌 떠나왔던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한낮 땡볕에 7km를 더 걸어 다음 마을에 도착했더니, 열쇠를 받아야 하는 무니시빨 건물이 점심시간이라 닫혀 있었다.
오후 다섯 시까지 한 시간 반 넘게 기다린 끝에 열쇠를 얻었는데, 알베르게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기승을 부리는 햇살을 받으며 다시 1.7km를 걸어야 했다.
어쨌거나 도착하니,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의 한 건물에서 혼자 밤을 맞게 되었다.
몸이 부대껴 얼마를 뒤척이다, 섬찟 눈을 뜨니 어두운 밤이었다.
바람 소리가 휭- 하며, 보통 센 게 아니었다.
'아, 난 지금 외딴 곳에서 혼자 자고 있는 거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어제 빨아 널어두었던 창 문살의 양말이 검게 그 윤곽을 드러냈고, 그 너머론 반짝이는 게 별이었다.
'별이 얼마나 밝을까? 괜히 그러지 말고 쥐 죽은 듯 누워있자... 에이, 내 나이가 몇인데......'
6 . 22
포도가 영글어가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이런 맛에 농부들은 농사를 짓나보다......
6 . 23
다시 무더운 건조한 길이 이어졌다. 올리브나무 그늘을 만나 잠시 쉬며 빵과 초리소로 요기를 하고 있는데, 스페인 친구 M이 저편에서 나타나 함께 그늘에 앉았다.
이야기 끝에 그의 가이드북을 보다가, 인야는 문득 이 길이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 달력을 지워가며 걷던 그였는데, 정작 그 사실 앞에서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이러니였다.
한낮 땡볕 속에 다시 길을 나섰다. 안달루시아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M은 주변 야생초며 작물 얘기를 들려주었고, 오늘따라 인야에게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걸어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러나 물을 다 써버린 데다 위치 확인을 게을리한 탓에, 두 사람은 어느새 마을 하나를 지나쳐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별수 없이 3km를 되돌아가야 했다.
지쳐 있던 M을 따라 들어간 바에서, 인야는 마시지도 않던 생맥주를 들이켰다.
낯선 주인은 동양인 순례자가 안쓰러웠는지 비노 한 잔을 그냥 내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다음 마을까지 혼자라도 더 가겠다고 했지만, 더는 못 걷겠다는 M을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었다.
호스텔은 방이 없었고, 성당도 문이 닫혀 있었다. 신부 숙소를 찾아가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헤매던 끝에, 결국 두 사람은 다음 마을까지 마저 걷기로 했다.
날은 저물어가는데 길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포도밭 사이로 뻗은 직선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발바닥 한쪽에서는 이상 신호가 느껴졌다. 이미 1200km를 걸어온 발이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마을에 닿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산 후안 축제일이라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 끝 알베르게는 문이 잠긴 채 불만 켜져 있었다. 한참을 두드린 끝에 타월을 두른 독일 여인이 문을 열어주었지만, 자원봉사자가 삼십 분 뒤에나 온다는 말만 남기고 자기 방으로 사라져버렸다.
기다리는 동안 인야는 그 여자에게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하룻밤 땀에 전 몸으로 굶주린 채 서 있는 순례자들에게 그깟 방 열쇠 하나 빌려주지 못하나 싶었던 것이다.
결국 M이 밖으로 나가 경찰에게 사정을 알린 덕에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방값은 15유로. 오늘따라 비싼 곳만 걸린 밤이었다.
씻고 나서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걸 확인했다.
끝내기 하루 남겨놓고, 결국 인야도 물집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식당에서 마주친 그 독일 여인이 떠나며,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지만, 인야는 손만 슬쩍 들어 보였을 뿐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어젯밤 기진맥진한 몸으로 늦게 도착했을 때, 방마다 문이 잠긴 상태에서... 쌀쌀맞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던, 인정머리 하나 없던 행동이 정떨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날은 17km 남짓, 이번 봄 여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인야는 혼자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M과 동행이 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가던 그 독일 여인을 마주치자 인야는 일부러 걸음을 재촉해 앞질러버렸다.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과는 말 한마디 나누고 싶지 않았다.
메리다가 눈에 들어올 즈음, 인야는 내일 바르셀로나로 돌아갈 버스표부터 예약했다.
42유로. 얼마 남지 않은 여비로 걱정하던 참이라 마음이 놓였다.
홀가분해진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는데, 저만치서 벨기에 여자 M(동명이인)과 그 독일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쩐지 자꾸 마주치는 독일 여인이 못마땅했지만, 인사는 나눌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이 상점에서 장을 보는 동안 인야는 밖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비닐봉지를 잔뜩 안고 나왔다.
짐을 들어줘야 하나 망설이는데, 독일 여인이 봉지 하나를 인야에게 불쑥 내밀었다.
"이거, 당신 주려고 산 거예요."
"......?"
"먹고 힘내세요. 이 길을 걷는 선물이에요."
인야는 얼떨떨했다.
내내 마음속으로 인간 같지도 않다고 욕을 해대던 여자였다. 적어도 자기도 인야 쪽에서의 달갑지 않아하는 시선은 느끼고도 남았을 텐데. 차라리 이러지 않는 게 속이 편한 일이었다.
'왜 갑자기 천사처럼 행동을 해서 나만 나쁜 사람 만드느냔 말이다......'
멋쩍게 그것을 받아들고 오면서도 인야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성의를 마다할 수 없어 받아 들기는 했지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와서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지, 그 바람에 자신만 옹졸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 날 아침 M은 일찍 길을 떠났고, 메리다 관광을 겸해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 두 여자는 인야가 이 길을 마친 걸 축하한다며 점심까지 대접했다. 그렇게 얻어먹은 점심을 끝으로, 인야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한동안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참, 사람 일이란......
힘겹게 메리다에 도착한 뒤,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가 방명록을 꺼내 뭔가를 가리켰다. 한글로 쓰인 메모였다.
읽어보니 인야가 알 만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해 안내를 요청해서 메일을 주고받았던 사람으로, 나중에 알고 보니 수필가였다. 인야의 홈페이지 여행기를 날마다 읽으며 그 여정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연락까지 왔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은의 루트에도 다녀갔던 것이다. 오히려 인야보다 더 많이 이 길을 걸은 것으로...
반가웠다.
인야는 알베르게의 한 침대에 누웠다.
시원한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아쉬움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제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인야를 편하고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홀가분하고 편하다. 이제 땡볕이 내려쬐는 한낮 길을 마른 입술을 축이며 걸을 일은 없다. 더 이상 알베르게에서 잠자리 걱정을 할 일도 없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간 뒤 거기서 며칠 쉬었다가 한국으로 날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젤 먼저 뭐부터 하지? 아직도 냉동실에 남아있을, 작년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 싹둑싹둑 잘라 넣고 멸치를 넣어 수제비를 해 먹을까?'
6 .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