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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축복!(14) : 범사에 감사로 축복을 선포하라!”
+ 본 문 : 시 편 100장 1절 - 5절 (구약성경 875쪽)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시리즈! -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서 계속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열네 번째 축복 “범사에 감사로 축복을 선포하라!” 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께 축복을 선포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로 축복을 선포하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오래전 조간신문에 광수생각이라고 하는, 아주 의미 있는 만화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선을 구울 때에 절반을 익힐 때까지는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뒤집어서 나머지 반쪽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그렇게 걸리지 않고 힘이 드는 것도 아니다.” 라는 글과 함께 그려진 만황입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려고 하는 글과 만화였을까요? 지난 세월 힘겹게 살아오신 분들 계신 줄 압니다.
남모르는 아픔 때문에 울어야 하는, 피눈물을 흘린 세월을 힘겹게 살아오신 분들도 계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지나온 저와 여러분의 삶!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붙들어 주셔서 에벤에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 믿음으로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남은 인생도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셔서,
더 잘 되고, 더 평안하고, 더 크게 축복하시므로, 성공자! 승리자! 행복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일생 중 가장 감사해야 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벌면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면 돈 있어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는 지금, 얼마나! 진짜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그 문제가 해결되면, 진짜로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지금 몸이 아픈데 치유되면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러면 아무런 일도 없이 평안할 때,
얼마나 감사하셨습니까?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에 여러분은 언제나 감사했고 언제나 행복했습니까?
유명한 소설 펄벅의 “대지” 라는 소설에 보면, 왕릉이라는 젊은 농사꾼이 나옵니다.
농사를 짓는데 매년 흉년이요. 홍수요. 또 추수를 할 때 쯤 되면 황충 떼가 몽땅 갉아 먹고 날아갑니다.
고향에서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아내와 함께 도시로 이사를 갑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한 부부는,
입을 것 입지 못하고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모은 돈으로 큰 집 짓고, 논마지기 사고, 머슴들 두고 떵떵 거리고 살던 어느 날, 난리가 났습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더니 첩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조강지처 아내를 안방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조강지처인 본 부인은 부엌에서 밥을 지어, 남편과 작은 마누라 앞에 밥상을 차려야 했습니다.
밥상을 내려놓고 돌아서 나오면서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가 언제입니까? 황충 떼가 보리나락 갉아먹자 훠이훠이 쫓으며 남편과 함께 논둑길 뛰어 다닐 때,
못 살겠다고 도시로 나가 남편은 손수레를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 그 때가 좋았다는 넋두리였습니다.
차라리 가난했지만,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부부가 서로 격려하면 살았던 때가 더 좋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였습니까?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는 바로 오늘입니다.
행복의 시제는 미래형이 아닙니다.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내일이 아니요. 미래가 아니요. 내년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에 지금 감사하는 사람이,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지금 감사하며 사느냐? 불평하며 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의 차이는 감사가 있느냐? 불평불만이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행복한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 말씀과 기도로 감사하며 하루를 여는 삶을 삽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감사와 찬양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은, 행복을 모르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도 물의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공중나는 새가 공기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살듯이,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잊어버렸다면 그건 불행입니다.
그러나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서,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건 행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타락한 성도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 말씀에 보면, 바로 그것은 “감사하지 아니하며” -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는 시대! - 그때가 바로 세상의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다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아! 이렇게 잘 자라줘서 감사하다.”
“여보! 지금까지 나랑 살아줘서 감사해요.” - 가족끼리 이런 인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반대로,
“왜 날 났어요.” “저 웬수같은 놈! 왜 태어 났니!” “저런 인간하고 어쩌다가 내가 결혼해서.”
그렇게 불평하는 가정은 불행하다는 말이고, 더 넓게는 세상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좋은 증거입니다.
자기가 불행하게 된 것을 다른 사람 탓, 나라 탓, 정치인 탓이나 하고 - 말세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불평불만 할 일보다, 감사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가 많으면 축복도 많이 찾아오지만, 불평불만이 많으면 불행이 찾아옵니다.
출애굽을 한 순간부터 40년 동안 매일매일 불평불만, 원망만 늘어놓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토록 아름답고 좋았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해방과 구원의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죄 사함 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죄 짐에 눌려 신음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감사가 전혀 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가는 마음,
비난하고 비판하고 살아가는 말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이것은 다 마귀의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 고 우릴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감사하며 살라! 감격하며 살라!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감사로 찬양하며 살도록,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 축복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씻어 주셨고,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죄로부터 해방되셨습니까? 구원받은 감격 속에 살아가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감사해야죠.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감사해야죠.
내가 구원받았음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가족이 되었음을 감사하십시오.
일마다 때마다 나와 함께 동행 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도적같이 오실 저와 여러분의 신랑되신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맞이 할 것도 감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나를 영원한 천국가족으로 맞아 주실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감격이요. 감동입니다.
감사는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도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감사가 내가 지금 살았느냐? 죽게 되었느냐? 하는 존재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감사할 수 있는 최고의 이유는, 지금 내 영혼이 살아있고 영혼이 잘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영혼이 잘 되어야 나의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 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 교회가 말하는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말하고 교회가 말하는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것은 저주요. 깨닫고 살아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신앙의 표현이며, 나의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완용 동물 가운데는 강아지가 있고,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완동물로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더 많이 기르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사람을 더 잘 따르기 때문인데, 고양이와 강아지는 기억장치가 다릅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열 가지를 잘못하고 한 가지만 잘해주면 그 한 가지 때문에 주인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열 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못해 주면, 잘해준 것 싹 잊어버리고 주인을 외면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교회생활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강아지 형이 있고 고양이 형이 있습니다.
고양이형의 신앙은 하나님이 열 가지 축복을 주다가도, 한 가지 고난만 닥쳐도 그것 때문에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포기합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고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강아지형의 신앙에는 열 가지 힘든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 잊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 교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 등의 삶은,
한 가지 일에도 잘 삐지고 토라지는 고양이 형입니까? 한 가지 좋아하는 일에 감사하는 강아지 형입니까?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축복을 담는 그릇이요. 범사에 고마워 할 줄 아는 것이 축복의 그릇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교유의 명절인 추석은 감사명절이요. 축복을 담는 그릇을 준비하는 명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어렵고 곤고하고 가난했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지금 건강하냐? 과거에 병들어 병원에 입원하여 아팠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 말씀합니다.
지금 밥술이라도 먹고 사느냐? 과거에 가난하여 힘들게 살았던 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는 축복을 담는 그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 감사 그릇에 행복한 삶을 담아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결코 환경이나 외적인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가 있으면 인생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라는 분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저주하여 불행하게 만드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함을 잃어버리는 메마른 심령으로 저주하여 불행하도록 만들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고,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때, 비로소 내 남편 내 아내가 됩니다.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대한 감사가 넘칠 때에, 비로소 그 교회가 내 교회가 되기에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할 때에, 비로소 그 부모가 내 부모가 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감사는 반드시 더 큰 축복을 약속하기에 감사는 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미 받은 축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축복을 계속하여 받습니다. 그러나 받은 감사를 잊으면,
이미 주신 축복도 쏟아집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한 성도에게는 더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축복은 받는 것보다, 축복을 감당하고 계속 누리는 것이 몇 배나 더 어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는 축복받는 통로이고, 원망 불평불만은 내가 망하는 통로가 됨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여러분의 마음속에 한없는 감사가 용솟음치고 있습니까?
“구원받은 것이 참 감사하다. 축복을 선포하는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정말로 감사하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주시고, 우리 가족! -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 참 감사하다.
참 감사하다.” - 그렇게 지금 감사가 여러분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고, 용솟음쳐 올라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복이 감사그릇에 잘 담겨 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믿음은 당신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큰 믿음은, 축복덩어리인 천국을 송두리째 당신의 축복으로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도 찬송하며 고백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할렐루야! 아멘!
원종수라는 가난한 집 한 아이가 공부를 잘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의 평생소원은 ‘내가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가난한 내 홀어머니 속옷 한 벌 사 드려서,
춥지 않게 해 드리고, 내 어머니랑 마주앉아 돼지고기 한 번 실컷 먹어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첫 월급봉투를 받아 어머니 손에 드리면서, 속옷 사러가자고 - 돼지고기 사러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종수야! 기왕 예수님을 믿을 바에 우리 확실하게 믿자.
지금까지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로 살자. 타협하지 말고 깨끗하게 살자.
이건 네가 처음 받은 월급이니 첫 열매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 바치자.” -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어머니! 십일조만 드리고 우리 불고기 먹어요.”
“아니다. 이것은 첫 열매다. 첫 열매는 우리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주일날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붙들고 교회 가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렸습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났을 때, 그를 학장님께서 불렀습니다. 의사고시 전국대회에서 1등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금을 주시는데, 하나님 앞에 바쳤던 첫 월급의 딱 두 배가 되는 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함 마음으로 첫 월급을 첫 열매로 드렸더니, 나를 1등으로 합격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첫 월급의 두 배로 상금을 주시는 구나.” 너무너무 기뻐서 이제 이 돈으로 속옷도 사드리고,
맛있는 돼지고기도 사먹어야 되겠다는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돈 봉투를 드렸습니다.
돈 봉투를 받아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종수야! 너 상금 타 본적 있니?”
“네 처음인데요.” “그러면 첫 상금이니까 첫 열매이구나. 이것도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자.
그리고 주일까지 기다리다간 너 시험 들고, 나도 시험 들겠다. 내일 새벽기도회 나가서 드리자.”
그렇게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들의 손 붙들고 새벽제단에 나가서 첫 열매 봉헌을 드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미국 유학길을 여시고, 미국 의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교회에 다니면서 축복받은 간증을 하므로, 큰 은혜를 끼친 그리스도인으로 유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감사신앙입니다. 바로 이 감사신앙은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축복의 그릇을 채우는 감사신앙입니다.
지금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 중에, 혹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살아오신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영적가족이 되고, 구원 받았음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불평과 원망이 떠나고, 한없는 감사와 기쁨이 살아나는 축복의 그릇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주셨습니다.
여호와이레! 장래에도 준비된 축복으로 우리를 풍성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도,
우릴 환하게 웃으시며 맞아주시고, 영원한 당신의 왕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로 축복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선포한 대로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나의 인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은, 인사를 넘어 축복선포입니다. 선포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아! 잘 자라줘서 감사하다.”
“여보! 지금까지 나랑 살아줘서 감사해요.” “이렇게 함께 예배드리게 돼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부모 형제자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감사하고,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축복선포로,
축복의 그릇을 키우고, 승리자! 성공자! 행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