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이것으로 동아시아에서 나온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카이에 소바주 씨리즈 5권을 모두 읽은 셈이다. 기본 철학과 성향, 및 대안적 방향이 나와 통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공부를 공부답게 한 사람인지라 풍부한 지적 향연을 더불어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몇권의 좋은 책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신이치는 현대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대안을 오래된 미래, 특히 선사문명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은 돈과 교환의 우상에 빠져 사는 우리들에게 보다 오래되고 균형잡힌 전통이었던 증여의 무의식과 신화를 분석해 보여주고 있다. 그가 동원하는 경제학과 역사, 수학, 신화, 인류학 등의 자료를 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는 인터넷시대에 맞는 학자임에 틀림없다. 상호 이질적으로 보이는 학문간을 넘나 들며 통합시키는 놀라운 제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문제의식과 답변은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 뿐 아니라, 현대 문명 전체에 대한 것까지 아우르기에 그의 책은 가히 전방위적이라고 할만하다.
물론 증여는 사랑이다. 사랑은 결코 교환적 댓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사람에게 준 것이 바로 증여이고, 사람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 또한 증여이다. 그것이 인간이 타락하기 전까지 인간이 자연과, 혹은 인간끼리 가졌던 관계형식이었다. 물론 교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증여를 배제하거나 자연과 인간을 착취하는 형식이 아닌, 증여와 공존하는 관계였다.
물론 나도 아직 사랑으로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두근거리며 말한다. 사랑으로의 길을.
= 차례 =
서장 : 전체성을 가진 운동으로서의 '사랑'과 '경제'
1. 교환과 증여 2. 순수증여를 하는 신 3. 증식의 비밀 4. 숨겨진 금에서 성배로 5. 최후의 코르누코피아 6. 마르크스의 열락 7. 성령과 자본
종장 : 황폐한 나라로부터의 탈출
= 출판사 리뷰 =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저편에 출현하게 될 인류의 사회형태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전망.
나카자와 신이치의 새 책,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는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 인류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는 현대 사회의 위기적 현상은 대부분 “증여의 원리와 함께 움직이던 여러 종류의 힘이 정지해버림으로써 초래된 것”이라고 진단하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저편에 출현하게 될 인류의 사회형태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전망”을 제시한다. 그의 시선은 전방위 인문학자답게 종횡무진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포틀래치potlatch와 현대 자본주의의 꽃인 크리스마스를 비교하기도 하고,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볼숭 가家의 사가saga』, 『페르스발』을 인용하며 인류 사고의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종교적 카테고리와 증여, 교환, 순수증여라는 경제적 토폴로지, 그리고 라캉의 현실계, 상상계, 상징계가 한데 어우러지기도 한다. 책은 긴장감 넘치는 지적 여정을 통해서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경제’가 동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물物’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대칭적 사고,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게끔 한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황폐화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촉구한다.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상. 경제는 곧 사랑이었습니다.
포틀래치는 신임 수장을 축하하고, 세상을 떠난 전 수장의 덕을 기리는 일종의 제의이다. 이 제의를 주최하는 사람은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엄청난 양의 선물을 마련했고, 상대방 역시 그 답례로 배포 큰 선물을 준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마어마한 선물의 양도 아니고, 그 교환이 등가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산술적인 기준도 아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바로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들은 “만물에는 영력靈力이 깃들어 있어 교환이나 증여가 이루어지면 영력도 물과 함께 이동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선물이 집단과 집단 사이를 옮겨 다님으로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력이 활발히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하지 않을 경우 영력의 유동이 정지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지은이는 포틀래치를 예로 들어 ‘물’의 배타적 소유는 우주의 건강한 운행을 저해한다는 일종의 우주적인 책임감을 강조한다. 증여하는 사람의 마음과 사랑을 ‘물’에 담았던 그들. 그러나 현대는 어떠한가? 욕망과 집착이 사랑의 자리를 가로채, ‘물’의 자연스럽고 원활한 순환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경제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떠올리면 포틀래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밝혀지는 인류 최초의 형이상학적 사고의 탄생.
지은이는 라스코 동굴의 벽화를 보고 순수증여의 원리와 현실세계가 만나는 교차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동굴의 벽면은 세계의 구성원리를 추상화해 표현하는 사유의 캔버스가 되는 것이다. 그는 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들소와 쓰러져 있는 남자’에 주목한다. 이 그림에는 죽음과 소멸을 둘러싼 사고가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굴 어디에도 임신이나 생산을 상징하는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이 없음을 환기시킨다. 이를 통해 임신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는 순수증여를 하는 힘에 대해서 철학적 사고를 했던 장소임을 유추해낸다. 이러한 주장은 라스코 동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는 일군의 조각들을 통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로셀의 비너스’로 알려진 작품을 비롯하여, 여성의 하반신을 묘사한 작품과 성교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은 여성성, 생식성, 증식 등의 주제가 전혀 개념화 되지 않은 채 에로틱한 구체적 대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라스코 동굴이 샤먼과 정신기술자들에 의한 밀교적인 의례가 치러지는 곳이라면, 동굴 밖 밝은 곳은 부와 생명을 낳는 자의 능력을 찬양하는 현교적인 의례가 행해지던 곳이라 할 수 있다.
근대 과학 기술에 대한 준엄한 경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근본적인 재구성.
지은이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교환의 원리를 통해 사회 전체를 자신의 열락(〓증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현대 사회가 ‘팔루스phallus(남근男根)의 열락’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책은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황폐화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특히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포이에시스poiesis’와 ‘테크네techne’의 개념을 빌어,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의 자연自然은 물러나고 물질적인 대상만이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현재를 비판하는 대목은 경청할 만하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페르스발이 저지른 실수와 유사한 실수를 우리가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 과학 기술은 자연에 대해 ‘도발’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그 결과 자연은 더 이상의 응답을 중지해버렸다는 것이다. 책은 인간이 세계와 조응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사랑의 응답’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의 왕성한 지적 유산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인용문만 읽어도 책값은 너끈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가 책에서 주창하는 ‘새로운 증여의 철학’은 20세기 후반의 왕성한 지적 활동에 기대고 있다. 마르셀 모스의 ‘증여’, 레비 스트로스의 ‘부유하는 기표’, 라캉의 ‘보로메오의 매듭’, 데리다의 ‘증여로서의 증여’, 마르크스의 ‘소외’와 ‘잉여가치’, 하이데거의 ‘포이에시스’와 ‘테크네’ 등 굵직굵직한 지적 유산들을 정교한 논리의 그물로 엮어내는 것이다. 책은 위에서 열거한 사상가들의 저서들 중 주옥 같은 저술을 인용하고 있다. 그중에는 아직 국내에는 번역조차 되지 않은 저작들도 눈에 띈다. 레비 스트로스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비롯해, 마샬 살린스Marshal Sahlins의 『석기시대의 경제학Stone Age Economics』, 요하네스 마링거Johannes Maringer의 『선사시대의 종교The Gods of Prehistoric Man』, 마샥Alexander Marshack의 『문명의 기원The Roots of Civilization』, 또한 중농주의의 선구자 케네의 『곡물론Grains』,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자본론』과 『1844년 경제학 철학 초고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 그리고 막스 베버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하이데거의 『기술에 대한 논구Die Frage nach der Technik』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명저들이 책의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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