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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가 늘어나면서 이곳에 일일이 하루 하루 방송에 나간
'신명심보감' 해설판을 집필할 수 없어 우선 양해를 구해야겠다.
그래서 시간 날때 해설판을 써 왔는데, 그도 매일 방송에서는
이 카페로 와서 담론해 보자는 말을 하는데 도리가 아닌성 싶어
우선 방송된 원고만이라도 올려볼까 한다.
아래 첨부파일을 열면 그날 방송된 원고가 모두 보일 것이다.
방송작가 입장에서는 웬만해선 공개하고 싶지 않는게 방송원고이다.
그날 그날 초를 재 가면서 쓴 원고인데다 이곳에서 열어보면 원고와 달리
더욱 정리돼 있지 않는 판넬로 보여진다.
오직 메시지와 코너를 살리는데 주력한 부분을 이해하는 분들은 이해
할 줄 안다. 동시에 내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고 있는 시사꽁트쓰기
생활꽁트쓰기에 대한 작은 교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에서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일말의 보탬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공개하기로 한다.
대신 이곳에선 맞춤법이나 정서법 등을 따지지 말아줬으면 한다.
생각의 속도로 손가락이 달리다 보면 무수히 실수를 하게 돼 있고
그게 또 살아 있는 방송의 생동감이기도 하다는 점 거듭 헤아려 주길 바라며
이번주엔 신 명심보감 원고를 주간 단위 시리즈로 올리고
혹여 어떤 테마나 소재에 관심이 있거나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댓글로 올려 주면 나름 답해 볼까 한다. 때로는 묶음으로 펑퍼짐하게
주는게 질려서 입맛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어떤 분에게는 방송원고,
특히 꽁트작법에 대한 작은 오솔길을 열어 주기도 하리라 믿으며 올려본다.
5월 6일자 '신 명심보감' 방송원고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고개지의 치매와 택당의 치매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중국 위진 남북조 시대 고개지와 조선 인조 때 택당이식의
치매 이야기를 돌아볼까 합니다.
초란 치매, 요즘 사회문제 가정문제 화두로 떠오르고 있잖아요.
중국 고개지와 우리 택당 이식의 치매에 대한 고사군요.
놀보 1600여년 전 동진의 고개지는 재주가 너무 많아서
화가, 시인, 문장가, 서예가, 박학다식한 인물이었는데
사람 인물화를 그리고 눈동자를 일년 넘게 안그렸다고 합니다.
초란 이왕 그린 인물화 눈동자를 왜 일년넘게 안 그렸을까요?
놀보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 눈동자라니깐, 하면서 한사코
일년이고 이년이고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던겁니다.
그 사람 마음을 아직 못 봤다는 뜻도 되고 그 변덕스런
마음 어떤 걸 눈동자로 그려줄까 싶기도 했겠죠.
초란 좋게 말해 기인이라고하겠지만 그림 받으려는 사람은
애가 탔겠어요.
놀보 그런 고개지를 향해 당시 사람들이 ‘치매 반 천재 반’
‘치힐 각반’이라고 했답니다.
초란 뛰어난 인물에 대한 특별한 평가였군요. ‘치매 반 천재 반’
‘치힐 각반’이라. 혹시 인조 때 택당 이식도 그런 경우였나요?
놀보 한문 사대가 한 사람이고, 인조 때 형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낸 택당 이식은 치매에 대해 이런 흥미로운 구절을
남겼거든요. ♬치응 료 관사러라 癡應了官事
초란 택당이 치매에 대해 한마디 했던건가요? 치매를 활용해서
사회에다 한마디 던진건가요? ‘치응 료 관사’라니요?
놀보 관가의 온갖 일을 벗어나려면 치매에 걸려야 겠더라.
초란 관가의 온갖 일이라면 셀 수 없이 많은 일들 아닌가요?
나와서 성을 쌓아라. 강둑을 만들어라. 쌀을내라 세금내라.
아무개 대감 모셔라. 아무개 사또 뫼셔라.
놀보 관리들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했습니까.
그 헤아릴 수 없는 관가의 일에서 일평생 벗어날 수 없는게
사람사는 일인데, 그걸 벗어나고 싶으면 치매 걸리는 수 밖에
없더라. 택당 이식이 말한 ‘치응 료 관사’에는 이런 고사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이 구절 보세요.
초란 진서 부함전에 말하기를 “낳은 자식이 치매(癡呆)여야만
관가의 부역과 노동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어찌
관청의 일을 아무나 그만둘 수 있으랴.
[生子癡了官事 官事未易了也]”
놀보 다른 이야기 밀쳐두고 이거만 생각해 보자구요.
사람 한평생 사는 일, 치매가 오면 끝장난다는 역설이거든요.
관가의 일에 매달려 살던, 집안일 벗어나지 못하고 살거나
사람 사는일이 다 그런건데. 치매는 그로써 끝장이다.
초란 요즘 젊은 나이에 치매 걸리는 일도 부쩍 늘었다죠. 사는 한
사는 그날까지 치매없는 세상을 위해, 오늘 어찌해야할까요?
‘신 명심보감’ ‘고개지와 이식의 치매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최치원의 글, 그리고 목은선생이 나눠 준 약상자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태평한 시대와 어려운 시기에 선비는 어찌 처신할 것인가를
최치원과 이색을 통해 돌아볼까 합니다.
초란 최치원은 통일 신라 말기 사람이고, 이색은 고려 말기
둘 다 비슷한 점은 왕조의 말기 인물이란 거 군요.
놀보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
당나라 조정으로 유학갈 인재를 파견하면서 신라왕을 대신해
이런 당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 보세요.
초란(낭송) 동방의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배우려 하는 것은 오직 예(禮)와
악(樂)이라고 할 것인데, 여기에다 여력이 있으면 문장을 더
공부하고 정음(正音)으로 언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게
유학생들이 배워와야 하는 학과라 하겠습니다.
놀보 그때까지만 해도 신라의 인재들이 중국 당나라에 가서
예와 악을 배우기도 하고 인문학을 다시 배우기도 해서
국내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한림으로 일하는 기둥이 됐죠.
이건 외침이 없고 비교적 태평한 때 유학생을 보냈던 것이고
몽고의 모진 침략 끝에 국자감 건물도 불타고 그 위에서 다시
일어서야했던 고려말 목은 이색은 어땟는지 이 글을 보실까요?
초란 (낭송) 오 소윤(吳少尹)이 찾아왔기에 내가 묶어 둔 약 한 상자를
그에게 맡겨 민간의 병자들에게 나눠 주라 하면서 보낸 글이군요.
놀보 아까 최치원은 그래도 나라 사정이 괜찮으니깐
당나라로 유학생 보내면서 이 인재들 잘 가르쳐 주시길
부탁합니다. 이런 기대와 희망으로 글을 지었는데,
고려말 목은 이색은 무너진 국가기강에 교육에 힘쓸겨를도
없이 아픈 병자들 많은 때라 숨겨 둔 약 한상자를 꺼내
아픈 사람에게 나눠 주라는 목은선생 그 몇구절 돌아볼까요?
초란(낭송) 평생 나라 구할 손 소매 속에 넣은건
손만 꺼내려면 방해자 많아서였다네
나라 병세가 손바닥 보듯 뻔한데/ 이내 몸도 병석에 누었다니
새벽별같이 명의도 드믈고/ 불러도 나오지 않는 인심이라니/
그 와중에 날 보호해준 의리 바다같고/ 아픈데 치유해준 은혜
깊고도 두텁구료/
놀보 나라가 안정되고 그런 때는 인재를 기르고자 당나라에
유학생도 보내고 했지만, 고려말 바람앞에 등불처럼 흔들리는 때
목은 이색은 나라도 병들고 자신마저 병들었노라 탄식하고있죠.
초란 더구나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마구 쓰러지고 있는걸 보면서
목은 이색은 그런 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고민 했겠군요.
놀보 그래서 내놓는게 숨겨 둔 약 한상자였다는겁니다.
여기 이 구절에 목은의 뼈 아픈 애민정신 일부를 볼 수 있거든요
초란(낭송) 그대는 병 고치는 방술로 사람 구하소/ 나는 연뿌리라도 캐야겠네
우선 이 약을 가난한 환자들에 나눠서/ 남은 생명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게 해주게나 / ♬잔천수교 첨득수러라 殘喘須敎添得壽
초란 태평시엔 교육이겠지만 병들고 쓰러지는 때는 숨겨진 약상자 밖에
더 줄게 없어 슬프더란 목은 선생글을 돌아봤습니다.
‘신 명심보감’ ‘최치원과 목은’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선계의 삼청과 이땅의 삼청은?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초란 고전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삼청’이란 말을 잠시 돌아볼까요?
초란 삼청동 살았다는 춘향이 애인 이도령이 생각나는데요?
놀보 어떻게 삼청 하니깐 이도령 사는 동네부터 생각합니까?
초란 왜 그렇게 보세요. 지금도 서울 삼청동 그럼 다르잖아요.
놀보 예전엔 그 삼청동 옆으로 소격동으로 소격서란
하늘 제사 올리는 곳도 자리해 있었거든요. 거기서
삼존을 모시는 의식도 올렸구요.
초란 삼청이란 세가지가 맑다. 그런 삼청으로 알았더니
세가지를 받들고 뫼셔라. 그런 삼존으로 떠 받들었군요.
옛날에 삼청, 삼존으로 떠 받든 인물이 누구누구였는데요?
놀보 (성독조 책을 읽듯이) 도교에 이르기를 옥천경 원시천존과
상청경 영보천존과 태쳥경 도덕천존을 삼존이라 하였더라
초란 아, 도교에서 나온 삼청풀이군요. 옥같이 맑은 옥청.
제일로 맑다는 상청, 더 할나위 없이 맑은 태청.
도대체 얼마나 맑은 세상이길래. 옥청, 상청, 태청 그랬대요
놀보 인간세상이 아닌 신선세상을 뜻하는 말이었죠.
탄생의 존엄, 신령의 존엄, 도덕존엄 그 신선세상
세가지 맑은 삼청을 생로병사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 하고 나도 그 세상에 살아 봤으면
그리워 했겠습니까.
초란 기다리고 그리워 하다 땅 이름을 삼청으로 짓고
그 삼청세상 오기를 빌었던 모양이군요.
놀보 그런데 당나라에서 활약했던 최치원이 남긴 글을 보면
삼청 세상은 우리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아주 글로
기록해 남겼거든요. 이 ‘계원필경’ 물장편 보세요.
초란 (낭송) 이 상서로운 것은 삼청에서 내린 겁니다.
여기 사람 모형의 인삼은 바로 그 상청의 땅에서
가까운 삼신산 근처에서 자란 걸 올리는 것이고,
해동의 거문고는 천연의 형체에 백성소리 아악소리
운치를 머금은 악기입니다.
놀보 해동에 삼청이 있다. 그곳에서 자란 인삼이니
이 얼마나 신묘한 약초이겠습니까. 그런 뜻이 담겨 있죠.
거기에 해동의 거문고로 말하면 천연 자연의 형체에다
백성의 소리 아악의 소리까지 다 머금고 있는 악기이니
삼청의 신묘한 약초에 백성의 소리 머금은 악기를
선물로 전한다는 뜻이거든요.
초란 해동에 신선들이 산다는 삼청이 있다는 걸 말한
최치원, 아 그래서 서울에 아직도 삼청동이 있다는거잖아요
놀보 그래서 인간세상 세 가지 존엄을 구경해보자? 그런
삼청으로 받아 들일게 아니라. 이 시대 맑아야 할
삼청을 한번 꼽아 보세요.
초란 이 시대에 맑아야 할 삼청을 꼽아라. 초란이가 신선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난감한 일을, 놀보성 한번 꼽아보서요.
놀보 다들 아시잖아요. 안되니깐 문제이지.
이 시대 맑아야 할 세가지. 삼청은, 산과 물과 사람 이죠.
초란 아, 그런가요? 애청자 여려분도 삼청을 한번 꼽아 주시죠.
이 시대 맑아야 할 세가지 ‘산과 물과 사람’ 이라는데?
오늘 ‘신 명심보감’ ‘삼청’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노동하는 백성들 고사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오늘이 근로자의 날인지라. 노동에 얽힌 고사를
돌아볼까 합니다. 먼저 국조보감에 전해오는 정조대왕이
노동하는 백성들을 어찌 생각했는지, 이 구절 한번 보세요.
초란 정조대왕이 노동하는 백성들에 대한 생각이 기록된
국조보감 한 구절이군요.
(낭송) 올해 팔도의 보리도 지금 과인이 보고 있는 보리처럼
알찬 결실을 맺었는지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란게
풍족해 지면 해이해 지기 쉬운 법이다. 혹시라도
올해 농사 좋다고 내년을 생각하지 않고 일손을 놓은채
놀고 먹으며 노동을 하지 않은 풍조가 생길까 걱정이니
내년을 생각해 미리 개간할 밭도 일구게 하고,
거름이나 퇴비도 미리 미리 비축하게 해야 할 것이다.
놀보 이 국조보감 기록이 정조 5년 때인 1781년 5월조
기사거든요. 그해 보리농사가 잘 됐던가 봅니다.
정조는 보리밭으로 나가서 직접 보리가 어떻게 자랐는가
보면서 팔도의 보리가 이처럼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편으로 농사 잘 됐다고 미리부터 먹고 노는 풍조가
있어선 안될 것이니. 내년을 생각해 미리부터 밭을
개간하는 일도 늦추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있죠.
초란 일하는 보람을 그때 그때 있는대로 다 탕진할 수 있는가?
땀을 흘리는 값을 제대로 돌려 받으려면 내년에 닥칠
궁핍을 지금 대비해야 하는 일 아닌가?
놀보 바로 그런 뜻으로 정조대왕이 보리가 여물어 가는
5월에 팔도의 보리농사를 걱정하면서 혹시 올해
풍년 들 것이라고 미리부터 일손 놓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당부를 내리고 있죠.
여기 조선 후기 문신 황현이 매천집에 남긴
남사 홍건을 그리며 지은 노래 한구절 보실까요?
초란 (낭송) 한번 일어서서 백성을 향해 외치니 호서 사람 호응함이여
애써 땀흘려 쌓은 성 굳건하게 판삽을 잡았구료.
여기서 남사 홍건이란 분이 백성들과 함께
땀흘려 성을 쌓았더란 내용이 보이는군요. 여기서 판삽은?
놀보 외침을 막아 내고자 백성들과 땀 흘려 쌓은 성.
그 일을 앞장서 성사시킨 남사 홍건의 공이 크다는
뜻인데요. 판삽의 정신으로 성을 쌓았다는 비유를 한거죠.
초란 백성과 함께 땀 흘려 쌓은 성, 그 일을 마치
판삽의 역사를 이룬 것과 같이 했으니 그 아니 장할손가.
그런 뜻이군요. 그렇다면 판삽의 정신에 노동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있겠군요.
놀보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 명장 전단은 강력한 연나라군을
맞아 싸워야 했는데, 평소 군사들과 함께 사역을 할 때
앉아 있을 때는 삼태기를 짜고, 서 있을 때는 가래를 들고
몸소 군사들과 함께 노동을해서 이에 감동한 사람들이
더욱 힘써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해서 전란에 대비해
마침내 연나라 강적 악의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겁니다.
초란 그럼 판삽의 정신은 지도자가 일하는 사람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걸 말하는거군요.
놀보 조선 말엽 고종 때 남사 홍건이 바로 그런 정신으로
백성과 함께 땀 흘려 외침에 대비했더란 겁니다.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노동고사’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대나무 그림을 말아 들고 다닌 사람들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 대나무 그림을 돌돌 말아
가지고 다닌 일이 종종 있거든요.
초란 대나무 그림을 두루마리로 가지고 다녔다고요.
왜요 대나무 가끔 볼수 있는거잖아요.
놀보 그렇죠. 시골 특히 남쪽으로 조금 가면 만날 수 있는
대나무들인데, 왜 두루마리 그림으로 가지고 다녔을까?
그렇다면 먼저 적벽부를 지은 소동파하고
대나무 이야기부터 잠깐 돌아볼까요. 여기 보세요.
초란 소동파가 남긴 ‘어 잠승 녹균헌’ 이란 글이군요.
(낭송) 밥 먹을 때 고기 없는 건 괜찮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 없는 건 고역이다. 고기반찬 없으면
몸이 마를 뿐이지만, 대나무가 없으면 잡스럽게 되나니‘
놀보 예전에 선비들이 왜 대나무를 가까이 했는지
짐작이 가죠? 대쪽같다. 대쪽같은 절개다. 사계절
푸른 기상을 가졌다. 사군자 중에 송죽 아니냐?
그런 대나무를 선비들은 고기반찬 보다 소중히 여겼죠.
초란 소동파랑 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 선대 선비들
많이 있었겠죠. 그래서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도 살아
전해진거 아닌가요?
놀보 자,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세요. 나랏일 때문에
만리 먼먼 중국땅을 가야했던 사신. 그 흙먼지 뿌옇게
일어나는 가도 가도 끝없는 대륙을 달려가면서
고국 땅 소나무 대나무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요?
초란 이땅에 살 때는 그냥 쉽게 스쳐 지나갔던
소나무 한그루, 대나무 한그루가 사무치게 그리워
졌겠군요. 가도 가도 끝없는 대륙벌판을 달려가면서요.
놀보 그때 돌돌 말아둔 그림 한 장을 꺼냅니다.
무슨 그림이었을까요. 대나무 그림과 시가 함께 있는
두루마리 속 대나무 그림이 펼쳐 지는겁니다.
초란 그게 중국 대륙을 달리던 사신들에게 큰
위로가 됐겠군요. 사신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여정이었잖아요.
놀보 특히나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중국 명나라를
오갈 사신들에겐 난리가 났으니 부담 백배요
업무에 대한 피로도 백배였죠. 그런 때
두루마리를 펼쳐 대나무 그림을 봤더란 겁니다.
여기 ‘간이 최립’이 남긴 ‘낭강권’ 서문 보실까요?
초란(낭송) 먼 길이거나 고된 길을 가다/ 지치고 힘들 땐
돌돌 말은 대나무 그림을 펼쳐 봤나니/ 맑은 바람
불어와 감싸주고/ 밝은 달이 찾아와 길을 밝히고/
벗하여 주니/ 하루인들 이 대나무 없이 어이 살으랴/
놀보 옛 사람이 먼 먼 길을 오갈 때면 돌돌 말아서
가지고 다녔다는 대나무 그림. 그 맑고 곧은 기운
잃지 않으려 했던 뜻을 돌아보게 됩니다.
초란 혹시 휴대폰에 대나무 사진 한 장 담아두실 생각은?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대나무 그림’ 고전 자료는, 인터넷 까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혹시 헌마공신이란 말 들어 보셨습니까?
초란 공신이라면 개국공신도 있고 정난공신도 있고
일등공신이란 말도 쓰고 그러잖아요. 근데 헌마공신
소리는 첨 들어보는데요.
놀보 공신은 공신인데 헌마 공신이다. 임진왜란 이후
제주 김만일이란 사람이 받은 공신 칭호거든요.
초란 임진왜란 이후, 제주사람 김만일이 받은 헌마공신
아, 말 마자가 들어간 헌마공신이라면 제주 말하고
연관있는 공신이겠군요.
놀보 제주엔 재물을 풀어 무수히 많은 사람을 구제한
김만덕이란 인물이 유명했었죠.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바로 광해군 때 김만일이었거든요. 한라산에 1만 마리
가까이 되는 말을 기르던 말목장 경영자이기도 했었죠.
초란 선조 광해군 시절 제주에 말 1만 마리. 엄청난
부자 아닌가요? 그 김만일이 헌마공신 소리를 들은건
무슨 일 때문이었나요?
놀보 전란을 치르면서 무수히 전쟁을 수행하면서 다급해진게
군마 수급이었죠. 그때 제주 김만일은 자신의 말을
모두 4천 8백여필이나 국가에 바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란 때 군마를 바친 공신이다. 해서 헌마공신. 했던
초란 자신이 기른 말의 절반 가까운 숫자를 나라에 그대로
바쳤던 김만일이었군요. 그래서 생긴 말이 ‘헌마공신’이란
말이었구요. 그 김만일이 공신 벼슬을 받았으니
그래도 제주에선 큰소리 치고 살았겠지요?
놀보 한동안 2품직 공신에 올랐으니 명예도 대단했었죠.
그런데 헌마공신 김만일과 제주목사 양시헌이 크게 충돌해서
양시헌이 김만일과 그 자식들까지 잡아 들인 사건이
생겼거든요. 매질도 당했구요.
초란 헌마공신 김만일이 무슨 죄목으로 그 많은 말들을
나라에 바치고 또 자식들이랑 잡혀가 매질까지
당했을까요?
놀보 원칙의 문제이기도 했죠. 당시 제주말을 육지로
내보낼 때 새끼를 낳는 암말은 제주 밖으로 내보내는 걸
엄격히 금지 했던겁니다. 그런데 제주목사 양시헌이 그
원칙을 무시하고 김만일에게 암말을 내 보내라.
초란 그걸 김만일은 제주땅에선 암말을 밖으로 내보내면
국법에 의해 처벌 당한다. 법을 어기고 방출할 수 없다.
그렇게 버텼겠군요.
놀보 그러니 저놈 잡아 들여라. 해서 매질을 했던건데
광해군이 그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 분노합니다.
헌마공신 김만일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심문했느냐?
무슨 근거로 제주의 암말을 육지로 천필이나 유출했느냐
명색이 조정에서 품계를 받은 헌마공신을 제주목사가
형을 집행하다니.
초란 나라에 4천 8백필이나 되는 말을 기부했던 제주 김만일이
그런 모진 고생도 하면서도 제주에서 말목장 사업을 크게
일궈 나갔군요. 헌마공신 후손은 어땟나요?
놀보 김만일의 손자 김남헌은 제주에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자. 쌀 1340석을 풀어서 구제를 했으니, 헌마공신
집안전통을 되살린 셈이죠. 자, 이 시대의 헌마공신 누굴까요?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헌마공신’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우면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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