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은둔의 땅 무스탕을 가다―(3) 110808 월요일
새벽까지 오던 비가 끝였다. 밤새 나의 잠을 쫓던 모기들도 이제는 조용하고 손과 다리가 가렵다.
4시부터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장갑 옷가지 비상 식량을 꺼내 분배한다. 밖은 이제 발동기 소리 요란하다 5시가 되니 밖은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 개와 원숭이 싸움 소리도 조용하다 나의 관심은 오늘 비행기가 좀솜으로 무사히 이륙을 바라는 것뿐이다.
우리 부부가 부산을 떠니 옆방의 우보대장과 김셈이 노크를 한다. 조식은 라면으로 때울터니, 5분 뒤 건너오라는 전갈이다. 코펠에 라면을 부수어 넣는 솜씨가 많이 숙련된 경지다.
장조림 통조림을 반찬 삼아 먹고 커피까지 한잔 한 뒤 내방으로 건너왔다.
고소약 반 알과 비타빈-씨2알을 먹고 가방을 정리하여 문밖에 내 놓은 뒤, 야외 의자에서 밀크티 한잔을 마신다.
이 호텔의 주인도 40대를 바라보는 나이다
요사이 취직도 안 되고, 장가도 못가고, 이곳저곳 들리다 이곳에 정착하여, 한국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듯하다.
공항으로 이동한다. 7시 비행기는 오늘도 여지없이 40분 연착이다. 짐은 모두 20여개가 넘는다. 짐은 인당15키로의 한도를 215키로 넘어서 두 번 나눠 싣기로 했다 그리고 탑승한다.
고도 2700미터의 좀솜 공항에 도착한 것은 불과 25분후, 17인승의 경비행기는 공항을 박차고 오르더니 거대한 산봉우리 속으로 계곡을 타고 작은 새처럼 날아 오른다.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스치며 몇 구비를 돌아치며 구름에 싸인 몇 개의 신비스런 봉우리를 보일 듯 말듯 나르더니 올바로 착륙이다 .비행기서 몇 장 담으려던 촬영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그저 무사히 착륙이 고맙다
닐기리 봉도 안 보인다. 1번 좌석은 프로펠러 앞이었는데!
착륙하고 안개가 걷히니 동남쪽이 열리며 설산 하나가 뵌다. 아름답다 그놈의 닐기리봉이다. 하늘은 청명하다 구름과 바람은 우리의 여행를 반기는듯 적당히 불고, 시야가 몽고하늘처럼 멀리보이고 가깝게 느껴진다.무덥던 포카라는 사라지고 우리의 초가을 날씨로 변한 주변이 우릴 반긴다!
가이드를 포함한 우리 카라벤일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40대 초반 중간키에 건장하나, 이지적인 모습의 가이드는 이름이 “캘림보”다 貰馬費로 마리당 200불을 약정하고 갔는데, 말 임대료를 50불 더 달란다. 무스탕의 관광객이 많아져 수요가 많아지고 식당이나 음식 갑도 3배 이상 뛰었다는 고 짱셈이 통역을 한다.
우리야 꿔다 놓은 보리 짝 아닌가. 더 지불한다.
10시 출발을 앞두고 호텔 식당에서 늦은 조식을 한 뒤, 우리 케라번의 조직을 만나고 촬영한다.
짐싣는 나귀, 이곳은 “겉절”이라 부른다. 걷절 8필, 말 2필, 가이드 "캘립보", 요리사 “슈렌드라”,
셀퍼 3인, 말몰이꾼 3인, 한국인 일행4인, 짱셈과 스님, 모두 14명에 말과 나귀, 10필의 대부대다..
갑자기 올라온 고도 2000미터 때문인지 눈에 닫는 땅의 느낌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구름다리 밑으로 흐르는 빠른 잿빛 물줄기가 이곳이 무스탕 초입임을 (우리에게 은근히 겁을 주며) 알리는듯, 세차게 물소리를 낸다!
먼저 사람 13명과 말 2필만 우리를 따른다.
강을 건너면 우측으로, 강을 따라 산 밑 길을 오르면서 시작된 여행길은, 이름 모른 들꽃과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푸른 나무인지, 풀인지 모를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온통 융기된 땅의 점토질 흙속엔 물결에 마모된 둥근 자갈이, 콩 넣은 백설기처럼 산지사방에 박혀 있다?
큰 고개를 둘 넘어선다. 오르는 길은 숨이 찬다. 내려오니 지천과 만나는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 잇다. 물이 깊은 모양이다 발을 벗고 건너는 여행객도 있다. 우리는 다행이 말이 있어서 교대로 건너간다. 그리고 첫 로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에클로바티 마을이다 어원은 한집메란 얘기란다 그런대 이곳이 알려지면서 여러채의 로지가 영업중이다.
밀크티 한잔과 비스켙 과자를 낸다. 이곳에 30분 즘 휴식 후 다시 걷는다.
우리는 네시간 만에 까그베니에 도착한다. 고소 적응을 위해 첫날 맛보기 여정으로 준비운동을 한셈이다. 동네구경에 나선다.
먼저 도착한 이태리팀 14명이, 좋은 곳을 차지하여 우리는 좀 수준이, 떨어지는 paradise lodge를 잡았다. 침대는 2개 있고 화장실은 공동이다. 말 한필에 양식을 싣고 한 마리는 우보와 나, 마누라가 교대로 타고 왔다. 대충 10키로 대보이고 고저는 100미터 안팎의 뒷 바람이 대단히 센 강, 길을 걸어 해발 2930미터의 까그배니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red house temple이 있다.
이 절은 1429년에 건립되어 발전하다, 520년 방치되고 아주 오래된 불상과 불화가 있으며, 스님을 초대하여 절을 운영하며 현재는 35분의 스님이 머물고 있다 . 35분이 모두 절에 머무는 것은 아니고, 이유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해서라 합니다.
籍은 있으나 다른 곳이나, 공부를 위해 인도 등지에 있다는 애기입니다. 그러나 공부 후, 모두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네요. 사찰에서는 지금도 보딩스쿨을 운영하고 잇는데, 이곳에서는 영어와 불교 경전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절에 지급하는 100루피의 입장료는 학승의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티벹 불교의
4대 종파는 게루파 (달라이라마 파), 카투파, 사캐파, 링마파 이며 게루파의 사찰입니다.스님의 설명이다.
금단의 왕국 무스탕의 역사를 개략해 본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네팔의 다울리기리 지구 무스탕군에 속한다 .무스탕은 우리 국립공원과 유사한 안나프루나 보존 지역에 속한다. 북쪽의 티벹 국경에서 남쪽의 가사, 동쪽은 마냥 ,서쪽은 고산 오지인 돌포이며 ,큰 마을은 깔리 깐다기 강을 따라 20개 마을이 분포돼 있다
이 왕국의 인구는 마을당 50호 ,호당 10명, 20개 마을10,000여명 그리고 로만탕에 5000명 정도 보면 15,000명 안팎이다.
까그배니를 중심으로 위쪽을 상무스탕, 아래를 下무스탕이라 구분하며, 이북 上무스탕을 로왕국이라 부른다.
이곳 윗 지역을 입경하면, 출입 허가를 득하고 기본 10일에 인당 650불의 허가퓌를 내야한다. 하루 초과 시마다 70불씩 추가 납부해야 한다.
이곳은 관통하는 깔리간다키 강은 암모나이트 화석이 많이 나온다. 바다 밑의 지층이 급속히 융기하여 형성된 히말라야 지형의 특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地理면 에서는 무스탕은 안나푸르나(8,091미터)와 다울라기리(8,167미터)의 사이를 흐르는 깔리. 깐타키江의 최상류에 속한다.
무스탕은 로 王國이라 불리던 티벹인의 소왕국이다 . 로 왕국의 首都는 성벽 도시 만탕이다.
이곳은 티벹과 인도의 중개무역을 하면서 발전했으나 (소금, 차, 가죽) 로만탕의 소금 광산은 옛적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19세기 후반 네팔 정부의 소금 교역의 이권 독점으로 퇴락한다.
마을 구경과 오래된 초르텐의 보물급 천정벽화 이곳의 벽화는 도굴의 방지을 위한 나무 보호대가 있어 촬영이 방해된다 .그리고 돌담 ,고목나무 주민들 등을 촬영 하고 오니, 2층 식당에서 주방장 슈렌드라가 김치찌개,감자볶음,깍두기, 마른 김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 후 우리는 우보와 김셈 쟝셈과 앉아서 우린 얘기를 듣고, 우보와 김셈은 팩소주를 마시며 있는데, 이탈리아 팀은 저녁이 안됐는지 기다리고 있다. 같은 반도국이라서인지 그들로 꽤나 시끄러웠다. 이들은 계속 우리와 조우하고 만나고 한다.
그들은 키가 커서인지 성큼성큼 잘도 걷는다. 그들은 모두 트랙 킹으로 낙오 없이 잘도 걷는다. 저녁 후 내려와 우리가 할 일은 머리감고, 발 씻고, 새로 장만한 닭털 침낭 펴고 잠자는 것뿐이다.
빵 소리가 난다 이곳은 차량이 없는 곳이니무엇인가 궁금하다?
그것은 사찰의 예불 소리였다!
우리를 환영하는 어린 아이 귀에 꽂은 꽃이 앙증맞다.
쟂 빚 하천을 위에서 보다.
첫 동네에서 출발하는 우리의 나귀와 짐.
사철 외벽의 전경 중세 성곽같아 뵌다.
위 건물 내부의 천정의 벽화.
설기 떡 속에 넣은 콩처럼 융기된 토양에 암석이 박힌 모습이 바닷 속에서 융기된 토양임을 증명한다.
출발 전에 찍은 우리 등반대원 일행 사진 앞 줄은 영행객 뒷 줄은 주로 포터 요리사 우축이 가이드 난 촬영을 해서 없네
첫댓글 참 대단한 친구~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