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임경희
이래서 ‘화무십일홍’이라 하던가. 눈 시리도록 화사한 벚꽃이 지나간 자리, 분명 며칠 전까지 철쭉이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는데 오늘 그 꽃들은 툭툭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제 하루하루 마르고 바스러져서 결국은 먼지로 사라져갈 것이다. 4월의 눈, 벚꽃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짧지만 살아 있는 동안 강렬했고, 꽃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다한 뒤 사라지는 봄 꽃...
가능한 꽃을 밟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걷는다. 불현 듯 내 인생의 개화기는 언제였는가 의문을 갖는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려 지던 그때였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같은 연애를 하던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모두가 뜯어 말리던 가난한 홀어머니의 외아들과 결혼을 용감하게 감행하던 그때였을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개화기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는데 내가 땅에 뿌리까지 뽑혀 패대기 당한 시간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인생이란 녹록치 않다. 느닷없는 배신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긴 여정이게 때문이다. 15년전 겨울, 한밤중에 귀가한 남편은 자기에게‘다른 여자’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전쟁 선포였다. 덜덜 떨면서 재판상 이혼 과정을 거친 뒤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반 지하 전세방에 누웠을 때 마치 공포 영화를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게 더 이상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나는 무조건 살아내야 했다.
안타깝게도 한참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부모의 이혼을 겪어낸 아들은 비행 청소년의 길에 들어섰다. 흡연, 폭력, 오토바이 사고, 심지어 무면허 자동차 사고까지 내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자식을 잘못 키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제 잘못입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이런 광경이 반복되면서 아들은 서서히 내 곁으로 돌아왔다. 기적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학교로 출근하지 않는다. 지난해 ‘명예퇴직’을 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사실은 건강을 잃은 불명예 퇴직이다.
길고 긴 배신과 인고의 시간 동안 내 몸의 여기저기에 암세포가 자라났다. 1999년 자궁암 수술, 2007년 갑상선암 수술, 2009년 유방암 수술 오른쪽 수술, 2014년 유방암 왼쪽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도 70번이나 받았다. 이 절망과 지옥을 오고 가면서 내가 내린 결정은 ‘퇴직’이었다. 그동안 목숨처럼 나를 지켜주었던 나의 자존심 ‘선생님’이란 소중한 자리를 기꺼이 내려놓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위해서 젊고 건강한 선생님들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옳다는 자각이 들었다. 더 이상 부등켜안고 있는 것은 나의 추악한 욕심이었다.
시골로 이사를 했다. 학교를 그만두자 더 이상 도시에 살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짐들도 대부분 버렸다. 조그만 트럭에 최소한의 짐을 실고 시골에 내려 왔다. 이렇게 다 버려도 되는 것을 그토록 쓸데없이 많이도 움켜쥐고 살았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제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 집을 나서기 전 미세먼지 상황을 체크한다. 암환자에게는 미세먼지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세먼지 상황은 ‘매우 나쁨’이다. 불편하지만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선다. 논두렁 밭두렁 길을 느리게 걷는다. 이곳저곳을 살피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시골에 내려와서 달라진 나의 방식이다. 아기 똥풀도 쳐다보고, 밭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농부의 등도 바라본다. 노랑나비처럼 보이는 예쁜 꽃의 이름이 ‘피나물’이라는 것도 시골에 내려와 알게 되었다. 40여분을 걷다가 도착하는 곳은 배방산 초입에 있는 ‘운정사’라는 작은 절이다. 절 마당에는 낡은 흔들의자가 있다. 불자가 아닌 방문객을 배려한 고마운 의자다. 그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닫혀 진 대웅전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스님의 불경소리, 목탁소리, 그리고 바람이 연주하는 청아한 풍경소리를 함께 듣는다. 평화롭다. 참으로 평화롭다. 어쩌면 내 인생의 진정한 개화기는 지금인지도 모르겠다. 눈만 뜨면 직장으로 달려갔고, 미친 듯이 일했고, 밤이 되면 쓰러져 자던 그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아들은 수의대학교를 졸럽하여 수의연구사가 되었고, 아들에 배해 일찍 공부에 열중하던 딸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그토록 목숨을 던져 소망하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다해냈다. 이제 아들과 딸은 제각각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것이다. 내게 더 이상의 바램은 없다.
바람이 분다 길바닥의 마른 꽃잎들이 우수수 날아간다. 문득 ‘더스트 인더 윈드’<Dust in the wind> 팝송 가사가 떠오른다. 70년대 푸르던 청춘 시절에 이 가사를 생각 없이 불렀었는데...
‘그것 모두는 바람 속의 먼지다. 매달리지 마라, 그것은 사라진다. 네 돈 전부를 주어도 시간을 살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다...’
참으로 가슴을 치게 하는 철학적인 가사다. 지금에서야 나는 이 노래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 가만가만 흔들의자에 앉아 나지막이 노래를 읊조려본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가 알려고 하지 않겠다. 다만 평화롭고 행복한 주어진 지금이 이 시간에 감사하련다.
언젠가 바람이 불어오면 기꺼이 먼지가 되어 날아가리라. 훌훌 미련없이 날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