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대와 인하대의 대학배구 결승전을 하더군요. 전고려증권 세터였던 이경석 감독을 보니 예전 고려증권이 생각이 나서 고려증권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가끔식 고려증권을 무명의 선수로 뭉친 탄탄한 조직력으로 스타군단 현대팀을 물리친 팀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글들을 보곤 하는데 약간은 과장도 있는 것 같아 제가 아는한에서의 가능한 객관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 또한 고려증권의 매니아였습니다.
▲ 스타군단 고려증권 - 1기
83년 창단시 고려증권은 국가대표 6명을 보유한 강한 팀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세가 매우 강한 상태(경기대, 인하대)에서 창단한 상황이므로 장윤창, 유중탁, 김상권 등 대학생 국가대표 스타군단이었죠. (같은 해에 창단한 현대의 경우 조금 늦게 창단하면서 스카웃전에서 완패, 강만수, 이인, 차주현 등 외국클럽에서 뛰던 노장선수를 주로 스카웃하게 되고 대표급 대학선수는 문용관에 그치죠)
게다가 다음해에는 현대, 금성과의 치열한 스카웃 전쟁 끝에 경기대의 정의탁까지 스카웃, 젊은 피의 최강 진용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는 원년인 84년과 85년 슈퍼리그(대통령배) 2연패를 합니다.
▲ 젊어진 현대의 등장
창단시 “늙은”팀이 었던 현대는 강만수와 이인이 은퇴하면서 84년 이후 적극적인 스카웃을 하게 되는데 원년도 준우승팀인 경기대의 이종경, 이채언, 김형태, 이세호(지금은 해설을 하는...원년대회 블로킹 2위였답니다.^^)를 모두 스카웃하고 김호철까지 국내로 복귀시킵니다.(원소속팀은 금성) 그리고는 우승을 하게 되고 그에 더해 한양대의 양진웅,신대영,과 성대의 노진수까지 스카웃을 하면서 대회 3연패를 하죠.(김호철은 86.87 두 시즌을 뛰죠) 이당시는 스타군단 고려증권과 스타군단 현대의 대결이었습니다.
▲ 최전성기의 고려증권 - 2기
현대에 비해 선수층이 탄탄했던 고려증권은 이 시기에 경기대의 장신(!)세터 이경석, 수비의 귀재 홍해천, 강펀치의 한양대 이재필 등 대표급 선수를 보강하게 되고 89년부터 최전성기를 구가합니다. 장윤창, 유중탁, 정의탁, 이경석, 이재필, 홍해천으로 짜여진 이당시의 고려증권은 무패로 우승을 하는 등 최강의 전력을 보여주면서 슈퍼리그 2연패(89,90)를 기록합니다.
▲ 고려증권의 침체
주전들의 노쇠화와 유중탁의 은퇴, 이재필, 홍해천의 군입대로 팀전력이 약해지면서 고려증권은 2년 연속 패권(한양대,상무)을 내어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대학생 국가대표를 지낸 서울시청의 박삼룡, 이성희와 어창선이 입단을 합니다. (현대는 마낙길, 하종화, 윤종일, 제희경 등의 국가대표 선수 입단) 비운의 선수였던 세계청소년대회 MVP 김은석도 이 시기에 입단하죠.
▲ 무명(?)의 반란 - 3기
서울시청 3인방의 활약과 이재필, 홍해천의 복귀, 그리고 마지막 불꽃을 태운 장윤창의 활약으로 93년 우승을 하게되는데 이때부터 스타군단으로 불린 현대와의 차별화가 시작됩니다. 특히, 당시 주전이었던 무명급의 이재욱(센터,190)과 높은 평균연령이 그런 경향을 심화시켰습니다. 아무래도 모기업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특급선수 스카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94, 95년에는 문병택(명지대), 이병희(한양대), 이병용(경기대) 등 국가대표는 아니었지만 대어급의 알짜배기 선수들이 입단하면서 새로운 팀의 활력소가 되었으나 팀의 대들보였던 최고의 토스 스피드를 자랑하던 이성희와 박삼룡 등이 군에 입대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임도헌 등 특급선수 들이 줄지어 입단하는 현대와의 차별화는 더욱 진행되죠.
96년에는 정의탁이 은퇴하지만 이성희의 복귀와 박선출을 입단시키는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지금도 명승부로 남아 있는 극적인 우승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말” 무명이었던 홍익대 출신의 이수동이 대활약을 하죠...
97년도부터는 박삼룡 등 주전의 노쇠화와 이수동 등 주전의 군입대로 전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모기업이 부도나게 되고 이후 98년 슈퍼리그 출전을 강행했으나 4강 진입 실패 후 눈물의 팀해체를 하게 됩니다.(당시에 우승하면 팀이 인수될 수 있다는 루머도 있었죠)
아시다시피 후반기의 고려증권은 스타군단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대를 이길 수 있는 이경석,이성희로 이어지는 좋은 세터를 보유하고 있었고 공격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전원 서브리시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수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오관영 해설위원의 표현으로는 징그러운 팀이라는...)
그리고, 후반기에는 모기업의 재정악화로 신인선수 수급이 제한되었지만 은퇴, 군입대로 인한 포지션 공백이 있을 경우에는 필요한 선수를 스카웃했고(장윤창-문병택, 정의탁-박선출 등) 에이스급 선수들은 모두 노장소리를 들어가면서 오래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피를 대적할 수 있는 쳐내기 공격 등 노련한 테크니션들의 팀이었습니다.
첫댓글 1기, 2기, 3기를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팬으로서 그 시절이 많이 떠오릅니다.. 지금껏 배구팬들이 그렇게도 좋아라하는 팀...... 그 이름하여... 고려증권~~~~
고려증권을 주택은행에서 인수 하려고 했었는데, 은행원들 짜르는 마당에 스표츠단 창단은 말도 안된다는 벽에 부딪힌걸로 압니다...엉엉엉엉...
고려중권 별로 좋아하질 않았던 기억이..... =33==333
타팀을 응원해서 당시 고려증권 정말 싫었지만 정의탁 선수는 좋아했던 기억이...여전히 멋지군요 ㅋ
세대차;;;나는 도통누굴얘기하는지''
이수동....... 파이팅맨........
저는 3기부터 왔던 세대인데요...당시 저의 나이 12살 이었죠...정규전에서는 상무에게 패하고 현대에게 패하다가 결승까지 올라가서 상무에게 아깝게 패했던 기억이 나네요...그때 상무 선수들이 노진수 이재필 김동천 오욱환 요런선수들이 기억 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