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산 최상석씨는 국내 오지여행 전문가다. 그는 무주에서 여행자의집 '언제나 봄날'을 운영하며 방송과 지면을 통해 여행칼럼을 기고하는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본지 시민기자로도 활동하며 독자의 안계를 넓혀주었다. 그는 앞으로 주말판 여행면으로 자리를 옮겨 국내 오지와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 |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몸서리치는 외로움의 계절이다. 딱히 누군가가 그립다기 보다는, 아마도 막연함 같은 것이다. 화려한 단풍보다는 만추의 서걱이는 숲길에 더 눈이 가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그럴 땐 떠나야 한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둔 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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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이 깊은 덕산기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 온다. 덕산기의 단풍이 붉디붉게 물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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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가면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산다
그곳은 강원도 정선이다. 볕 좋은 가을 날, 정선으로 향했다. 정선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만나면 술 한 잔에 그간의 얘기 정도나 하는 사이지만, 그들을 만나면 행복하다. 산과 물을 벗 삼아 골짜기 깊숙이 터전을 마련한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다. 자칭 ‘똬리파‘로 통하는 사람들. 첩첩산중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해서 그렇게들 부른다. 글을 쓰는 이도 있고, 유유자적 세월을 죽이는 이들도 있다. 신혼의 달콤함을 자연에 내 던진 이들도 있고, 산에 미쳐 사는 이들도 있다. 공통점은 ’자연‘이다.
정선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험하고도 멀다. 영동고속도로 새말 나들목을 빠져나와 첫 번째로 만나는 전재를 시작으로 멧둔재와 비행기재, 솔재까지 넘어서야 겨우 정선 땅에 들어 설 수 있다. 동서를 가르는 42번 국도이다. 말이 국도이지 구절양장 고갯길이 더 많다. 직선보다는 곡선이 더 많고, 전형적인 강원도 산촌 풍경이 이어지는 멋진 길이기도 하다. 가는 길목에는 그 유명한 안흥찐빵이나 평창 송어장 같은 먹을거리도 많다.
42번 국도는 구간 구간 확포장 공사를 하고는 있지만, 아마도 다 완공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고갯길에 터널을 뚫고, 곡선을 직선으로 만드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대로 놔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정선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하면 몰매 맞을 일이다. 평생 고갯길을 오르내린 사람들에게는 직선이 부러울 것이다. “우리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이런 사정을 말해주는 얘기가 정선에 전해온다. 정선에 부임하는 군수는 두 번 운다는 얘기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우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길과 사람이다. 정선으로 향하는 길이 험하고 고달 퍼서 울고, 임기를 마치고 다른 지방으로 떠날 때는 정선 사람들의 인심에 반해 운다는 얘기다. 그렇다. 정선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넉넉한 인심도 그대로다. 정선에 가면 두 번 울고, 내내 웃는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풍경마다 절경이라 감동의 연속이다.
정선읍에 들어서면 촉촉한 황기족발과 콧등치기 국수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오늘은 먹을 수가 없다. 덕산기 골짜기에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 부부 생각에 족발집 앞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20여 년을 여행가로 살았고, 산골 생활에 이력이 붙은 필자도 부러워하는 부부. 바로 정선 덕산기 오두막에 사는 홍성국(42) 서선화(41) 부부가 그들이다. 정선 ‘똬리파’의 일원으로 결혼과 동시에 덕산기에 신혼방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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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귀하다는 가을 야생화 물매화가 덕산기 가는 길에 지천으로 널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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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조차도 없는 오지 덕산기 가는 길
건축인테리어 전문 업체를 운영하던 홍성국 씨가 먼저 정선에 들어왔다. 이유는 산이 좋아서라고 했다. 혼자 살던 그는 정선에 여행 온 전문 산악인 출신의 서선화 씨를 만나 결혼을 하고, 정선에서도 오지로 소문 난 덕산기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3년 전의 일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계곡을 따라 1시간만 걸어오면 됩니다.”
덕산기 홍반장으로 통하는 홍성국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덕산기는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이요 핸드폰도 안 터진다는 곳이다. 더구나 걸어서 가는 길 조차도 없단다. 무작정 계곡을 따라 1시간을 걸어오라니. 간만에 맛보다는 오지탐험에 마음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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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천이지만 곳곳에 물 웅덩이가 있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물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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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에도 소개 된 적이 있는 덕산기 계곡은 정선에서도 가장 오지로 소문 난 곳이다. 유명세를 탄 적이 있지만 여전히 세상과는 동떨어진 피안의 세계로 남아 있다. 그래서 좋다. 세상에 알려지면 대부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하게 돼 있다. 떼거리로 몰려드는 인파에 자연은 병들고 더불어 옛 모습을 잃게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는 계곡 자갈밭을 걸어야 한다. 길이 따로 없다. 물을 건널 때는 신발도 벗어야 한다. 길도 없는 덕산기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조금만 가물어도 이내 물이 마르는 건천(乾川)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물웅덩이 정도만 남아 있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오도 가도 못하는 고립무원이 된다. 외부 사람들 눈으로 볼 때는 고립이겠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생활이다. 불편함으로 치자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그런 덕산기가 좋다고 들어 온 이들이 네 집이나 된다.
골이 깊은 덕산기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 이미 붉게 물든 단풍은 거대한 석회암 절벽과 어우러져 장관이다. 정선 사람들은 이 석회암 절벽을 뼝대라 부른다. 붉은 색을 띈 모습이 마치 웅장한 조형물 같다. 혼자보기 아까운 길이 아닐 수 없다. 길은 S자로 몇 번이고 꺾어지기를 반복하며 골짜기를 파고든다. 과연 사람이 살기나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가을빛에 취해,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에 취해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정말 보기 힘들다는 물매화가 계곡 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두어 시간 이 물매화와 노닥거렸다. 산중 깊숙한 곳에서 만난 물매화는 순백의 키 작은 야생화로 뽀얀 속살을 드러낸 자태는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붕붕~ 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4륜구동 트럭이다. 읍내 나간 서선화씨였다. 걸어간다고 했더니 “아직 멀었어요” 한다. 덜컹거리는 트럭에 몸을 싣고 오두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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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는 정선애인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작은 돌탑 옆 '정선애인'의 작은 나무 간판이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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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연인을 꿈꾸다.
서선화씨는 히말라야 원정 산행도 다녀 온 전문 산악인이었다. 산이 좋아 산을 오르던 그녀에게 이 산중 생활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은 젊은 그들이 살기엔 답답하고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다.
“도시나 산중이나 삶은 다를 것이 없잖아요? 어디서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 같아요. 선택의 기준은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해요.”
굳이 이 불편하고 열악한 환경을 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의외로 질문은 간결했다.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어디에 살든 마음의 여유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부부는 부자였다.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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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국, 서선화 씨 부부는 덕산기의 선녀와 나뭇꾼으로 통하고 있다. 홍성국, 서선화 부부가 정선애인의 마당의 탁자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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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화씨는 덕산기에서 선화공주로 통한다. 어울리지 않지만 농사도 짓는다. 최소한 먹을거리 정도는 내 손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선화공주는 그림 솜씨가 좋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그림일기를 올리기도 하고, 요즘은 옷에 그림을 그려 넣는 핸디페인팅에 푹 빠져 있다. 산 생활은 자급자족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소한 것까지 손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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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솜씨가 좋은 서선화 씨는 블로그를 통해 그림일기를 쓰기도 한다. 서선화 씨가 직접 그린 자신과 남편의 초상화가 한 쪽 벽면에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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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홍성국씨는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동강에서 래프팅 업체를 운영하지만 그 외 계절에는 간간히 그의 전공인 건축인테리어 일을 한다. 주로 정선에서 일을 하지만 이번에는 양평까지 간다고 했다.
“덕분에 콧바람 쏘이러 가는 거죠. 도시 사람들은 정선으로 여행을 오지만 우리는 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이따금 하는 도시 나들이는 부부에게 여행이라고 했다.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람 구경만한 볼거리가 어디 또 있겠는가.
이런 산 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홍성국 이선화 부부처럼 실행에 옮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언제나 꿈만 꾸고 살 뿐이다.
“산에 산다는 것은 도피나 은둔과는 다릅니다. 자연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책임감이 뒤따라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도시에 비하면 생활비가 거의 안 들지만 반드시 경제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산 생활을 즐기며 오래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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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오지 덕산기에 깊은 곳에 있는 홍성국 서선화 부부의 집. 결혼과 동시에 이곳에 신혼 집을 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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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오두막은 채 10평도 안 된다. 절반은 부부가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오가는 나그네들을 위한 쉼터로 제공한다. 정선애인(愛人)이라는 블러그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 주로 다녀간다. 1시간을 걸어서 와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까지도 감수 할 줄 아는 이들에게만 개방한다. 부부가 와도 따로 자야 한다. 술을 마시는 것도 제한한다. 진정 자연 속에서의 하룻밤인 셈이다.
부부의 꿈 또한 이와 연결이 된다. 자연 속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도시인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는 것. 부부의 꿈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