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일본군에 의한 연해주 지역의 4월 참변 추모제
2008년 4월 4일.
지난 밤에는 눈이 내려 새벽녘의 온 들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될 즈음에는 따스한 봄볕이 행사장을 감싸 주었습니다.
올해의 4월 참변 추모행사는 당시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되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우수리스크 중심지의 영원한 불꽃 추모광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 우수리스크 시정부,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가
행사를 주최하였으며, 올해도 역시 반병률. 김보희 교수가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두 부부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얽혀 있는 고려인의 삶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소년들이 행사 내내 행사 현수막을 들고 있습니다.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선생의 위패와
함께 희생된 러시아 혁명 인사들의 이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88년이 흐른 지금
한국과 러시아의 후손 들은
함께 자랑스럽게 민족을 떠나 함께 싸웠던 선조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1920년 4월 4일에서 5일.
연해주 지역에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투쟁의 와중에
외국 간섭군(일본)에 대한 힘의 열세 속에
용감한 빨찌산들이 이곳에 쓰러져 죽었다.”
당시 고려인 동포들의 항일 독립운동은
이곳에서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한 투쟁과 일체가 되었으며
정규군이 아닌 통상 빨찌산으로 불리었을 것입니다.

언 땅을 녹이며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봄과 같이 선조들의 얼이 되살아나기를 기원하는
이곳 학교 학생들의 간절한 몸짓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현수막을 들고 내내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만 합니다.

호기심과 새로운 역사적 사실과의 만남.
어린이 들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합니다.
4월 참변은 고려인 지도자들의 희생으로
고려인 사회의 독립운동에 더욱 커다란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러시아인 들에게도 참담한 희생이었습니다.

세월의 아픔을 더욱 가까이에서 겪은 세대의 표정은 더욱 진지하기만 합니다.


, 고려인, 한국인 등이 함께 헌화하며
과거 함께 겪은 아픔을 딛고
미래의 협력을 다짐하며 함께 서 있습니다.
추모비 뒤에서는 의장대가 총성으로 사라진 분들의 원혼을 달래 듯
하늘을 향해 조총을 울립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선조들의 후손들이
미래의 희망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섰습니다.

고려인의 애환이 담긴 노래를 찾아 중앙아시아와 연해주 일대를 순회하며
채록해 노래책을 만들고, 노래를 복원해 낸 김보희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모든 것을 소중히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정마을과 순얏센에 살고 있는 동북아평화연대의 한국인 식구들도 함께 했습니다.

과거의 자랑스러움을 훈장으로 가슴에 단 노병이 감회에 찬 한마디를 합니다.
“어린 시절 고려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정말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자랑스러운 이웃들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고려인 노래를 찾아 책으로 펴낸 김보희 교수가 직접 반주를 하며,
고려인들이 애환을 담아 함께 부르며,
역사의 어려움을 헤쳐 나온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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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에서 노보니콜스크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면 도로변에 4월참변 희생자 추모비가 나타난다.
이 추모비는 1920년 4월 일본군이 자행한 4월 참변 당시
우수리스크 지역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소련군 병사 170명과 빨치산 70명 등 총240명의 희생자들을 위해
설립된 것으로 바로 그 전투현장에 세워져 있다.
4월 참변이란 1920년 4월4일 밤부터 5일 새벽에 걸쳐
일본군이 연해주일대의 러시아 혁명세력과 한인들을 공격한 만행적 사건을 말한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에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되자
일본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열강은 이를 붕괴시키고자
1918년 8월 시베리아 출병을 단행하는 한편
반(反) 볼셰비키 세력인 러시아 백위파를 지원했다.
하지만 볼셰비키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한 다른 열강 군대가 철병을 단행하자
홀로 남게 된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 니콜스크-우수리스크, 라즈돌리노예, 이만(달네레첸스크)
스파스크, 하바로프스크, 포세트, 스챤 등 연해주 각지에서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연합한 러시아 혁명정부의 공공기관과 러시아 혁명세력을 공격하는 한편, 한인들을 공격하고 대량체포, 방화, 파괴, 학살하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습격해
한민학교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 50명을 무장해제하고
한인단체사무소와 가택을 수색해 60여 명을 검거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한민학교와 한인신보사 건물에 불을 질렀으며,
헌병분견대를 주둔시키고 자위대라는 헌병보조기구를 창설했다.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도 일본군은 한인 76명을 검거하고
4월7일 이들 가운데 한인사회 최고원로인 최재형(崔在亨)을 비롯한
김이직(金理直), 엄주필(嚴柱弼), 황경섭(黃景燮)등
저명한 한인 독립운동지도자 4명을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시신에 대한 행방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