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님, 이게 신상품이세요.
이자율 높으시고 굉장히 안정적이세요.
언제든 증액 가능하십니다.
(은행에서)
이쪽 테이블 빵은 모두 할인되십니다.
지금 막 나오신 것들이어서 신선하십니다.
(빵집에서)
○○아파트, ○호, ○호이신가요?
1시간 후 물품 도착하십니다.
("택배회사 직원)
주문하신 상품 나오셨습니다.
(물건을 내밀며) 여기 있으세요.
사이즈는 꼭 맞으시네요.
결제는 할부가 가능하십니다.
(구두매장 직원)
'높으신 이자율의 정기적금을 계약한 뒤,
막 나오셔서 신선하신 빵을 사들고,
할부 가능하신데다 사이즈도 꼭 맞으시는 구두를 찾아든' A씨.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해보니,
택배원의 장담대로 주문하신 물품이 막 도착하셨다.
경어법이 사라지는 과잉존대의 시대?
"판매원이 '이 지갑은 사이즈가 크시다'고 하더라.
지갑이 크시다니 지갑이 윗사람인가?
고객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사물에 존칭을 쓰는 건 되레 불쾌감을 일으킨다."
(롯데백화점)
백화점이 상황별로 매장에서 흔히 쓰는 '귀에 거슬리는' 존대법을 조사했다.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이 색깔은 하나 남으셨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으세요'
'포인트 적립이 가능하십니다'
'환불이 안 되십니다'
'그 매장은 2층에 있으십니다'
'철수하신 브랜드세요'
'저희 매장은 세일 안 들어가세요'
'수선비는 ○○원 나오셨습니다'
'만차이십니다'….
수집된 사례들은 엇비슷했다.
우선 무조건 '시'가 붙었다.
'시'가 높이는 대상, 즉 사이즈 색깔 매장 등은 다 물건이거나 개념이다.
한국어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건 높일 수 없는 걸 무조건 높인,
문법적으로 죄다 틀린 문장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웃기는 "과잉존대"가 만연해 있다.
왜 그럴까?
"사회적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게 경어법이다.
과거에는 높일 대상이 분명했는데 그게 불분명한 사회가 되고 있다.
수평적 평등사회가 되고,
존대법 형식파괴가 이뤄지면서 모두를 다 높이는 게 낫겠다,
뒤탈 없이 이것저것 다 높이자,
이렇게 됐다. 그러다가 물건까지 높이게 된 거다."
한글 학자의 분석이다.
높임법 위상이 약해지고
규범이 흔들리면서
역설적으로 일단 높이고 보는 과잉존대가 만연한다는 얘기다.
물론 어렵지 않다면 헷갈릴 일도 없다.
난해한 한국어 경어법이 근본 원인이다.
우리말 높임법은 단순하지 않아 높임체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높이긴 해야겠는데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조건 '시'를 붙인다.
'시'는 여러 높임법 중 하나일 뿐인데
'시' 하나로 손쉽고 편하게 해결하려다가 생긴 현상 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틀린 말이 어딨어!
문법적으로 맞는가 여부와는 별개로,
'시'가 실은 공손의 정도를 전달한다.
경어법이 말하고 듣는 이의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해준다면,
'시'의 오남용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시'의 남용을 문법오류가 아니라
용법의 확장이라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물론 과잉존대를 어색하다거나, 불쾌하게 느끼는 이도 있다.
하지만 소수다.
기왕이면 다수를 기분 좋게 할 과잉경어가,
부족한 경어보다 안전하다.
다들 틀렸다는데 '품절입니다' 대신
'품절되셨습니다'를 선택하는 쇼호스트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다.
한국어 질서를 지키자는 입장과
경어법의 사회적 기능을 포용하자는 시각.
양자의 화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시'를 많이 쓰라고) 누가 강요한 것도, 가르친 것도 아니다.
서비스산업 중심 사회에서는 고객을 잘 접대하면
이득이 생기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경어법을 더 활발하게 쓴다.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시'가 많이 사용되는 거다.
중요한 건 화자의 높이려는 의지다.
과용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많이 쓰이면서
'시'의 용법은 청자를 높이는 기능으로까지 차츰 확장되고 있다.
이제 '값이 만원이세요'라고 할 때
높이는 건 값이 아니라 청자이다."
용법이 확장되는 사례는 '시'만이 아니다.
'드리다'는 객체를 높이는 보조동사로 폭넓게 활용된다.
'축하합니다' 대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감사드립니다'가 훨씬 공손한 말로 통용된다.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경어법 사용질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듣기에 거슬리고 이상해도
10년 뒤쯤엔 어느새 굳어질지도 모른다.
'시'의 운명은 교육보다 더 큰 힘에 달려 있다.
'시'의 영토. 한국사회를 읽는 흥미로운 도구로 지켜봐도 좋다.
<vja>
한국어 존대법을 망가뜨리는 백화점 높임법
언제부턴가 한국말 존대법 언어문화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서비스사회가 도래하자 고객과 관련된 사물의 존대가 우리말 문화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백화점 마트 병원 커피점 금융기관 등에서 그 현상이 횡행합니다.
이 현상은 서비스업체와 그 종사자들이 고객 친절 응대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벌어진 부작용입니다.
주변 사물(또는 상황)에 무조건 존대 어미 ‘시’를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사건, 사물, 상황이 높은 존칭의 대상으로 추켜세워집니다.
고객을 응대하는 판매 현장에서는 아예 사물 존대어법이 기본어법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홈쇼핑 쇼호스트는 “방금 2018년 형 신제품이 품절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도 듣다 보니 귀에 친숙할 지경입니다.
마치 21세기 한국어 새 화법이 등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시’ ‘세’는 존경을 나타내는 어미입니다.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말하는 사람에게 상위자로 인식될 때 존칭어미를 넣어
상위자를 높여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주어는 상위자가 됩니다.
“아버님께서 오셨다” “충무공은 훌륭한 장군이셨다”처럼 쓰입니다.
간접높임법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신체 부위, 착용 의상 등을 높여 줌으로써 상대를 높여주는 것을
‘간접 높임법’이라고 합니다.
“사장님, 오늘 넥타이가 멋지십니다” “어머니는 손이 참 고우세요”
“선생님은 키가 크십니다” 잘못 쓰이는 사물 존대법과 달리 올바른 용법입니다.
존칭 ‘시’ ‘세’는 사물에는 쓸 수가 없고 사람에게만 써야 합니다.(‘간접 높임법’은 예외)
‘이 분이 제 어머니세요’는 옳지만 ‘이것이 제 어머니가 쓰시던 그릇세트세요’는
우리말 어법에 어긋납니다.
‘시’ 남용현상은 한국어 파괴행위입니다.
수천 년 간 우리의 역사에서 지켜지고 있는 존대 원리를 뒤흔드는 기형적 어투입니다.
TV 건강 프로그램을 보면 사물존대 화법이 넘쳐납니다.
패널로 출연한 외과전문의는 “생활의 불편이 있으세요” “나이가 드러나는 부위세요”
“이 치료는 지금도 하실 수 있으세요” “그런 잘못된 시술이 많으시죠”
아예 모든 문장에 존대 어미 ‘시’를 집어넣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간호사가 “엑스레이부터 찍으실게요” “우선 CT 찍고 보실게요”
이렇게 말합니다.
‘시+ㄹ게요’는 존칭 ‘시’에 말하는 사람의 약속-의지를 나타내는 ‘ㄹ게요’가 잘못
결합된 경우입니다.
말하는 주체 자신을 높이는 어법이라 틀린 것입니다.
2017.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