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천 따지...
고전문화 보급을 위해 한 단체를 만들어 애를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동양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서 몇몇 텍스트를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죠. 그리고 공부한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신도시(일산)에서 고전강좌를 열고 몇 년 동안 '재능기부'를 했습니다. 처음 고전 강좌를 계획할 때, 대상과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맹자 어머니의 교훈에 따라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들이 고전의 지혜를 얻으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자녀들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선 어머니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재를 몇 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쉽고, 교육에 초점을 둔 이 책이 주목을 받았고, 여러 기관의 추천도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서울시와 교육부의 초청으로 시청 강당에서 강연을 하게되었죠.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동양고전에 관한 해설서를 쓰고, 인문강좌를 한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강의초청을 받았을 때, 처음엔 부담때문에 거절을 했지만, 이미 추천도서의 저자들이 강의하기로 정해진터라 끝까지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새로운 고민이 생겼죠. 어떤 주제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즈음 미국에서 한 의미있는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시카고대학과 버클리, 다트머스, MIT의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공동 프로젝트였고, 13년이라는 엄청난 시간동안 연구와 분석을 토대로 한 보고서였습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미국출신으로 자국은 물론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여러 기준을 세워 선정하고, 그 사람들이 그런 영향력과 기여를 할 수있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죠. 어제 소개한 엘렌 크라이더의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라는 책에서 초기 그리스도인의 엄청난 성장을 설명하는 한 개념으로 '아비투스(habitus)'를 제시했는데, 이 단어에 처음 집중하게 된 것이 당시의 보고서였습니다. '반복적인 행위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형화 된'이란 의미의 아비투스는 우리가 좀 더 일반화하여 사용하는 '습관(habit)'의 어원이기도 하죠.
총 16개 정도로 소개된 '아비투스'가 이 사람들을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영향력있는 인물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점이라는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에 관련된 몇 개만 소개해보면, 이들은 '인문고전'을 단순한 취미나 호기심이 아닌 어떤 계획에 의해 반복적으로 학습했다는 것,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은 늘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는 것, 소통을 위한 대화에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본인의 말이 30%를 넘지 않았으며, 그 대화법에는 '질문'을 주고받는 형태를 취했다는 것... 그리고 인생에 지침이 될 만한 문장들을 '암송'했다는 것 등입니다.
시카고대학의 교육관련 연구소는 이것을 '교수법 진전'이라는 것으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동서양의 전통교육법에서 처음에는 암송을 위주로 하는 교육이 대부분이었고, 잠시 산업화와 함께 국민교육의 개념으로 일방적 주입식교육이 사용되었지만, 곧 참여를 유도하는 대화식 수업과 최종적으로 유대인들의 교육법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질문을 유도하는 교육'의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놀랍게 가장 개량되고 강력한 교수법은 다시 고대의 '암송과 대화를 유도하는 교육'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요약해서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강의했습니다.
좋은 문구를 암송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되는 과정을 보다 과학적 분석으로 '뇌의 다층구조의 분열'이라고 입증한 버클리 인지과학연구소는 고전의 명문들을 암송하여 체화하는 과정에서 뇌의 표면적을 넓히는 분열이 일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남성은 18세 전후, 여성은 20세 전후에 뇌의 총량적 성장은 멈추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암송이나 그 의미를 찾아내려는 반복적인 행위'가 뇌를 다양한 방향으로 분열시켜 계속 인지능력을 성장시킨다는 거죠. 막대걸래를 천으로 만들지 않고, 마치 모발과 같이 잘게 만드는 이유는 표면적을 증가시켜 더 많은 먼지와 때를 흡착시킬 수 있기 때문인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소위 나노기술이라는 것도 가늘게 만들어 서로 결합시키면 엄청난 에너지를 갖도록 하는 원리입니다. 나무 젓가락이나 회초리에 차용되는 얇은 나뭇가지도 이것을 뭉치면 부러뜨리기 어렵고, 예전에 집집마다 한 권씩 있던 전화번호부책을 찢는 것은 사실 사람의 힘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현대화된 기술들은 인간의 암송이나 암기의 기능에 큰 방해를 하기도합니다. 네비게이션이 발달했기에 우리가 길을 잘 못찾는 것, 학창시절 친한 친구들집의 전화번호를 당연히 외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족의 핸드폰번호나 심지어 자신의 번호도 헷갈리기 일쑤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시절 교회의 담당 전도사님들께서는 '성경암송'을 유난히 강조하셨습니다. 중등부때는 김정우 목사님(총신대에서 구약학 교수를 지내신), 고등부때는 김인중 목사님(안산동산교회)이 전도사님이셨는데, 두 분이 짜셨는지 늘 저희가 명함크기보다 작고, 앞에는 한글, 뒤에는 영어성경(RSV)이 한 두 절씩 기록된 '성경암송카드'를 지니고 있는지 검사하시곤 했습니다. 특히 임원들에게는 더 가혹한 암송이 강요되었죠. 요즘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앙교육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분들(기독교 문화속의 영미권의)은 당연히 그들의 말과 글 속에서 '성경'을 비롯하여 고전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베어있고, 갑작스런 인터뷰나 질의가 있을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성경의 문장들과 명언들이 등장합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하여 넘쳐 흘러나듯이 말이죠. 이런 것은 반복을 통한 암송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제행신 사모님의 남편이신 전신근 목사님께서 영상에 등장하시면서 성경을 암송하는 모습이 페북에 올라왔습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승부욕이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해서 저보다 멋있는 모습이나 행위를 보면 견디질 못합니다. 배도 아프고.... 목사님과 비교할 때 생긴 외모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암송쯤이야.... 생각하며 바울의 서신서부터 통째로 암기하기 시작했죠. 언젠가 서신서를 줄줄 외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올려야지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오늘 목사님께서 본인의 암송 방법과 의미, 효능을 설명하시는데, 사실 좀 창피했습니다. 몇 년전 제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작 저는 잊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설명하셨죠. 저는 단지 많은 양의 성구를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암송하는 목표를 세웠지만, 목사님의 방식은 앞서 설명한 '영향력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암송하는 성경은 세상의 어떤 인간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지고, 좌우의 어떤 날쌘 검보다 예리하여 심령과 골수를 찔러 쬬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제가 성경을 늘 연구하고 묵상하는 주의 종이 아니기에 조금 불리하긴 하지만, 목사님의 방법을 염두에 두면서 한 번 붙어보려고 합니다. 외모와 신분(목사님은 성골이고 전은 4두품쯤 되는 집사니...)에서는 어쩔 수없이 밀리지만, 암송은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져도 핑계거리가 있으니 말이죠.
자신은 물론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향력있고, 강한 군사로 키우시킬 원한다면 동참을 권합니다. 싫으시다면 할 수 없지만....^^* (전신근 목사님의 암송이야기는 제 이전글 댓글에 있답니다.아래 사진은 목사님이 올리신 암송동영상 캡쳐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