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사랑이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가 함께 일하며 양육비를 부담해도 힘들다는 요즘 시대에 미혼모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배 이상의 어려움을 안겨줍니다. 미혼모의 정서적 어려움과 경제적 빈곤은 아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어머니의 어려운 삶을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아이 아버지의 무관심과 자녀 양육비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미혼모 중 일부는 양육을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여성 정책연구원이 2010년 양육 미혼모 7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8명의 심층 면접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아이 아버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4.7%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응답자의 26%만이 양육비 지급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청구 소송 의향이 있다고 한 사람도 32.6%에 그쳤습니다.
2018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미취학 아동을 양육중인 10~40 대 미혼모 3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육미혼모 실태 및 욕구 조사’에서도 응답 미혼모의 11.7%만이 아이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양육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재정적 어려움이라고 답하면서도 조사 대상자의 42.9%는 더 이상 아이 아버지와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아이의 출생과 양육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아이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이 있지만 그 실효성은 미미합니다. 2014년 여성가족부는 양육을 하지 않는 부모의 양육비 이행을 확보하고 지원하기 위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치하였지만 여러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약 3년간 관리원을 통해 미혼부모 가정에 양육비가 이행된 건수는 전체 2422건 중 78건으로 3%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관리원이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미혼모가 관리원의 도움을 받아 길고 긴 소송과정을 거쳐 양육비청구 소송에서 승소해도 관리원은 양육비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재산을 갖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 명의로 은닉하면 받기 어려우며 이런 경우에는 관리원이 재산을 추적해서 징수를 해야 하는데 관리원에는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고도 실제 양육비를 받는 비율이 20%가 채 안 되다 보니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아버지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사이트까지 생겼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4.7%에 불과
아이 아버지의 소재 파악이 되지 않거나 고의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도 양육비를 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수감하는 감치 집행률은 11%에 불과합니다. 감치 결정이 나더라도 감치 대상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면 인신확보가 어려워 감치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감치 명령에 대한 유효기간은 3개월이기 때문에 3개월만 피해 다니면 무효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긴 소송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역할 강화와 채무자에 대해 운전면허 취소·정지 등 다양한 제재강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 2월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한 달 만에 20만 명이 넘는 국민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청원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나라 안의 큰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하면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그다지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청원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많습니다.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이라는 단어는 야구 경기의 공격 작전을 뜻하기도 하고 뺑소니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 뜻 그대로 풀이하면 ‘치고 달리기’인 셈인데 임신을 시키고 책임지지 않고 도망치는 남자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국민 청원은 한 평범한 여고생이 트위터를 하다가 접한 한 여성의 사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취업준비생이던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고 남자 친구에게 연락하자 남자 친구는 헤어지자는 답변과 함께 연락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생활비 문제로 낙태를 결심한 여성의 사연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이 여고생은 미혼모의 경제적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관련 자료에서 미혼모가 아이 아버지에게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는 결과를 접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하여 청와대 국민 청원을 통한 동참을 호소하게 된 것입니다.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은 양육비를 지급받을 여력이 없는 미혼모에게 정부가 먼저 양육비를 주고 나중에 아이 아버지에게서 그 비용을 환수하는 제도입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양육비를 선 지급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구상권을 발동하여 월급을 압류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운전면허 정지, 재산압류, 벌금, 구속 등의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생부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태어나게 한 아버지도 양육에 책임 져야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외국의 예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미혼모에게 아이의 아빠가 매달 약 60만 원 정도를 보내야 합니다. 만약 보내지 않을 시 아이 엄마는 시(꼬뮌)에 보고를 하고 시에서 아이 엄마에게 상당한 돈을 보내줍니다. 그리고서 아이 아빠의 소득에서 세금으로 원천징수를 해버립니다. 만약에 외국으로 튀었을 때도 다시 덴마크로 돌아오면 환수조치가 들어가니 아이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다면 평생 덴마크 사회에 끼어들 수 없거나, 나라를 떠나가거나 이뿐입니다. 아이 아빠가 내 아이가 아니라고 발뺌하더라도 DNA 검사를 통해 아이 생부의 여부를 밝힙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미혼부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 시행된다면, 남성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혼 가족의 발생문제를 예방하는 우리나라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국민 청원에 대하여 청와대는 ‘양육비 이행지원 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의 연구용역을 시작했고, 11월에 결과가 나오면 외국의 대지급제와 우리나라 양육비 지원 제도를 종합분석해서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 방안이 남성도 아이의 양육에 책임을 갖도록 촉구하는 제도들에 대한 언급이 아닌 홀로 양육하는 어머니에 대한 국가의 지원금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청원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느낌입니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는 이미 17대 국회부터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양육비를 전부 대지급할 경우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예산이 없어서 실행하기 어렵다면 어려울수록 더욱더 책임을 회피하는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어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의 출산과 양육은 어머니 혼자의 몫이 아닙니다. 정부가 대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양육비 책임법의 실행은 아이와 어머니를 모두 살리는 길이며 이 세상에 생명을 태어나게 한 아버지도 양육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