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온 세 사람
박 은 주
떠났지만, 늘 거기 있는 사람들이 있다. 떠난 빈자리를 그리움과 추억으로 채우는 분들이다. 돌아가신 육친 외에 떠오르는 세 분, 그분들이 자주 내 마음속에 오는 건 점차 더하는 세월의 무게 때문이지 싶다. 시간 속을 총총히 걸어가는 나를 향해 삶이 던져오는 물음, ‘어떻게 살 것인가?’에 그들 인생의 궤적과 남긴 작품이 거울이 되어 비추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다.
잘 알려지신 분들이라 그 삶과 작품들에 관한 수만 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분들에 관한 내 소소한 추억과 단상을 경애敬愛하는 마음을 담아 적어 본다.
법정(1932~2010)
스님께서는 지금쯤 꼭 가보고 싶다시던 어린 왕자의 별에 닿으셨을까? 손수 만든 그 빠삐용 나무 의자에 앉아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지는 광경을 내려다보실까?
살아계실 때는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는 글을 쓰고, 음악과 책, 꽃과 나무 그리고 밤하늘 별 보기를 좋아하는 로맨티시스트이자 자연주의자로 스님을 알았다. 하지만 떠나신 후 그분은 엄하고도 자애로운 스승 같으시다. 회초리를 쳐놓고 조곤조곤 삶의 방식을 되짚어 주시는.
2010년 3월 스님이 입적하신 후 치러진 다비식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남기신 말씀대로 관도 쓰지 않고 평소 입던 옷 위에 갈 빛 가사 한 장이 얹힌 스님의 법구가 꽃샘바람 속에 불꽃으로 타올랐다. ‘간다, 봐라.’하고 떠나가며 죽음으로 삶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걸까. 영상으로만 봐도 서늘한 충격이었다.
봄이면 성북동 길상사를 찾아간다. 절 안쪽에 있는 스님이 입적하신 진영각 앞뜰에는 그분의 유골이 묻혀있고, 누각 안에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책과 편지들, 만년필, 찻잔, 발우 등을 천천히 둘러보다 자주 입으신 먹물 옷, 더 이상 기울 수 없을 만큼 누더기가 된 승복 저고리는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온다. 그 저고리와 누각 앞에 뿌려진 유골은 거기에 있는 책 『무소유』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와 어쩌면 그리 겹칠까.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그 안과 밖, 언言·행行·필筆의 일치 때문임을 알았다. 꽃 피는 봄, 법문 마치실 때 항상 덧붙이신 “오늘 내가 못다 한 말은 꽃들에서 들어라.”라던 그 말씀이 떠올라 절 앞뜰에 핀 봄꽃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 간다. 12월의 이 밤들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해가 올 것이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들은 한 살이 보태지지만, 나이 든 사람은 한 살이 줄어든다.”라는 그분의 글을 읽으며 살아온 날에 감사하고 살아갈 날의 상념에 젖어 든다. 형형한 눈빛,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순간순간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흐려진 눈과 마음을 닦는다.
박완서(1931~2011)
작가 박완서, 이름 앞에 작가作家‘언어의 집을 짓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분이 있을까. 만약 천국에서 세종대왕이 이분을 만나셨다면 크게 칭찬하셨을 것 같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두루 아름다운 우리글을 쉽게 읽는 재미와 생생한 말의 즐거움을 동시에 주신 공으로 말이다.
흔히 이분을 한국 문단의 거목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내게 떠오르는 그분의 이미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사셨던 아치울 집 마당 살구나무 같다. 이른 봄, 환하게 피어나 어디나 고향 같은 정감을 불러내는 살구꽃은 작가의 다정하고 친근한 얼굴을 닮고, 늦봄에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린 농익은 살구는 남기신 수많은 그분의 글 열매 같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새콤달콤한 살구처럼 신랄하면서도 따스한 사랑이 감돌고, 부드러운 과육 속 단단한 씨앗을 품듯 재미 속에 골갱이 뼈대가 있다.
처음으로 읽은 작가의 소설은 중학생이었던 나보다 10살 위인 언니가 보던 월간지에 연재된 『도시의 흉년』이었다. 살아 숨 쉬듯 생생했던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 다음 달 언니가 언제 책을 사 올까 무척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독자가 되어 읽은 그분의 글들은 위선을 까발리는 후련함과 지혜를 담고, 재미난 이야기를 입담 좋은 이야기꾼에게서 듣는 듯 책장이 술술 잘도 넘어갔다. 전쟁의 참상, 유년의 기억 등 체험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부터 당시의 세태나 여성 문제 등, 소설의 소재도 무척이나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분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시선과 인생행로가 엿보이는 수필이 점점 더 좋아진다. 단단하면서도 온기를 품고,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슬쩍 일러주는 그 문장들은 천천히 내 마음에 스며든다. 얼마 전 10주기 추모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다시 읽었다. 천의무봉 글솜씨를 가진 작가의 600여 편 수필에서 30여 편으로 뽑힌 글이니 모두 감동적이지만, 막 작가로 첫걸음을 뗄 때의 심경을 적은 부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그때 내가 막 글쓰기에 관심을 둘 무렵이라 그랬던 것 같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자신을 매질하듯 다짐하며 작가는 그렇게 쓰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이라던 말씀처럼,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그 다짐을 진실로 켜켜이 쌓아 올리며 쉼 없이 수많은 작품을 쓰셨다. 그리고 그 글들은 너무도 인간적이고 참된 그분의 삶을 대변하기에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리라.
그분이 앞서 낸 삶의 오솔길, 글의 오솔길을 따라 나도 걸어가고 싶다. 그분이 찾아낸 ‘미소微小하고 속절없지만’ 소박해서 아름다운 것, 진실해서 반짝이는 것을 찾아서…….
유영국(1916~2002)
울진에서 근무했던 2019년,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한껏 매료된 나는 산과 바다 여기저기로 쏘다니기 좋아했다. 자주 산책하러 갔던 은어 다리는 특히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초여름 어느 날, 그 다리 옆길에 핀 해당화를 따라 걷다가 ‘유영국 화백 생가’라는 표지판이 앞에 있는 집을 보았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 주변에 물어봐도 화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검색해 보니 김환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화면에 그의 그림이 떴다. 그 순간의 놀라움이란! 그 그림은 매일 내 눈앞에 펼쳐진 울진 바다와 산천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았다! 간결한 선과 면만으로 이루어진 그 눈부신 색채! 이런 그림이 있었다니, 우리나라에 이런 화가가 있었다니! 20년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본 모나리자 그림이나 니케상 조각에서의 강렬했던 미적 체험이 약간의 이국적 울렁증을 동반했다면, 자연에서 본질만을 담은 듯한 그 그림들은 단순함에서 오는 평온함으로 나를 따뜻이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한 해 후 퇴직하고, 내 발길이 머물던 울진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할 때였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한참을 바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읽은 우리나라 근현대화가와 작품들에 관한 『살아남은 그림들』이란 책에서 화가와 그의 그림들을 다시 만났다. 그리웠던 울진의 산과 강, 바다 앞에 다다른 듯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리고 책을 읽으며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된 화가의 삶은 한 해 전 처음 그의 ‘산’ 그림을 봤을 때의 감동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처음으로 추상이란 낯선 길에 도전한 청년 화가의 삶도 신선했지만, 마음에 더 묵직한 울림을 준 것은 그의 중후반부 인생이었다. 전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고깃배를 타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살아낸 성실한 가장의 삶이나 늦은 나이에 다시 새로운 미술 세계를 쉼 없이 시도하고 탐구해 간 것, 게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가의 말년 모습이었다. 60대 초반부터 평생 심장박동기를 달고 수십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으면서도, 20년이 넘도록 붓을 놓지 않고 수없이 ‘산’을 그리며 자신만의 추상 세계를 이룩해 낸 분이었다.
변해가는 세월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 따라 다채로운 색채로 자신을 채우는 산, 그 산은 화가를 닮고, 화가는 산을 닮았다. 그동안 꽃도 피우기 전 져버렸던 수많은 천재 화가의 삶에서 가슴 아린 비애를 느꼈다면, 격동기 시대의 고난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사람은 각기 그 세대를 살고, 각자 자기 일을 잘하고 가면 된다.”라며 자신의, 화가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 그가 보내는 삶에 대한 신뢰와 예찬이 마음 깊이 전해져 내게 힘을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작년 드디어 화가의 그림들을 직접 보게 되었다. 봄과 여름에 열린 유명한 기업인의 소장작품 전시회와 화가의 20주기 전시회에서였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라던 화가의 말을 떠올리며 그의 그림 앞에 섰다. 그의 산, 그의 삶이 내게 건네는 말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천천히 전시장을 나왔다.
1회의 낮과 밤, 하루의 시작 아침이 밝아온다. 내 방 벽에 걸린 화가의 그림을 본다. 세 산봉우리는 제각각 붉고, 보랏빛 강너머 산은 초록이다.
“오늘 나는 나의 삶을 어떻게 채색해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