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가 할퀴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결실기에 접어든 각종 작물과 과일들이 무참하게 내동댕이쳐졌고 몇 년간 공들여 키운 전복과 고기를 잃었다. 집이 물에 잠기고 도로가 유실되고 산사태가 났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무력하고 무능하다. 하늘을 원망하거나 허탈해할 뿐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태풍이란 지구가 평형을 찾으려는 몸부림일 뿐이다. 즉 지구 스스로 한곳에 몰려있는 에너지를 분산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적도 부근에서 불(태양열)로 데워진 물이 엄청난 수증기를 피워 올렸고, 그래서 더워진 공기 덩어리가 열을 내다버리기 위해 차가운 곳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그것의 움직임은 커지고 거칠어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다치고 세상이 부서지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지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땐 아마도 이곳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은 행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풍이 있다는 건 지구 시스템이 그나마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구가 저렇게라도 몸부림을 쳐서 골고루 에너지를 순환시키려 하고 있으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한다. 글쎄, 저렇게라도 해서 여전히 이곳의 우리들을 지켜주려 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야말로 고마우신 ‘어머니’ 지구 아닌가.
하지만 성난 돌풍과 엄청난 괴력의 물폭탄을 싣고 오는 태풍은 여전히 싫고 여전히 두렵다. “...비는 때맞춰 알맞게 골고루 내려주시고 바람도 산들산들 부드럽게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 내가 지구에게 그렇게 부탁한다면, 어머니 지구는 단박에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러는 나도 엄청 힘들다고.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염치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하긴 그렇다. 인간인 나는 그런 요구를 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잦아진 기후재앙은 분명 지구 온난화가 원인일 것이고,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만들었으니까. 안 그래도 기초물리학과 통계분석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잦아진 기상이변은 분명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라고. 올해만 해도 극과 극을 오가던 날씨였다. 가뭄 때문에 애가 탔던 늦은 봄이 지나기 무섭게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들었던 여름, 이어서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태풍이 몰아쳤다. 이상기후가 너무 잦다보니 이상(異常)이 이젠 정상 (正常)이 되어버린 듯도 하다.
태풍은 불이 물을 움직여서 생긴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이 바다의 물을 움직였고, 그 물은 더운 수증기가 되어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은 사람이 사는 땅에 엄청난 위력으로 물과 함께 몰려왔다. 사람 또한 지수화풍의 사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지만 이 지구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다. 물과 불, 바람과 땅의 조화가 에너지를 생성케 하고 그 에너지를 순환케 하며, 결국 그것이 모든 생명들을 낳고, 길러내고, 생존케 하고 지속하게 하는 것이리라.
다시 말해, 지구 온난화란 불로 인해 물과 땅과 대기가 더워진 것을 말한다. 그 원인은 뭘까? 45억년 나이의 지구가 이토록 풍성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행성이 된 것은 한결 같은 태양 에너지 덕분이다. 예컨대 지수화풍의 조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태양이라는 불이 알맞게 지구에 내려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균형이 무너져버렸다. 이 땅에 석유문명이 도래하고 나서부터였다. 넘쳐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권을 띠처럼 둘러싸게 되자 지구에 도달한 태양의 복사열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지구가 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지구환경에 더욱 치명적인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불을 지핀 것이다. 핵이라는 불이었다.
핵발전이란 간단히 말해 불이 물을 이용해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즉 핵분열로 지핀 어마어마한 불(열)로 바닷물을 끓여서 그 수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다. 그 때 데워진 물은 원전 1기당 대략 1초에 50톤~60톤씩 바다로 방류된다. 대충 계산해 봐도 우리나라 연안에는 연간 수십억 톤의 데워진 물이 방류된다고 할 수 있다. 수십억 톤이라는 숫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아무튼 핵발전소는 연안에다 쉼없이 더운 물을 방류하고, 그리하여 엄청난 열섬이 생기고, 그것이 점점 대양으로 더 넓게 확산된다. 해수온도는 대기와 해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핵발전이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고, 또한 그것이 태풍의 횟수와 위력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재앙으로 해마다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일이거니 하면서 체념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이 지구도 스스로 에너지를 순환시키면서 유지되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모른다. 혹은 알아도 잊고 산다. 어쩌면 다들 그런 것까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선 전기를 써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하고 이익을 남겨야 하고 그래서 위험하긴 하지만 핵발전소도 필요하다고 쉽게,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 그 무지함과 안이함의 대가는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어마어마한 부메랑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위력으로 우리에게 덮쳐올 것인데도.
지식경제부는 지난 9월 14일 삼척·영덕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구역을 지정고시했다. 기어이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핵발전소 만으로도 해수온도는 점점 더 치솟고, 북극의 빙하는 이미 다 녹아가는데, 그리하여 기후는 나날이 더 변덕스럽고 광폭해져 가는데, 기어이 그 재앙의 불을 더 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다 꺼져가는 불조차 되살려서 기어이 쓰고자 하는 저들의 집착은 무섭기조차 하다.
어쩜 기후나 지구환경까지 내다볼 수 없는 저들의 ‘근시안’은 별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최소한의 안전의식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자칫하면 수백만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는 시설물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으려 드는 저들의 '무개념' 머리인지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녹아버리고 없는 저들의 머리는 이익과 돈이라는 제어할 수없는 핵분열로 인해 이미 멜트다운 되어버린 게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