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떡국 야기
요참 설날에 떡국덜언 다덜 맛납게 잘 잡솼지라? 덜?
납살도 한 살썩 다덜 더 잡수신 거고람짜?
우리 집은 양력 정초에 한 그럭 먹고
어지께 또 먹었구만이라. 그래도 납살언 1살만 더 먹는데라.
우리나라넌 이전 고래쩍 부텀 엄매 뱃속에 들어서 있을 찍에 부텀 1살을 먹어가꼬 그케 낫살이 되았었넌데람짜.
요샌 정부서 서양 문물에다 일본 것이 더 좋다고 해쌈시로 우덜이 엄매 뱃속서 먹었든 낫살은 빼뿔고 시상에 태어난 고 날부텀 치넌 만(滿) 나이로만 칠란다고 항께
인자넌 기존 내 낫살서 두 살얼 빼뿌러사라 씰랑가라...??
그람 몸땡이도 2년은 더 젊어진 겅가라? ㅋ~!
야튼 간에 납살 먹넌 것얼 떡국 먼는다고 그라지라? 덜?
헌데 1960~70년대 우덜이 에릴찍에 진도서 낋인 설날 떡국엔 만두가 안 들었었어람짜?
고런 시절에 진도서 중국집 말고넌 설날에 일반 가정에서 만두 빚는 집을 저사라 못 봤고 특히 설날 만두 여가꼬 낋인 떡국은 진도선 찰로 야기도 못 들어 봤었넌데 인자 전국이 모도 다 설날 떡국엔 만두럴 항꾼에 옇고 떡국을 '만두떡국'이로 낋입디다. 덜!
이전에 진도선 시리(시루)럴 가매솥 욱에다가 올리고 뿔린 쌀얼 옇고 짐이 안 새나가게 시리펜(시룻번) 붙예가꼬 쪄서 떡판에다 올리등가 도구통에다 옇고 떡메나 도굿대로 쳐서 떡 반죽얼 맨들아가꼬 그케덜 떡얼 맨들았지라.
고케 맨든 떡 반죽얼 굵우게 밀어가꼬 넙덕넙덕하게 눌러서 떡살로 문양을 찍고넌 큰 두부모 만썩하게 큼시로 뚜껍기넌 두부모 절반 뚜껍기로나 맨들어가꼬 대사치넌 잔치집이나 상갓집서 부주(扶助) 온 동구리나 산태미다가 여주든 흔떡(대떡)이 있었고라.
인자 설날 떡국 낋일 때 씨넌 '가래떡'은 진도서 ‘떡국떡’이라 했제만 기냥 ‘자ㅈ떡’이라고덜 불렀넌데 더 야룸시로 뚱굴뚱굴하게 밀어가꼬 어런덜 엄지손꾸락보담 잔 더 굵우고 찌드런하니 맨들아가꼬 식혀뒀다가 꾸덕꾸덕 몰루먼 어싯어싯하게 썰어가꼬 떡국얼 낋엤어람짜?
낭중엔 기곗방(방앗간)덜이 커짐시로 떡덜얼 모도 걱서 맨들아 중께 집이서 떡메로 치고 도굿대질 할 일덜이 벨로 없어졌제만 저 아주 에릴쩍엔 멫 집썩 모테가꼬 떡친다고덜 그랬었어라. 덜!
그란데 떡국에 대한 기록덜에 대해가꼬 찾어 보자므는 떡국이 언급된 기록은 조선 중기에서부텀 보이는 병탕(餠湯)이 내나 떡국이라고 항구만이라.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모재집(慕齋集, 1574년에 간행)'에 '새벽에 떡국을 먹고 설을 맞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요것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에 관한 첫 기록이랍디다.
그란데 요새사라 모도 만두랑 떡을 항꾼에 연 만두떡국이제만 이전 설날에도 떡국이랑 만둣국을 같이덜 먹었다하요. 안?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이 쓴 '태촌집(泰村集)'에는 '정조(正朝·설날)가 일 년의 머리(첫날)이니 면(麵)은 만두를 쓰고, 떡은 떡국에 쓴다'고 적었답디다.
이식(李植· 1584~1647)은 '택당집'(澤堂集)에서 ‘정조(正朝)에는 각 자리마다 병탕(餠湯·떡국)과 만두탕(曼頭湯)을 한 그릇씩 놓는다’고 기록했고람짜.
요새 떡국에 옇넌 떡점은 어싯어싯하게 썰어가꼬 찌라죽한 모냥사니제만 이전 조선시대 때넌 떡점을 엽전 모냥이로 썰어가꼬 떡국에 옇답디다.
동그랗게 썬 떡국 떡점은 새해의 해님 모냥을 상징해가꼬 그 떡국을 먹으므는 한 살을 먹었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고 그랑구만이람짜.
이후 19세기의 세시기(歲時記)들로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경도잡지(京都雜志), 김매순(金邁淳:1776~1840)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는 설날 음식이로 떡국이 하얗다고 해서 ‘백탕(白湯)’이란 이름이로 등장하는데, 멥쌀로 만든 흰 떡을 엽전 모양으로 썰어 고기 국물에 넣고 끓여 먹는다고 적었답디다.
그 시절 떡국은 꿩이로 육수를 냈고 떡 모양도 엽전 모냥이라서 오늘날 떡국점하고넌 모냥이 달렀고, 꿩떡국엔 고춧가루를 옇기도 했다는데 이는 꿩고기의 잡내럴 없앨라고 그랬다고 합디다.
그랑께 그 당시에 떡국을 끓이자먼 꿩이 있어사라 씨넌데 달구새끼 같은 집이서 키넌 가축이 아니고 야생인 꿩을 구하기가 에럽다 봉께 ‘꿩대신 닭’이라고 떡국에다 구하기 에럽고 귀한 꿩 대신이로 닭을 옇고 낋엤던 그런 이전 시절에 말이 요새까장도 세간에서 씨넌 말로 남었지람짜.
백탕(白湯), 병탕(餠湯) 외에 떡국의 또 딸른 이름은 ‘첨세병(添歲餠)’인데 이는 납살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이지람짜.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자신이 적은 글모음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떡국을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하는 떡)’이라고 함시로 더 이상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고 한탄하기도 했답디다.
납살 많이 먹고도 건강만 하담사라 장수하는 것이 존 것잉께
떡국이든 뭣이든 맛납게 잘 잡수시고 건강하게 장수(長壽)덜 하시십쇼. 덜~!
떡판 욱에셔 떡메로 떡치넌 모십
※ 앞에 야기 중에 ‘낫살’도 있고 ‘납살’도 있었넌데라.
진도서 그랑께 ‘낫살’은 아그덜이랑 일반적이로 씨넌 ‘나이’럴 진도서 그케 말했고
‘납살’은 어런덜 나이럴 높여 불루넌 말로 연세(年歲), 춘추(春秋), 납살... 그케덜 진도서 말했었지람짜.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송현인 조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