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1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신학생 시절, 중고등부 학생들과 방학 때 캠프 갔던 기억을 해봅니다. 그때는 식사를 다 직접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체로 밥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버너를 이용해 코펠에 밥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밥물을 자기 생각보다 더 넣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집의 밥솥을 생각해서인지 물이 적어 설익거나 태울 때가 많았습니다. 또 많이 먹겠다는 욕심에 코펠 가득 쌀을 넣고서 밥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익지 않은 밥이 코펠 밖으로 넘치고 맙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밥을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관계가 틀어지고, 때로는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위해서는 알기 위해 노력해서 관계를 잘 지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뜸 들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보다 물을 더 넣는 ‘조금 더’의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즉, 내 마음의 크기도 알맞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때 최고의 주님을 내 안에서 만날 수가 있게 됩니다.
무조건 알아서 해달라는 식의 무책임한 떠넘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불평불만을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십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본성에 참여하는 사랑의 일치를 통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을 떠나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라서 그분과 아버지께 사랑받는 이들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예를 우리는 많은 성인성녀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의 집에서 죄의 더러움을 씻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호자, 곧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더 두텁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진리의 영이기도 한 성령을 받아들여서 주님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노력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줘서, 내 삶을 최고의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꿈을 품고 무엇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사진설명: 협조자 성령.
어떤 삶이 더 멋진가?
17년 전, 세 번째 책을 출판할 때 출판사에서 이번 책에는 사진을 좀 넣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냥 텍스트만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좋다고 했지요. 그런데 사진작가가 제 모습을 많이 찍는 것입니다.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사제인 저로서는 너무나도 부담이 되어서 사진작가에게 “저를 안 찍으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믿으세요. 그래야 사진이 잘 나옵니다.”
사진작가인데 어떻게 믿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저 자신을 믿지 못해서이지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하지만, 사진을 찍으려는 낌새만 보여도 곧바로 경직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사진이 훨씬 나은데요?”라고도 말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같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제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렸나 봅니다.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실제의 저를 보고 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실물이 훨씬 나은데요?”
사진을 보고 실망했는데 실제로 보니 괜찮다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사진이 엉망이어도 괜찮다 싶었습니다. 실제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자신 있게 포즈를 취합니다. 엉망으로 나오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사진은 사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 모습이고,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이 아닐까요? 겉으로만 멋진 모습이 아니라, 사진에 찍히지 않는 멋진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설명: 성령은 주님을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5월11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14,5-18
요한 14,21-26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니 마치도 한권의 서정적인 시집을 읽고 난 것 같이 머릿속이 환해져오고, 또 길고도 잔잔한 여운이 남더군요.
트럼펫을 전공한 현우는 관현악단 오디션에서 거듭 고배를 마실 뿐 아니라, 떠나가는 사랑도 잡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접은 현우는 강원도 산골 한 중학교 악대부 임시 교사로 가게 됩니다.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 색 바랜 트로피와 상장들,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악대부, 그러나 현우는 시골 아이들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제자들을 위해 손수 라면을 끓이는 스승, 그 아이들과 함께 머리 맞대고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라면을 먹는 스승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를 돕기 위해 그렇게 강하던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고 카바레 밤무대까지 뛰는 스승, 가슴 아픈 제자와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스승, 가끔은 엄격함을 버리고 친구처럼 다가갈 줄 아는 센스를 지닌 스승의 모습,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또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지난 세월 제가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제가 종사했던 일의 성격상 잘 풀린 아이들보다는 주로 늘 뭔가 꼬인 아이들, 노
력해보지만 안타깝게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방황을 거듭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어제도 최근 가까운 소년원에 오게 된 한 아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편지 한통을 보내왔더군요.
화가 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신부님,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편지를 드리니 정말 창피하네요.
신부님과 함께 했던 살레시오...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신부님, 보고 싶어요. 예전에 함께 외출하던 기억, 등산가서 한잔 하던 기억, 싸우면서 운동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많이 창피해하는 아이에게 빨리 답장을 써야겠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미안해할 것 하나도 없다. 다 네가 시대를 잘못타고 난 때문이다.
지난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란다.
널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 잊지 말거라...”
스승의 날에는 고마우신 모든 선생님들,
잊지 못할 은사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 바쳐야 하겠습니다.
열악한 교육 풍토 안에서 우리 선생님들 정말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꼬이고 꼬인 교육제도 아래에서도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도 많으시더군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춤을 배우는 선생님들,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제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교안작성에 여념 없는 선생님들, 아이들이 너무 좋아 결혼조차 포기하신 선생님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장학금을 내어놓는 선생님들...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은 제자들이 나중에 자라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스승으로부터 듬뿍 영양분을 제공받은 그 제자들은 언젠가 반드시 그 사랑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더 풍성히 나누어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스승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듯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라는 예수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의 소리 없는 눈물 앞에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 안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많은 결실을 맺도록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시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