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텔 주교 일기」전집 8권 발간
故 최석우 몬시뇰이 25년간 번역한 마지막 역작
뮈텔 주교 관점에서 본 고종 퇴위, 한일합방, 6‧10 만세 운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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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1854∼1933. 1. 23)가 직접 쓴 일기를 완역하고 최근「뮈텔 주교 일기」8권 전집으로 펴냈다.
뮈텔주교는 자신이 교구장에 임명된 날인 1890년 8월 4일부터 선종 직전인 1933년 1월 14일까지 교구장 재임기간의 사목활동과 교회 안팎의 주요한 사건들을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자세히 적었다. 프랑스어로 적은 이 일기의 분량은 6천 면이 넘는다.
뮈텔 주교는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43년간 교구장직을 수행하며 교회 내적으로는 선교사와 신자들, 외적으로는 주한 외교사절과 조선 정부의 외국인 고문들, 조선의 관료, 고종 황제 등과 만나며 겪은 사건 정황을 일기에 담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책장을 펼치면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후 국내 분위기가 외국인 선교사의 눈으로 전해진다.
1909년 10월 26일 드망즈 신부가, 한 한국인에 의해 이토(伊藤) 공이 암살되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나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러 저녁 5시경에 왔다. … 이토 공의 이번 암살은 공공의 불행으로 증오를 일으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습은 일본인들이나 몇몇 친일파 한국인들에게서만 보일 뿐이고 일반 민중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뿐더러 그런 감정이 아주 전반적이다…(「뮈텔 주교 일기4」413p).
뮈텔 주교는 한일합방 조약이 반포되기 3일 전 합병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일기에 적었다.
1910년 8월 26일 반 비르브리트 씨 덕분에 한국이 합병되고 그 조약이 29일에 공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협상에서 전 황제와 현 황제[고종과 순종]가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 천주님은 이 슬픈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뮈텔 주교 일기4」482p).
1910년 8월 29일 월요일. 벌써 9시부터 경무통감부(警務統監府)에서는 각 신문이 합병과 관련된 모든 칙서와 법령, 포고문들을 주지시키도록 총지휘에 나섰다.
11시에 합병 조약이 반포되었는데 그것은 統監府(통감부)가 아닌 總督府(총독부) 관보 제1호에 발표되었다. 2시에 2매의 긴 벽보들이 붙었는데, 하나는 그의 나라를 일본 황제에게 순순하게 넘긴다는 황제의 칙서이고, 또 하나는 데라우치 자작의 아주 능숙한 포고문이다. 한국인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움직임도 아무런 소요도 없었다. 사실 그러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뮈텔 주교 일기4」483p).
뮈텔 주교는 조선말로 말하면 주변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어에 능숙했으며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 등을 한자로 직접 기록하기도 했다. 뮈텔 주교의 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며 호탕하고 명확한 판단력을 가진 한 프랑스 선교사가 남긴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와 근대사를 이해하는 필수 자료
뮈텔 주교의 일기에는 개인 신변에 관한 내용 외에 한국교회의 성장과 변모뿐만 아니라 조선의 외교·정치·사회와 관련된 자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는 일기 외에도 <뮈텔 문서>에 보고서‧공문서‧초청장‧명함‧전보‧신문기사, 각국 영사 사진에 이르기까지 13,000여 건에 이르는 방대한 문서를 남겨서 일기의 내용을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교회의 성장과 변모에 대해서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의 교육내용과 운영, 명동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의 건축과 주요 행사, 본당 증설, 계성학교·남대문 상업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가명학교 등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 양로원·보육원 등의 사회사업, 《경향신문》·《경향잡지》 등의 언론·출판사업,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조사와 시복식, 대구·원산·평양·연길 교구의 증설 등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외교에 관련해서는 프랑스 공사를 비롯한 주한 외교사절들, 또는 외국인들과의 교류, 그리고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조선의 내정과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 등이 있어 당시 외교관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의 정치·사회적인 면에서는 뮈텔 주교가 한국의 정세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을미사변, 3·1 운동 등등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비단 한국 교회사만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료가 된다.
특히 1895년 이래 고종을 세 번 만난 뮈텔 주교는 고종과 나눈 대화를 일기에 자세히 적어 두는 등 주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대화 내용이나 앞뒤 사정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자료로서 활용도가 높다.
또한 이 일기는 3·1 운동 당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함으로서 이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제적되고, 얼마 동안 신학교조차 폐교되었던 사실, 그리고 1910년 말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의 발단이 된 천주교 신자인 안명근에 대한 사실 등은 한국 천주교 신자들의 항일운동에 대한 증언이자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사실에 대한 유일한 증언기록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故 최석우 몬시뇰이 1983년 작업을 시작한 이래 25년간 번역한 역작
마침내 전집 8권 출간
뮈텔 주교의 일기는 그가 선종한 뒤 노기남 주교 시기까지 명동 주교관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58년 대전교구가 설정된 후 서울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모두 대전으로 이적하면서 뮈텔 주교의 일기와 중요 서류들이 용산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프랑스 파리의 외방전교회 본부 고문서고에 옮겨져 보관되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설립자인 故최석우 몬시뇰(1922. 11. 27∼2009. 7. 20)은 이 일기가 지닌 교회사 자료로서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1983년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으로 있던 펠리스 신부의 협조를 얻어 복사본 일부를 입수하였고, 1984년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에 소장되어 있던 일기 전체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인수하였다. 하지만 이 자료는 원문 그대로 판독하기가 쉽지 않아 벨기에 사미스트인 디디에 세르스트반스 신부의 작업으로 그해 말에 판독과 정서 작업을 마쳤다. 이후 1986년에 1권, 1993년에 2권과 3권, 1998년에 4권과 5권, 2002년에 6권, 2008년에 7권과 마지막 8권을 발간하였으며, 1권은 2009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펴냈다. 그리고 최근 8권을 모두 묶어 전집으로 내놨다.
그동안 故최석우 몬시뇰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교회와 역사》에 1989년 1월호부터 시작하여 2008년 12월호에 1931년 2월 15일자 일기를 마지막으로 238회에 걸쳐 뮈텔 주교의 일기를 번역, 연재하였다. 뮈텔 주교 일기가 지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주목한 최석우 몬시뇰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로 뮈텔 주교 일기 완역을 꼽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이를 위해 은퇴 이후 선종하기 얼마 전까지도 합정동 숙소에서 중구 저동 한국교회사연구소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번역 작업을 계속하였다.
최석우 몬시뇰의 혜안 덕분에 뮈텔 주교의 일기는, 판독하기도 어려운 프랑스어 친필 수고본이라는 형태를 벗어던지고 한국교회사 및 한국사 연구자들이 직접 접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 각권의 주요 내용
「뮈텔 주교 일기」
뮈텔 주교 저 /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신국판‧양장본
각권 2만 원, 전 8권 16만 원
뮈텔 주교 일기1 (1890~1895)
주요 내용으로는 교회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주교 임명, 교구장 취임과 사목 방문, 갖가지 교안의 발생과 그 처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신축, 약현성당과 명동성당의 건축, 동학도의 봉기로 인한 교회의 피해 등이 있다. 조선의 외교·정치·사회와 관련된 것으로는 주한 외교사절들과의 교류,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 갑오개혁을 비롯한 내정개혁, 동학농민 전쟁, 청·일 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 을미사변과 춘생문사건 등이 있다.
1권은 1986년에 발행된 초판의 누락된 부분과 번역 오류를 수정하여 2009년에 개정판으로 펴냈다.
뮈텔 주교 일기2 (1896~1900)
이 책에는 뮈텔 주교가 1896년 1월 1일부터 1900년 12월 31일까지 기록한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교회와 관련된 것으로서 뮈텔 주교의 사목 방문, 성직자 인사이동과 신설된 새 본당에 관한 내용, 한국 교회 안에서 거행된 최초의 서품식(1896. 4), 명동 성당 축성식과 이에 관련된 사실들(1898. 5), 병인박해 순교자에 대한 교구 재판의 시작(1899), 해마다 일어나는 갖가지 교안의 내용과 교민조약의 체결(1899. 3) 등이다. 조선의 외교와 관련된 것으로는 프랑스 공사관을 위시한 주한 외교 사절들의 동향과 그 성향,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던 외국인 고문들,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나 열강의 침탈에 대한 이해와 조선 안의 사정 등이 있다.
조선의 내정에 관련된 사건들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을미사변 이후의 의병 봉기, 1896년의 아관파천과 친로내각, 독립협회의 조직과 독립문 건립, 광무개혁의 내용, 1897년 흥선대원군 내외의 죽음, 경부·경의·경인 철도 부설권 문제와 만민공동회 개최, 전차‧전등 개설과 관련한 사실 등이 그것이다.
뮈텔 주교 일기3 (1901~1905)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교회의 성장과 변모에 관련된 것으로 간도 교회의 초기 상황·제주 교안의 발생과 해결 과정·선교 조약의 약정 등이고, 둘째는 조선 외교에 관한 것으로 의화단 사건의 종결과 북경 의정서 조인·러일 전쟁 발발을 전후한 국내외 동향 등이며, 셋째는 용산 전환국의 주조와 화폐 조례에 관한 내용·안남미의 매입·한일 의정서 체결·러일 전쟁·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을사보호조약 등 조선의 내정에 관련된 사건들이다.
뮈텔 주교 일기4 (1906~1910)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교회의 성장과 변모에 관련된 것으로 명동 성당 대지 분쟁·베네딕도회의 진출 및 정착 과정·〈경향신문〉의 창간과 폐간 등이 있다. 둘째는 조선의 정치·외교·사회에 관한 것으로 이때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의 시기라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사를 연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통감 정치·헤이그 밀사 사건과 고종의 퇴위·한일신협약·한국은행의 설립·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한일합병·안악 사건 등이 뮈텔 주교의 관점에서 언급되고 있다.
뮈텔 주교 일기5 (1911~1915)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교회의 성장과 변모에 관련된 것으로 대구교구의 분할과 드망즈 주교의 승품·숭신학교 개교·베네딕도 수도원의 대수도원 승격·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개교·그리스도교의 포교를 규제하는 ‘포교 규칙’의 공포 등이 있다. 둘째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에 관한 것으로 105인 사건·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물산 공진회 개최 외에 단편적이나마 한국민의 독립 의지와 관련된 내용도 실려 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일제의 무단 통치를 받던 1911∼1915년 사이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집이다.
뮈텔 주교 일기6 (1916~1920)
주요 내용으로 먼저 교회의 성장과 변모에 관련하여 1916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베네딕도회의 어려움, 신사참배와 관련된 교회의 입장 등이, 1917년에는 교구의 법인 인가와 관련된 내용과 경향잡지의 기사 검열 문제 등이, 1918년 일기에는 지방 교회와 일제 당국과의 갈등이, 1919년 일기에는 만세 시위와 관련된 용산 신학생들의 움직임 등이 주목되며, 1920년 일기에는 상해 임시 정부로부터 주교에게 전달된 편지, 교구의 재단 법인 인가, 원산교구 분할 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의 정치 사회와 관련된 것으로 주한 외교 사절 및 외국인들의 동향과 그 성향을 알 수 있는 자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뮈텔 주교 일기7 (1921~1925)
주요 내용으로는 1921년에 드브레 신부의 보좌 주교 임명과 주교 서품식, 상업학교의 인수 결정 등이 있고 1922년에는 성가기숙사 건축과 시복 관련 조사 활동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924년에는 강경보통학교의 신사참배 문제 등이 언급되고 있으며, 1925년에는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79위의 시복식과 관련된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뮈텔 주교 일기8 (1926~1933)
이 책에는 1926년 1월 1일부터 선종 9일 전인 1933년 1월 14일까지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1927년에는 복자(福者) 김성우의 유해 발굴, 평양지목구의 설정 등의 내용이 있다. 이어 1931년 일기에는 한국 지역 시노드 개최와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 기념행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 사회와 관련해서는 1926년에 있었던 순종의 사망과 그에 따른 6·10 만세 운동, 1932년에는 일본의 만주국 인정과 국제연맹의 리튼 조사단 방문 등이 실려 있다. |
▣ 뮈텔 주교(Mutel, Gustave-Charles-Marie, 1854∼1933)
한국명은 민덕효(閔德孝). 대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제8대 조선교구장.
185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873년 10월 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77년 2월 24일에 사제품을 받음과 동시에 한국 선교사로 임명돼 파견됐다. 1880년에 한국에 입국하였으며 1885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로 임명되어 한국을 떠났다. 1890년에 블랑 주교의 후임으로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뮈텔 주교는 1925년 조선 순교자 79위의 시복과 방인 성직자 양성에 힘쓰는 등 한국 교회의 발전에 많은 업적을 쌓은 공로로 1926년에는 명의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33년 1월 23일 뮈텔 주교는 8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고 용산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언론홍보팀 마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