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사(中興寺)
2023. 5. 13.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中興寺 石造地藏菩薩半跏像)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은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반가 자세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지장보살은 저승세계인 명부(冥府)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조성 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추정된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쓰고 있으며, 통례와는 달리 왼쪽 발을 가부좌하고 오른발은 내리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강진 무위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1478년 조성) 가운데 오른쪽(향좌) 지장보살의 형식과 같아 주목된다. 옷은 스님들이 입는 장삼을 걸쳤으며. 가슴 앞에는 겹쳐진 옷고름을 표현하여 특이하다. 코와 목, 양 손과 왼쪽 발끝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꾹 다문 입과 근심어린 듯한 눈매, 한쪽으로 약간 기울인 고개 등을 통해 고민에 잠김 지장보살의 모습을 표현했다. 불상의 재료로 점판암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며, 높이는 79㎝이다. 본래 중흥사 삼층석탑 옆에 있었던 이 불상은 도난을 당해 1978년 서울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요사채에 모셔져 있다. 고려시대는 석조반가상의 조성 유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어러한 형식의 불교 조각상이 전래되어 오고 있어 우리나라 반가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光陽 中興山城 三層石塔)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산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道詵國師, 817~898)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중흥사(中興寺)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원래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기단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아래층 기단에는 중앙에도 3개의 기둥을 새겨 넣었다. 위층 기단에는 중앙에 기둥을 새겨 한 면을 둘로 나눈 후, 인왕상, 공양상, 사천왕상 등을 돋을 새김으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1층 몸돌 각 면에는 연화대좌 위에 있는 여래상을 조각했는데, 이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쪽의 여래상만 서 있고, 나머지는 앉아 있는 모습니다. 이처럼 기단부와 탑신부에 조각상을 장식한 양식은 통일신리 후기부터 등장한 요소이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을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석탑의 존재는 통일신라시대의 광양지역 불교분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