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가의 와부읍 덕소리 석실 미을로 향한다. 취석(醉石), 술 취하는 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와부읍 뒤편인데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네 번째’ 로 좋다는 명당인지라 풍수지리학자들이 이끄는 전세버스의 출입이 빈번하다. 취석과 함께, 술병 목 형상의 명당도 보고, 김상용과 김상헌의 묘도 둘러본다. 그곳에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묘가 있는데, 술을 찾아가려면 북쪽 수동골로 향해야 한다. 수동골은 계곡이 깊어서 초봄에는 고로쇠 수액이 좋고, 여름에는 물놀이하기 좋고, 가을에는 축령산 휴양림에서 쉴 만하다. 계명주 술도가는 멧돼지 전문 요리점을 함께 운영하는데, 멧돼지고기를 먹으면 술은 그냥 준다.
영월 주천강
가장 운치 있는 술기행 코스다. 술샘이 있고, 소문나지 않은 술이 있어서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신림나들목으로 빠져나가면 주천면이 나온다. 주천강가의 술샘에서 주천강을 내려다보고 나서 무릉리로 향한다. 무릉리 장순일 씨 댁에서 신선주를 두어 병 사 들고 요선암에 이르면, 술보다 먼저 풍경에 취하고 만다. 요선계원들이 지은 요선정에 걸린 숙종대왕 어제시도 읽어 보고, 복주머니 불상에 복을 빌어보기도 하면서 한나절 알딸달하게 취할 수 있다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돌아오기 아쉬우면 북쪽으로 더 들어가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의 소나무 밑에서 머물다 온다. 그래도 맨송하면 주천강 가의 동강 더덕술 술도가에서 술 한 병 사 들고 오면 될 것이다.
청주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시내에서 바라 보면 다락처럼 높이 올라간 산 위에 산성이 있는데, 이제는 청주 시민들의 쉼터가 되었다. 산성은 잘 복원되어 있다. 산성 둘레가 4킬로미터쯤 되니 신발 끈 조여 매고 한 바퀴 돌아볼 만하다. 산성 안에 마을이 있는데,대부분이 음식점 이다.음식점의 식단은 달라도,대추술은 한결같다.산성을 지키던 무인들이 즐겼던 붉은 대추술을 마시며, 성벽 위에서 굽어보았던 청주 시내와 증평 평야를 생각하면 창공이라도 나는 듯이 몸과 마음이 활달해질 것이다.
한산 모시장과 건지산
1일과 6일에 한산 모시장이 선다. 새벽 5시부터 열리는 한산 모시장을 구경하고 나서,모시의 내력을 더 알고 싶으면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한산 모시관을 찾아간다. 모시관 맞은편에 한산 소곡주 양조장이 있다. 그곳에는 됫병술 사 들고 찾아갈 만한 곳이 많다. 백제 유민들이 최후 격전을 벌였다는 건지산성을 올라가 한산읍 굽어보면서 한잔 할 수 있고, 건지산 아래 문헌서원을 찾아 이색의 묘소에서 한 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운치 있는 곳은 금강이 400킬로미터의 여정을 마감하는 금강 하구언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군이 맞섰던 갈대밭 촬영장이 이곳인데, 겨울이면 철새들이 몰려와 장관을 이룬다. 소곡주는 겨울에 마시는 것이 제격이니 겨울 철새들과 수작을 벌일 만하다.
아산 외암리 민속 마을
온양의 진산 설화산의 서쪽 기슭에 외암리 민속 마을이 있다. 전통 가옥과 생활상을 잘 지켜오고 있어서 민속 마을로 지정 된 곳이다. 돌담 사이로 난 고샅길을 걷는 것만으로, 전통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이 마을 참판댁에서는 연엽주를 빚는다. 내놓고 술장사를 하는 집이 아니니, 술맛을 보러 왔다고 조심스럽게 청해야 한다. 참판댁 한옥은 조선의 고종 임금이 하사한 집이다. 술병 들고 나오면서 집 구경도 해볼 만하다. 참판댁의 남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오면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개울이 있다. 그곳에 햇볕을 가볼 만한 원두막이 있다. 거기 앉아 연엽주 한 잔 걸치고, 안주삼아 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술 한잔 걸치면 외암리가 고향 같아질 것이다. 좀더 볼거리가 필요하면 설화산 동편에 있는,우리 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민가인 맹씨 행단을 여행지에 추가하면 된다.
경주 교동
천년 고도에 다시 천년이 흘렀다. 세월은 무상하다지만, 여전히 눈요깃거리가 많다. 하지만 진짜 경주를 맛보려면 경주 교동법주를 마셔야 한다. 교동법주 제조장은 경주 교동에 있다. 향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고택에 경주 최씨들이 살고, 제조장도 들어 있다. 경주 교동법주는 오로지 이 제조장에서만 판다. 덕분에 술을 빚는 이에게서 손수 술을 구입할 수 있다. 제조장이 있는 동네가 원효와 요석공주가 만난 요석궁터다.동네 아래 남천에 원효가 빠졌고, 옷을 말리려고 요석궁에 틀어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또 무슨 인연이 생길시 술을 마시고 남천에 빠져볼 수도 있지만, 남천 건너 남산 아래 포석정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신라인을 그려보는 것도 좋으리라.포석정 관리인이 술병을 탐낼지 모르니 조심하시길.
안동
안동의 관문 제비원 석불을 찾아간다. 이제 주막도 마방도 없고 사찰만 있지만 안동 소주 기행의 첫 번째 목적지다. 안동 시내에 들어가서는 우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벽돌탑 신세동 7층전탑 앞에 서 본다. 제비원 석불과는 또 다른 웅장함이 느껴진다. 7층 전탑 옆으로 철길이 지나가 가슴 아프지만, 다른 한쪽에는 고성 이씨 종택인 기품 있는 한옥 건물이 있어 좋다. 500년 전에 지어진 집으로 안동의 연륜이 느껴진다. 안동 소주 제조장은 낙동강을 건너 수상동에 있다. 제조장 안에는 안동 소주 박물관이 있다. 안동 지방의 음식을 포함하여 전통 음식 660점이 소개되어 있고 소주에 관련된 유물도 200점이나 있다. 또 직접 불을 때서 소주를 내려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다. 소주의 실체와 역사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안동 소주 여행의 종착지인 셈이다.
부산 동래(금정)산성
싱싱한 산성 막걸리를 마시려면 산성 행차를 해야 한다. 버스들 타고 올라간 산성 마을에서 비로소 산성 순례는 시작된다. 산성의 길이가 16킬로미터나 되기 때문에 전체를 돌아보는 것은 과욕이고, 부산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망루 두어 군데쯤 순례하고 내려 오면 충분하다. 산성 마을로 돌아와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 걸치고 큰 숨 한 번 내쉬면 세상이 다 편안할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게 번거로우면 우물 속 같은 산성 마을에 잠겨서 염소 불고기에 막걸리를 걸치면 술기행의 포한은 풀리리라. 술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산성 막걸리 제조장을 찾아가 누룩 방과 누룩 딛는 작업장을 보여달라고 사정을 해볼 만하다.누룩방과 누룩 딛는 것은 아직 관광 상품이 안 되었지만, 관광 상품이 되기에 충분하다. 직접 누룩도 딛어보고,누룩도 구입하고,그 누룩으로 집에서 술도 담가보고.
전주 모악산 수항사
절을 찾고 산을 찾으면서 술기행을 하라니 좀 어색하다. 절에서 만드는 술을 맛보는데,그런 파격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견훤이 유폐되었던 금산사에서 출발하여 모악산을 넘어 수왕사 쪽으로 올 수도 있지만,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체력이 허비된다. 모악산의 동쪽 구이 저수지 방면의 공원 주차장에서 한 시간 남짓 산행을 하면 수왕사에 도달한다. 중간에 있는 대원사는 강증산이 도를 깨친 곳이다. 수왕사에는 여전히 좋은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그 약수로 술을 빚었던 진묵대사의 조사당도 있다. 수왕사의 스님이 빚은 송화백일주를 맛보려면 산 밑의 구이저수지에서 순창 조금 더 나가다 보면 있는 술도가를 찾아가야 한다.
담양 금성산성과 대나무숲
담양 금성산성은 웅장한 요새다. 산성에 올라 담양호를 내려다보고, 연동사로 향한다. 담양 추성주의 유래가 얽힌 절이다. 고려 시대 석불인 지장보살이 있는데, 그 석불이 서 있는 암벽 아래에 노천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연동사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담약군 용면으로 내려오 면 추성주 제조장이 있다 소주 추성주도 있고, 약주 댓잎술도 있다. 담양은 정자들이 많아서, 그 술병을 꿰차고 어느 곳을 향해도 좋다. 담양 읍내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송순의 면앙정, 정철의 송강정, 임억령의 식영정, 양산보의 소쇄원에 이르는데, 어느 곳에 머물러 술 한잔 기울여도 좋으리라. 그런데 술만으로 좀 허전한 동네가 이곳이다. 소리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더불어 시 한 수 뽑을 수 있는 여유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술 마시다, 안주 생각이 나면 담양 떡갈비집으로 갈 수밖에.
낙안읍성과 벌교 갯벌
낙안읍성은 해마다 음식 축제가 열리는 동네다. 밑반찬이 푸짐하다보니, 된장찌개 하나 시켜놓고도 술을 마실 수 있다. 읍성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교대로 운영하는 음식점 세 곳이 있다. 솜씨가 엇비슷하니,어느 곳을 들어가도 무방하다. 옛날 주막 같은 골방에 방에 들어앉아 사삼주를 마시는 것은, 세상 풍요를 다 누리는 것 같은 각별한 느낌을 준다. 밤이 늦으면 읍성 안의 초가 민박집으로 자리를 옮겨도 좋으리라. 날이 밝으면 벌교 홍교를 구경하고 꼬막이 나는 벌교 갯벌을 둘러보다가 순천만 갈대밭까지 진출하든가, 낙안의 진산인 금전산 너머 선암사의 종소리를 들으러 가든가, 어느 쪽으로 가든 푸짐한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