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주님 부활 대축일
사도행전 10,34ㄱ.37ㄴ-43
콜로새 3,1-4
요한 20,1-9
+찬미예수님
신종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이 있다 보니 종종 작년 이 시기 즈음 무엇을 하고 있었나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4월 2일에 박사논문을 발표하고 학위를 받았으니 작년 이 즈음에는
더 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논문 발표 때에 오셔서 함께 여행을 했고 이태리의 한인 본당 청년들을
담당하고 있었던 관계로 한인 체육대회를 위해 함께 음식을 준비했던 기억도 납니다.
어김없이 봄이었고, 홀가분한 마음과 더불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의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준비하며 제가 특히 기대했던 것은 한국의 계절들이었습니다.
저는 유학 중에 한국에 두 번 들어올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여름 이외의 한국의 계절들을 느낄 수 없었으므로
한국의 아름다운 봄과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설레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유럽의 봄은 한국의 봄과 많이 다릅니다.
벚꽃이 없고 개나리, 철쭉 같은 아기자기한 꽃들도 거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꽃가루와 송진가루가 어찌나 날리는지 걸어 다니기 불편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아름다운 꽃들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참으로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년 만에 한국에서 맞이하게 된 봄이 바로 지금입니다.
날씨도 좋고 미세먼지나 황사도 없이 세상에 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봄이 찾아온 것 같지만, 제가 기다려 온 봄은 이런 봄이 아닙니다.
본당 아이들을 만날 수 없고 신자 분들과 미사도 드릴 수 없는 봄,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없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매일 확인해야 하는 뉴스들.
그야말로 가슴 아픈 봄입니다.
더욱이 최근 몇 일, 성주간과 부활 미사를 조촐하게 거행하고 나니
더욱 아이들과 신자분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그립고 쓸쓸한 마음이 큽니다.
그리하여 일상의 소중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온 저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되는데,
오늘 아침 부활 대축일 미사를 준비하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쁜 부활인데 지금껏 내가 잃어버린 것들만 너무 돌아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금의 답답한 상황에서도 저에게 주어져있는 소중한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신자 분들의 격려와 기도가 언제나 저와 함께 하고 있고,
조촐하게나마 미사를 함께 거행하는 든든한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계십니다.
무엇보다 미사를 드리고 싶어 하는 사랑스러운 어린이들이 있으며
저를 그리워하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주변에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잃어버리면 그리울 많은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 달음에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셨다는 비참함,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예수님의
소중한 한 말씀 한 말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그들의 심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잘 지키고 모셨어야 했는데’ 라는 초조함과
‘혹시 부활하신 것은 아닐까?’ 라는 기대감이 “빨리 달려가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잘 개켜진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됩니다.
지나쳐 버렸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비롯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지금껏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갖고 있는 것 보다는 잃어버린 것들, 누리지 못하는 예전의 것들만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과 다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돌아온
예수님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신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매서운 겨울을 뚫고 찾아온 봄날의 햇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돌아오셨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이렇게 드러났고,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됩니다.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참으로 일상적인 것이지만 더 없이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때로는 우리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미사 중의 의무였지만
그것으로부터 받는 따뜻한 은총은 더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없는 상황이지만 너무 슬퍼하지도 헛헛해하지도 마십시오.
언젠가 모두 함께 모여 성가를 부르며 예수님의 몸을 모실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나를 기다려주는 이가 있음은 더욱 큰 은총입니다.
우리는 돌아갈 성전이 있고 우리를 항상 기다리시며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예수님이 계시니
어찌 오늘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의 화답송이 우리에게 기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권고 합니다.
“이 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어린이 강론: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첫댓글 따뜻한 말씀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