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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S#1 거리 전경
눈 오는 하늘
테마 음악과 함께 눈 내리는 풍경을 아름답게 잡던 카메라가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면,
성탄 트리와 장식용 전구로 소박하게 단장된 작은 성당 앞
나뭇가지와 성모 마리아상 위로 소담히 쌓이는 순백의 눈송이들...
아름다운 사랑을 예고하듯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풍경
가로수에 치장된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용 전구, 경쾌한 캐롤송...
카메라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다소 수선스럽지만 평화로운 거리를 훑는다.
선물 상자를 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는 젊은 부부,
팔짱을 끼고 행복한 미소를 뛰우며 걷는 연인들,
무리지어 가는 십대 청소년들의 밝은 웃음들...
그들의 모습을 따라 카메라가 서서히 훑다 유럽풍의 프린스 호텔 앞에 이으러
천천히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를 향해 올라가는 순간,
‘챙--!’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스카이 라운지의 유리창이 산산히 부서져 내린다.
눈송이에 섞여 잘게 부서져 내리는 유리 파편들...
S#2 프린스 호텔 로비
선우가 사람들을 헤치며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속에 파란 스웨터를 입고 있다.
프론트 위의 벽시계. 4시 52분
멀리서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경찰들과 호텔 직원들이 실내를 정리하고 있다.
소란스런 분위기의 실내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선우
S#3 프린스 호텔 엘리베이터 안
12층 버튼을 누르는 선우
통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의 전면 창을 통해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 풍경이 보인다.
다소 설레는 듯한 표정의 선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든다.
보면, 사람 얼굴 모양의 펜던트
뚜껑을 열면,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가 들려오며 뚜껑 안쪽에 그려져 있는 여자의 얼굴 (지희)이 보인다.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선우.
윗쪽으로 층수를 알리는 번호판이 변하다가 어느 순가, 엘리베이트가 멈칫하더니 실내등이 잠시 흐려졌다 다시 밝아진다.
갸우뚱 고개를 젓는 선우의 불안한 표정
그러나 다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안심하는 얼굴로 펜던트 뚜껑을 닫고 번호판 을 보는 선우.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선다. 8층
문이 열리면, 엘리베이터 밖에 경찰이 서 있다.
경찰1 (안으로 들어와 1층 버튼을 누르며) 더 이상 못 올라갑니다!
선우 (의아한 표정으로) 스카이라운지에서 약속이 있는데...
경찰1 지금 거기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선우 (불길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재빨리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는 선우
S#4 동 비상 계단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는 선우, 거친 숨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급히 계단 난간을 짚으며 올라가던 선우의 손에서 펜던트가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져 뚜껑이 열리며 흘러나오는 음악
어딘지 슬퍼보이는 지희의 얼굴. 그 위로 빈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리는 리 오스카의 하모니 카 소리...
쿵쾅거리며 달려 내려온 선우의 손이 프레임 인되어 목걸이를 집어들고 다시 뛰어올라간다.
S#5 동 스카이라운지
대형 유리창 하나가 박살 나 있고, 깨진 창 사이로 눈바람이 세차게 들어온다.
나동그라진 의자를 발로 차며 한팔로 지희의 목을 잡고 형사들을 향해 뭐라 소리를 질러대 고 있는 민욱
지희가 민욱에게 뭐라 소리치며 칼을 든 민욱의 손을 잡는다.
민욱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끝이 지희의 목에 겨누어진다.
뒤쪽에 대치한 경찰들이 총을 빼들고 다가서자 민욱이 지희를 끌고 창가로 가며 소리친다.
민욱 (발악하듯) 가까이 오지마, 뛰어내릴 거야!
민욱의 고함에 주춤 멈춰서는 경찰들
민욱에게 뭐라 말하며 애원하는 지희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때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스카이라운지로 뛰어들어오며 그 모습을 보곤 놀라는 선우
혼란스런 분위기
민욱의 눈동자에 서리는 광기
선우의 시선에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지희의 절박한 얼굴, 주춤거리는 형사들, 선우의 거친 숨소리가 숨가쁘게 교차된다.
미친 듯이 사람들을 헤치며 나가는 선우
그러나 막아서는 경찰들
선우 (절규하듯) 안돼!
다급해진 민욱이 유리창이 깨진 창가의 난간으로 지희를 끌고 올라선다.
민욱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지희 (아래를 보며 위태로운) 어...!
선우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가는 동시에,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벌이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지희를 덥석 안는 민욱
그 바람에 민욱이 들고 있는 칼이 지희의 가슴을 찌르고 만다.
지희의 하얀 블라우스 위로 솟구치는 선홍의 핏줄기
순간으로 당황한 듯 민욱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민욱이 지희를 안고 창 밖으로 떨어진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넋이 나간 듯 서 있는 선우
그 얼굴에서 화이트 아웃
3년후, 1998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3시 30분
S#6 웨딩 숍 안
미라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잇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소파에 앉아 있는 선우
드레스의 레이스 장식을 펴주며 미라의 옷 맵시를 잡아주는 여주인
주인녀 (호들갑스럽게) 내가 만든 거지만 너무 예쁘다.
미라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모델이 예뻐서는 아니구요?
주인녀 (웃으며) 아유, 그래. 모델 덕에 드레스도 빛난다.
주인이 뭐라 계속 수다를 떨지만 미라는 연신 거울을 쳐다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 거울 안으로 언뜻 보이는 선우의 모습.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라.
미라 선우씨!
순간 상념에서 깨어난 듯 고개를 들며 미라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 선우
S#7 웨딩숍 앞 거리
마냥 즐거운 표정의 미라에 비해 선우의 표정은 심란해 보인다.
미라 (흘깃 선우의 눈치를 보며) 자기, 오늘 좀 이상하다. 무슨 일 있었어?
선우 아니... 왜?
미라 (약간 토라진 듯) 내일 결혼 할 사람 얼굴이 아니잖아.
선우 그냥... 좀 긴장이 되서 그래. (얼버무리 듯) 어디 가서 차라두 한잔 할까?
미라 아니, 오늘 푹 자야 내일 화장 잘 먹지. 선우씨도 오늘 일찍 가서 쉬어.
참, 내일 아침 일찍 프린스 호텔. 잊지 않았지?
선우 (놀라서) 프, 프린스 호텔?
미라 (의아하다는 듯) 응. 거기서 신부화장한다구 했잖아. 선우씨 머리두 만지구
선우 아...
미라 늦으면 안돼? (시동을 걸며) 나 먼저 갈게.
(가려다 말고 보며) 선우씨, 정말 나하고 결혼하고 싶은 거지?
선우 (웃으며) 그럼.
미라 (만족한 듯 미소 지으며) 그럼 됐어. 내일 봐
차를 타고 가는 미라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선우
멀어져 가는 차를 한참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선우
한점 두점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송이들
멍하니 눈 내리는 허공을 응시하며 서 있는 선우
이때 빠앙-! 하고 선우의 의식을 침범하는 버스의 클락션 소리
선우 고개를 돌려 보면...
S#8 마을 버스 정류장 (회상)
... 화면톤이 달라지며 버스의 색깔이 파란색(95년의)으로 바뀌어 잇다.
아침, 늦가을. 노란 은행잎이 길가에 흩뜨러져 있는 동네 마을 버스 정류장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모습이 보이고...
저만치서 선우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온다.
간신히 버스를 잡아타는 선우
S#9 마을 버스 안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우.
선우가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차가 급회전하고.. 기우뚱 몸이 앞쪽으로 쏠리는 선우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이때 얼핏 선우의 시선에 들어오는 지희의 모습. 구석에 앉아 창 밖을 응시하고 잇다.
차가 코너를 돌자 이내 승객들에 묻혀 보이지 않는 지희
그 어떤 이끌림에 고개를 뺴고 지희를 찾는 선우의 시선
버스가 균형을 잡자 다시 선우의 시야에 들어오는 지희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듯 선우의 시선 가득 들어오는 지희의 모습.
파란색 카디건 때문인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
또렷한 이목구비,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풍성한 머리칼, 우수 어린 눈망울...
멍하니 지희를 바라보고 있는 선우
가늘게 한숨을 쉬더니 버스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지희. 선우를 발견하고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상황을 모르고 계속 바라보고 있던, 선우. 순간 정신을 차리곤 얼른 고개를 돌린다.
S#10 전철역 앞 정류장
지희가 내리자 급하게 뒤따라 내리는 선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지희
슬금슬금 옆으로 가서 흘끔 지희를 쳐다보는 선우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자 사람들 틈에 섞여 길을 건너는 지희
넋을 잃은 채 그녀를 쳐다보는 선우를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간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는 선우
길 건너편, 지희가 웬 여자와 인사를 나누며 가는 것이 보인다.
망설이다가, 파란불이 깜빡거리자 서둘러 길을 건너는 선우
S#11 지희의 꽃가게 앞
선우의 시점.
꽃가게 유리창 너머로 여자와 지희의 모습이 보인다.
가게 안 선우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여자
외투를 벗어걸고 새장으로 다가가는 지희. 문을 열고 새밥을 넣어준다.
모이를 쪼아먹는 새를 보며 입술을 내밀어 휘파람을 부는 지희.
색색깔의 꽃에 파묻힌 하얀 피부, 그리고 귀엽게 삐져나온 입술...
그냥 그 모습만 보고 있어도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귀와 코가 새파랗게 언 것도 모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는 선우.
이때 지나가던 뚱뚱한 아줌마 한 명이 선우의 시야를 가려 서며 산통을 깬다.
아줌마 지금 몇시유 총각?
선우 예? 아, 예... (손목 시계를 보며) 아홉시 오십분입니다.
아줌마 고맙수 총각
아줌마가 가고 다시 가게로 시선을 돌리는 선우
그러나 곧, 아차 싶어 입이 딱 벌어지는 선우. 부리나케 돌아서서 뛴다.
S#12 선우의 회사
계면쩍은 표정으로 과장의 책상 앞에 서 있는 선우
과장은 좀 짖굿게 생긴 사람이다.
과장 아니? 자네가 지각은?
선우 ... 죄송합니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과장 아, 여기 몸 좋은 사람이 어딨어? 다 한 군데씩은 고장이지. (느물느물) 왜? 쉬고 싶어?
아주 평생 쉬게 해주까?
선우 (머리를 긁적이며) 에이 과장님두...
S#13 선우의 집․거실 (밤)
조그만 원룸 아파트의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형사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 비디오를 보며 남자 주인공의 흉내를
내는 병수, 철없는 모습
소파에 앉아 지희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는 선우
영화가 다 끝나자
병수 크아 영화 죽인다! (손가락 총을 쏘는 흉내를 내며) 바방! 바방! 역시 진정한 남자만이
미인을 얻는 법! (하다간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 선우에게 다가와 보며) 이야, 삼삼한데?
선우 (병수를 올려다보며) 삼삼하다? (고개를 저으며) 그런 표현은 이 여자한테 안 어울려
병수 그럼 맛있겠다는 어때? 아님 쫄깃하겠다?
선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병수 뭐하는 여잔데?
선우 몰라. 아침에 버스에서 본 여자야
병수 어우 이 삼돌아. 필이 꽂혔으면 쫓아가서 신원조회라두 하구 왔어야지.
그림이나 그리고 앉았으면 여자가 나오냐 돈이 나오냐?
선우 인연이 있음 만나게 되겠지
병수 인연? 이년(인연)은 욕이구 임마. (정색을 하고) 자, 여기 돈키호테가 있고 햄릿이 있어.
저기 마릴린 먼로가 있고. 어느 쪽이 마릴린 먼로를 차지할 거 같냐? 햄릿은 맨날 저걸 해?
말어? 대가리 싸메다가 볼장 다 보겠지. 하지만 돈키호테는? 좋아하든 말든 무조건
댓쉬하고 보는 거야. 뺀찌 놔? 노 프라블럼. 또 달려드는 거야.
그러다보면 결국 여잔 넘어오게 돼 있다고.
선우 ...
병수 엉아 말 들어 임마. 이래뵈두 엉아가 연애 구단이다.
이 때 전화벨 소리
병수 (수화기를 들며) 이 시간에 왠 이쁜인고? (목소리를 쪼악 깔며) 아, 여보세요? (하다간) 아이고, 엄미 알았다는데 자꾸 왜 그려유? 글씨 덕순인 안되야요! 서울 아가씨 데불고 갈팅께 쪼매만 기다려유... 아, 글씨 덕순인 안된다니께요!
쩔쩔매는 병수를 보며 웃는 선우
S#14 지희의 꽃가게 앞 (밤)
가게 저 편에서 서성이고 있는 선우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음을 정한 듯,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가게로 향한다.
S#15 안
각종 꽃들로 가득한 아담한 가게 안
한쪽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반짝이고 있고 캐롤송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파란색 털실로 스웨터를 뜨고 있던 지희가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든다.
지희 (밝은 얼굴로 일어서며) 어머, 어서오세요.
선우 (지희를 보며 넋이 나간) 네... 저... 꽃 좀 .... 주세요...
지희 어떤 꽃으로 할까요?
선우 아, 아무거나 예쁜 걸로...
지희 (웃으며 카라꽃을 들어보이는) 이거 어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예요.
선우 (고개를 주억이며) 네... 예, 예쁘네요.
지희 (포장지를 꺼내며) 애인한테 드릴 거죠? 예쁘게 포장해드릴께요.
선우 아, 아니. 저는 애인이...
그러나 선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꽃을 포장하고 있는 지희
지희 (포장에 열중하며) 애인이 좋아할 거예요.
선우 ....
전화벨이 울리고... 지희가 꽃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으러 간다.
그때 비닐 봉지를 든 수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짧은 커트머리, 물 빠진 청바지..
경쾌하면서도 보이시한 이미지다.
풍선껌을 푸푸 불면서 오다가 들어오던 수진이 선우를 보곤 놀란다.
그 바람에 풍선껌이 터지면서 수진의 얼굴에 달라붙는다.
그 와중에도 지희를 보느라 여념이 없는 선우
지희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 잠깐만요... (카라 꽃다발을 수진에게 건네주며) 수진아, 이거 손님 좀 포장해드릴래? (하곤 무선 수화기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수진 (껌을 떼느라 당황한 모습으로) 응.
안쪽으로 사라진 지희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선우 위로...
수진(E) 이것 좀 드실래요?
선우가 고개를 돌리면 수진이 이쑤시개로 찍은 떡볶이를 내밀고 있다.
선우 아니, 전 괜찮습니다.
수진 (내민 손이 겸연쩍은 둣) 되게 맛있는데... (하며 자기가 먹는다)
입안 가득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꽃을 집어드는 수진.
수진이 꽃을 포장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지희가 사라진 쪽을 힐끔거리는 선우.
잠시 후, 꽃을 다 싼 수진이 선우에게 꽃을 내민다.
선우 저... 이름이 뭐예요?
수진 네...?
선우 (지희가 사라진 안쪽을 보며) 저기...
수진 아, 네... 지희에요, 강지희...
선우 (강지희란 이름을 되뇌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 죄송하지만 이 꽃 좀 지희씨한테 전해주 시겠어요? (카드 봉투를 꺼내며) 저어... 이것도 좀...
수진 (받아들며)...네...
지희가 사라진 쪽을 보며 가게를 나가는 선우.
S#16 선우의 사무실 빌딩 정문 (아침)
선우가 들어오며 늙수그레한 수위 아저씨한테 꾸벅 인사를 한다.
수위 오늘도 일찍 오네?
선우 제가 일등이죠?
수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려.
들어가다 왠 여자랑 부딛치는 선우.
가방에 들어있던 스케치들이 쏟아져 바닥에 주욱 깔린다. 몇 개를 빼고 전부 지희의 스케치.
여자 ...죄,죄송합니다.
서둘러 가는 여자.
이상하다는 듯 여자가 사라진 쪽을 보며 스케치를 주워 담는 선우.
S#17 선우의 회사 - 디자인실
각종 팬시 상품들의 디자인과 샘플들이 진열되어 있는 사무실 안.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 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선우의 눈이 일순 동그레진다.
보면 선우의 책상 위에 카라 꽃 한다발이 탐스럽게 놓여 있다. 그리고 옆의 카드.
꽃을 들어 향기를 맡는 선우. 봉투를 뜯어 카드를 펼쳐본다.
<선물 잘 받았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선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는 선우.
선우 여보세요?
그러나 아무말도 들려오지 않고... 리 오스카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빙그레 웃음을 짓는 선우가 수화기를 든 채 창가 쪽으로 걸어간다.
브라인드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음악...
음악과 햇살을 음미하듯 가만히 눈을 감는 선우.
음악이 끝나고... 선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기고 만다.
아쉬운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는 선우.
동료남(E) 안녕.
선우 일찍 나오셨네요.
동료남 (꽃을 보더니) 어? 누구야 이거?
이 때 미라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미라 (선우 책상에 커피 한잔을 놓아주며) 좋은 아침이에요.
동료남 나아 참... 누군 입님이고 누군 주둥아린가...?
미라 커핀 건강에 안 좋다며요? (하며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사무실을 나간다)
동료남 (꽃과 미라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세모꼴로 뜨고) 틀림없어. 미라씨야.
선우 (커피잔을 들고 이러나 음수대로 가며) 글쎄요... (커피에 뜨거운 물을 섞는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은밀하게 웃는 선우.
S#18 꽃가게 (밤)
문을 열고 들어서다간 의아한 표정이 되는 선우.
지희는 없고 수진이 빈 새장 옆에 앉아 울고 있다.
선우를 발견하곤 얼른 눈물을 닦아내는 수진.
선우 ...괜찮아요...?
수진 네. (애써 웃으며) 언닌 아까 친구 만나러 갔어요.
선우 예. 그럼...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 선우.
S#19 선우의 집
도안을 다듬고 있는 선우.
그러나 어느 틈인가 자기도 모르게 지희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보며 실실 웃음을 흘리는 선우.
병수가 의아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병수 너 약 먹었냐?
보더니 병수의 얼굴을 와락 잡아당겨 뽀뽀를 해대는 선우.
선우 사랑해 형.
병수 (안면이 파들파들 떨리며) 너,너 왜 이래 응?
선우 형 말이 맞았어. 돈키호테.
병수 돈키호테...? (생각난 듯) 아, 그 여자? 잘됐냐?
선우 그런 거 같애. 사랑해 형.
또 한번 병수의 얼굴을 와락 끌어당기는 선우.
병수 (고개를 외로 베베 꼬며) 야야! 제발! 제바알!
S#20 선우의 회사 - 디자인실
아침. 소리도 잘 안나는 휘파람을 불며 디자인실로 들어서는 선우.
역시나 책상 위에는 카라 꽃 한송이가 놓여 있고...
카드를 보면,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는 여자> 라고 적혀 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선우.
그런 선우를 흘깃 쳐다보는 미라.
전화벨이 울리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 선우.
선우 (목소릴 가다듬고) 여보세요? 오늘은 음악만 틀지 마시고 말씀을... 네? 아, 과장님이세요? (놀라는) 아버님께서요...?
S#21 동 회의실
부장(중년)과 이대리, 동료남, 미라, 선우 등 직원들이 둘러 앉아 있다.
부장 하는 수 없지 뭐. 그 프로젝트는 선우씨가 낸 아이템이니까 내일 모레 싱가폴 출장은 선우씨가 다녀오 도록 하고, 최과장 아버님 문상은 나랑 이대리가 가기로 하자구.
부장의 갑작스런 지시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주억이는 선우.
S#22 선우의 집 - 거실 (밤)
여행 가방을 챙기다 말고 한숨을 쉬는 선우.
옆에서 부시고 치고 박는 형사물 비디오를 보던 병수가 선우를 본다.
병수 겨우 사흘 출장이라며 그렇게 맘이 안 놓이냐?
선우 웬지 갔다오면 그 여자가 사라지고 없을 거 같아.
병수 그럼 만나서 침 발라놓구 가. 나 올 때까지 제발 딴데 가지 말구 기다려주십쇼, 하구. 아님 아예 깃발 을 꽂든지.
선우 (웃자)
병수 어어? 얘가? 마 이제부터 여자 성비가 급격히 줄어든대잖아? 너 피 터지는 전쟁이다 이거? 혹시 알 어? 사흘 동안 엄한 놈이 월담해서 찜할지?
병수의 너스레에 생각하는 표정이 되는 선우.
S#23 지희 꽃가게 앞 거리 (밤)
늦은 시간.
이미 셔트문이 내려진 가게를 기웃거리는 선우.
실망한 듯 돌아서려다 메모지를 꺼내 뭐라 적는다.
<지희씨, 저는 내일 회사 일로 멀리 떠납니다. 꼭 할 얘기가 있습니다. 내일 오후 6시에 길 건너 성당 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당신의 꽃과 음악으로 행복한 남자 김선우>라 적는다.
문틈으로 메모지를 집어넣고 발길을 돌리는 선우.
S#24 성당 앞
오후. 앞마당을 서성이고 있는 선우.
시계를 보며 마음을 졸이던 선우가 문득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멈춰선다.
진지한 표정으로, 성모 마리아를 보며 중얼거리는 선우.
선우 스물다섯해 동안 무의미하게 살아왔어요... 만약 그녀를 안 만났다면 앞으로도 무의미하겠죠.
성모님은 사랑이 무너지 잘 아시죠...? (절실한 눈빛으로 보며) 부탁드릴께요... 제발 지희씨가 나오도 록 해주세요...
선우가 손에 든 팬던트를 열면, 지희의 얼굴이 보이며 하모니커 음악이 울려나온다.
때마침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웬지 좋은 징조라는 듯 점점이 떨어지는 눈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선우의 환한 얼굴.
성당 입구의 커다란 벽시계. 5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디졸브되면
11시 55분을 가리키는 벽시계.
깊은 밤. 벤치에 정물처럼 앉아 있는 선우를 가로등이 빛이 희미하게 적시고 있다.
아직도 눈은 내리고... 나뭇가지와 담에 눈이 소담스레 쌓여 있다.
선우의 머리와 어깨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어둔 표정으로 성당 앞 길을 내다보는 선우.
그러나 지희는 나타나지 않는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선우.
S#25 공항 안
가방을 화물 레일에 올려놓고 미라와 동료남이 있는 쪽으로 오는 선우. 표정이 어둡다.
미라 긴장하지 말고 잘해요.
선우 (건성으로) 네.
미라 귀찮더라도 끼니 거르지 말구요.
동료남 아이구, 눈물 겨워서 못 보겠네. (손수건에 코를 팽 풀면서) 왜? 따라가지, 아예.
미라 또 오바한다. 그럼 천석씬 선우씨가 잘 못하고 왔음 좋겠어요?
동료남 (중얼거리며) 칫, 오바는 누가 하는데...
선우 다녀올게요. (탑승구를 빠져나간다)
S#26 게이트 입구
티켓을 보이며 줄줄이 탑승하는 승객들.
점차 승무원에 가까워지던 선우가 티켓을 들어 보이는 순간,
저만치 앞서 가는 탑승객 아가씨의 손에 들린 카라 꽃다발이 눈에 확 띈다.
승무원이 티켓의 점선을 찢으려는 순간, 재빨리 티켓을 거두는 선우.
의아한 표정으로 선우를 보는 승무원과 뒤쪽에 선 탑승객들.
탑승객들이 늘어서 있는 줄 옆으로 나와 핸드폰을 찾으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는 선우.
그러나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 보낸 듯 아차, 하는 표정으로 돌아서서 뛰어간다.
공중전화를 찾는 선우.
그러나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드디어 공중전화를 발견하는 선우.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품 속에서 급히 카드를 뽑아 집어넣는다.
너무 서두는 통에 잘 넣어지지 않다가 이내 빨려 들어가는 카드. 그러나 전화는 고장이다.
낭패한 얼굴로 옆 공중전화로 가는 선우.
한 여자가 막 전화기를 사용하려는 찰나, 수화기를 먼저 드는 선우.
여자 (눈을 세모꼴로 뜨고) 옴머, 뭐예요?
선우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재빨리 버튼을 누른다)
여자(E) 네, 꽃가겝니다.
선우 지희씨?
여자(E) (대답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선우 (망설이며) 저 김선웁니다... 어제 많이 기다렸습니다...
여자(E) ...
선우 (결심한 듯) 사랑합니다! 가기전에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여자(E) (더 가까이 느껴지는 여자의 숨소리) ...
선우 (안타깝게) 사랑합니다...!
여자(E) (어렵게) ... 저도요...
선우 (감동에 벅찬 듯 숨을 고르며)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가슴 벅찬 듯 뒤에 선 여자에게) 들었죠? 사랑한대요.
여자 (화난 듯 따지는) 이것 봐요. 사랑이구 오랑이구...
선우 (꾸벅 인사를 하며) 고맙습니다. (하곤 게이트 쪽으로 뛰어간다)
연신 뭐라 떠드는 여자를 뒤로 하고 뛰어가는 선우의 환한 얼굴에서 화이트 컷.
S#27 비행장
착륙하는 비행기 모습 보이고...
S#28 국제선 청사 앞
오후. 귀국길인 듯 가방을 들고 청사를 빠져나와 택시 정류장에 서는 선우.
그때 저만치서 빵빵! 경적음이 울리고... 돌아보는 선우.
S#29 달리는 미라의 차 안
운전하는 미라와 조수석의 선우.
선우 뭐하러 나왔어요?
미라 동료가 고생하고 왔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해야죠.
선우 어쨌든 고마워요.
미라 식사 안 했죠? 제가 한정식 맛있게 하는 집 아는데...
선우 어떡하죠? 저 약속이 있는데...
미라 (실망한 듯) ... 그래요? (밝게 웃으며) 기사 노릇 좀 하고 저녁 근사하게 얻어 먹으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죠 뭐.
선우 미안해요.
S#30 지희의 꽃가게 앞 거리 (밤)
꽃가게 앞 거리에 멈춰 서는 미라의 차.
차에서 선우가 내린다.
선우 (창을 두드리고) 오늘 고마웠어요. 내일 회사에서 점심 같이 해요.
미라 (창문을 열고 웃으며) 기대할게요.
손을 흔들어 보이곤 차를 출발시키는 미라.
기대에 찬 표정으로 꽃가게 쪽으로 발을 옮기는 선우.
S#31 지희의 꽃가게 (밤)
막대 사탕을 든 채 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을 보며 최신 댄스곡에 맞춰 춤을 따라 춰보는 수진.
스텝이 잘 맞지 않는 듯 연신 텔레비전을 보며 춤 연습을 하는 수진.
그때 선우가 문을 밀고 들어온다.
수진 (춤을 멈추고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이며) 아, 안녕하세요?
선우 (웃으며) 네. (안쪽을 들여다보며) 저, 지희씬...?
수진 지금 없는데요.
선우 (실망해서) 그래요... (실망한 듯 힘없이 돌아서려는데)
수진 저... 언니가요...
선우 (무슨 소린가 싶어 돌아보는) ...?
수진 혹시 오시면... 내일 다섯시에 프린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자고...
선우 (금새 표정이 확 밝아져서) 저를요?
수진 (고개를 끄덕이는) ...
선우 (뛸 듯이 기뻐하며) 고맙습니다.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가게를 나간다)
S#32 선우의 집 안 (밤)
어둠 속. 현관문이 열리고... 선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거실의 등을 켠 선우, 깜짝 놀란다.
보면, 실내가 온통 카라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소파 옆에는 아기자기한 장식물로 데코레이션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인다.
선우가 홀린 듯 트리로 다가가면, 밑에 선물 상자가 놓여 있다.
상자를 열어보면, 파란색 스웨터와 크리스마스 카드가 담겨 있다.
카드를 보면 <성탄 축하해요. 추운 날씨에 항상 선우씨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어 요. ... 언제나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여자>라 적혀 있다.
행복한 듯 웃으며 스웨터에 얼굴을 묻는 선우.
실내 가득한 카라, 트리, 창 밖에 때맞춰 내리는 눈... 모든 것이 선우의 행복감을 고조시킨다.
S#33 달리는 택시 안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려는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택시 안.
택시 미터기 옆의 시계가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라디오에서 울려나오는 캐롤송을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보는 선우.
지희의 얼굴이 들어 있는 펜던트다.
흐뭇한 표정이 되는 선우.
기사 (룸 미러로 선우를 보곤) 애인 만나러 가는 갑소잉?
선우 (씩 웃는) ... 어떻게 아세요?
기사 아이고, 총각 이마빡에 왕희지체로다 나 애인 만나러 간다고 써 있는디? 에, 나도 소싯적엔 우리 마누 라 데불고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발 탄 강아지 맹키로 징하게 싸돌아다니다가... 이힛! 우리 큰아들이 크리스마스 베이지 아닌게벼...
선우 (꽉 막힌 도로를 내다보며) 많이 막히네요?
기사 (아예 핸들에서 손을 떼고) 눈이 와서 그렁가 솔찬히 막혀 뿌리네?
선우 (도로를 살피다 시계를 다시 보고 안되겠다는 듯) 아저씨, 저 여기서 내릴게요. (차에서 내린다)
S#34 거리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선우.
저만치 건너편에 있는 프린스 호텔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한 분위기.
선우, 불길한 예감이 든 듯 호텔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S#35 프린스 호텔 앞
스카이라운지를 올려다보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 저지하는 경찰들...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스카이라운지를 올려다보는 선우.
이때 갑자기 ‘챙-!’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스카이라운지의 유리창.
놀라서 뒤쪽으로 물러나는 사람들.
유리조각들이 눈과 섞여 허공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면...
다시 3년 후, 1998년 12월 24일 오후 5시
S#36 지희의 꽃가게 앞
...눈을 맞으며 걷는 선우. 정신을 차려보면 지희의 꽃가게 앞이다.
멈춰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선우
갓난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는 수진. 3년이 지났지만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어두워 보이는 얼굴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 손잡이에 손을 갖다대는 선우
그때 가게 안쪽에서 남편인 듯한 남자가 나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른다.
권하자 고개를 가로 젓는 수진. 혼자 커피를 마시는 남자
둘 사이의 분위기가 서먹해보인다.
그 모습을 보자 선우, 발길을 돌린다.
S#37 프린스 호텔 앞
프린스 호텔 앞에 다다른 선우. 착찹한 표정으로 스카이라운지를 올려다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스카이라운지 유리
환하게 불을 켠 엘리베이터가 유리관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S#38 동 로비
이끌리듯 호텔 안으로 들어서는 선우,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선우 뒤로 호텔 직원들의 유니폼과 화분의 위치,
‘HAPPY NEW YEAR 1999'라 적인 플랭카드 등이 보이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선우
S#39 동 스카이라운지
각 테이블마다 촛불과 꽃 한송이가 켜져 있고 창 밖으로 눈이 아름답게 내리고 있다.
창가 좌석에 앉은 선우,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된다.
주머니를 뒤져 펜던트를 꺼내 뚜껑을 열어 보는 선우
빛바랜 지희의 사진... 선우의 사무실 전화로 들려오던 리 오스카의 연주가 흘러나온다.
지갑에서 곱게 접은 메모지를 꺼내드는 선우
보면, <선물 잘 받았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는 여자>
<성탄 축하해요. 추운 날씨에 항상 선우씨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언제나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여자>라 적혀 있다.
추억어린 표정이 되는 선우.
그러나 이내 부질없다는 듯 메모지들을 촛불에 태운다.
불빛에 일렁이는 선우의 얼굴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 위로...
선우 (E) 삼년 전 오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텐데... 아, 살아 숨쉬는 그녀를
단 하루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메모지가 다 타고...
눈시울이 붉어진 선우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괸다.
그러나 부질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선우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다 탁자 위에 놓고 일어나 간다.
그러나 차마 펜던트를 버릴 수 없는 듯 이내 돌아와 가지고 가는 선우
S#40 동 엘리베이터 안
1층 버튼을 누르는 선우의 손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전면 유리를 통해 거리 곳곳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들이 보인다.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벽에 기대어 밖을 보다가 눈을 감는 선우
다시금 떠오르는 지희의 얼굴
선우, 펜던트를 꼭 쥔다. 그 위로..
선우 (E) 삼년 전 오늘로 돌아갔으면... 살아 숨쉬는 그녀를 단 하루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선우
이때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칫 하더니 순간적으로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불이 켜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데 층 번호는 계속 6층을 가리킨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버튼을 계속 눌러보는 선우
그러나 층 번호는 변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유리 너머로 보이는 창 밖의 풍경이 조금 전에 보이던 것과는 달라져 있다.
그러나 선우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1995년 12월 23일 오후 5시 20분
S#41 동 로비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오는 선우
그런데 아까와는 로비의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의 유니폼 색깔도 달라져 있고, 화분이나 물건들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져 있다.
벽에 붙은 플랭카드도 ‘HAPPY NEW YEAR 1996'으로 바뀌어 있지만 선우는 의식하지 못한다.
선우, 약간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별 의심없이 호텔 밖으로 나간다.
S#42 거리 (밤)
거리의 풍경도 왠지 낯설어 보인다.
테이프 노점상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는 DJ DOC의 음악
무심코 지나가던 선우, 또 다른 리어카 앞을 지나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발길을 멈춘다.
거기서도 DJ DOC의 노래.
별 일도 다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선우
문득 담배를 태우려 주머니를 뒤지지만 담배가 없다.
근처의 상점으로 들어가는 선우
S#43 상점 (밤)
할아버지가 담배를 빡빡 피우며 TV를 보고 있다.
선우 할아버지, 디스 한 갑 주세요
주인 워이?
선우 디스요
주인 (담배 진열장을 보다가 선우를 힐끔 보는)... 우리 가겐 양담배 안팔어
선우 디슨 국산 담밴데요. 왜 새로 나온 거 있잖아요
주인 국산? (팔을 걷어부치고) 내 나이 칠심에 담배 인생 육십년이요. 옛날 쌈지 담배부터 화랑, 새마을,
청자, 은하수, 한산도... 국산 담배는 안 피워본 담배가 읎는 사람인데 어디서 족보도 없는 양담배를
국산담배라고 우기는겨?
선우 (어이가 없는 듯) 그럼... 아무거나 하나 주세요
주인 읎어!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양담배는 무슨...
선우, 기가 막히지만 할 수 없다는 듯 그냥 가게를 나가려는데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이상하다.
아나운서 경찰 병원에 입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링거 주사와 미음을 일체 거부한 채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한편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에서는 비자금 수백억원이 친인척의 차명계좌로 흘러간
혐의를 포착하고...
선우 (텔레비전을 보다 미심쩍다는 듯) 할아버지 저 뉴스...
주인 (텔레비전에 시선을 박은 채) 아, 디스고 뉴스고 없다니까 그러네
뉴스를 보며 밖으로 나오던 선우가 가게 앞 신문 가판대의 신문을 본다.
숨이 멎을 듯 놀라는 선우
날짜도 선명한 1995년 12월 23일 자 신문들...
이것저것 펼쳐보아도 다 마찬가지다.
주인 시방 뭐하는겨? 신문도 우리나라 신문밖에 읎어
선우 이, 이 신문들 오늘 거 맞죠?
주인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빗자루를 들고) 내 이놈을 그냥..! 내가 아무려면 재고 신문 팔 위인으로
보이냐?
할아버지의 호통에 쫓겨가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선우.
S#44 거리 (밤)
두리번거리며 거리의 사람들이며 간판들을 살피는 선우
뭔가 다르다
넋 나간 듯 한참을 서 있는 선우
사람들이 다 낯설어 보인다.
저만치 대형 전광판에는 3년 전의 광고와 뉴스가 나오고 있다.
3년 전의 유행가를 틀어 놓고 있는 리어카 노점상으로 다가간 선우가 테입을 들고 묻는다.
선우 이거 언제 나온 거예요?
노점상 아, 만져보면 몰라요? 나온 지 3일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최신곡이잖아요?
선우 최신곡요? (혼란스러워하다가) 저 혹시 올해가 몇 년도인지...?
노점상 (선우를 이상하다는 듯 보며) 나 참... 1995년이잖아요. 7일만 있으면 1996년이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는 선우
심호흡을 하곤 고개를 세차게 흔든 다음, 길가는 어떤 아가씨를 붙잡고 다시 묻는다.
선우 올해가 1995년 맞아요?
아가씨 (놀라며) 어머, 왜 이래?
선우 맞아요, 틀려요?
떠대남 (E) 맞는데, 왜?
선우가 돌아보면, 우락부락한 떡대남이 아가씨 어깨를 껴안으며 험악한 인상으로 노려본다.
선우 정말이죠? 1995년이란 말이죠... (갑자기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쁨으로 얼굴이 더없이 환해지는 선우
길가로 나서서 급히 택시를 잡는다.
S#45 달리는 택시 안 (밤)
23일 오후 5 : 45
조수석에 앉은 선우,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기사에게 말한다.
선우 아저씨, 뉴스 좀 틀어주실래요?
기사 그럽시다.
기사가 라디오를 틀면 95년 10대 뉴스가 흘러나오고...
창 밖을 내다보는 선우의 시선에 저만치 지희의 꽃가게가 보인다. 3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거리를 내다보는 선우의 환한 얼굴 위로...
선우 (E) 됐어. 이제 그녀를 살릴 수 있어. (시계를 보며) 앞으로 이십삼시간...
희망과 결의에 가득찬 선우의 표정
그때 저만치 꽃가게에서 지희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환하게 웃는 선우
마침 택시가 신호등에 걸리자 참지 못하고 택시에서 뛰어 내린다.
S#46 꽃집 앞 거리 (밤)
23일 오후 6 : 15
지희를 향해 뛰어가는 선우
그러나 지희를 마침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다급해진 선우가 지희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간다.
그러나 지희는 선우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택시에 오른다.
이내 출발하는 택시
선우 (택시를 따라가며) 지희씨! 지희씨!
그러나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택시
그렇게도 그리던 지희가 눈 앞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급해진 선우가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간다.
달려오던 차들이 급정거하고 경적을 울려대며 선우에게 욕을 한다.
선우가 간신히 인도로 올라서려는 순간, 미끄러져 들어오는 승용차를 피하지 못하고 부딪친다.
그러나 많이 다치지 않은 듯 급히 일어난 선우, 사람들을 헤치고 지희가 탄 택시를 쫓아간다.
손에 잡힐 듯 택시와 가까워졌지만 신호가 바뀌면서 지희가 탄 택시는 도로를 질주하고...
거친 숨을 내쉬며 가로수를 붙잡고 선 선우의 눈에 지희가 탄 택시의 번호판이 보인다.
선우가 길가로 나가 모범택시를 잡아탄다.
S#47 달리는 모범택시 안 (밤)
숨을 헐떡이는 선우
기사 어서 오십시오. 어디까지...
선우 (헐떡이며) 저 앞에... 1753 택시 좀... 쫓아주세요
기사 (여유로운) 1753 택시라.. 어디 보자...
선우 빨리요, 아저시. 저기... 지금 좌회전 들어갔어요, 급해요
기사 허허...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도 있잖습니까?
선우 까딱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기사 (눈치를 살피며) ... 형사십니까?
선우 예? 예!
S#48 도로 위 (밤)
모범택시가 무섭게 속력을 낸다.
이리 저리 차들 사이로 빠져나가며 1753 택시를 뒤쫓는 모범택시
운전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1753 택시를 거의 다 따라온 모범택시
1753 택시와 모범택시 사이엔 3대의 차가 끼여 잇다.
퇴근길이라 차가 많이 밀리는지 서행을 하고 잇다.
기사 (고개를 길게 빼며) 택시가... 안보이네?
선우 뭐라구요?
기사 아니, 저... 저기 섰네요. 백화점 입구에...
저만치 선우의 눈에 택시에서 내리는 지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선우도 얼른 내린다.
잔돈을 받을 새도 없이 뛰어가는 선우
S#49 백화점 앞 거리 (밤)
지희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선우, 문으로 급히 돌진하다가 선물꾸러미를 잔뜩 든 뚱뚱한 여자와 부딪힌다.
선물 꾸러미를 안은 여자가 넘어지면서 선물들이 땅에 떨어진다.
여자 움마야!
선우 (당황하며) 미안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처 지희를 뒤쫓아 가려는데)
남자 (제비 타입. 놀래서 달려오며) 어, 박여사... (넘어진 여자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아?
여자 (갑자기 엄살) 아구구구... 허리야... (간신히 일어나며) 또 디스크 걸리는 거 아냐?
남자 (선우 보며) 얌마, 너 뭐야?
여자 미안합니다. (멀어지는 지희를 초조하게 쳐다보며) 급한 일이 있어서...
남자 미안하다면 다야? (선우의 멱살을 잡는다) 사람이 다 죽게 생겼는데...
선우 (안되겠다 싶은지) 죄송하지만... (하며 남자의 발등을 힘껏 밟는다)
‘악-!’ 소리와 함께 남자가 주춤하는 사이 선우가 남자를 세게 밀치고 문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선우에게 떠밀린 남자가 뚱녀와 부딪치며 두 사람이 넘어진다.
뚱녀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비명이 울려퍼지고...
S#50 백화점 안․1층
연말을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백화점 안에서 지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선우
한쪽에선 홍보용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지희의 모습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 장내를 살피는 선우의 초조한 얼굴에 땀이 흥건하다.
S#51 동 2층
숙녀복 코너가 있는 2층. 1층보다는 한가하다.
선우,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닌다.
그러나 지희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선우
이때 선우가 지나친 어느 매장의 탈의실에서 지희가 나와 옷을 점원에게 내준다.
점원이 옷을 쇼핑백에 담는 동안 지희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낸다.
그러나 지희를 보지 못하고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선우
3층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1층으로 내려가는 지희의 뒷모습이 살짝 보인다.
선우가 그녀를 쫓아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미친 듯이 내려간다.
선우에게 부딪쳐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넘어지는 사람들로 난리다.
그러나 상관치 않고 미친 듯이 뛰어내려가는 선우
S#52 동 1층
숨을 헐떡이며 뛰어내려온 선우의 시선에 정문 쪽으로 나가는 지희의 모습이 보인다.
그 쪽으로 뛰어가는 선우.
지희가 바로 눈 앞 가까이 보인다.
지희와 선우 사이엔 홍보용 산타클로스를 향해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들에 가려 지희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선우.
선우 지희씨! 지희씨!
소리를 들었는지 지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갑자기 빵파레가 울리며 공중에서 꽃가루와 인공 눈이 뿌려진다.
산타가 선물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와아-!’ 환성을 지르며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어느새 입구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던 지희는 산타를 일별하곤 문을 열고 나간다.
선우의 외침은 빵파레 속으로 묻히고... 산타 앞으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사람들에 싸여 선우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S#53 백화점 정문 앞 (밤)
간신히 인파를 헤치며 나온 선우, 주위를 둘러보지만 지희는 보이지 않는다.
망연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선우.
지나가는 사람들에 치여 휘청거린다.
S#54 거리 (밤)
23일 오후 7 : 20
길을 걸으며 하늘을 보는 선우의 표정이 암담하다.
거리의 화려한 불빛들, 밝은 표정의 사람들과 대조되는 선우의 우울한 얼굴.
걷다가 멈춰서는 선우, 저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전화 박스로 뛰어들어가는 선우.
S#55 공중전화 박스 안 (밤)
꽃가게(강지희) - 345~2564라 적힌 수첩을 보며 버튼을 누르는 선우.
그러나 신호는 가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선우 제발...!
그러나 결국 아무도 받지 않는다.
전화를 끊은 선우, 수화기를 내려놓고 입술을 깨문다. 그 위로...
남자 (E) 다 썼나?
선우가 뒤를 돌아보면 조폭 계열로 생긴 우락남이 인상을 긁고 서 있다.
부스를 나오려던 선우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다시 몸을 돌려 전화를 건다.
열받은 우락남이 선우의 어깨를 거칠게 잡는 순간,
선우 거기 마포서죠? 조사과의 박병수 형사님 좀 바꿔주세요. 급한 일입니다.
(뒤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얼른 표정을 풀고 어서 계속 하라는 듯 웃어보이는 우락남.
선우 형, 나야.
병수 어? 너 언제 왔냐? 갔던 일은 잘 됐고...?
선우 응... 그보다 형, 나 부탁이 있는데... 지희씨 주소 좀 알아줘. 나이는 25세. 이름은 강,지,희!
병수 헤이, 짜식 아주 몸이 달았구만. 주민등록번호는?
선우 그, 그건 모르는데... 형, 무조건 찾아줘.
전화를 끊고 나온 선우가 택시를 잡아탄다.
S# 56 지희의 꽃가게 앞 (밤)
23일 오후 8 : 05
‘24,25일은 쉽니다‘
가게 창에 붙은 메모지를 멍하니 바라보는 선우.
가게 안을 들여다보다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문을 두드려 보지만 아무도 없는 듯...
선우, 포기한 듯 돌아서다가 옆 가게를 보더니 그 쪽으로 발을 돌린다.
S# 57 문방구 (밤)
중년남이 텔레비전을 보며 앉아 있다.
선우 (들어오며)저, 아저씨...
중년남 (고개를 돌리며) 뭐 드릴까?
선우 저, 옆에 꽃집 있잖아요... 혹시 꽃집 아가씨 연락처나 주소 같은 거 알고 계신가 해서요. 오 늘 꼭 연락을 해줘야 할 일이 있거든요.
중년남 (미심쩍은 눈으로 보며) 글쎄, 난 잘 모르지.
선우 (실망스런) 휴... 전화 한 통화 쓸 수 있을까요?
중년남 (전화기를 내주며) 쓰쇼.
선우 (전화번호를 누르고) 네, 박병수 형사님 좀... 아, 형. 나야. 어떻게 됐어?
병수 (E) 스물 다섯 살짜리 강지희가 서울에만 28명이더라. 그 주소 다 가르쳐줘?
선우 (문득 생각난 듯) 아! 마을버스 타구 다니니까 아마 꽃집 근철 거야.
병수 (E) 그럼 서대문구네...? (뭔가 살피는 듯) 가만 있자... 없는데? 이사하고 전입신고를 아직 안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왜 그래?
선우 (실망스런) 아니, 뭣 좀 전해줄 게 있어서... 알았어. 형. 고마워.
전화를 끊은 선우, 절망적인 한숨을 쉬며 고개를 꺾는다.
중년남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중년남 저... 우리 마누라가 요 앞 사거리 수영장에 다니는데, 꽃집 처녀가 우리 마누라랑 같은 반이 라지 아마. (시계를 보며) 지금 빨리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선우 (금새 얼굴이 환해지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급히 가게를 나간다)
S# 58 수영장 앞 (밤)
막 뛰어온 선우, 입구를 확인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S# 59 수영장 카운터 (밤)
유니폼을 입은 직원 아가씨가 전화로 수다를 떨다 선우를 맞는다.
카운터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이번달은 회원 접수 끝났어요.
선우 (헉헉대며) 그게 아니라... 사람 좀 찾으려구요... 급한 일이라...
카운터 (귀찮다는 듯) 여기 회원이에요?
선우 네.
카운터 (수화기에 대고) 승만씨 잠깐만... 이름이 뭔데요?
선우 강지희요.
카운터 아가씨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강지희를 찾는다.
카운터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 이름 없어요.
선우 네?
카운터 지금 시간에 등록된 회원 중에는 그런 이름 없다니까요. (하곤 다시 수화기에 대고) 승만 씨...?
선우 (간절하게) 그럴 리가 없는데... 다시 한번 잘 찾아보세요. 강, 지, 희, 25세.
카운터 (신경질적으로) 없다는데 왜 그래요?
선우 이 근처에 여기 말고 수영장이 또 있나요?
카운터 없어요.
선우 그럼, 틀림없이 있어요!
카운터 여직원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수영장 안으로 뛰쳐들어가는 선우.
여직원이 선우를 쫓아간다.
S# 60 수영장 안 (밤)
풀 안에서 강습을 받던 여자들이 옷을 입고 뛰어 들어오는 선우를 보고 놀란다.
뒤이어, 선우를 쫓아와 나가라고 소리치는 여직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들, 불안한 듯 모두 풀에서 나온다.
수영 강사인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직원.
선우, 지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풀 주위를 돈다.
선우 지희씨! 강지희씨! 강, 지, 희, 씨!
그러나 풀안의 여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볼 뿐... 지희는 없다.
어느덧 선우 뒤에는 우람한 체격의 경비와 수영 강사가 여직원과 함께 다가온다.
선우 (경비와 수영 강사를 피해 도망가며) 지희씨! 강지희씨! 강, 지, 희, 씨!
강사 (쫓아오며) 야, 너 거기 안서?
선우 (도망치며 풀 안의 여자들에게) 꽃집 아가씨 어딨는지 아세요?
경비 (쫓아오며) 저런 변태같은 자식을 보겠나. 야...!
경비를 피해 마구 도망치는데 풀 안에서 어떤 여자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E) 그 아가씨, 아까 샤워하러 갔어요.
귀가 번쩍 트이는 선우, 저 끝에 보이는 샤워실로 향한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따라 오는 경비와 강사, 여직원.
S# 61 동 샤워실 앞 (밤)
여자 탈의실겸 샤워실 앞에 도착한 선우, 잠시 망설인다.
경비가 바로 뒤에 와 있다.
경비, 막 선우를 향해 손을 뻗칠 때, 결심한 듯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선우.
입을 헤 벌리고 쫓아 들어갔다가 세숫대야와 비누로 얻어맞으며 나오는 경비와 강사.
S# 62 동 샤워실 안 (밤)
샤워하던 여자들이 선우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칸막이로 된 공간에 샤워하는 여자들을 차례로 보지만 지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몸을 숙인 채로 비누칠을 하다가 막 허리를 펴는 한 여자가 보인다.
어느새 뒤에서 선우의 옷깃을 잡는 여직원.
카운터 이 변태, 빨리 안나와?
선우 (끌려가면서도) 지희씨!
카운터 여직원에 끌려나가는 선우의 눈에 비누칠을 잔뜩한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자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선우가 여직원의 팔을 뿌리치고 다시 앞으로 나선다.
고개를 돌린 여자가 선우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샤워기에서 뿌려지는 물살에 비누 거품이 걷히자 비로소 여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녀는 지희가 아닌 수진.
맥이 풀린 듯 고개를 꺽는 선우.
S# 63 수영장 앞 거리 (밤)
선우와 수진, 어색하게 걷고 있다.
수진은 알몸을 선우에게 보여준 게 창피한지, 고개를 떨군 채 아무말도 없다.
선우 미, 미안합니다.
수진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선우 (한숨) 지희씨 지금 어디있는지 아세요?
수진 내일 만나기로 하셨잖아요
선우 갑자기 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수진 무슨...?
선우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할지... (고민스런 표정을 짓다 포기한 듯) 하여튼 오늘 안으로 꼭 지희씨를 만나야 돼요. 집 전화번호나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수진 (망설이며) 언니가 얼마 전에 이사를 해서요. 전화를 아직 안놓은 것 같던데... 주소도 잘 모 르구요.
선우, 낙심천만이다.
그런 선우를 본 수진도 안타까워진다.
수진 (망설이며) 전에 밤 늦게 한번 가 본 적은 있긴 한데...
선우 (표정이 밝아지며) 미안하지만... 같이 좀 가주실래요?
수진 글쎄요. 잘 찾을 수 있을지... 밤 늦게 딱 한번 가본 데라서...
선우 (간절하게) 부탁입니다. 지희씰 꼭 만나야 돼요.
S# 64 달리는 수진의 차 안 (밤)
23일 오후 10 : 15
소형차를 운전하는 수진과 조수석의 선우.
한숨을 쉬며 불안한 듯 창 밖을 내다보는 선우.
수진 (선우를 흘깃 보곤) 음악 들으실래요?
선우 (건성으로) 네...
수진이 손을 뻗쳐 콘솔 박스를 열면 와르르 쏟아지는 막대사탕과 풍선껌, 과자들.
선우가 쏟아진 풍선검이랑 막대 사탕을 집느라 고개를 숙인 순간, 수진이 테이프를 집고는 얼른 콘솔 박스를 닫는다.
테이프를 데크에 넣으면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음악이 흘러나온다.
선우 (놀라서) 어? 이 노래 좋아해요?
수진 ...네.
선우 이 노래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던데. 좀 오래 된 노래라서...
수진 ...좋아하는 사람이 듣던 노래예요. 지금은 떠났지만...
선우 ...미안해요... 몰랐어요
수진 괜찮아요
잠시 음악 소리 외에는 침묵.
수진 언니랑은 잘 아는 사이세요?
선우 (잠시) 그러구 보니까 아직 한번도 만난 적이 없네요. 카드만 주고 받았죠.
수진 ...
선우 (입가에 웃음) 지희씬 글씨를 잘 써요. 똘망똘망하게요. 성격이 야무진데가 있는 것 같아요.
수진 ...선우씨두 글씨 잘 쓰시던데요.
선우 (웃으며) 그래요?
그러다간 이상하다싶어 웃음을 싹 거두는 선우.
선우 내 이름을 어떻게...?
수진 (어딘지 당황한 기색) 어, 언니가 몇번 얘기했었어요.
선우 내 얘길요?
수진 네. 좋은 사람 같다구...
가슴이 뿌듯해지는 선우. 하지만 빨리 가서 지희를 구해야한다...
마음을 다잡아 먹는 선우.
S# 65 지희의 집 동네 (밤)
23일 오후 11 : 7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
지희의 집을 찾아 헤매는 선우와 수진.
꽤 많이 헤맸는지, 두 사람 다 지친 모습이다.
선우 여기 아까 왔던 데 같은데요?
수진 저 선우씨, 내일 만나서 얘기하시면 안될까요?
선우 (단호하게) 안됩니다!
선우의 강한 어조에 당황하는 수진.
선우 (미안한 듯) ... 미안해요. 그럴 사정이 있어요.
수진 ...
선우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수진 (추운 듯 발을 동동거리는) ...
선우 (미안한 듯 저만치 보이는 편의점을 가리키며) 저기 가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마실래요?
수진 (웃는) 네.
S# 66 편의점 안 (밤)
원두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를 두 잔 따라 한잔을 수진에게 주는 선우.
커피잔에 온수통의 뜨거운 맹물을 따라 묽은 커피를 만들어 스탠드 탁자 쪽으로 가는 수진.
선우도 계산을 하고 커피잔에 온수통의 맹물을 따른 후 스탠드 탁자로 온다.
그때 수진이 실수로 커피잔을 엎지르고... 커피가 선우 팔뚝에 엎질러진다.
선우 앗, 뜨거!
수진 (당황하여) 어머...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선우의 옷과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주며) 죄송 해요.
선우 (손수건을 받아 닦으며) 괜찮아요.
수진 미안해요. 대신 제가 커피 살게요.
선우 아뇨, 됐어요. 밤 늦게 너무 실례가 많았죠? 그만 가죠.
수진 (편의점 창 밖을 보며) 여기서 보니까... 알 거 같아요. (손으로 저쪽 골목길을 가리키며) 맞 아요, 저족이에요.
선우 (기쁜) 정말요?
S# 67 골목길 (밤)
수진이 앞장을 서고 선우가 뒤따라가고 있다.
선우, 시계를 자꾸 보며 초조해한다.
수진 (멈춰 서며) 저...
선우 (수진을 불안한 듯 쳐다보며)... 여기도 아니에요?
수진 아뇨.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이층이 맞는 것 같아요.
선우 예?
수진의 손가락 끝으로 보이는 이층 집.
선우,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지희의 집 앞으로 간다.
S# 68 지희의 집 앞 (밤)
지희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수진.
잠시후 인터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진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 아랫방 지희 언니랑 같이 일하는 동행인데요. 언니 있어요?
인터폰 잠깐만...
선우 (드디어 됐다는 듯 수진을 향해 웃어 보이는데)...
인터폰 여보세요.
수진 예!
인터폰 그 아가씨 들어왔다 잠깐 나간 모양인데...
수진 네에... 감사합니다. (인터폰 끊고) 어쩌죠?
선우 금방 돌아오겠죠, 뭐... 어쨌건 고마워요.
수진 아녜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두 사람.
선우 (수진에게) 추우시죠? 저 혼자 기다려도 되는데...
수진 아, 아니에요. 이왕에 온거 저도 언니 얼굴이나... (하다가) 제가 방해되서 그러시나요?
선우 아뇨, 그런게 아니라 미안해서...요. (선우 얼버무리며 담배를 피워문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쪽 골목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선우, 긴장한 채 그 쪽으로 몇 걸음 나아간다.
점차 가까워지는 여자는 바로 지희다.
너무나 기쁜 듯 지희를 향해 걸어가는 선우.
그때 갑자기 지희의 뒤편에서 꺾어져 들어와 지희 옆에 멈춰서는 승용차.
선우가 이상하단 표정을 지으며 그쪽으로 뛰어가는데...
지희가 차에 오른다.
선우 (지희를 향해 따라가며) 지희씨! 지희씨!
그러나 차는 급회전하며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망연자실한 선우의 얼굴에서 화이트 컷.
S# 69 거리 (밤)
24일 오전 1 : 00
네온 불빛들 사이로,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 선우.
그런 선우 뒤를 따라 걷는 수진.
선우, 문득 수진을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선우 (애써 미소로) 수진씨, 고마웠어요. (한숨) 괜히 저 때문에...
수진 괜찮아요. 저... 근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선우 ...
수진 제가 알면... 안되나요?
선우 말해도 아마 믿지 못할 거예요.
수진 (고개를 떨구며) 지금, 선우씨... 너무 힘들어보여요. 곧 쓰러질 것 같아요.
선우 (고마운 듯 수진을 보는) ...
수진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일단 좀 쉬고...
선우 (단호히) 그럴 시간이 없어요! 휴...(수진 차 앞에 이르러) 그만 들어가세요. 너무 늦었어요. 그리구... 즐거운 성탄 되세요.
수진 (하는 수 없다는 듯 차의 문을 열고) 저... (핸드백에서 메모지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이거 제 전화번혼데요. 언니 만나면 저한테도 연락 좀 해주세요. (하며 차에 올라탄다)
수진이 떠난 후,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선우.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발걸음을 옮긴다.
S# 70 지희의 집 앞 (밤)
발을 동동거리며 지희를 기다리는 선우. 콧등이 얼어 있다.
시계를 보며 한숨을 쉬다 지희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인터폰 누구세요?
선우 예, 아까 왔던... 지희씨 동룐데요.
인터폰 아, 방금 전에 지희 처녀 전화왔는데,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그러던데...
선우 혹시 어느 친구 집인진 모르시나요?
인터폰 글쎄...
선우 (너무나 실망한) 네...
허탈하게 집앞에 주저앉는 선우.
때맞춰 불어온 찬바람이 선우의 옷깃을 파고든다.
절망한 듯 눈을 질끈 감는 선우에게 지희의 아름다운 모습, 해맑은 미소가 떠오르고...
이내 스카이라운지에서 민욱에게 잡혀 고통스럽게 소리치던 지희, 깨진 창문으로 추락하던 지희의 모 습들이 후레쉬 컷으로 지나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젓는 선우.
그 위로 지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소리치던 민욱의 모습 인터컷되어 보이고... 신문에 나와 있는 민 욱의 사진... 정민욱이란 활자의 후레쉬 컷.
갑자기 강한 깨달음을 얻은 듯한 얼굴이 되는 선우.
선우 (혼잣말로) 민욱... 정민욱! (하다 재빨리 일어나 뛰어간다)
S# 71 공중전화 부스 (밤)
급히 전화 버튼을 누르는 선우.
선우 여보세요... 아, 형!
병수 (E) 아직 집에 안들어갔어?
선우 응... 형, 전과 조회 좀 해줘.
병수 (E) 얘가 오늘 왜 이래? 너 무슨 일 있는 거냐?
선우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빨리 좀 해줘. 이름은 정민욱. 나이는..스물 일곱에서 서른 정도... 마약하는 놈이야.
병수 (E) 얌마, 지금 연말연시 비상 내려서...
선우 (다급하게) 형, 이거 못찾으면 사람이 죽어. 알았어? 꼭 찾아야 돼.
병수 (E) 허 참, 얘가 이거... 알았어. 기다려봐.
수화기를 통해, 병수가 누군가에게 전화번호를 추적해달라 말하는 것이 들리고...
곧이어 컴퓨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우, 입이 바싹 타 들어간다.
잠시 후...
병수 (E) 야, 있어. 이 자식 경력이 화려한데...
선우 그래? 연락처는?
병수 (E) 연락처는 없고... 주소는 있다.
선우 빨리 불러줘... (하며 수첩을 꺼내든다)
S# 72 어느 아파트 앞 (밤)
24일 오전 1 : 56
택시가 와 멈춰서고... 택시에서 선우가 내린다.
수첩의 메모를 보며 주변을 살피던 선우가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다시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화단의 나무 지지대 각목을 뽑는 선우.
S# 73 동 5층 현관 앞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선우, 심호흡을 크게 하곤 508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각목을 꽉 쥐며 침을 꿀꺽 삼키는 선우.
그러나 안에선 아무 반응도 없다.
선우 (문을 두드리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래도 반응이 없자 문을 발로 차며) 아무도 없어요?
여자 (E) 이봐요.
선우, 돌아보면 507호 문을 열고 여자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여자 겨우 재웠는데, 애 깨겠어요.
선우 죄송합니다... 저, 이 집에 정민욱이란 남자 살고 있나요?
여자 이름은 모르겠고... 암튼 그 집 남자 벌써 며칠째 집에 안들어오는 것 같았어요.
선우 (낙심하여) 네...
여자 조용히 좀 해주세요. (하곤 안으로 들어간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 열림 단추를 누르는 선우.
S# 74 동 1층 현관 앞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선우가 힘없는 걸음으로 현관 쪽으로 걸어온다.
우편함을 지나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는 선우.
서둘러 805호의 우편함을 뒤져 우편물을 꺼낸다.
정민욱 앞으로 청구된 각종 고지서를 뒤적이다보면, 전화요금 청구서가 눈에 띈다.
청구서를 급히 뜯으면 011-213-1594란 전화번호가 보인다.
S# 75 공중전화 박스 안 (밤)
전화 버튼을 누르는 선우의 다급한 손놀림.
그러나 신호음은 울리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초조한 얼굴로 다시 버튼을 누르는 선우.
신호음이 오래 울리다가... 드디어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민욱 (E) 여보세요?
선우 저, 정민욱씹니까?
민욱 (E 경계하듯) 누구시죠?
선우 (망설이다) 물건이 필요해서...
민욱 (E) 물건이라뇨? 전화 잘못 거셨...
선우 (재빨리) 큰 건이요.
민욱 (E) ...!
선우 믿어도 돼.
민욱 (E) 누구 소개야?
선우 만나보면 알거야.
민욱 (E) 수량은...?
선우 양... 보단 질이 중요해.
민욱 (E) 좋아, 한시간 후에 논현동 사거리에서...
급히 수첩을 꺼내 메모하는 선우.
S# 76 달리는 모범택시 안 (밤)
조수석에 앉은 선우가 차안에 비치된 카폰으로 음성 녹음을 남기고 있다.
선우 형, 파출소에도 없고 핸드폰도 불통이라 메시지 남기는 거야. 확인하는 대로 논현동 사거리 우측에 있 는 트윈픽스란 카페로 좀 와줘. 빨리와. 중요한 일이야.
S# 77 트윈픽스 안 (밤)
24일 오전 2 : 55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려나오는 메탈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군상들...
담배 연기와 흐린 조명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을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선우, 긴장된 얼굴로 실내 이곳 저곳을 살핀다.
아직 약속 시간이 안되어서인지 민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선우, 스탠드로 가 앉아 주문을 한 후, 담배를 피워물고 출입구를 본다.
초조한 듯 전화 버튼을 누르는 선우.
그러나 연결이 안된다는 멘트만 흘러나온다.
선우 (다시 버튼을 누르고) 형, 나야. 메시지 남긴 거 아직 안들었어? 급해. 빨리 좀 와줘.
그때 출입구 쪽에 민욱이 건장한 체격의 졸개남 두엇과 나타난다.
흠칫 놀라며 민욱을 예의주시하는 선우.
한 테이블에 가 앉으며 실내를 살피는 민욱.
초조한 듯 다시금 출입구를 보며 병수를 기다리던 선우, 병수에게 8282를 찍으며 호출한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실내를 살피는 민욱과 졸개남들.
잠시 후... 민욱이 카페를 나가려는 듯 일어난다.
큰일이다! 싶은 선우, 할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욱에게로 간다.
선우 (민욱 앞으로 나서며) 정민욱씨?
민욱 (무표정하게 선우를 보는) ...
선우 일단... 앉지.
민욱 (날카로운 눈매로 선우를 위아래로 살피곤 테이블로 가 앉고) 얼마나 원해?
선우 (긴장을 숨기느라 물을 마시곤) 뭐가 그리 급하나... 일단 한잔하면서...
민욱 개소리마! ... 돈은?
선우 (태연을 가장하며) 차, 차에 있어.
민욱 키 줘. (옆의 졸개남을 가리키며) 이 친구가 가져올 거야.
선우 (당황하면서도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다) 참! 주차장에 맡겨놨어.
벌떡 일어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선우를 쏘아보는 민욱.
선우가 따라 일어나면, 졸개남들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졸개남 여긴 주차장 없어 시키야!
그 사이 황급히 카페 입구로 가는 민욱을 쫓아가려는 선우.
그러나 졸개남들이 선우 앞을 가로막으며 제지한다.
졸개남들을 뿌리치며 나가려는 선우.
졸개남, 선우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선우, 그러나 이내 벌떡 일어나 손에 잡히는 맥주 병을 깨고 죽기살기로 대든다. 가소롭다는 듯 의자를 들어 선우에게 던지는 졸개남들.
졸지간에 얼굴이 엉망이 된 선우, 그래도 깨진 맥주병을 휘둘며 대항하는데...
S# 78 트윈픽스 밖 계단 (밤)
황급히 뛰어올라오던 병수, 위에서 급히 내려오던 누군가와 몸이 부딪힌다. 보면, 민욱.
병수 미안합니다. (하곤 다시 올라간다)
S# 79 트윈픽스 안 (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병수의 시선에, 졸개남들에게 왕창 깨지고 있는 선우가 보인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다 재빨리 졸개남들을 향해 뛰어들며 주먹을 휘두르는 병수가 권총을 뽑아든다.
병수 꼼짝 마, 경찰이다!
졸개남들이 주춤하는 사이 출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선우.
S# 80 트윈픽스 밖 (밤)
헐레벌떡 뛰어나온 선우, 민욱을 찾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때 어둠 속에서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선우, 그 차를 향해 뛰어간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정민욱을 끌어내리는 선우.
그러나 차에서 내린 정민욱은 선우를 무자비하게 두들겨팬다.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널브러지는 선우.
돌아서 차문을 여는 민욱.
그러나 그의 바짓가랭이를 잡고, 일어나서 민욱을 향해 달려드는 선우.
민욱 비켜, 자식아! (다시 주먹을 날린다)
선우 (민욱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향해 헛주먹을 날리며) 못가!
피를 뿌리며 쓰러진 선우의 목을 짓밟는 민욱.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민욱.
차가 막 출발하려는데, 비틀거리며 일어선 선우가 찦차 뒤꽁무니에 매달린다.
룸미러로 그 모습을 본 민욱, 일부러 차를 좌우로 흔들어댄다.
안간힘을 다해 차에 매달리지만... 결국 차에서 떨어지는 선우.
민욱의 차는 멀리 사라지고...
떨어지며 엉덩이를 세게 부딪친 듯 고통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선우에게 뛰어오는 병수.
병수 (선우를 부축하며) 선우야... 얌마, 어떻게 된거야?
병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는 선우의 시선에 병수의 품 속에 있는 권총이 보인다.
갑자기 병수를 향해 머리를 들이박는 선우.
선우 (병수 품에서 권총을 뺏어 도로로 뛰어가며) 미안해 형! 설명은 나중에 할게.
병수 (턱을 싸쥐고) 선우야, 선우야...!
도로 한가운데로 나서서 달려오는 승용차를 몸으로 막아서곤 급히 차에 오르는 선우.
남자 야, 이 미친 놈아...!
선우 (남자 턱에 권총을 들이대며) 저 앞에 가는 찦차 잡아. 빨리...!
놀라서 부들부들 떨며 황급히 차를 출발시키는 남자.
출발하는 차창 뒤로 병수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S# 81 어느 골목 (밤)
후미진 골목길에 멈춰선 민욱의 찦차.
골목길 입구에 끽! 승용차가 멈춰서고...
선우가 황급히 뛰어들어온다.
그러나 찦차엔 아무도 없고... 주변을 둘러보는 선우.
그때 누군가 둔기로 선우의 머리를 내려친다.
쓰러지는 선우의 가물가물한 시선에 찦차에 올라타는 민욱의 모습이 얼핏 스쳐지나가고...
선우, 애써 눈을 떠보려 하지만 머리에서 흘러내려온 한줄기 피가 눈으로 흘러들어온다.
결국 정신을 잃는 선우.
스르르... 암전.
S# 82 병실
24일 오후 5 : 10
사면이 온통 하얀 낯선 공간.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고... 가까스로 눈을 뜨는 선우.
순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리둥절해하는 선우.
눈을 한번 감았다 뜰 때마다 피투성이의 지희의 얼굴이 떠오르다가...
절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수진의 얼굴이 교차되며 떠오른다.
그때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선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면 웬 여자가 창가에 서서 등을 돌린 채 코를 풀고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어리둥절해 하며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는 선우.
수진 (급히 선우를 부축하며) 선우씨...
선우 여긴 어떻게...?
수진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던 쪽지를 내밀며) 병원에서 이걸 보고 연락을 했어요.
선우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이다 생각난 듯) 지금 몇시죠?
수진 (벽시계를 보곤) 5시 좀 넘었어요.
선우 (놀란 듯 벌떡 일어나며) 네? (하다 신음을 뱉으며) 끙...
수진 어머, 안돼요. 절대 안정하라고 했어요.
선우 (고통스런 표정이면서도 일어나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웃옷을 찾아 입는다)
수진 이런 몸으로는 무리예요. 움직이면 안된다구요.
선우 (품 안의 권총을 확인하곤 수진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고마워요. 나중에 봐요. (하곤 서둘러 병실을 나간다)
S# 83 병원 입구
누군가 타려는 택시를 가로채 택시에 오르는 선우.
헉헉거리며 쫓아와 떠나는 택시 문을 잡는 수진.
수진 선우씨! 약속은 다음에라도 할 수 있잖아요?
선우 (수진의 애절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안돼요. 미안해요.
택시가 달려가는 저쪽 길을 쳐다보는 수진의 안타까운 시선에서 과거 회상으로 들어간다.
S# 84 마을버스 정류장 (이하 회상. 수진의 시점)
아침. 늦가을. 거리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주워들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저쪽 골목을 보는 수진.
발장단을 맞추며 연신 골목 쪽을 쳐다본다.
이때 마을버스가 다가와 수진 앞에 멈춰 선다.
그러나 수진은 아직도 골목 쪽을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기사 (짜증스럽게) 아, 안타요?
수진 (골목을 보며) 죄송해요.
기사가 별 여자 다 보겠다는 듯 버스 문을 닫으려는데,
저만치서 선우가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수진 (떠나는 버스를 잡으며) 잠깐만요, 아저씨.
선우가 오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맞춰 버스에 오르는 수진.
수진 아저씨, 뒤에 한 사람 더 와요.
재수없다는 듯 수진을 째리는 기사.
선우가 헐레벌떡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곤 슬쩍 웃는 수진.
S# 85 마을버스 안
만원의 차 안. 살며시 몸을 돌려 선우 뒤쪽으로 서는 수진.
은근히 선우의 몸에 기대 눈을 감는 수진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그때 갑자기 차가 코너를 돌며 한쪽으로 쏠린다.
기우뚱하며 선우 등쪽으로 몸이 쏠리자 손잡이를 잡으며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수진.
앞에 선 선우의 시선이 자꾸 뒤쪽을 향하는 것을 알아채는 수진.
수진, 궁금한 듯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S# 86 마을버스 정류장
선우가 내리고... 몇 사람 뒤에 버스에서 내리는 수진.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선우 뒤로 다가가는 수진.
그녀의 시선으로, 선우가 옆에 선 여자를 힐끔거리는 것이 보인다.
궁금한 듯 옆을 보는 수진의 시선에 보이는 지희의 옆 모습.
연신 지희를 훔쳐보는 선우를 보곤 순간 질투심에 불이 붙는 수진.
신호등이 바뀌자 길을 건너는 지희를 보며 서 있는 선우를 툭 치고 지나가는 수진.
수진 (지희를 놀래키며) 언니!
지희 (놀라며) 어머, 깜짝이야.
수진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지희 오늘 농원 사람들 온다고 했잖아. 맨날 너만 일찍 나오게 해서...
수진 치,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수진이 말하며 길 건너를 힐끗 보면 선우가 지희를 보고 있다.
S# 87 지희의 꽃가게 안 (밤)
수진이 의자에 앉아 파란 털실로 스웨터를 뜨고 있다.
지희 (안에서 나오며) 누구 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뜨니?
수진 그냥...
지희 애인?
수진 (수줍은 듯) 언닌...
지희 (돈을 내밀며) 우리 심심한데 떡볶기 사다 먹을까?
수진 (뜨개질 하던 것을 놓고 일어나며) 그거 좋지. 갔다 올게 언니.
수진이 나가고 난 뒤, 수진이 뜨던 파란 스웨터를 들어 뜨개질을 하는 지희.
S# 88 지희의 꽃가게 앞 (밤)
춤추듯 경쾌하게 스텝을 밟으며 비닐 봉지를 들고 가게 앞으로 뛰어오는 수진.
풍선껌을 푸푸 불면서 걸어오다가 가게 안쪽에 등을 보이고 한 남자가 지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이 보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가 얼핏 고개를 돌리는데, 그는 바로 선우.
깜짝 놀라 풍선껌의 풍선이 터지면서 얼굴에 달라붙는다.
S# 89 지희의 꽃가게 안 (시간경과)
선우에게서 카라꽃 다발과 카드봉투를 받아드는 수진.
선우 이것 좀 지희씨 전해주시겠어요?
수진 ...네.
가게를 나서는 선우.
실망한 표정이 되어 봉투를 들어보는 수진. 묵직해서 꺼내보면 카드와 함께 팬던트가 딸려나온다. 선우 의 것과는 색깔만 다른 똑같은 모양.
열어보면 지희의 그림과 함께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선율이 흐른다.
카드를 펴보려는데
지희 (안에서 나오며) 손님 가셨니?
수진 (재빨리 꽃다발과 봉투를 탁자 밑으로 숨기며) 응? 으응...
지희 (떡볶기를 펼치며) 식겠다, 빨랑 먹자.
건성으로 떡볶기를 집어먹는 수진.
S# 90 선우의 회사 - 디자인실
선우 책상에 카라 꽃과 엽서를 놓는 수진.
나가려다 말고 의자에 앉아본다.
선우를 느끼고 싶은 듯 펜이며 문구들을 하나씩 쓰다는데 책상 구석에 쌓여 있는 지희의 캐리커처가 보인다. 집어서 찢어버리려다간 도로 제자리에 놓아두는 수진.
실망스런 표정으로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 수진. 얼핏 맺히는 눈물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난다.
S# 91 동 건물 입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가는 수진. 모퉁이를 돌다가 왠 남자와 부딛힌다.
바닥에 쏟아져 깔리는 지희의 스케치.
선우다.
놀라서 고개를 푹 숙이는 수진.
수진 죄,죄송합니다.
서둘러 가는 수진.
S# 92 꽃가게 (밤)
새장 속의 카나리아를 쏘아보고 있는 수진.
수진 (새가 지희라도 되는 양) 강지희... 니가 미워...
수진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카나리아, 수진을 보며 수다스럽게 지저귄다.
수진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거칠게 새장 속에 손을 집어넣는 수진. 카나리아를 꺼내 문으로 성큼성큼 간다.
문을 열어부치는 수진.
수진 가! 꺼져버려!
허공에 새를 놓아버리는 수진.
그러나 얼마간 포르르 날아가다간 다시 돌아와 앉는 카나리아.
그악스럽게 움켜쥐고는 다시 날려보내는 수진.
수진 꺼지란 말야!
멀리날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허공을 선회하는 카나리아.
이때 저만치서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카나리아가 있는 곳으로 돌진하는 트럭.
순식간에 트럭에 받혀 퉁겨나가는 카나리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수진.
수진 (넋이 빠져) ...안돼...
달려가 축 늘어진 카나리아를 집어드는 수진.
수진 ...미안해... 이럴려구 그런 건 아니었어...
눈물을 떨구는 수진.
S# 93 시간경과
빈 새장 옆에 앉아 흐느끼고 있는 수진.
이 때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선우.
선우 ...괜찮아요?
수진 (얼른 눈물을 훔치며) 네... 언닌 친구만나러 갔어요.
선우 아, 예. 그럼...
가게를 나가는 선우.
다시 고개를 파묻고 우는 수진.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지희가 들어온다. 수진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지희.
지희 수진이 너 왜 그러니?
수진 언니... 카나리아가...
지희 카나리아가 왜...
새장을 돌아보는 지희.
빈 새장.
지희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와락 울음을 터뜨리는 수진.
지희 괜찮아. 새야 또 사면 돼지. 뚝. 응?
S# 94 지희의 꽃가게 앞 (아침)
셔터를 올린 수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 틈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보면, 선우가 남긴 메모지다.
<지희씨, 저는 내일 회사 일로 멀리 떠납니다. 꼭 할 얘기가 있습니다. 오늘 6시에 길 건너 성당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꽃과 음악으로 행복한 남자 김선우>
얼굴이 어두워지는 수진.
S# 95 지희의 꽃가게 안
파란 스웨터를 뜨다 말고 고개를 들어 지희를 보는 수진.
쇼윈도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지희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이다 입을 떼는 수진.
수진 저기... 언니...
지희 (돌아선 채 건성으로) 응?
수진 (선우가 남긴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며) 엊그제 카라 꽃 사간 남자...
지희 (돌아보며) 누구?
수진 우리 떡볶기 사다 먹을 때 카라 사간 남자 말야.
지희 (생각난 듯) 응...
수진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며) 그 사람이... 이걸...
E (자동차 경적음 소리)
지희 (소리에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곤) 잠깐만...! (하곤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일어나서 창 밖을 쳐다보는 수진의 시선에, 쇼윈도 너머로 지희가 웬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보인다.
메모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쉬는 수진.
S# 96 성당
오후. 성모 마리아상 뒤편에서 선우를 훔쳐 보고 있는 수진.
선우가 앞으로 다가오자 얼른 몸을 감춘다.
마리아상 저쪽 뒤편에서 들려오는 선우의 목소리.
선우(E) ...성모님은 사랑이 뭔지 잘 아시죠. 부탁드립니다. 제발 지희씨가 나오게 해주세요.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선우를 훔쳐보는 수진.
펜던트를 손에 쥐고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를 보며 마음이 아파지는 수진.
깊은 밤. 성당 앞 길을 내다보다 힘없이 벤치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성당을 나가는 선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진의 죄책감이 가득 담긴 표정.
S# 97 지희의 꽃가게
스웨터 뜨던 것을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앉아 있는 수진. 눈이 퉁퉁 부어있다.
지희가 꽃들을 정리하다 수진의 표정을 살핀다.
지희 (수진 어깨에 손을 얹으며) 왜 뜨개질 안해? 크리스마스에 선물할 거라며.
수진 그냥 좀...
지희 (옆에 앉으며) 너 또 카나리아 땜에 그러는 거니?
수진 아니야.. 좀 피곤해서...
이 때 손님이 들어오고...
수진이 일어서려는데 지희가 그냥 있으라는 듯 제지하고 손님을 맞는다.
전화벨이 울리고... 수진이 전화를 받는다.
수진 (힘없이) 네, 꽃가겝니다.
선우(E) 지희씨? ... 저 김선웁니다.
수진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철렁한 듯 놀라는) ...!
선우(E) ...어제 많이 기다렸습니다...
수진 (반갑지만 체념하듯 수화기를 손으로 감싸고 지희를 향해) 언니.
지희 (꽃다발에 리본을 장식하며) 잠깐만...
선우(E) 사랑합니다! 가기전에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수진 (자기도 모르게 선우의 말에 홀린 듯) ...저도요...
곧,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수진.
그때 지희가 손님에게 꽃다발을 주며 인사를 하고 수진 쪽으로 온다.
지희 어? 끊겼어?
수진 (미안한 기색을 숨기려는 듯 시선을 외면하며) ...응...
일어나 포장지를 정리하는 수진. 혼란스런 표정.
S# 98 선우의 집 앞 (밤)
문 앞에서 외출복 차림의 병수와 이야기를 하는 수진. 옆에 꽃다발이 한아름 든 비닐 봉지가 놓여있다.
병수 꽃가게? (수진을 보며) 아, 지희씨세요?
수진 (엉겁결에) 네? 네.
병수 (수진의 손을 잡아흔들며) 아이구 반갑습니다 제수씨. 전 선우 선배 오병수라구 합니다.
수진 네. 반갑습니다.
병수 (시계를 보며) 근데 어쩐다, 지금 나가는 길인데... 그럼 일 끝내고 (열쇠를 내밀며) 윗집에 열쇠 좀 맡겨줘요.
수진 (열쇠를 받으며 웃는) 네...
S# 99 선우의 집 - 거실 (밤)
거실 곳곳에 카라 꽃다발을 장식하는 수진.
소파 옆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고 그 밑에 선물상자를 놓는 수진.
다 끝낸 듯 실내를 둘러보는 수진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난다.
S#100 지희의 꽃가게 (밤)
선우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말하는 수진.
수진 (망설이며) 혹시 오시며... 크리스마스 이브 일곱시... 프린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자고...
선우 (금새 표정이 확 밝아져서) 저를요?
수진 (망설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
선우 (뛸 듯이 기뻐하며) 고맙습니다.
선우가 기뻐하며 가게를 나가고 나며, 쓸쓸한 얼굴로 혼잣말을 하는 수진.
수진 보고 싶었어요...
시간경과.
퇴근 준비를 하는 듯 가게 안을 정리하는 수진.
지희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누군가와 통화하는 지희를 연신 살핀다.
지희 ...그래요. 한시간쯤 후에 거기서 만나요. (전화를 끊고 화장을 고친다)
수진 (망설이며) 저기 언니... 할 말이 있는데...
지희 (웃옷을 입으며) 뭔데?
수진 저기...
지희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할래? 나 지금 나가봐야 되거든.
수진 그럼... 내일 다섯시에 프린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
지희 내일? ...약속이 있긴 한데... 같이 만나지 뭐. 나 번저 들어간다. (하며 나가려는데)
수진 언니... 내일 나... 누구랑 같이 나가도 돼?
지희 (놀란 듯) 드디어 애인 공개하는 거야? 기대할게. (하고 가게를 나간다)
혼란스런 표정으로 쓰러질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수진.
S#101 수영장 - 샤워실 (밤)
샤워 부스 안에서 샤워를 하는 수진.
그때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곤 머리에 샴푸를 하는 수진.
그때 옆에서 샤워하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 위로...
카운터 (E) 이 변태, 빨리 안 나와?
선우 (E) 지희씨!
그 소리에 고개를 드는 수진, 샤워기로 얼굴의 비눗기를 흘려내고 소리나는 쪽을 본다.
선우. 조금 전 좋아서 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혼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놀란 듯 앞을 가리며 주저앉는 수진.
S#102 달리는 수진의 차 안 (밤)
조수석에 앉은 선우가 콘솔 박스를 열어 테이프를 꺼내는데, 박스 안에서 사탕이며 과자며 풍선껌 등 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안쪽으로 보이는 예의 펜던트와 카드봉투.
과자랑 풍선껌을 줍느라 고개를 숙인 선우.
수진이 재빨리 콘솔 박스를 닫는다.
S#103 편의점 안 (밤)
커피잔을 들고 편의점 창가 스탠드 탁자로 오는 수진.
계산을 하는 선우를 흘깃 돌아보곤 살포시 미소 짓는다.
문득 고개를 돌리는데 편의점 창 너머 골목길에서 지희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당황하는 수진.
그때 선우가 탁자 쪽으로 다가오자 선우 쪽으로 커피잔을 엎지르는 수진.
산우 앗, 뜨거!
수진 (당황하며) 어머...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자연스럽게 선우를 돌려세우며 옷과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주는 수진.
선우의 옷에 묻은 커피를 닦으며 얼핏 창 밖을 쳐다보는 수진의 시선에, 지희가 막 코너 길을 돌아가 는 것이 보인다.
비로소 안심하는 표정이 되며 선우를 보는 수진의 눈빛.
S#104 병실 (밤)
눈물이 그렁이며 간호사가 선우에게 주사를 놓는 것을 보는 수진.
간호사 (수진을 보곤)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수진 (울먹이며) 정말 괜찮은 거죠?
간호사 그럼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 (나간다)
수진 (피투성이의 선우를 보곤 안타까워) 선우씨...
선우가 신음을 흘리며 헛소리를 한다.
선우 아, 안돼...
수진 (선우의 손을 잡아주며) 그래요, 괜찮아요.
선우 아아... 지희씨...
선우의 입에서 지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자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수진.
선우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바싹 마른 입술 위에 젖은 거즈를 올려주는 수 진.
S#105 프린스 호텔 로비 (밤)
오후 4시 10분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때문인지 꽤 분주한 분위기의 호텔 로비.
지친 듯 로비 의자에 앉는 선우. 피곤한 모습.
지친 듯 뒤로 머리를 기대고 연신 현관 쪽을 보며 초조한 듯 담배를 태운다.
그때 로비 현관에 민욱의 모습이 나타난다.
순간 전율하는 선우, 바싹 긴장하며 민욱을 살핀다.
민욱이 프론트에서 키를 찾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선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프론트로 향한다.
S#106 동 - 프론트 앞
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선우.
선우 방금 그 남자 몇 호로 올라갔죠?
직원 네, 지금 막 올라갔습니다. (전화를 걸다가) 예? 실례지만...
선우 (권총을 보이며 위압적으로) 몇 호로 올라갔냐구?
직원 지금 김형사님한테 보고했는데...
선우 (얼버무리며) 알아. 내가 먼저 온 거야. 그 방 키 좀 줘.
직원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듯 망설이는) ...
선우 (권총을 빼들고 강한 어조로) 놓치면 자네가 책임질 거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라구!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예비키를 내주는 직원.
키를 받아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뛰어가는 선우.
S#107 룸 안
창턱에 앉아 밖을 굽어보고 있는 지희의 뒷모습.
슬그머니 지희에게 다가가는 민욱. 입가에 쓰윽 비틀린 웃음을 머금더니 두 손을 내밀어 지희의 목을 겨냥한다.
모르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지희.
두손으로 지희의 목을 와락! 움켜쥐는 민욱.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지희. 돌아보더니 가슴을 쓸어낸다.
지희 놀랐잖아.
민욱 뭐 해?
지희 경치 감상하구 있었어.
민욱 (창밖을 보며) 챗. 빌딩밖에 없잖아.
지희 음. (텅 빈 시선을 창밖 풍경에 보내며) 내가 언제 저 속에 있었나 싶어. 이렇게 보면 빌딩들이 내 손 바닥두 안 되는데... 저런데서 아웅다웅 살았나 싶구... 그런 생각이 들면 내 자신이 비참해져...
민욱 (씩 웃으며) 새장에 갇혀서는 못 사는 새들이 있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니가 그래. 그래서 내가 좋 아하는 거구.
지희 (웃음) 새장두 새장 나름이지. 민욱씨 같은 새장은 평생 갇혀 있어두 괜찮지.
그윽히 보더니 지희에게 키스를 하는 민욱.
S#108 앞 복도
한걸음, 한걸음... 룸넘버를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선우.
1208호 앞에서 멈춰선다.
문에 귀를 가져가는 선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키를 꽂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선우.
스르르 열리는 문.
권총을 빼들고 심호흡을 하는 선우. 살며시 안으로 들어간다.
S#109 룸 안
살금살금 방 안으로 들어오는 선우. 모퉁이를 돌면...
저만치 창가에 등을 돌리고 앉아 탁자게 엎드려 뭔가를 하고 있는 민욱의 등이 보인다.
선우, 다행이라는 듯 심호흡을 길게 한 후 민욱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소리친다.
선우 정민욱!
선우의 소리에 놀란 듯 고개를 돌리는 민욱, 어딘지 몽롱한 표정이다.
보면, 탁자에 코카인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가 흩어져 있다.
선우 (떨면서도) 손, 손들어!
민욱 (처음엔 놀란 표정이다 이내 비틀린 미소를 띄우며) 흐흐... 새끼 형사였군
그래... (비틀대며 일어나 선우를 노려본다)
선우 (다시금 총을 겨누며) 손들라고 했잖아!
약 기운에 비틀대다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지는 민욱.
총을 겨눈 채 민욱을 향해 다가가는 선우.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어 게슴츠레한 눈으로 선우를 노려보는 민욱.
바닥을 짚은 민욱의 양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민욱이 카페트를 확 잡아당긴다.
순간, 카페트 위에 서 있던 선우의 몸이 기우뚱 넘어진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선우에게서 총을 뺏드려드는 민욱.
그러나 만만치 않은 선우.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저만치 떨어지는 총.
치고 받는 두 사람.
죽기살기로 민욱의 몸에 올라탄 채 주먹질을 하는 선우.
그때 누군가 둔기로 선우의 머리를 내리친다.
억! 쓰러지는 선우.
쓰러지며 고개를 드는 선우의 흐릿한 시선에 희미하게 보이는 지희.
샤워를 마친 듯 젖은 머리칼로 손에 스탠드를 든 채 선우를 내려다보는 지희.
선우 (놀라며) ...지, 지희씨...?
지희 (어리둥절한 표정) ...?
민욱 (총을 집어든 채) 아는 놈이야?
지희 (고개를 가로젓는)
민욱 재수없는 자식. (하며 총신으로 선우의 머리를 내리친다)
정신을 잃은 선우.
그때 형사들이 부서질 듯 문을 박차고 들이닥친다.
놀라는 민욱과 지희.
지희가 갑자기 민욱의 품으로 뛰어들며 민욱의 팔을 자기 목에 감는다.
마치 자기를 인질로 삼으라는 듯.
처음엔 어리둥적하다가, 지희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민욱.
민욱 (잽싸게 지희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가까이 오지마!
다가서던 경찰들이 멈칫한다.
형사 (민욱을 향해 총을 겨누며) 정민욱, 총 버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창 밖을 힐끔 내다보는 민욱의 시선에 경찰차들이 속속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형사 정민욱, 어서 여잘 놔줘!
민욱 흥, 개새끼들! (지희의 관자놀이에 총을 더욱 밀착시키고 문쪽으로 나가며) 비켜. 허튼 짓했단 여자 버 릴 날려버릴 테니까.
민욱의 거친 행동에 경찰들이 길을 터준다.
지희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문 쪽으로 가는 민욱.
S#110 동 - 복도
지희를 방패 삼아 엘리베이터로 가는 민욱.
경계를 늦추지 않고 따라가는 경찰들.
S#111 수진의 차 안
오후 4시 42분
막히는 도로를 걱정스럽게 내다보는 수진. 옆에 튜울립 꽃다발이 보인다.
이 때 옆 도로 뒤쪽에서 앰블런스와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지나간다.
선우가 뇌리를 스치는 듯 불안한 표정이 되는 수진.
S#112 프린스 호텔 - 1208호
정신이 드는 듯 부시시 눈을 뜨는 선우.
그 시야로, 들 것을 든 전경대원 둘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비로소 조금 전의 상황이 일깨워진 듯 벌떡 일어나는 선우.
S#113 동 스카이라운지
문을 박차고 지희에게 총을 겨눈 채 들어오는 민욱.
그들을 따라 우루루 몰려온 경찰들.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서로 먼저 도망치려 다투다가 넘어지는 탁자와 사람들로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형사 (조심스레 따라오며) 정민욱, 포기해! 자수하면 선처하겠다.
민욱 (지희의 목을 더 세게 조시며) 개수작 까지마, 새끼들아!
지희 (작게) 아, 아파요 민욱씨...
민욱 시끄러.
민욱을 돌아보는 지희.
눈이 묘한 광채를 머금어 번들거리는 민욱. 장난이 아니다.
서서히 얼굴이 굳는 지희.
S#114 동 비상구 계단
헉헉거리며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선우.
위에서 내려오던 사람과 부딪치면서 몸이 휘청한다.
그 바람에 주머니에서 뭔가 떨어지는데...
사람들이 연이어 내려오자 선우는 정신없이 위층으로 뛰어올라간다.
선우가 올라가고 난 뒤, 계단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펜던트가 보이고...
S#115 동 스카이 라운지
선우가 민욱과 지희, 형사들이 팽팽히 대치한 상황으로 뛰어든다.
선우, 제지하는 경찰들을 밀치며 민욱 쪽으로 다가선다.
선우 ... 정민욱. 그 권총엔 실탄이 없어.
민욱 !?...
선우 여자를 놔줘. 어서!
형사들, 진짜냐는 표정으로 선우에게 향한다.
선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민욱, 못믿겠는듯 선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철컥! 빈총이다.
흠칫 놀라 식은땀이 흐르는 지희.
민욱이 총을 버림과 동시에 다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든다.
선우 (절규하듯) 안돼!
다급해진 민욱이 유리창이 깨진 창가의 난간으로 지희를 끌고 올라간다.
실내를 둘러보는 민욱.
사방이 경찰이고 형사들이다.
얼굴에 체념의 빛이 떠오르더니 씩 웃음을 머금는 민욱.
민욱 (작게 지희에게) 자, 난 여기가 끝이야.
지희 ...
민욱 새장에 갇혀서는 못 사는 새들이 있어. 죽으면 죽었지.
지희 민욱씨...?
민욱 난 다신 감옥에 가기싫어. 잘가. (지희를 떼놓으려 하자.)
지희 (잡으며) 안돼... 제발...
민욱 (밀치며) 비켜!
지희 (민욱을 끌어안으며) 싫어! 안돼! (하다 아래를 보며 위태로운)어...!
선우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가는 동시에.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벌이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지희를 덥석 안는 민욱.
그 바람에 민욱이 들고 있던 칼이 지희의 가슴을 찌르고 만다.
지희의 하얀 블라우스 위로 솟굿치는 선홍의 핏줄기.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민욱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민욱과 지희가 긴 비명을 남기고 창 밖으로
떨어진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멍하니 서있는 선우.
선우 지흐씨...
S#116 동 비상구 계단
숨을 헐떡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수진.
스카이라운지를 한 층 남겨둔 지점을 올라가던 수진이 문득 뒤를 돌아본다.
계단 벽 구석에서 울려나오는 하모니카 음악 소리.
수진이 선우가 흘리고 간 팬던트를 주워든다.
뚜껑을 열어보면 어딘지 애잔해보이는 지희의 얼굴.
S#117 동 화장실
얼굴에 물을 끼얹는 선우. 손등으로 물기를 닦아낸다.
선우 정민욱과 지희씨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럴 리가...
아직도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듯 세차게 고개를 젓는 선우.
이 때 화장실로 들어오는 병수.
병수 (다가와 손수건을 내밀며) 괜찮냐?
선우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안쓰럽다는 듯 선우를 보는 병수
병수 기운내 임마.
선우 ...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농담을 꺼내는 병수.
병수 변강쇠랑 카싸노바가 있었어.
선우 ...?
병수 변강쇠는 몇 년 전 신혼 첫날 밤에 죽은 옥녀 생각에 식음을 전페하고 집에 틀어박여 지냈지. 보다 못 한 친구 카싸노바가 보약을 지어갖구 변강쇠네 집에 찾아갔지. ‘기운내 이 친구야. 세상에 어디 여자가 한둘인가.?’
선우 ...
병수 하지만 변강쇠는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리는 거야. 짠한 마음이 든 카사노바가 ‘내 자네 맘 알지. 그 래. 옹녀는 참 좋은 여자 였어’하구 위로했지. 그러자 변강쇠가 뭐라 그랬는 줄 알어?
선우 ...
병수 좋으면 뭐해! 하기두 전에 죽었는데!
혼자 웃겨서 껄껄대는 병수.
썰렁해서 보는 선우.
S#118 동 스카이라운지
살풍경한 스카이라운지로 올라온 수진,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경찰이 다가와 수진을 제지한다.
수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면서도 선우를 찾는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 수진. 멈칫한다.
풀죽은 모습의 선우. 수진을 발견하곤 멈춰선다.
수진 저어... 이거...
선우의 팬던트를 건네주는 수진.
선우 아. 고마워요.
머묵거리던 수진. 지희의 팬던트를 마저 꺼내 내민다.
수진 이, 이것두...
의아해서 펜던트를 받아드는 선우.
선우 (보더니 놀라소) ...이게 어떻게...
수진 미안해요...언니한테 전해주질 못했어요.
선우 그럼 카드하고 꽃은...?
수진 ...
순간적인 후래쉬 컷.
수진의 차 앞. 전화번호를 적어주던 수진의 필체. 그리고 똑같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필체.
순간 멍한 표정이 되는 선우.
수진 ... 미안해요. 선우씨를 곁에 두고 싶어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튜울립 다발을 내밀며) 이, 이 거... 이건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선우씨한테 제가 좋아하는 꽃을 드리고 싶었어요... 언니가 좋아하 는 꽃 말구요.
풀죽은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수진. 그녀 위로 은빛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선우의 시야에 스쳐지나가는 후레쉬 컷.
마을버스 안. 선우의 시선 끝머리에 살짝 보이는 수진의 얼굴, 얼굴 고개를 돌린다.
병실. 선우의 흐릿한 시야. 지희인줄 알았는데 포커스가 돌아오면...
수진의 얼굴.
현실. 1층에서 불이 멎는 것이 보인다.
멍하니 번호판을 올려다보고 있던 선우. 엘리베이터 정지버튼을 누른다.
S#119 엘리베이터 안
펜던트 뚜껑을 열어보는 선우.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소리를 들리면서
후레쉬 컷. 달리는 수진의 차안. 쭈삣거리더니 입을 여는 수진.
수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듣던 노래예요...
그 말을 하는 수진의 어딘지 슬픈 듯한 얼굴.
현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선우. 왠지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해진다.
크리스마스를 맞는 도심의 분주한 풍경들...
이 때 덜컹, 하며 불이 나간다.
다시 불이 켜지면...
1998년 12월 24일 오전 11:00
선우,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유리창 밖의 풍경도 현실로 변해 있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음악 소리.
펜던트를 내려다보는 선우가 깜짝 놀란다.
지희의 얼굴은 간데 없고 수진의 얼굴이 들어 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선우.
땡! 하고 일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S#120 동 호텔 앞
선우, 긴잠에서 깨어난 얼굴로 거리를 걷는다.
이때, 선우 앞에 와서 급정거하는 승용차.
보면, 미라의 차다.
미라 성우씨,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문을 열어주며) 어서 타요.
얼떨결에 차에 오르는 선우
S#121 달리는 차 안
새색시처럼 곱게 단장을 한 마라가 밉지 않은 선우를 흘겨본다.
미라 결혼식날 늦장피우는 법이 어딨어요?
선우 으응... 일이 좀 있어서...
미라 (꽃다발을 보더니) 왠 꽃이예요? 나 줄려구요?
선우 그게 아니라...(하다 차창 밖을 보곤) 잠깐, 좀 세워줘.
미라 어머, 시간 없어요.
선우 (단호하게)얼른!
S#122 꽃가게
선우,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예의 중년 남자가 선우를 맞는다.
선우 (말을 더듬으며) 저 여기... 여자... 아니, 아가씨, 아니 부인... 어디 갔어요?
남자 (선우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내 마누란 집에 있는데(적개심에 찬 어조로) ...누구쇼?
선우 아니, 그게... 언제쯤 나오나요?
남자 (화내며) 당신, 누구냐니까?
선우,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돌아 나간다.
뒤에서, 뭐라 욕하는 남자 소리가 들린다.
길가에 서 있는 미라의 차가 보인다.
S#123 결혼식장 앞
미라와 선우가 내린다.
기다리고 있던 병수가 뛰어 온다.
병수 (화를내며) 야, 임마. 너 정신이 있어 없어, 지금이 몇신데, 으휴!
선우 ...
병수 빨리 올라가 옷 갈아입어. (미라 보며) 미라씨, 고마워요. 이따 따로...(눈짓하며) 알았죠? (선우를 잘 아 끌며) 빨리 가자.
미라 이따 바요 선우씨.
서우를 데리고 가는 병쑤, 후줄근한 모습의 선우를 보며 혀를 끌끌찬다.
병수 꼴 좀 봐라 이거. 세수도 안했구만.
선우 ...
S#124 신부 대기실 앞
말끔하게 턱시도로 갈아입은 선우. 그러나 표정만은 밝지가 않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선우.
대기실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미라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려온다.
마지못한 손길로 대기실 문을 여는 선우.
신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미라. 그런데 미라는 사복을 입고 있다.
의아한 시선을 안쪽으로 가져가는 선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때,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신부.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수진이 웃고 있다.
얼굴이 딱 멎는 선우.
의아하단 표정으로 선우를 보는 수진.
선우 다가가 수진에게 들고있던 튜울립을 내민다.
수진 어머, 내가 튜울립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선우 아까 애기했잖아.
수진 (의아한) 아까라뇨?
선우 응, 아냐.
수진을 꼭 안아 주는 선우.
친구들의 야유가 들리고, 수진은 왠일인가, 하는 표정이지만 마냥 행복하다.
S#125 성당 벤치
저녁놀이 멀리 보이고, 눈이 솔솔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
성모마리아 사의 시점으로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뒷 모습, 부감으로 보인다.
카메라 점점 다가가면 하모니카 연주음악...
갑자기 풋 하고 웃는 수진.
선우 왜?
수진 (성모상을 보며) 저 앞에 있던 남자 생각이 나요. 어떤 여잘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죠. 태어나 서 그렇게 간절한 기도는 첨 들어봤어요.
선우 (머쓱해진다)
수진 (짐짓 흘겨보며) 또 그럴 거예요?
선우 아니 그건 있잖아...
수진 (웃으며) 괜찮아요. (잠시) 음, 나두 그때 기도했었어요. (선우를 잔잔하게 보며) 단 일분만이라도 좋 으니 저 남자가 날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럼 전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다정한 눈길로 보며 수진의 어깨를 감싸는 선우.
카메라 두 사람 머리 위로 오면 수진의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펜던트가 보인다.
음악 소리 점점 커지며 뮤직박스 안쪽을 비추면, 수진과 선우의 사진.
선우 그래서, 소원이 이루워졌어?
수진 글쎄... 두고봐야죠?
웃으며 선우의 품에 얼굴을 묻는 수진.
카메라 눈내리는 하늘을 위로 높이 올라가면서 두 사람의 모습 점점 작아진다.
눈 덮인 성당과 작은 마을이 노을과 어우러지는 동화적인 풍경 보이며
앤드 타이틀.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