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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신앙고백들
지금까지 나는 사도신경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마치 우리 삶 전체를 비추어주는 빛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동시에 인간의 신분과 존재목적을 비춰주고, 교회와 죄 사함 그리고 부활과 영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의미를 밝혀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처음에 이 시리즈 제목을 ‘진리의 빛, 사도신경’이라고 정했다.
사도신경은 신앙고백이다.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고백이며, 인생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이드이며, 신자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담은 선언이다.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시대에 맞게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담은 고백을 드렸으며, 자기 시대가 요구하는 도전들에 대하여 신앙의 관점에서 대답을 했다. 그것은 간략한 신앙고백문으로 압축되기도 하며 삶의 전반에 대한 지침을 담은 신앙고백서로 확장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은 ‘쉐마’다. 그것은 오직 한분 하나님을 섬기고 최고의 사랑을 바치겠다는 다짐이자 지침이다. 유대인들은 다신교국가에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다. 그 속에서 자신들이 누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시대가 유대인들에게 던진 도전은 누가 참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었고, 유대인들의 대답은 야훼만이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야훼 유일신 신앙에 기초하여 제의와 윤리, 그리고 절기와 사회질서에 관한 지침을 펼쳤다. 그것이 율법이며 구약성경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던 초기교회는 유대교 공동체 속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인생관은 기본적으로 유대인들과 같았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종말의 구원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 초기교회의 신앙고백이었다. 그 최고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기 위해 사도들과 제자들은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예수님이 바로 그 약속된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풀어냈다. 그것이 신약성경의 중요한 핵심 중의 하나다.
초기교회의 신자들이 살던 세계는 로마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는 로마의 군사력과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시대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도전은 ‘누가 이 세계의 왕인가?’ 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왕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헬라인들은 ‘퀴리오스’(Kyrios)로, 그리고 로마인들은 ‘도미누스’(Dominus)로 불렀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예수가 주님이시다!’는 대답을 했다. 그것이 로마제국의 치하에 있던 교회가 고백한 신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고백 때문에 세상의 왕은 많은 신자들을 옥에 가두고 죽임으로 자신이 세상의 왕이라고 우겼다. 진실한 신자들에게 신앙고백은 목숨을 걸어도 좋을 최고의 진리요 삶의 가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칙령(313년)으로 발표되었다. 이제 지하에서 숨죽이며 예배하던 교회가 광장으로 나왔다. 그 도시의 가장 중심에 예배당이 지어졌고 황제가 고관대작과 더불어 예배를 드렸다. 이제 세상은 성경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재편할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정리되어야 할 문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이었고, 많은 논란을 거쳐 교회는 하나님에 대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했다. 교회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신앙의 핵심을 정리하여 발표했는데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다(381년). 그것은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던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에 기초를 두고,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우리 주님이시라는 초기교회의 신앙고백을 종합한 것이었다.
그렇게 기독교가 사회의 전반을 지배하던 중세시대의 문이 열렸다. 그 시대를 지나는 동안에 기독교 신앙은 점차 유럽의 깊은 산골의 마을들로 퍼져 나갔다. 유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신앙이야기는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를 넘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전달되었고 북쪽의 섬나라 영국에까지 전달되어 온 유럽이 기독교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유럽인들의 사상과 마주하면서 새로운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누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많은 주장과 논쟁이 일어났는데 그 때 신앙을 개혁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종교개혁이다(1517년).
루터와 칼빈으로 대표되는 개혁가들은 당시의 신앙에 깊이 들어온 이교적 사상을 분별하고 신앙을 일신(一新)하고자 했다. 그들은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정리하기를,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Sola Gracia)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Sola fide), 신자의 삶은 오직 성경에 기초하여 살아야 하며(Sola Scriptura),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Soli Deo Gloria) 한다고 정리했다. 그런 정신에 기초하여 개혁가들은 신앙의 체계를 새롭게 정리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다(1648년). 이 고백서는 성경과 성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새롭게 정리했으며,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지침을 펼쳤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제정한 율법서와 같고 초기교회가 편찬한 복음서와 서신서들과 같이 신자들의 삶을 위한 가이드였다. 당연히 방대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 신앙고백을 만든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한다. 그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대한 항목 제6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한다: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인다.’ 이것은 이 신앙고백서를 만든 영국교회와 의회가 로마가톨릭과 갈등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참조: 웨스트님스터 신앙고백 영어 번역문, 한글 번역문 PDF)
그렇게 기독교회는 종교개혁 이후로 500년을 지나왔다. 그 동안에 교회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사도들의 신앙고백서와 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빛이 되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으로부터 새로운 질문과 과제가 교회에 던져졌다. 그때마다 교회는 진리의 빛에 비추어 그 질문과 과제에 대하여 대답을 했으며 그것으로 새로운 삶의 지표를 삼았다.
미국장로교회는 1991년 신앙고백서를 교단헌법에 포함하여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니케아신경과 사도신경으로부터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와 웨스트님스터 신앙고백서, 바르멘 신학선언, 그리고 1967년 장로교 신앙고백 등을 포함한다. 그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presbyterianmission.org/wp-content/uploads/2017-Korean-BOC-electronic.pdf
이 중에서 특히 1967년 미국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교회가 자신의 신앙을 재진술한 것인데, 그 핵심은 ‘화목’이었다. 1962년 쿠바 사태 이후 동서냉전이 심화되어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교회는 이 신앙고백을 통해서 인류의 화해와 평화를 호소했다. 그 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1967 년 신앙고백이라는 수수한 이름의 고백서는 성경의 단 한 귀절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고후 5:19)를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이렇게 교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 앞에서 진리의 빛으로 그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신앙고백에 담았다.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는 일이 교회의 소임이라고 여긴 신앙인들은 1986년 벨하신앙고백을 발표했다. 그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있었던 지독한 인종차별정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반성과 대답이었다.
특히 미국장로교회가 1983년에 발표한 신앙고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갈 수 있는 본보기를 제공했다. 이는 기존의 사도신경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에서부터 바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져 예수의 삶이 빠진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에 대한 아쉬움에 대하여 일찍이 한완상 박사도 언급한 바 있다.
나도 2017년에 설교를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 오늘에 필요한 신앙고백을 만들어 보았다. 누구나 신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랑하신 세상에 대한 대리인적 책임감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시대의 과제에 대한 성경적 대안을 담은 신앙고백을 만드는 일을 책임으로 여길 것이다. 이런 책임을 수행하고자 세계교회는 지난 2013년 부산에서 총회를 열고 ‘함께 생명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선교선언문을 발표했다. 그것은 지구적인 위기로 다가오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갈등에 대한 교회의 대답이었다.
우리나라 신자들 중에 상당히 많은 이들이 WCC의 활동을 적그리스도의 일로 여기고 매도하는 것을 나는 심히 우려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자기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대대로 이어온 노력이며 전통이다. 그런데 근본주의적 신앙에 갇혀 현대판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일부 신자들의 광기어린 행동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문제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며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를 좇아 행진을 하고 난 자리에는 십자가가 세워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나는 10주 동안 사도신경을 강해하는 설교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관점인 ‘하나님의 경륜’으로 사도신경의 의미를 풀어내고자 한 것이다. 성경말씀은 불변이지만 그 말씀이 각 시대에 비춰주는 빛깔은 다양하고 찬란할 것이다. 그 찬란한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만물에게 그 본래의 빛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나간 시대에 선배들이 만든 신앙고백을 환영하며 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끝으로 나는 미국장로교회가 1983년에 만든 훌륭한 신앙고백을 소개하겠다. 이런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예배 중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우리는 오직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믿으며 그분만을 예배하고 섬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고 완전한 하나님이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시고, 말씀과 행위로써 가르치시고, 어린이를 축복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마음 상한 자를 싸매어 주시고, 버림받은 자와 함께 잡수시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모든 사람을 불러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하셨다. 예수는 신성모독과 소요 선동죄로 부당하게 정죄되어, 십자가에못 박히시고, 인간고를 깊이 겪으시며, 세상 죄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은 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어, 그의 죄 없는 삶을입증하시고, 죄와 악의 권세를 깨뜨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 예수는 그를 아바, 곧 아버지라 불렀다. 하나님은 주권적 사랑으로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각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하게 지으시어, 남자와 여자, 각 인종과 백성을, 한 공동체로 살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를 피하여 숨는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깨뜨리며 거짓을 참이라고 받아들이고, 이웃과 자연을 착취하며, 우리에게 맡겨 돌보게 하신 지구를 죽음에 직면케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구속하시려고 공의와 자비를 베푸신다. 영원하신 사랑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을 택하시어, 이 땅 만민이 복을 받게 하셨다.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해 주셨다.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를 언약의 상속자로 삼는다. 마치 젖먹이를 물리치지 않는 어머니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를 맞으러 달려가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우리는 성령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
그는 어디서나 생명을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여 자신을 수용하게 하시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를 모든 믿는 자와 함께 묶어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가 되게 하신다.
바로 그 성령께서 일찍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감동하셨고, 이제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다스리시며, 선포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붙드시고, 세례의 물로 우리를 자기의 소유로 삼으시며, 생명의 떡과 구원의 잔으로 우리를 먹이시며, 여자와 남자를 교회의 모든 사역에 부르신다.
깨어지고 두려운 세상에서 성령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어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고, 모든 백성 중에서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증거하게 하시며, 교회와 문화 속에 있는 우상숭배를 폭로케 하시고, 오랫동안 말 못하고 살던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하시며, 정의, 자유, 평화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하신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며, 거룩하고 기쁘게 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
모든 시대와 장소의 믿는 자들과 더불어,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생명이나 사망이나 그 아무것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첫댓글 카페후원이 전혀 없다보니 카페운영이 어렵고
의욕도 사라집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카페지만
이제 지치고 힘들어 영적으로 녹초가 됩니다,,,,
후원으로...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병원치료와 인슐린 합병증약을 먹는데 치료를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루5번의 인슐린을 맞는데 주사약값이 엄청 바쌉니다
합병증으로 여러군데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집 임대료..각종 공과 세도 못내고 너무 어렵게 지냅니다
카페긴급,,,통신비,공과금을 내야 카페운영이 됩니다...
후원이 없습니다
임대료 공과금 통신료를 못내고..카페운영이 어렵습니다
카페를 잘 운영하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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