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27,30-28,7, 로마 14,7-9, 마태 18,21-35): 주님의 자비에 기대어 푸는 마음의 빗장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덧 순교자 성월의 중순을 지나는 가을의 한 즈음, 계절이 심어줄 풍경과 같이, 삶의 모습과 주변의 관계에서 무르익고 성숙한 사랑을 더해가고 계신지요? 우리의 발걸음을 주목하시는 주님의 평화가 영혼 깊이 스며 드시어, 매순간 주어지는 여정에 대해 충만한 은총과 기쁨이 더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우리 영혼이 그려내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떤 질문과 응답을 마음 깊이 던져야 할까요? 때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날이 있다면, 우리는 마태오복음 18장 21절의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곤 하겠지요.
이 질문 속 ‘일곱 번’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낼 수 있는 선의의 최대치이자, 타인과의 관계에서 베푼 용서의 한계를 규정해 두려는 인간적 계산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내가 할 만큼 했다는 합리화의 전형적인 모습일 수도 있으나, 사실 그 이면에 더 이상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자기방어의 빗장이 가로막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22절에서 그런 우리의 인간적인 계산을 완전히 깨뜨리시며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끝없는 용서의 요구는 우리의 넓은 아량이나 도덕적 우월함으로 타인을 억지로 품으라는 율법적 격려가 아니지요. 외려 그것은 우리가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빚을 무상으로 탕감받았음을 잊지 말라는 깊은 일깨움입니다.
집회서 28장 6절에서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하신 말씀 가운데, 하느님께서 우리 안의 완악한 모습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은 너그럽게 덮어둔 채, 타인의 작은 미움과 잘못만을 가슴속에 옹골차게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마태오 복음에서 만나는 비극적인 종을 떠오르게 하듯이 말이지요. 임금에게 만 탈렌트라는 헤아릴 수 없는 빚을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고작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의 멱살을 잡고 목을 졸랐던 그 종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일 때가 많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타인을 향해 채우는 용서의 빗장은 결국 상대방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바로 나 자신을 마음의 차가운 감옥에 가두는 자해 행위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4장 8절에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우리의 존재론적 진실을 증언합니다. 삶과 관계의 기준이 나의 옹졸한 감정이나 상처 입은 자존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 주님의 자녀’답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자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진정으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 의지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지요. 그리고 억지로 용서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마음은 더 완고해지곤 하고요.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힘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이 우리의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할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진 빚을 지워주시고 아낌없이 부어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임을 기억할 때 비로소 마음의 빗장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먼저 껴안아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마음을 온전히 기대어 봅시다. 용서하기 힘든 그 누군가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보다, 먼저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주님의 자비의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은 비로소 따뜻한 치유와 평화의 빛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 미사를 통하여, 부끄럽고 나약한 우리의 죄를 물으시기보다, 당신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모시도록 초대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고 물들여, 용서와 포용으로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은총을 간청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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