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기법회 시간에 『길상경』 36번째 슬픔없음 길상과 관련하여 설해주신 우라가 자따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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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명상과 관련하여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 한 청신사는 아들을 잃고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 매일 화장터에 가서 울며 통곡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깨달음을 얻을 인연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아시고 청신사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청신사는 부처님께 예경 올린 뒤 한쪽에 앉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여, 왜 슬퍼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부처님, 아들을 잃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장자여, 부서지기 마련인 법은 부서집니다. 무너지기 마련인 법은 무너집니다.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도 한 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한 마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한계가 없는 온 우주, 삼계에 죽지 않는 이라고는 없습니다. 조건 따라 형성된 법 중에 무너지지 않고 항상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중생이라면 누구든 죽어야 합니다. 중생이라면 누구나 무너져야 합니다. 과거 지혜로운 이들도 그들의 가족이 죽었을 때 ‘죽기 마련인 것은 죽는다. 무너지기 마련인 것은 무
너진다’라고 올바르게 숙고하고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자따까》 일화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생에 보살은 농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이였습니다. 보살은 아내와 아들과 딸과 며느리와 하녀와 함께 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보살은 나머지 다섯 명에게 자주 다음과 같이 훈계하곤 했습니다. “그대들은 보시를 하고, 계를 수지하고, 포살을 준수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죽음새김을 닦아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라. 진실로 모든 형성법은 항상하지 않다. 다하기 마련이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매일 밤낮으로 방일하지 말고 지내라.” 나머지 다섯 명도 훈계를 잘 받들어 방일하지 않고 죽음새김을 잘 실천했습니다.
어느 날, 보살과 아들이 함께 밭에 나갔습니다. 보살은 밭을 갈았고 아들은 쓰레기를 모아 태웠습니다. 그런데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 근처 한 개미언덕에 독사 한 마리가 살고 있었고, 연기가 눈을 자극하자 화가 난 독사가 아들을 물었습니다. 아들은 그대로 쓰러져 죽어 버렸습니다. 보살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시체를 나무 아래에 눕히고 옷으로 잘 덮어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울지 않았습니다. ‘부서지고 무너지기 마련인 것은 부서지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죽기 마련인 것은 죽는다. 모든 형성법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중생은 죽음으로 끝난다’라는 항상하지 않은 성품만을 관찰하며 계속 밭을 갈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이웃이 밭 근처를 지나갔습니다. 보살은 이웃에게 음식을 2인분이 아니라 1인분만 가져오고, 가족 모두가 깨끗하게 옷을 입고 꽃이나 향을 가지고 같이 오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쟁기질을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내도 아들의 죽음을 짐작했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깨끗한 옷을 입고 꽃과 향을 들고 하녀에게 음식을 들게 한 다음 딸과 며느리와 함께 밭으로 갔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살은 아들의 시체를 눕혀 놓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먹고 나서 가족 모두 땔감을 모아 그 땔감더미 위에 시체를 놓고 꽃과 향으로 헌공한 뒤 불을 붙였습니다. 그 누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죽음새김 수행을 잘 닦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덕 때문에 제석천왕의 자리가 뜨거워졌습니다. 그 연유를 살펴본 뒤 제석천왕은 지나가던 사람으로 변신하고 그 자리에 나타나 짐짓 물었습니다.
“이보시오, 무엇하고 있소?”
“사람을 화장하고 있소.”
“믿을 수 없소. 어떤 짐승을 죽여 굽고 있는 것 아니오?”
“짐승이 아니오. 사람을 화장하고 있소.”
“그러면 그 사람은 그대들의 원수이겠군요.”
“우리 아들의 시체요. 원수가 아니요.”
“그러면 그 아들은 미워하는 아들이었겠소.”
“매우 사랑했던 아들이었소.”
“그렇다면 왜 울지 않소?”
보살은 다음과 같이 시로 대답했습니다.
뱀이 옛 허물 버리고 가듯이
아들도 자신의 몸 버리고 떠나갔네.
그의 몸은 이제 느끼지도 못하고
아들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버렸네.
화장하며 불태워도 친척들의 비탄을
아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네.
아들이 가야할 곳 이미 가 버렸기에
그러니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네.
다음은 보살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죽은 이와 어떤 관계요?”
“열 달 내내 뱃속에서 돌보다가 태어나서는 젖을 먹여 키웠고 잘 자라도록 기른 나의 아들이오.”
“아버지는 남자라서 울지 않는다고 칩시다. 어머니의 마음은 매우 약한데 왜 그대는 울지 않소?”
보살의 아내도 다음과 같이 시로 대답했습니다.
부르지 않았어도 거기에서 왔고
허락하지 않았는데 저곳으로 갔다네.
조건 따라 와서는 조건 따라 가거늘
그에 대해 비탄해서 무엇 하겠는가.
보살의 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만약 운다면 마르기만 할 텐데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이익 있겠는가.
친척과 친구, 그리고 친지들에게
더욱 큰 싫어함만 생겨난다네.
보살의 며느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밤하늘에 가고 있는 달을 보고서
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 아이처럼
이미 죽은 이에 대해 슬퍼한다면
그와 같이 떼 쓰는 것 마찬가지네.
하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미 깨져 산산조각 나버린
물항아리 다시는 붙일 수 없듯이
이미 죽은 이에 대해 슬퍼한데도
그와 같이 전혀 되돌릴 수 없다네.
제석천왕은 그들의 법다운 말을 듣고 존경심이 생겨나 “그대들은 방일하지 말고 계속 죽음새김을 잘 닦으시오. 오늘부터는 일하지 마시오. 나는 제석천왕이오. 그대들의 집을 칠보로 가득 채워 주겠소. 그러니 보시를 행하시오. 계를 지키시오. 포살을 준수하시오. 방일하지 마시오”라고 훈계하고서 집을 칠보로 가득 채운 뒤 천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화의 끝에 법문을 설하셨고, 아들을 잃어 슬퍼하던 장자는 수다원이 되었습니다(J354).
*출처: 비구 일창 담마간다, 불방일, 『가르침을 배우다』 pp.407~411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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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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