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취해 잠들다. 옛집(古宅)으로 하룻밤 여행
조선닷컴 미디어취재팀 media@chosun.com">media@chosun.com
입력 : 2014.08.12 17:44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냥 ‘낡은 집’일 뿐이던 고택이 달라지고 있다. 흔들림 없는 선비정신과 품격을 갖춘 세간을 들이고 노후 시설을 개선해 나가며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전통은 오롯이 남아있어 오랜 시간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분주한 일상 속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 그리고 고즈넉한 한옥이 뿜어내는 옛 것의 매력. 달빛에 취해 잠드는 그곳에서의 낯선 하룻밤은 잠시나마 추억과 여유로 쉬어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이에 미처 잊고 지냈던 삶의 이치를 선조들의 멋과 정신을 통해 문득 깨닫게 되는 어느 날의 고택체험.
한옥의 기품과 상서로운 기운을 품다, 함양 '일두(一蠹)고택'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사랑채 대청마루
대전ㆍ통영 고속도로 지곡 IC 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 약 오백 년 전부터 형성된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의 집성촌으로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자리잡고 있는 그곳에 가면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일두(一蠹)고택을 만날 수 있다.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사랑채 모습
일두 고택은 15세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정여창 선생의 생가지로 현재의 고택은 일두 선생 사후 157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 1984년에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된 정여창 고택은 대지 3천평, 11개 동의 건물로 조선 중기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사랑방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사랑채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안사랑채 전경
비교적 예스러운 대로 제자리에 보존되어 있는 세간, 살림살이들은 시간이 멈춰선 듯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가 하면 높은 신분의 상징이기도 한 솟을대문의 안쪽으로는 홍살문과 함께 5개의 충신·효자 정려패가 걸려 있어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는 선비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랑채를 비롯해 안사랑채, 안채, 행랑채는 상서로운 기운이 고루 흐를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은은한 조명과 운치를 더하는 고가구들을 배경으로 한옥의 기품에 걸맞은 푸근한 쉼을 얻을 수 있다.
▲ 경남 함양군 일두고택 안사랑채
무료한 여유가 더없이 고마운 옛 집, 안동 '대산(大山) 종택'
▲ 안동 고택 대산종택 전경
우리 곁에 남아있는 한옥들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바래지 않은 숭고한 역사와 선조들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 그 자체이기에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된다. 이에 학문에 정진하는 유생들과 선비들의 고장 안동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면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대산(大山)종택에 주목해 보자.
▲ 대산종택-전경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위치한 대산 종택은 조선 후기의 학자 대산 이상정의 종택으로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8호로 지정돼 있다.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자리하고 있는 종택은 뒤로 울창한 숲이 있어 자연스럽게 자연과 하나되어 안정감과 포근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뒤쪽에 안채를 배치, 안채 우측에 방형의 담을 둘러 사당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종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한 안채의 전면 가운데에는 중문간을 만들어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고 다락도 설치하여 실용성을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 대산종택-태실
그런가 하면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긴 누마루과 툇마루는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 된다. 이에 대산 종택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저 방문을 열어두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거나, 비 오는 날이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며 의미 없는 망중한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옛 정취가 흐르는 자연 속에서 보내는 그 무료한 여유가 한옥이 주는 진짜 휴식이다.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사랑방
한옥에서의 풍요의 시간, 안동 '원주 변씨 간재(簡齋)종택'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전경
다양한 전통 문화유산을 간직해 ‘한국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고장’으로 불리는 안동에서는 선조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고택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위치한 원주 변씨 간재(簡齋)종택은 임진왜란의 공신이자 ‘하늘이 내린 효자’로 불렸던 조선 중기의 학자, 간재 변중일의 종택과 정자로 사대부가의 깐깐한 원칙주의와 안동 양반의 살림을 짐작하고, 학문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의 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이다.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사랑마루
종택은 산골짜기에 정침(正寢) 및 무민당(無憫堂), 사당, 정자가 위로부터 자연지형에 순응하면서 각기 기능에 적합한 곳에 사대부가의 품위를 잘 갖춘 채 자리잡고 있다. 이에 고즈넉한 시골마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이 고풍스러운 한옥에 머무는 동안은 느리게 가는 시간을 그저 즐기면 된다.
또한 종택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국화 밭을 따라 올라가면 호젓하게 앉아 있는 간재정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은 간재 선생이 강학을 하던 곳으로 그 어떤 이질적인 것도 섞여 있지 않은 채 여전히 자연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며 이색적인 쉼터가 되어준다.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전경
한편 원주 변씨 간재 종택에서는 단순히 머무는데 그치지 않고 다도체험을 통해 서두름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주니, 차 예절과 함께 전통차를 즐기며 고택의 고요한 정적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다도체험(국화차)
사람 냄새 나는 옛 집 그대로, 영주 '덕산(德山)고택'
▲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종손님
'전통의 향기가 가득한 선비의 고장' 이라고 불리는 경북 영주에는 조선시대 수많은 학자들을 길러낸 소수서원과 선비들의 생활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을 비롯해 옛 조상들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있는 고택이 많다.
▲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전경
그 중 영주시 이산면에 위치한 덕산(德山)고택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절제되고 단정한 느낌의 고고한 인품이 느껴지는 고택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9호로 지정돼 있다. 덕산 고택은 괴헌 김영(金瑩)의 아버지인 덕산(德山) 김경집(金慶集)이 1756년(영조 32) 두암에서 두월로 옮겨와 지은 집으로 처음에는 덕산정(德山亭)이라고 불렸고, 현재의 건물은 후손인 의금부도사 희연(禧淵)이 1904년 일부를 수리하였다가, 1933년 현재 형태를 완성하였다.
▲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작은사랑방
덕산 고택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를 연결하여 정면 6칸 측면 6칸 규모인 전형적인 ‘ㅁ’자형 가옥으로 민속마을이나 한옥마을처럼 규모가 크거나 관광지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옛 집 그대로의 모습이 더 사람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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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사랑채
게다가 장독대와 가마솥, 한지로 발린 창호문, 매끈한 대청마루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종부의 야무진 솜씨 덕에 옛 정취가 흐르는 담장을 지나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 장독대
▲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대청마루
특히, 종부의 따뜻함과 정갈함은 손님 접대상인 7첩 반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제철 재료를 이용해 영양과 맛, 색채까지 고려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건강한 상차림도 꼭 즐겨 볼 것.
▲ 경북 영주시 덕산고택 7첩반상
글·사진 제공 에스제이진 (http://www.sj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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