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님 가피로 위암을 고치다
지호스님(윤기룡)은 미얀마에서 수행을 접한 후 국내로 돌아와 깊은 산 중에 칩거하여 3년간 원을 세워 홀로 두문불출 정진할 예정이시다.
정해년부터인가 위장이 좋지 못하여 병원에서 내시경 조직검사를 3-4번 받았습니다. 내시경 조직검사를 의사선생님께서 보시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큰 병원 의사선생님께서 결과가 암으로 나왔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번뇌가 참 많이 일어나더군요. 그동안 수행하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은 다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수술은 레이져 점막 수술인데 환부 밑을 보고 진행정도를 봐서 큰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수술이 후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수술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참 긴장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자세히 내 의료기록들을 살피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은 저보고 암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절에 계신다고 하셨지요. 공부 잘 하세요.(이는 수술 전에 저의 삶의 철학을 말한 적이 있기에 한 말)'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수술 전에 기도를 했습니다. 아주 강렬한 일심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불보살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데 너무나 뚜렷하고 선명한 칼라 꿈이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우측으로 치우친 듯한, 섬의 한 부분의 위치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괴이하고 흉측하게 생긴 두 마리의 크나큰 괴물들이 서로 싸우는 듯 어울린 듯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 뒷걸음을 치며 도망쳐 앞으로 내달리려는데 앞에 바닷물이 나타나 가로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옆도 온통 바닷물로 가로 막혀 아주 절박한 상황이 전개 되었습니다. 나는 바닷물로 둘러싸인 섬에 갇혀 꼼짝 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멀리서 바닷물 위로 남상인 듯한,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그의 몸은 수면위에 곧게 서있는 가운데 발은 보이지 않음과 동시에 수면아래의 발은 선풍기 날개가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듯 바닷물을 힘차게 돌리며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남자는 말도 표정도 없는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 곁에 다가왔습니다. 순간 나는 그의 후미를 잡았고, 그의 등 뒤를 잡는 상태에서 그는 나를 태우고 육지를 향했고 그러자 어느새 바닷물이 옅어져 땅바닥이 보임과 동시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순간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바다와 나를 태워준 남자는 동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꿈을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꿈의 내용으로 보아 분명 꿈은 길몽이었습니다. 길몽으로 나의 기도가 보살님에게 응한 것이라 여겨 수술이 잘될 정도 인줄은 알았지만 암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불보살님의 가피로 암이 나아버렸다는 걸 당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나 강렬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별 희망이 없다면 텐트하나 들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죽겠다고. 그래서 불보살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길몽을 수인(受認)하기 전에 저의 기원은 반드시 불보살님은 생명으로 계시기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하게 서 있었던 것이삼법인에 대한 바른이해라 볼 수 있음인데, 그 가운데 무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강한 신념이 세워진 것이라 봅니다.제행이 왜 무상함을 보이는가? 제행의 본질이 본래로 청정함에서 인과에 머물지 않고 메이지 않는 청정으로의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온갖 생멸로의 법연을 보이며, 불가사의한 신통과 기도의 성취, 만법의 생성_지옥에서 천상이 서열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본성은 대자비로, 대자비는 본질의 청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자성청정에서 대자비가 흘러나오는 것은 중생의 괴로움을 맑히기 위한 것으로의 청정함의 성향이 대자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살아있는 생명에 진실 된 인으로서의 기원은 반드시 진실 된 과로서 성취로 나타나게 되는 연유는 인은 본래로 없었던 본래의 본성, 청정에서의 혼탁함이 되기에 과로의 성취를 통해 인의 정화가 되기 때문으로, 생명의 본성에서 응함은 참된 이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소구의 성취는 정화를 위한 법계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실상에 기도는 그 업의 정도와 염원의 진실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응답이 있다는 것의 확신은 응답이 부실하거나 없음은, 부실하거나 없음의 연유에서 그러한 것이며, 연유는 진실성에 준하여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본질은 생명의 성질로 적정이 되고, 본성은 생명의 성향으로 대자비가 됩니다. 법이 생하면 생하는 원천의 힘이 있고, 법이 멸하면 멸하는 원천적인 힘의 작용이 있기 때문인데, 그 원천의 힘은 생명인 것입니다. 원천의 힘은 지극한 맑음이 본질 되고, 그 맑음의 지극함에서 밝음이라 곧 생명은 적정가운데 지혜의 광휘가 됩니다. 이런 생명의 실상, 강한 신념에서의 뜻한바 소망은 청정에서의 강한 상이라 이를 지우기 위한 과보를 보이는데 곧, 인연에 따른 성취로 상을 지우는 것입니다.
일체가 하나같이 괴로움인 것은? 애착으로 괴로운 것이며, 신구의 身意로 인한 업의 정화작용, 그 과정이 괴로운 것입니다정화작용이 일어남은 만상이 본래로 청정함에서 그 본질적 청정으로 회귀하기 위함이며,애착 또한 있지 않는 것에서의 마음이 조작하여 만든 애상으로 마음의 본래 순수를 오염시킴으로, 본래의 순수한 청정한 마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애상 그 스스로가 세우기 위해 괴로워하고, 지키기 위해서 괴로워하고, 무너짐에서 괴로워하는 것이겠습니다.
모든 법이 무아인 것은? 모든 법은 모든 법에 본래로 해탈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만법이 해탈해 있지 않다면 무상과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양은 모양에, 형태는 형태에, 성질은 성질에, 성향은 성향에, 기쁨은 기쁨에, 슬픔은 슬픔에, 좋은 것은 좋은 것에, 싫은 것은 싫은 것에, 분노는 분노에, 괘락은 쾌락에, 감격은 감격에, 부자는 부자에, 가난은 가난에, 허공은 허공에, 물은 물에, 불은 불에, 자연은 자연에, 등등의 일체는 일체에 해탈해 있기에 그것에 메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스스로 그것이라 말하지도 않는다.)부처님 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불보살님은 도와주신다는 것을 이번 일로 알게 되었습니다. 불보살님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기원은, 법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법에 대한 이해의 선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