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학업의 R&D 심장 `도마겐 켐파크` 르포
독일 도마겐 켐파크는
글로벌 화학사 60여곳 몰린
100년 역사 화학 R&D 기지
2000종 넘는 화학제품 생산
랑세스의 디지털 혁신
2017년 디지털 전담팀 꾸려
연구개발부터 생산·유통까지
모든 과정서 디지털 혁신
미국 인공지능 기업과 협업도
독일 도마겐 켐파크에 위치한 랑세스의 고성능 플라스틱 테크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사출된 제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랑세스]문밖에서부터 시큼한 플라스틱 녹는 냄새가 난다 싶더니, 영락없는 재래식 공장이었다.
눈에 플라스틱 그래뉼(알갱이)이 튈 수 있으니 보호용 투명 고글을 쓰라고는 했지만, 근로자들의 의상은 작업복이 아니었다. 청바지 차림 연구원부터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근로자까지 자유로운 복장 그대로. 흔한 앞치마 한 장, 방열복 한 벌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공장들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들 연구개발(R&D)센터 외벽에 붙은 기업의 간판을 보면 노벨화학상에 빛나는 아사히카세이부터 독일의 바이엘, 프랑스 에어리퀴드 등 쟁쟁한 업체들이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화학기업이 한데 몰린 곳이 바로 도마겐 켐파크다.
도마겐은 독일 서부 뒤셀도르프나 레버쿠젠에서 A57번 고속도로를 타고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다. 워낙 나무가 많아 공원인지 공장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에 도마겐 켐파크가 위치한다. 이 화학단지에는 연구 인력 9700여 명이 근무하면서 2000종 넘는 화학제품을 만든다. 여기서 생산되는 화학제품은 농작물 보호제부터 폴리머, 플라스틱, 고무, 이소시아네이트, 유기 중간체에 이르는 다양한 화학제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켐파크 내 폴리우레탄 연구개발 센터는 유럽 전역에서 통용되는 표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폴리머에 강한 랑세스가 이곳을 R&D 기지로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7년 도마겐에 지어진 랑세스의 고성능 플라스틱 테크센터는 고성능 플라스틱 개발과 고객별 맞춤형 솔루션 설계를 맡고 있다. 지난 17일 테크센터에서 만난 폴리머 프로세싱 랩장 마이크 슐테 연구원은 플라스틱 그래뉼이 공정에 들어가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의 전면 경량화 부품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슐테 연구원은 "차량 제조사마다 각각 다른 요구사항이 있기 때문에 테크센터에서 제품 개발 초기 아이디어 구상부터 완성 부품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기술 서비스를 지원한다"며 파일럿 장비에서 나온 부품을 보여줬다.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을 대량생산하기 전에 미리 만들어서 충돌 저항성은 갖췄는지, 열에는 충분히 견디는지 등을 시험하는 작업이다.
랑세스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R&D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올 초 미국 인공지능 기업 시트린 인포매틱스와 협업해 고성능 플라스틱 개발에 AI를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맞춤형 폴리우레탄 제품 개발에도 착수했다.
예를 들어 고성능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플라스틱에 유리섬유를 배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두 소재를 접착할 수 있는 원료 배합을 AI로 해보는 것이다.
이 배합 과정에 쓰이는 원재료는 700가지가 넘고 이를 모두 조합하면 600억번 넘는 실험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AI를 도입하면 실험 시간을 50% 이상 줄일 수 있다. 그만큼 제품 생산 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슐테 연구원은 "랑세스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에서 30년 이상 축적해온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랑세스 기술에 AI 데이터를 더해 더욱 정교한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마겐 켐파크의 랑세스 테크센터는 실제로는 재래식 공장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훨씬 큰 디지털 혁신 조직이 숨어 있었다. 랑세스는 이미 2017년 50여 명으로 이뤄진 디지털 전담팀을 꾸렸다. 이들은 R&D부터 구매·생산·물류·유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서 디지털 혁신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독일 도마겐 테크센터에서 나오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제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AI 실험을 600억번은 거친 뒤에야 나올 수 있는 최첨단 공정품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