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가 만난 사람 #24] 구리민속예술단 목영철 단장님
김종필 / 느티나무의료사협 사무국장
태어난 곳은 아니다. 하지만 구리를 고향으로 생각하며 30년을 넘게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농악에 둘러싸여 자랐고 들썩이던 어깨는 자연스레 장구채를 잡게 했다.
느티나무가 풍물로 구리 구석구석을 누비는 구리민속예술단 목영철 단장님을 만났다.
= 이전 인터뷰를 하신 구리장애인복지관에서 10년 넘게 풍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쑥스럽습니다. 어색하기도 하구요. 남에게 알리려고 봉사를 한 것도 아니고..^^
= 처음 풍물을 어떻게 접하셨나요?
고향이 이천이에요. 시골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농악과 함께 자랐죠. 1982년도에 구리로 이사해서 그냥 생활에 파묻혀 살다가 구리문화원이 생기고 나서 이 쪽에 끼가 다시 발동했는지 스스로 문화원을 찾았어요. 처음엔 배우러 갔는데 어렸을 적 어깨너머로 배운 게 그대로 스며나왔고 어느새 가르치는 위치에 있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구리민속예술단도 만들게 됐습니다.
= 구리민속예술단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풍물을 하는 동아리라고 보시면 되요. 기본적으로는 회원들이 모여서 풍물놀이나 사물놀이 연습도 하구요, ‘벌말다리밟기’처럼 잊혀져가는 민속놀이를 발굴하고 재현하는 데도 힘을 쏟습니다. 근데 이게 쉽지만은 않아요. 각자 생업이 있다 보니 시간도 부족하고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 스스로 운영하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고요.
그래도 정월 대보름 한마당 축제와 각종 행사의 문을 여는 길놀이 공연을 꾸준하게 올리고 있고 소소하게는 경로잔치나 동네잔치를 찾아 흥을 북돋우기도 합니다.
= 장애인복지관 봉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구리시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장애인복지관 풍물 강사 모집 공고가 났어요. 바로 전화를 걸었고 2005년에 시작된 인연이 11년째 이어지고 있네요.
처음엔 장애에 대한 이해도 없고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소통에 애를 먹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말로, 그림으로, 풍물로 교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소통이 조금씩 되는 걸 느꼈죠. 현재는 주 1회 2시간 정도 풍물 수업을 하고 있고 전국 규모의 대회에도 2차례 나가서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 가게를 하면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으실텐데요.
봉사를 갈 때는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갑니다. 처음엔 마찰도 좀 있었죠. 가게 안 보고 다른 일 하러 간다고요.^^ 근데 이젠 제일 이해를 잘 해줘요.
= 지난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우리 나이 대(목영철님은 70을 2,3년 앞두고 있다)에 있는 사람들은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커요. 전쟁 직후에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자랐으니 사는 게 힘들었죠. 조금 자리 잡을 만하니 IMF터져서 난리 나고.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게 아쉽네요.
= 향후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우리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벌말다리밟기’가 다시 활성화돼서 도 지정 문화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 느티나무의료사협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서 자세한 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의 노력이 빛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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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벌말다리밟기 : 토평동 벌말과 돌섬을 잇는 목교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한강유역에 위치하여 여름이면 반복되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액막이 성격의 민속놀이이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1916경까지 행해졌다가 약 80년간 중단되었다. 1993년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노력으로 반짝 빛을 봤지만 다시 긴 잠에 빠져들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