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Italy)/피렌체(Firenze)NO.5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웅장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갖춘 이 궁은 피렌체 공화국 당시 시청사로 사용된 이래로 현재까지 피렌체의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곳은 1299년에 착수하여 1314년에 완공된 아주 오래된 건물로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94m에 이르는 종탑이 특이하며,1550년 코시모 1세(Cosimo I)가 피티 궁(Palazzo Piti)으로 옮기기 전까지 당대 최고의 메디치(Medici) 가문의 궁전으로서 피렌체(Firenze)의 정치를 총괄하던 곳이다. 한때 피렌체(Firenze)가 이탈리아 통일 기에 잠정적인 수도일 때 집무를 본 곳으로 현재의 시청이다. 궁전에는 바사리(Vasari), 베네데토 다 마이아노(Benedetto da Maiano), 미켈란젤로(Michelangelo)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무척 호화롭다.
▲ 성곽부분의 건물은 고딕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건물 안의 1층엔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가 조각한 '돌고래를 가진 퓌토(putto)상'이 있다. 베로키오는 다빈치의 스승으로 소년은 돌고래를 안고 있는데 카레지 별장에서 옮긴것이다. 2층에는 피렌체 공국 당시 회의실로 쓰이던 600년이 넘은 방이 있다. 3층은 천장화를 볼 수 있는곳으로 입장료를 지불한다
▲▼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돌고래를 가진 퓌토(putto)상
퓌토(putto)는 ‘유아(幼兒)’라는 뜻으로 특히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제단(祭壇)이나 묘소의 장식모티브, 또한 독립된 감상용 조상(彫像)으로 자주 표현되는 작고 벌거벗은 아기로 가끔 날개를 달기도 한다. 고대 말기에 자주 보이던 큐피드 상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르네상스기에 있어서의 유행은 도나텔로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 베키오 궁(Palazzo Vecchio)의 내부
홀의 양쪽 벽면은 바사라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 장면 회화가 장식되어 있고, 호화로운 교황 레오 10세의 거실과 메디치가의 사람들이 살았던 방도 보존되어 있다. 또한 내부 구조는 1453년에 미켈로초에 의해 개조되었는데, 섬세한 장식이 우아한 느낌을 준다.
시뇨리아 광장(Palazzo della Signoria)
시뇨리아 광장은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였다. 현재는 카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의 베키오 궁전의 종루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이 곳의 수많은 조각품들은 피렌체가 르네상스 도시임을 느끼게 해 준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고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서 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 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이 유명하다. 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수도승 사보나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 베키오 궁(Palazzo Vecchio)의 출입구
'쟘볼로냐(Giambologna)',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은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모두 모여 저마다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정말 '르네상스(Reneissance)'의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광장이다. '피렌체(Firenze)' 공화국의 시청이 있던 건물, 중세 공화국의 정신에 따라 사람들은 이 광장에 모여 저마다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토론을 하여 공화국을 만들어 나갔다. 주변의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투쟁을 전개해나가는 피렌체 공화국의 모든 시작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 피렌체 공화국의 문장(Hearaldry of Firenze)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요체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히지 않은 대담한 영혼과 냉철한 합리적 정신에 있다. 여기에 입각한 정신과 육체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조화,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에는 이러한 르네상스의 정신을 알려주는, 고대 신화를 간직한, 아름다운 조각들로 넘쳐 흐른다. 마치 야외조각 전시장과도 같다.
▲ 로지아 델라 시뇨리아(Loggia della Signoria )
메디치 가문 메디치 1세의 명으로 그를 호위하는 병사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집합장소로 사용한 곳으로 지금은 조각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이다.
▲▼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Rape of the Sabine Woman)
BC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 후 자기 부족에게는 여자가 부족한 것을 깨닫고(병력을 증원하고자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주변부족인 사빈인에게 여자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빈 측에서 이를 거절하자, 로물루스는 로마 병사들에게 납치한 여자를 부인으로 삼아도 좋다는 약속을 하고, 로마의 축제에 사빈 족을 초대한다. 이에 고무된 로마 병사들이 축제도중에 사빈 남성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끌고가 강간하고 아내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여인을 잃은 사빈인들이 힘을 길러 다시 로마로 쳐들어왔을 때, 로물루스의 지령대로 로마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아내가 되어 아이까지 낳은 그 여인들은,아이들을 데리고 두 세력의 싸움을 말리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르게 된다. (잡혀가는 딸을 막지 못하는 아버지의 처절한 표정을 묘사한 잠볼로냐의 작품이다)
▲▼ 메두사의 머리를 벤 페르세우스(Perseus)
벤베누토 첼리니작품의 '페르세우스' 상은 3.2m의 브론즈로 1554년 작(진품은 바르젤로 미술관에 소재)이다. 첼리니는 금은 세공가로로 유명하다. 교황의 보좌로 로마 대약탈 때 산탄젤로성에서 직접 전투에 나서기도 했고, 과장과 자찬으로 뒤섞인 자서전을 남긴 괴짜 매너리즘 예술가이다.
페르세우스(Perseus)는 제우스와 다나에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딸이 낳는 아들에게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는 딸인 다나에(Danae)를 청동의 탑위에 가두어 두었는데, 탑안에 갇힌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황금의 비' 가 되어 다나에에게 접근했다. 그 뒤, 다나에는 임신을 하게 되고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아기가 태어나자 아크리시오스왕은 겁을 먹고 딸과 손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러나 제우스의 보호를 받은 그 상자는 표류하던 끝에 무사히 세리포스 섬에 도착했다. 그들은 친절한 어느 어부에게 발견되었고 페르세우는 어부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페르세우스가 장성하게 되면서 이 나라의 왕이었던 폴리덱테스는 다나에 에게 결혼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이를 반대하므로 폴리덱테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제거하기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메두사는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신전에서 사랑을 한 죄로 아테나의 저주로 괴물로 변한 여자이다.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은 누구나 돌로 변하기 때문에 그녀가 살고 있는 동굴주위에는 돌로 변한 많은 사람이나 동물들의 흔적이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여러 신들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신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테나는 그에게 방패를 주었고 헤르메스는 마법의 칼을 주었다. 하데스는 쓰기만 하면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투구를 주었다. 페르세우스는 또 님프에게서 하늘을 나는 신발과 메두사의 머리를 보관할 수 있는 자루를 받았다. 그는 메두사의 머리를 직접 보지 않기 위해 아테나의 방패 속에 반영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달려들어 머리를 베었다. 메두사의 자매들이 깨어나 무섭게 소리치며 그를 쫓아왔지만 하늘을 나는 신발을 신은 페르세우스는 재빨리 날아서 도망쳐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아틀라스를 만나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주고, 그를 돌로 바꿈으로써 그를 고통에서 풀어주었다.
▲ 베키오 궁전 앞의 '다비드' 상 &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 베키오 궁전 앞의 '다비드'상과 '카쿠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상' 앞에서 (잠간만!!...)
▲ 카쿠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상
▼▲ 피오페디의 아킬레스와 트로이공주 폴뤽세나(Polyxena)의 강탈
▲ '사보나롤라(Savonarola)'가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화형에 처해진 자리,
15세기 도미니쿠스 수도원(Dominican)'이 수도사로 '피렌체(Firenze)'의 수도원장을 지낸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는 1494년 '샤를 8세(Charles VIII)'의 이탈리아 침공을 계기로 '메디치(Medici)가문을 추방하고 인민정부를 세웠던인물로,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종교국가를 꿈꾼다. 신정(神政)을 통한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을 꿈꾸던 그는 교회와 대항하다 1497년 파문 당하였으며 이후 '피사(Pissa)와의 전쟁에서의 실패, '메디치(Medici)' 가문의모략에 의한 민심 이반 등으로 1498년 5월 23일에 2명의 동료 수도사와 함께 교수형에 처형된 후 다시 화형을 당하고 만다. 베키오궁 앞에 있는 바로 이 자리가 '신의 채찍'이라 불리우던 '사보나롤라(Savonarola)'가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화형에 처해진 자리이다.
▲ 로지아 델라 시뇨리아(Loggia della Signoria)의 사자상
▲ 켄타우르스를 공격하는 헤라클레스
▲▼ 물의 요정에 둘러싸인 바다의 신 '포세 이돈(넵튠)'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Bartolommeo Ammannati)'에 의해 만들어진 '넵튠 분수(Neptun Foundation)의 조각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넵튜누스(Neptunus)'를 중심으로 바다괴물 '스킬라(Scylla)'와 여자 바다괴물 '카리브디스(charibdis)'를 연결하며 만들어졌다. '웃고 있는 '사티로스(Laugthing Saturos)'등...
▲▼ 바다의 신 '넵튜누스(Neptunus)상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와 얼굴이 닮게 만든 바다의 신 '넵튜누스(Neptunus)상은 '피렌체(firenze)' 공국이 저 바다 너머까지 통치하게 되길 기원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8각형의 형태를 가진 분수의 높은 좌대 위에 세워진 이'넵튜누스(Neptunus)상은 19세기에 만들어진 '리플리카(Replica), 원작의 모사본으로 원작은 '로마 국립박물관(Museo Nazionale Romano)'에 있다
▲ 손목이 잘린 포세이돈
포세이돈의 오른쪽 손목이 날라가 버렸네요(윗 그림). 우리가 찾아간 바로 전날밤 술주정뱅이가 일을 저질럿다는 가이드의 해설...우리 일행이 부러진 손목을 보는 첫번째 관광객이라고...실은 고의적으로 공공기물의 파괴를 일 삼는 '반달리스트(Vandalist)'들이 동상에 올라가'넵튜(Neptunus)'의 손을 홰손한 것이라나(?)
▲▼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i Medici)'1세의 기마상
쟘볼로냐(Giambologna)'가 조각한 '피렌체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i Medici)'의 동상, 일명 코시모 일 베키오(Cosimo il Veccio)'라 불리우는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i Medici)'는 '메디치(Medici)'가문을 연 '조반니 디 비치(Giovani di Vici)'의 아들로 '피렌체 공화국의 부흥을 가져온 피렌체의 아버지라 불리운다.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보호자로 유명하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가문으로 3명의 교황과 왕들을 배출했다. '조반니 디 비치(Giovani di Vici)는 상업과 교황청(敎皇廳)의 은행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이를 기반으로 14세기부터 정치계에 등장하여 활약한다. 이후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i Medici)'는 정권을 장악하고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國父) 칭호를 받는다.
▲ 피렌체 시의 상징인 '도나텔로(Donato di Niccolo di Betto Bardi)의 사자상 '마르조꼬(Marzocco)
사자상 '마르조꼬(Marzocco)'는 피렌체 공화국의 요청에 의해 '산타 마리아 성당(Basillica of Santa Maria Novella) 내에 있는 '교황 마르티노 5세(Pope Martino V)'의 거처 앞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도나텔로(Donato)'에 의해 만들어졌다.
▲ 도나텔로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Donatello, Judith and Holofernes)','유디트 상(Statue of Judith)'
유디트 상(Statue of Judith)'은 '다비드 상(Statue of David)'과 함께 피렌체 공화국의 자유와 정의구현 정신의 상징이다. 1494년 피렌체를 침략한 프랑스 군대에 의해 야기된 무능한 '피에로 메디치(Piero de Medici)' 정권에 대항하는 공화국의 시민저항에 참여한 시민들은 메디치 궁에서 이 '유디트 상(Statue of Judith)'을 옮겨 이 자리에 세웠다. 동상의 좌대에는 이런 문귀가 새겨져 있었다 한다. "Regna Cadunt Lux, Surgunt virtutibus Urbes Cesavides Humili Colla superba Manu"(왕국은 호사를 통해 멸망하며 도시는 미덕을 통해 일어난다. 보라! 겸손의 손에 절단된 자의 머리를)
유딧서는 구약성서 외경에 속하므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서로 인정하지만 신교는 그렇지 않다. 유딧은 아름답고 행실이 바른 유대인 과부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가 침략해왔을 때 마을을 구했다. 그녀는 홀로페르네스와 식사를 함께했다. 장군은 술에 취해 음란한 수작을 부리며 성적 대가를 요구했다. 유딧은 전혀 다른 선물을 주었다. 장군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유딧은 언월도로 그의 목을 잘랐다. 지휘관이 죽자 병사들은 겁에 질려 유대인들의 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패주했다. 유대인들은 유딧의 용기와 재간을 높이 평가했다.
▼▲ '파트로클로스(Patroclus)의 시신을 안고 있는 메넬라오스(Menelaus)'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서 헬레네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그 대신 전쟁에 나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한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기원 전 230년~240년의 그리스 조각품을 플라비안 황조(네로 이후의 새 황조,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도미티아누스) 때 복사한 것이다. (중앙)
생상의교향시 죽음의무도 dansemacab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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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피렌체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