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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평설
별의 감옥/ 장석남(1965~ )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새벽 거리를 저미는 저 별
녹아 마음에 스미다가
파르륵 떨리면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
유일한 문밖인 저 별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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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부탁을 받았습니다. 2학기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좋을 시를 한 편 추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저는 밝고 진취적인 의미를 담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이미 희망적인 감정의 자극에 지쳐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어떤 시를 소개해주시면 좋을까? 하고요.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어도 무엇인가 근사하고 강렬한 한 문장이 있다면 앞으로 살면서 두고두고 기억나겠다 싶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처럼. 저는 그 선생님께 「별의 감옥」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감옥을 한 채씩 삼킨 존재들이다. 생각이라는 감옥, 마음이라는 감옥. 우리는 이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어쩌면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이다. 다만 이 감옥에 무엇을 더 들일지는 선택할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을 들이면 나는 불안이나 두려움과 함께 살아갈 것이고, 사랑이나 다정을 들이면 나는 사랑으로 다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실 이 감옥의 문은 열려 있다’ (박준)
빈 들 / 고진하
늦가을 바람에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 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 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 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 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 들
빈 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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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시인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시인이고, 지금도 강원도에 산다. 그의 피에는 강원도 산골짜기 물이 흐르고, 그의 숨에는 강원도의 공기가 머물 것이다. 시인의 육신이 자연에 기대 있는 것처럼, 그의 생각과 마음도 자연에 의탁해 있다. 그러니 그의 시가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서 빚어지는 건 당연하다. 자연은 의지할 만한가. 그렇다. 자연은 그렇게 든든한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자연이 항상 채우는 것,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피를 채우고 우리의 숨도 채우지만 때로 자연은 텅 비어 있다. 비어서 무엇을 하나. 빈 자연마저 허투루 있지 않다. 그것은 늘 우리에게 뭔가를 준다. 비어서도 우리를 껴안아 주려고 한다.
고진하 시인의 ‘빈 들’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삶의 첫 깃발이었다는 말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시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어 있는 들을 닮아 나도 다 내려놓자. 비어 있는 곳에 뭔가가 꽉 차 있다. 그것 따라 나를 채워보자. 이런 마음이 이 시를 만들었고, 시인의 삶을 만들었다. 나중에 시인은 ‘다시 빈 들에서’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빈 들의 마음이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무엇을 얻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곳이 가득 차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생각을 처음부터, 마음을 처음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다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의 빈 들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 나민애
아내와 나 사이/이생진(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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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르다가, 서로 알아가며 설레셨겠지요. 영원을 맹세하며 별도 달도 여럿 따셨겠지요. 알면 알수록 달라서 다투셨겠지요. 다툴수록 놓아주니 나란히 걷게 되셨겠지요. 기억의 진주와 망각의 포말 사이 누구라도 우두커니가 되겠지요. 기억이 알아가던 기쁨이라면, 망각은 알다가도 모를 신비는 아닐는지요. 기억이 사라진들 앞산 무지개가 없던 건 아니겠지요. 나비가 꽃을 잊은들 꽃이 거짓은 아니었겠지요. 너무 멀어서 그리웠고, 너무 가까워서 먼 당신과 나 사이 우주. / 반칠환(시인)
완행열차 /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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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기나긴 철로 위를 달리지만 언젠가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우리 인생길도 그렇지요. 그 여정에는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급하게 달릴 때는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 보입니다.
허영자 시인의 인생 여로(旅路)도 그랬습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죠. 칼을 찬 일본 순사가 말을 타고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해서 숨었습니다. 어른들은 놋그릇 공출 때문에 식기들을 땅속에 묻기 바빴지요.
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 손곡리는 지리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좌우대립과 6·25 때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숱한 비극이 이어졌지요. 손곡리는 전쟁 통에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나중에 장항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완행길의 ‘누비질’과 ‘홈질’ 원리
유년 시절부터 숨 가쁜 ‘급행의 속도’에 휩싸인 그를 차분하게 다독이고 어루만져 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였지요.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어릴 때 동생을 잃은 뒤 무남독녀로 자랐죠. 그래서인지 지극한 사랑과 엄격한 훈육을 동시에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 자양분의 뿌리에서 둥글고 완만한 ‘모성(母性)의 시학’이 싹텄지요.
그의 어머니는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의미를 그에게 일깨워줬습니다.
‘누비질’은 옷감 두 겹 사이에 솜을 얇게 넣고 바늘로 촘촘히 꿰매는 일입니다. 손놀림이 섬세해야 하지요. 그러다 보면 세상 보는 눈도 그만큼 꼼꼼하고 세밀해집니다.
‘홈질’은 두 옷감을 포개어 바늘땀을 위아래로 드문드문 잇는 일입니다. 이 또한 삶의 앞뒷면을 찬찬히 살피고 서로 포개어 깁는 자세와 닮았지요. 이렇게 손금 들여다보듯 자세히 관찰하면 인생의 내면 풍경이 속속 눈에 들어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인 ‘자수(刺繡)’에도 이런 마음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번뇌/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토 가는 길도/ 보일 성싶다.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2008년 제1회 목월문학상 수상시집 『은의 무게만큼』에서 어머니와 자신의 세월을 바느질처럼 촘촘하게 겹쳐 누볐지요. 그 시집 속의 시 ‘은발’에서 ‘머리 위에/ 은발 늘어가니/ 은의 무게만큼/ 나/ 고개를 숙이리’라고 노래한 원숙의 미학도 어머니로부터 체득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집을 아흔두 살의 어머니에게 바쳤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2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늘 “예술과 모성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얘기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여성은 10개월 동안 태아를 품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무게만큼 인생의 무게를 알고,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모성의 시학’을 통해 그는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선생(교수)으로서, 시인으로서의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어머니이자 선생인데, 자식이건 제자건 누군가를 기르는 일은 가장 어렵기 때문에 가장 거룩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완행의 여정’에서 얻은 성찰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그가 ‘섬세한 필력으로 고도의 정제된 시를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호평을 받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벌써 여든이 넘었지만 그는 “오늘도 나의 재능을 회의하며 노력하는 유목(幼木·어린 나무)으로서 한없이 겸손하게 한 획 한 점을 아껴가며 엄격하게 시 쓰는 일만이 내가 할 일”이라며 스스로를 낮춥니다.
이 또한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라는 그의 인생철학과 맞닿아 있지요. ‘늙은 역무원’과 ‘들국화’ 사이에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까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라는 구절이 그래서 더욱 속 깊게 다가옵니다.
내친김에 그의 완행 인생이 낳은 또 다른 명시 ‘감’을 한 편 더 소개합니다.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물 속의 사막 / 기형도(1960~1989.3)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 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린다
무정한 옥수수나무…… 나는 천천히 발음해본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흰 개는
그 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비닐집, 비에 잠겼던 흙탕마다
잎들은 각오한 듯 무성했지만
의심이 많은 자의 침묵은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한다
밤 도시의 환한 빌딩은 차디차다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오신다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린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빛은 터진다
미친 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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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속에는 슬픈 고향이 있다/ 강인한
기형도의 시. 그의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진한 슬픔에 젖게 한다. 서른 살의 나이로 그는 심야극장에서 앉은 채로 죽음을 맞았다. 뇌졸중. 그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를 아껴주던 누이가 교회에서 죽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연세대 정법대학을 나온 그는 신문사 기자로 재직하며 항상 '절망'을 노래하듯 입밖에 내뱉었다. 냉소적인 성격의 시인은 불우한 가계의 일원이었다. 마치 에드거앨런포가 그렸던 몰락한 어셔 집안처럼.
신문사에서 숙직을 하는 밤이었을 것이다. 장마비가 유리창에 흘러내리고, 가로수의 푸른 이파리들이 바람에 날아와 부딪쳤다가 어디론가 떨어져 내린다. 밤 세시에 빌딩에서 내다보는 도시의 길들은 물바다를 이루어 마치 온통 물의 길인 양 물줄기가 사방에서 꿈틀거린다.
자다가 한밤중에 문득 눈이 떠진다. 두 시, 혹은 세 시에 갑자기 무엇에 찔린 듯이 일어나 본 적이 있는가. 그 시간이라면 전날 밤부터 잠을 안 자고 철야 근무를 하다가, 또는 악몽에 놀라 깨서 맞닥뜨린 시간이라야 한다. 새벽이라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 밤 세시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깨어서 일어나 있다. 시계에서 밤 세시를 읽는다. 두 시, 혹은 세시의 깊은 밤에 나도 문득 눈떠 본 적이 있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창자를 면도날로 에이는듯한 무서운 통증에 놀라서 눈떠 보니 그게 두 시였다. 세시라 해도 마찬가지다. 위궤양이 심했을 때의 경험이다. 한밤중,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점의 인간이라는 이름의 작은 섬. 그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단절과 고립의 쓰라림이란....
그는 지금 빌딩 안에서 밤을 지내고 있다. 신문사의 당직인 밤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밤 세시에 눈을 뜬다. 그를 깨어나게 한 것이 빗소리 때문인지, 무서운 악몽 때문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 나가서 약을 사거나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난처한 시간이다. 상점도, 병원도, 식당도 문을 닫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깊이 잠든 도심에서의 밤 세 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일상적 행동이 '금지된' 시간이다.
여름이다. 장마비가 빌딩을 무너뜨릴 듯이 무섭게 쏟아진다. 한밤에 그는 창가에 서 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언저리로 퍼붓는 사나운 빗줄기가 보인다. 도로의 아스팔트 위를 빠르게 흘러가는 물줄기, 무어라고 악을 쓰며 빗줄기가 흘러내리지만 그는 빗소리가 말하는 의미를 해독하지 못한다(물 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때로 거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빗발을 세차게 몰아붙이고 가로수 이파리가 가지에서 찢겨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힌다. 그 나뭇잎은 그에게 어린 시절 고향의 옥수수 잎을 연상시킨다. 성장한 뒤 누구나 떠나온 고향은 있게 마련이고 고향의 기억은 대체로 슬프다. 그의 고향 옥수수밭이 무성하던 여름의 장마철이 겹쳐진다. 홍수로 흙탕물에 잠겨 가던 옥수수 밭.
그는 고향을 자기 의지로 떠나왔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개가 그해 장마철에 집을 나간 것처럼 고향집을 떠나왔다. 서울에서, 보란 듯이 한 번 일어서리라 단단히 굳은 각오를 하고. 그렇지만 세상이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이십대 청년이 서울에서 만난 것은 도처에 절망뿐이었다.
바람이 거세게 빌딩 유리창을 뒤흔든다. 그는 꼼짝하지 않고 서서 그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다. 유리창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어떤 나뭇가지와 이파리는 마치 사람 같기도 하다. 누구일까. 아, 그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아버지가 잠시 유리창에 대고 그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그렇게 슬피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이파리를 단 찢긴 가지는 아래로 떨어져 갔다. 아버지의 고향은 북쪽에 있었고, 그 북쪽이 보이는 섬에 정착하여 살며 언젠가는 당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리란 생각을 잊지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소망한다는 것, 그 작은 소망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자는 얼마나 슬픈 사람일 것인가.
나는 아버지처럼 헛된 삶을 살지는 않으리라. 그런 각오를 스스로 다짐하며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서울에서의 삶을 시작하였으리라. 밤비에 젖어서 번들거리는 유리창에 거울처럼 비치는 제 얼굴이 어쩌면 젊은 날의 아버지 얼굴 같기도 하다. 검은 유리창 거울에 비친 와이셔츠의 흰빛, 한밤의 빌딩 속에서 만난 '악몽'을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운다. 젊은 사내가 빌딩 안에서 미친 듯이 소리쳐 운다.
기형도의 시 「물 속의 사막」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여름밤 장맛비, 빌딩 안, 밤 세 시. 도심 속의 한 점 섬인 양 완벽하게 단절되고 구원이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는 갇혀 있다. 제목에서의 '사막'은 막막한 절망의 심정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금지된다,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통과하지 못한다" 등 부정 어법에서 끼치는 절망감은 흑백의 대비적인 풍경 속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 속에서 '밤, 석탄가루, 검은 유리창'과 함께 '흰 개, 비, 비닐집, 환한 빌딩, 와이셔츠 흰빛'의 흑백 대비는 어쩌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밤 세시의 풍경 속에 유일하게 '푸른 옥수수잎'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과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을 뿐, '무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2002년)/ 강인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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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연구에서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 고성만
대학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성석제의 회고에 따르면 정초 세배 온 동네 사람들과 모처럼 들어온 양주를 컵으로 마시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눕게 된다. 그 결과 어머니 장옥순씨가 생계 일선에 나서고 누이들은 신문 배달 등으로 가계를 도와야 했으며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기형도는 내성적 생활을 해나간다. 아버지는 타계할 때까지(1991. 8. 19) 23년을 병으로 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상당 부분 축소된다.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 「위험한 家系·1969」
아버지는 병에 걸렸고,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험한 家系·1969」는 가족의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하고 묻는 것으로 희망을 암시하지만, 확신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또 어디로 도망치셨는지(「너무 큰 등받이 의자」)'와 같은 진술을 낳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폭풍의 언덕」)'와 같은 부재의식으로 연결된다. 훗날 성인이 되어 회상한 아버지의 모습은 '폭풍'이라든지 '물'의 이미지와 연결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슬픔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어두운 기억 때문인 듯하다.
학자풍 오후 나란히 짧은 세모 잠. 가난한 아버지, 왜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을까? 낡은 커튼을 열면 양철 추녀 밑 저벅저벅 걸어오다 불현듯 멎는 눈의 발, 수염투성이 투명한 사십. 가난한 아버지,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을까? - 「너무 큰 등받이 의자」
시인의 아버지는 '학자풍'이라 묘사됨으로써, 당시 시인이 살았던 농촌에 정착한 인물치고는 매우 지적인 이미지의 소유자이면서, '물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아 뜨거운 정열을 소유한 인물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을 깨우쳐주는 내적 요소로 작용한다. 성인이 된 시인은 그러한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슬픔을 연상하는 요인으로 인식한다.
장맛비 속의 빌딩에서 비는 사정없이 퍼부어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리'고, 잊었던 기억처럼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리'고 말한다. '헛것을 살았다'고. 시인이 곧 아버지가 되어 말한다. '살아서 헛것이었다'고. <물 속의 사막>
시인과 아버지는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은 삶에 대한 냉철한, 뼈저린 반성의 표현이다. 즉, 아버지의 생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며, 아버지의 생이 자신의 생과 동일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며, 아버지가 살아왔던 생이 '헛것'이었다면 자신의 생도 '헛것'일거라고 느끼는 허무의식의 소산이다. 여유로운 유년 생활을 제공해주지 못했던 아버지를 자신 속에서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이미 늙어버린 것 같은 허무감에 빠져든다.
기형도에게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자상한 부성 그 자체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쓰러져서 장기간에 걸친 투병생활에 들어가자 시인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고, 어린 서정적 자아는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우(「위험한 家系·1969」)'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늙은 사람」
예전 근엄하고 자애로웠던 아버지와, 날이면 날마다 병자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현재 아버지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컸다. 그래서 감수성이 예민했던 성장기에는 커다란 정신적 장애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미워하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연민하기에는 상처를 주는 아버지를 '혐오'한다. 그러나 청년기의 자아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는 자신과 갈등한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 「늙은 사람」
부정할수록 냉혹하게 다가오는 현실 앞에서 서정적 자아는 자아마저 객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막상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비극적 마음의 상태를 발견한다.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 「病」
회생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아버지의 존재로 인하여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자아는, 자기 자신을 '가지 잘린 늙은 나무'로 인식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