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튜버가 서울 한강에서 가늘고 긴 생명체들을 뜰채로 한 번 퍼올리자 플라스틱통 절반을 채웠다. /TV생물도감
최근 한밤중 서울 한강을 뒤덮은 소형 괴생물체 군집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 ‘TV생물도감’이 지난 23일 공개한 영상이 발단이었다. 이 영상에는 어린이 손가락 크기의 생물체들이 무더기로 꿈틀대며 한강 수면을 헤엄치는 모습이 담겼다. 육안으로 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체불명의 생물이 선유도 인근 한강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유튜버가 뜰채로 한 번 퍼올렸을 뿐인데, 플라스틱통 절반을 채울 정도였다.
◇➀징그러워 보이는 괴생물체, 알고보니 짝짓기 중?
한강에 무더기로 출몰한 괴생물체의 정체는 갯지렁이 중 하나인 ‘강참갯지렁이’다. 갯지렁이는 그 이름 때문에 흔히 바다나 갯벌에만 산다고 생각되지만, 하구나 강에도 서식한다. 강참갯지렁이는 강어귀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생물이어서 평소 물 위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최근엔 물 위에서 발견된 것일까.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초가 ‘번식기’이기 때문이다. 강참갯지렁이는 물에서 체외수정을 한다. 암컷은 몸을 터뜨려서 난자를 방출하고 수컷은 정액을 내뿜는데, 수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떼를 지어 올라와 헤엄을 치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수영하는 강참갯지렁이를 보고 있으면 ‘지렁이가 원래 수영을 잘하는 동물이었나’하는 의문이 든다. 참갯지렁이과는 번식기가 되면 눈이 커지고 유영하기 좋도록 다리가 넓적하게 변한다고 한다.
국립생물자원관 박태서 연구관은 “이 시기에 암컷과 수컷의 몸은 난자와 정액으로 가득 차게 된다”며 “체외수정 시 난자와 정자가 동시에 방출돼야 수정 확률이 높아지므로 갯지렁이들이 동시에 헤엄쳐 일정 기간 생식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월 중순부터 한강에는 강참갯지렁이들이 생식활동을 위해 수면에서 헤엄친다. /TV생물도감
◇➁지금 한강 가면 나도 갯지렁이떼 볼 수 있을까?
갯지렁이의 생식 활동을 보려면 달 주기를 따져야 한다.
말 못하는 강참갯지렁이가 “우리 한날한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동시에 물에 떠오르는 걸까. 번식기의 강참갯지렁이들은 빛에 의한 자극이나 달 주기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참갯지렁이 몸 안에는 달 주기를 감지하는 일종의 생체리듬이 내재돼 있어 일제히 수면에 올라와 번식 활동을 한다. 이 강참갯지렁이들은 마지막 힘을 내 자손을 퍼뜨린 뒤 생을 마감한다.
보름달과 초승달 사이에 특히 잘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초승달이 떴던 지난 25일 오전 1시쯤 기자가 양화 한강공원을 찾았을 땐 갯지렁이떼를 볼 수 없었다. 다음 보름달을 기다리더라도 이미 대부분 산란을 마쳤다면 유튜브 영상처럼 무리 지어 헤엄치는 광경은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➂번식 중인 강참갯지렁이, 낚시 미끼로 써도 되나요?
“안 그래도 미끼용 갯지렁이는 비쌌는데 잡아다 쓰면 딱이네요!” 해당 영상을 본 낚시 애호가들이 남긴 댓글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말한다.
홍재상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는 “이 시기 참갯지렁이는 산란 행위를 마치고 힘이 다 빠져 흐물흐물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미끼로서의 활용 가치가 크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강에 출현하는 강참갯지렁이는 더 연구가 필요한 종으로 보인다”며 “생태학적으로도 중요성이 크기에 포획하기보다는 보호해 달라”고 당부했다.
갯지렁이를 활용한 베트남 음식 짜르어이. /베트남넷
◇➃갯지렁이 먹는 곳도 있다던데…
몸의 많은 부분이 단백질로 이뤄진 이 참갯지렁이를 먹어도 되는지 묻는 네티즌들도 많았다. 베트남에선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섞이는 구역에 서식하는 갯지렁이를 활용한 음식이 있다. 계란과 다진 돼지고기, 귤껍질, 양파를 섞어 부침개처럼 먹는 ‘짜르어이’라는 음식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