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만 타고 경북을 돌아보기로 했다.
얼기설기 그물처럼 뻗은 길을 잘 갈아타면 경북 전역을 멈춤 없이 도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 봤다.
경북을 대구 인접권과 북부권, 동부권으로 나누어 각 권역을 순환한 뒤 경북 전체를 한 붓으로
선을 그리듯 둘러보는 방식이다. 첫 번째 행선지는 경북 북부권이다.
경북에서 가장 추운 곳인 만큼 겨울 풍경을 가장 잘 보여줄 듯싶었다.
안동에서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상주, 의성, 청송, 영양을 거쳐 다시 안동으로 돌아오는 코스.
교통수단은 오직 시내버스다. 느리게 떠난 길에서 만난 경북의 사람과 풍경들.
아, 이 환상적인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만하게 봤던 길 떠나기
미리 각 시`군의 시내버스 시간표를 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각 노선에는 주요 행선지만 나와 있을 뿐 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버스 시간도 마찬가지. 시발점`종점의 출발시각만 있을 뿐, 정확하게 몇 시 몇 분에 정류장에
서는지 알 길이 없다.
시내버스 여행에서는 튼튼한 '두 다리'와 '인내심'이 필수다.
농어촌 버스는 대개 잦아야 1시간에 한두 번 간격으로 다닌다.
새벽 첫차와 오후 막차 딱 두 번만 들어가는 마을도 부지기수다.
버스 정류장이 원하는 목적지와 가깝지 않은 경우도 많다.
농어촌 버스는 손님이 서 있거나 손을 흔들지 않으면 에누리없이 무정차 통과다.
대략 오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여유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짐작하는 시간보다 일찍 나와야 하고, 버스가 늦게 도착하더라도 믿음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오전 7시 55분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안동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에서 안동까지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고, 1시간 40분이 걸린다.
일반 6천400원, 우등버스는 9천300원. 안동버스터미널 주변은 허허벌판이다.
원래 안동버스터미널은 안동역과 가까운 운흥동에 있었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 낡고 불편했던 버스터미널을 지난해 1월 지금의 송현동 자리로 옮겼다.
안동버스터미널에서는 시내 노선인 0, 0-1, 1, 2, 3, 11, 80, 81번이 운행한다.
150m가량 걸어 호암삼거리에 있는 호암마을 정류장으로 가면
28, 40, 42, 43, 44, 46, 51, 72, 76, 77번 등도 탈 수 있다.
시내버스로 봉화 방면으로 넘어가려면 도산서원을 거쳐 봉화 청량산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안동을 그저 스쳐가는 도시로 보내기는 아쉬웠다.
이래저래 고민한 끝에 첫날은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인근에서 보내기로 했다.
병산서원으로 가려면 46번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을 경유해야 한다.
하회마을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병산서원은 하루 3회
(오전 7시 50분, 10시 30분, 오후 2시 40분)만 들른다.
배낭을 고쳐매고 목도리에 검은색 비니, 두꺼운 장갑을 끼고 터미널을 나섰다.
콧구멍으로 들이치는 시큰한 공기.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3.5℃. 한파 특보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그런데 46번 버스를 탈 버스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 시내버스 베이는 주차장 조성 공사로 이용이 중단된 상태. 길 건너편에 붙은 현수막은 '도로 건너편 150m'라고 적혀 있다. 사방이 도로인데 어느 도로를 건너란 말인가.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야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정류장 앞 소고기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물로 '브런치'를 해결하고 오전 10시 45분 병산서원행 46번 버스에 올라탔다.
병산서원을 둘러본 뒤 하회마을까지 이어지는 유교문화길을 걷기로 했다.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 자락을 돌아가는 4㎞ 길이다. 창 밖은 온통 눈밭이다. 35분 정도 달렸을까.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세요. 버스가 더 못 들어갑니다." 퍼뜩 놀라 고개를 드니 풍천배수장이 보인다. 진입로가 온통 빙판길이다. 여기서부터 병산서원까지 2.6㎞를 걸어가야 한다. 눈길로 타박타박 발을 옮겼다. 왼쪽으로 낙동강을 눈에 담으며 걸어가는 길이다. 인적없는 길을 30여 분가량 걸으니 병산서원 입구다. 매점과 민박, 식당이 있지만 문을 연 곳은 없다. 강변을 달렸을 사륜 오토바이는 등허리 위에 하얀 눈이불을 덮었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 도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에 꼽힌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풍산현에 있던 풍산 류씨의 서당을 지금 자리로 옮긴 것이다. 서애와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복례문을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계단 위에 자리 잡은 만대루(晩對樓)를 만난다. 병산서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오르막 지형을 살리고 휜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이용했다. 계단은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2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만대루 기둥 사이로 낙동강과 병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자연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모습이다. '만대'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는 뜻의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온 말이다.
◆화산 자락 너머 연꽃을 만나다
병산서원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두 갈래로 갈라진 '하회마을길'이 나온다. 둘 다 하회마을길이지만 산쪽 길은 '화산등산로-하회마을길'이라고 적혀 있다. 한참을 망설이다 왼쪽 길을 택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오른쪽 길은 화산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하회마을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리는 멀고 힘은 곱절로 들었을 터이다.
강변을 따라 걷다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면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끼고 도는 길이다. 푹푹 빠지는 눈 위로 발자국이 어지럽다. 엄동설한에 눈 쌓인 산길을 걷는 이가 혼자만은 아닌 듯해 꽤 반갑다. 산자락 오솔길은 좁지만 평탄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눈길과 적막. 오솔길 내내 굽이굽이 돌아가는 낙동강이 눈에 든다. 뽀득거리는 발을 쳐다보며 걷는데 갑자기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꿩 두 마리가 낯선 소리를 피해 달아난다. 두어 발을 옮기는데 또 푸덕거린다. 역시 꿩이다. 1시간가량 산길을 걸으면 정자와 벤치가 나타난다. 정자 위에 오르니 화산을 감싸 도는 강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뭇잎을 털어낸 가지에는 하얀 눈꽃이 피었다.
이곳에서 500m가량 산 아래로 내려서면 너른 논밭이 나타난다. 눈 덮인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멀리 옹기종기 모여앉은 한옥 기와와 초가지붕이 보인다. 하회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다. 꼬박 3시간을 걸은 셈이다. 서둘러 부용대로 향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데 나루터에 사공이 없다. 어쩔까 서성이는데 차에 타고 있던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배 탈 꺼니껴?" "네!" 넙죽 대답하고 백사장의 도선장으로 종종거리며 내달렸다. 중년 남녀 3명이 동승할 모양이다. 뱃삯 3천원을 내고 올라앉자 모터가 부르르 몸을 떨며 나룻배를 앞으로 밀어낸다. 얼마 전만 해도 사공이 삿대를 밀어 배를 옮겼다 했는데, 옛 정취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강 건너편으로 가는데 채 1, 2분이 걸리지 않는다. 백사장에서 냉큼 내려 계단을 오르면 옥연정사를 만난다. 서애 류성룡이 1586년(선조 19년)에 지은 곳이다.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을 완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마당을 지나 화천서원을 왼쪽 길로 오르면 부용대다. 함께 배를 탔던 남자가 "미끄러워서 난 안 올라간다"며 버틴다. 신을 보니 검은 가죽 구두다. 두어 마디 거들며 보채던 여자들은 이내 포기한 듯 남자를 버려두고 간다.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은 무릎을 펴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럽다.
부용대(芙蓉臺)는 하회마을 서북쪽 해발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의 고즈넉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용대에서 보면 하회마을은 물 위에 핀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 연꽃을 보는 자리라 부용대다. 마을은 낙동강이 휘돌아가는 북쪽으로 만송정 솔숲을 목도리처럼 맸다. 낙동강 모래 바람과 매서운 겨울 북풍을 막아주는 고마운 숲이다. 마을 중심에 불쑥 머리를 내민 노거수는 삼신당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진당과 충효당, 화경당 북촌댁이 눈에 들어온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날 선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혼자 여행 다니면 안 무서우니껴?" 동행한 아주머니가 말을 붙여 온다. 씽긋 웃으며 "병산서원에서 걸어왔다"고 대꾸하자 "아이고, 그 길을 우찌 왔니껴" 한다. 강가로 내려오니 바람이 더 차다. 배에 오르니 사공이 따끈한 커피 한잔을 건넨다. 배에서 물을 끓여 탄 인스턴트커피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얼었던 내장을 녹이는 느낌. '별다방' 아메리카노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회마을은 기와집 100여 채와 초가집 130여 채가 담장과 길을 사이에 두고 처마를 맞대고 있다.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에 초가들이 둘러앉은 점도 특징이다. 마을 안 골목길에는 초가집 지붕을 따라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누런빛 초가, 줄지어 매달린 고드름이 빚어낸 겨울의 풍경. 하회마을에서 가장 많이 보는 건 담장과 굳게 닫힌 대문이다. 문화해설사가 있지만 나홀로 여행객이 만나기도 힘들고, 설명해주는 이가 없으니 '수박 겉핥기'로 지나치기 일쑤다. 마을을 휘리릭 도는 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큰 고택이자 옛 한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사경당(북촌댁)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두 명이 잘 수 있는 방이 20만원. 시내버스 여행과 어울리지 않는 고가(高價)다. 하지만 장작으로 군불을 때는 전통 한옥에서 잘 기회가 그리 흔한 건 아니다. 사실 깔끔한 방에 깔린 부드러운 솜이불과 따끈한 구들장의 유혹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