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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 `故백선엽 현충원 안장` 발언 논란 …
"우리민족에 총 쏜 공으로 묻으면 되겠냐"^^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진행자 노영희(사진) 변호사가
지난 13일 고(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문제와 관련해
"우리민족인 북한에게 총을 쏴서 이긴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으면 되겠냐"고 말해 물의를 빚고 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진행자가 아니라
패널로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냐"며
"후속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노 변호사는 이날 MBN의 '뉴스와이드'에 출연하던 도중
백 전 장군 관련 언급을 하면서
"저는 현실적으로 친일파가 더 나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간도특설대가 가진 의미가 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왜 친일 행적을 하고 잘못했다는 반성도 없는 사람에게
묏자리까지 현충원에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백 전 장군이) 기본적으로
대전 현충원에도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에 사회자가 "우리 민족을 향해 총을 쐈던
6.25 전쟁이라고 말한 부분을 수정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노 변호사는 "6.25 전쟁은 북한하고 싸운 거 아나냐"며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느냐. 저는 잘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노 변호사의 발언은 보수 지지층 네티즌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릇된 역사인식을 기반으로 백 전 장군의 공을 폄하했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그러면 남침해 총을 겨누는 적과 싸우지 말고
모셔드려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고,
다른 네티즌은 "5·18도 결국은 같은 민족이자
같은 나라 군인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건이 아니냐.
과연 백 전 장군과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여론을 확인한 통합당도 자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말대로라면 6·25 전사자 모두 동족에게 총을 겨눈 사람들이니
현충원의 묏자리를 다 파내야 맞지 않겠느냐"며
"황당한 발언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방통위 차원에서 무거운 제재가 필요해 보이는 발언인 것 같다.
동시에 방송국 차원에서도 영구적인 출연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백 전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다만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그가 20대 초반 시절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 등)의 토벌을 목적으로 한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현충원 안장이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노영희 변호사 “6·25 우리민족 향해 총 쐈다고 현충원에 묻히나”…큰 오해 불러^^
-해명에도 논란 계속-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 등의 방송으로 얼굴을 알린
노영희 변호사가 생방송 중 오해를 살법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노 변호사는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13일 MBN 뉴스와이드에 패널로 출연한 노 변호사는
고(故) 백선엽 육군대장의 생전 인터뷰 장면을 본 뒤
“좀 전 화면에 나온 것처럼 동포들을 향해 총을 겨눈 것이 어쩔 수 없다.
동포에게 총을 겨눴다고 스스로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라며
“어떻게 저분이 6·25(때) 우리 민족을 향해서 총을 쐈다고 해서
그게 현충원에 묻힙니까?”고라 말했다.
이 말에 당황한 사회자가
“‘우리 민족(북한)을 향해 총을 쐈던 6·25 전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수정하실 의향이 없느냐”고 하자
노 변호사는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인) 북한하고 싸운 것 아닌가요?.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뭐가 잘못된 말이냐고 했다.
이어 “저는 현실적으로 친일파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자신의 발언이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지킨 것은 잘못한 일,
반민족적 행위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자
곧 발언을 정정했지만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0일 별세한 백 대장의 안장지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결정했다.
유족 측이 이에 동의했고, 만장(滿葬) 상태인 서울현충원은
묘역이 부족해 백 장군을 모시기 어렵다는 게 국가보훈처의 설명이다.
반면 여당 일각에선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때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이력을 문제 삼아
현충원 안장 시 파묘(무덤을 파냄)를 주장했다.
노 변호사는 “오해가 있으실까봐 정리를 하면 6·25 전쟁에서 아무리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과거에 친일 행적이 미화되거나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묻히거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제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그럼 현충원에 묻힌 6·25참전용사들은
모두 민족 반역자인가’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통합당 "노영희, 백선엽 모독…방심위 제소" vs 노영희 "오해"^^
"노영희 '우리 민족 북한에 총 쐈다고 현충원 묻히나' 발언"
"북한과 싸운 국군 용사들도 현충원 묻힐 자격 없다는건가"
노영희 "6·25 전쟁 공 세웠더라도 친일 미화 안 된다는 뜻"
[서울=뉴시스] 문광호 기자 = 미래통합당은 14일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해
"6·25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에게도 총을 쏴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고 해서
현충원에 묻히나"라고 발언한 노영희 변호사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통합당 미디어국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다수 방송에 출연하고 있는 노영희 변호사가
지난 13일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구국의 영웅 故 백선엽 장군을 향해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쐈다'
'대전 현충원에도 묻히면 안 된다'는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망언을 쏟아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어 "심지어 노 변호사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진행자가
'말씀하신 부분을 수정할 의향이 없냐'고 묻기까지 했지만
노 변호사는 '6·25 전쟁은 북한하고 싸운 것 아닌가'라고
자신의 발언이 실수가 아님을 재차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영희 변호사는 북한 인민군도 우리 민족이었다는 이유 하나만 갖고
전쟁 영웅이자 국민의 수호자인 백 장군을 모독했다"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반국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대전=뉴시스]강종민 기자 = 고(故) 백선엽 장군이 영면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14일 오후 군 장병들이 영결식 준비를 하고 있다. 2020.07.14.
통합당은 또 "노영희 변호사의 논리대로라면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싸운 우리 국군 용사들은
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없다는 것"이라며
"故 백선엽 장군 뿐만 아니라 온 국토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호국 영령을 욕보이고,
그 유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망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래통합당은 해당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의신청을 접수했다"며
"방심위는 하루빨리 심의절차에 착수해,
방심위가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노영희 변호사는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생방송 중 발언하느라 본의 아니게 오해의 소지가 있게 잘못 말한 것 같다"며
"방송 도중 오해의 소지가 있어 사과의 취지로 다음 발언으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까 발언한 것은 6·25 전쟁에서 아무리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과거에 친일 행적이 미화되거나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묻히거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제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고 서울현충원에 묻힐 수 없다면
사실은 대전현충원에도 묻히지 않는 것이 맞지 않느냐.
서울은 안 되고 대전은 된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의 자신의 방송 발언을 게재했다.
^^'뉴시스 기사논란' 노영희 변호사님 공식 답변^^
오후 저녁시간 노영희 변호사님 페북에 글이 하나
게시 되었다..몇일동안 노변님이 인터뷰한
뉴시스기사로 단체는 항의와 사실을 밝히는
보도자료 배포하느라 밤낮 없이 바빴는데
공개적인 답변이 아닌 본인의 고충 토로글이였다.
그 시각 피해 양육자는 아이를 안고 깊은 상처로 울어야만 했다.
게시한 글 밑으로
앞뒤 상황도 알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아무말들이 댓글로 달리면서
노변호사를 응원하고 있었다.
단체는 물론이고 피해아동과 양육자
당사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입혀놓고 힘들다뇨?
그래서 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댓글을 달았다
노영희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입니다.
법무법인 강남 노영희 변호사님은 6월 7일자
<뉴시스> 기사 “'가난한 아빠' 사정 안따지고
신상공개…배드파더스 논란”에서 이런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배드파더스가 신상정보 공개 대상인 당사자에게
한 두번 연락해보고 연락이 안 되면 묻지도 않은
채 이름과 사진 등을 바로 올려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육권자 주장만 듣고 실제 일정 기간 양육비가 지급 안된 기록이 있으면
그냥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 물론 나쁜 아빠들도 있겠지만
가난한 파더'가 나쁜 아빠는 아니지 않느냐.”
노 변호사님은 배드파더스 신상공개 과정에 대해
사실 확인도 없이 “들었다”,
“그런 것 같다”는 식의 서술어를 이용해 추측성 답변을 하셨습니다.
배드파더스 운영진은 신상 공개 전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사전통보 과정을 거치며,
무응답일 경우에도 답장을 줄 때까지 최소한
1주일을 기다립니다. 이외에도 양육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여러 서류 등도 검토합니다.
노 변호사님 주장대로 “뉴시스 기자가 사실 관계를
제대로된 알려주지 않았을 경우”라도,
변호사님이 추측성 답변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노 변호사의 자문은 일과 양육을 양립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한부모 가족들에게,
그리고 양육비에 대한 인식 개선부터 법률 개정까지
힘들게 노력하고 있던 여러 시민단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가난한 양육자가 아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가난한 아빠도 최소한 양육비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기사로 피해를 본 건 노 변호사님이 아닌 양육자들과
양육비 미지급으로 상처 받은
아동들입니다.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노 변호사님이 작성하신 내용 중 “알고보니 양쪽이 소송 중”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는 “뉴시스 기자님과
노 변호사님이 저희 질문에 대한 답변과
바른 정정 공식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밝혔습니다.
노 변호사님은 배드파더스 관련 인터뷰를 하거나
글을 쓰실 때 양육비해결총연합회 운영진에게
사실확인을 거쳐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루리-
더이상의 글은 직접 확인이 어려웠지만
전달받아 확인했다.
^^'가난한 아빠' 사정 안따지고 신상공개…배드파더스 논란^^
당사자 지급 의지·재정 상황 확인 안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양육비 지급…빚 1억
전 아내가 통장 압류…3개월간 지급 못해
"배드파더스에 상황 설명했지만 변화 없어"
구본창 "양육비는 아이 생존권…최우선돼야"
변호사 "확인 없는 일방적 공개 부적절해"
"푸어(Poor)파더라고 무조건 나쁜 아빠 아냐"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이혼 후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남성들의 이름·사진 등을 공개해 대중적으로 잘알려진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당사자의 지급 의지 및 재정 상황 등에 대한 확인이나 고려 없이
양육권자 말에만 의존한 채 신상정보를 공개해 억울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상에 신상정보가 한 번 공개되면
당사자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큰 만큼, 양육권자의 주장만 들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지급 의사 및 금전적 상황 등을
철저히 확인하는 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7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혼 후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A씨는
최근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 정보가 배드파더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건강 이상으로 이혼 후 하던 일을 관둬 수입이 없던 A씨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마이너스 통장 등을 통해
1억원 이상의 빚을 져가며 양육권자인 전 아내 B씨에게
양육비와 위자료 등을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혼 직후 법원은 A씨가 B씨에게
매달 양육비 80만원과 위자료 25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입이 없는 A씨는 위자료는 매달 100만~200만원씩 나눠 보내고,
아이를 위한 양육비는 80만원씩 보내겠다는 의사를 B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A씨의 예금거래 실적 증명서에 따르면
그는 이혼 직후인 지난해 6~7월 두 달 동안은 양육비로 80만원을 보냈지만,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매달 넣고 있는
자녀의 실손보험비를 제외한 76만7740원을 꾸준히 지급했다.
그런데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 동안은 B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했다.
"위자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며
B씨가 지난 3월15일 모든 통장들을 압류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모든 통장이 압류되면서 양육비가 지급되던 A씨의 마이너스 통장도 정지됐고,
이후 지난달까지 약 3개월간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드파더스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는 것이다.
A씨의 이름과 사진 등 신상정보는 지난달 23일 한 차례 올라간 이후 A씨가 배드파더스 측에 상황을 설명하고 항의하면서 '협의 중'으로 바뀌고 한 차례 내려갔지만, 지난 1일 사전 통보 없이 다시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오후 기준 A씨의 신상정보는 여전히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상대방이 통장을 압류하면서 그마저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상정보가 올라간 사실을 처음 알고 깜짝 놀라 배드파더스에 올해 초까지 양육비 등을 지급한 마이너스 통장 내역서를 보냈고, 사진을 내려달라고 했지만 응답이 없어서 신상정보 삭제와 사과문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배드파더스 대표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혼할 때 판결문과 양육비 부담 조서 등을 먼저 접수 받은 뒤 양육비가 지급된 내역을 확인하고 지급이 안 된 경우에는 신상정보 등재 전 사전에 통보를 한다"며 "A씨에게도 사전 통보를 했는데 둘이 협의가 안 돼서 이달에 다시 사진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카카오톡을 통해 A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셨다는 제보가 접수돼 사실관계의 확인을 위해 카톡을 보냈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A씨는 해당 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직 카카오톡으로만 신상정보 공개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식적으로 비용이 500만~600만원도 아니고 80만원이면 2개월치가 160만원인 만큼 통장이 압류돼서 지급을 못했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A씨도 빚이 있다고 하지만 양육비는 아이의 생존권을 위한 돈인 만큼 배드파더스 입장에서는 양육비 지급을 최우선 순위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2~3개월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신상정보가 일방적으로 공개될 경우 한 사람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경우가 될 수 있고, 그럼 당사자는 재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양육비를 지급하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한 두번 연락해보고 연락이 안 되면 묻지도 않은 채 이름과 사진 등을 바로 올려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상대방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억울한 경우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돈과 시간이 충분한 경우에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고의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사람들만 선별해서 신상을 공개해야 하는데, 사실상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인력이 부족한 만큼 양육권자 주장만 듣고 실제 일정 기간 양육비가 지급 안된 기록이 있으면 그냥 사진을 올리는 것 같다"며 "물론 나쁜 아빠들도 있겠지만 '푸어(Poor·가난한) 파더'가 나쁜 아빠는 아니지 않느냐. 금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양육비는 아이를 위한 돈인 만큼 빚을 내서라도 매달 꾸준히 내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는
구 대표가 제공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에 따르면
구 대표는 사전 통보 당시 A씨에게 전화 등 다른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구 대표는 "A씨의 경우 '상대방이 통장을 압류해서 지급을 못했다'고 하는데,
법무법인 강남 노영희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양측 모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노 변호사는 "배드파더스가 신상정보 공개 대상인 당사자에게
이어 "배드파더스가 정말 악의적이고 능력이 되면서
^^노영희 변호사 프로필 나이 백선엽 현충원 안장 반대^^
13일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는 노영희 변호사가
한 방송에서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쐈다.
현충원에 묻히면 안 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영웅이지만
일제시대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친일 행적이 있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10일 별세 후 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있었다.
이날 MBN 뉴스와이드에선 백 장군이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한 부분이 소개됐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강점기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 팔로군 등 항일 독립군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한 부대다.
당시 항일 독립군의 활약으로 곤경에 빠지자 친일파 이범익이
‘조선 독립군은 조선인이 다스려야 한다’며 설립을 주도했고 대부분 조선인으로 채워졌다.
간도특설대는 독립군 탄압은 물론
민간인 학살과 약탈, 고문, 강간으로 악명이 높고 활동이 특히 악랄해
소속 장교는 물론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에서 친일청산작업이 실패한 탓에
일본군 ・ 만주군 출신 군인들이 그대로 군국지도부가 되었고
간도특설대 출신들이 게릴라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에 많은 역할을 했다.
이에 패널로 출연한 노영희 변호사는 방송에서 이해가 안 된다.
저분이 6‧25 전쟁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쏘아서 이긴 그 공로가 인정된다 해서 현충원에 묻히냐,
저는 현실적으로 친일파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전 현충원에도 사실 묻히면 안 된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진행자가 말씀 중에
우리 민족을 향해서 총을 쏘았던 6‧25 전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수정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노영희 변호사는
6‧25 전쟁은 북한과 싸운 거 아닌가 라면서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
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은
기사 제목에 노변호사의 친일언급문제는 빼고
6.25 당시 우리민족북한에게 총을 쏜 백선엽 현충원에 묻히면 안되라며 보도했다.
이에 노 변호사가 '우리 민족에게 총을 쏜 백선엽을 어떻게 현충원에 안장시키느냐'는 발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져나갔고 일부 보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그럼 현충원에 묻힌 6·25참전용사들은 모두 민족 반역자이냐" 등의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이후 노 변호사는 "오해가 있으실까봐 정리를 하면
6·25 전쟁에서 아무리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과거에 친일 행적이 미화되거나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묻히거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제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다"고 정정했다.
한편 노영희는 1968년 출생으로 올해나이 53세 이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 학사/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인지심리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인지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했다.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종편 등 각종 방송에 법률 전문가로 출연하고 있다.
영재교육학교 강사를 하다가
남편 회사를 따라 신림동으로 이사를 갔다가 고시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2019년 6월부터 TBS 뉴스공장 외전 '더룸'을
박지훈(변호사), 이상미와 함께 공동진행하고 있다.
또한 2019년 7월 22일부터 YTN라디오 평일 7:00~9:00에 진행하는
출발새아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1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손흥민 태클에 부상당한 안드레 고메즈를
평소 손흥민을 공격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하던 선수라고 말해 논란이되었다.
한편 백선엽은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지냈다.
1939년 3월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직에 종사했지만 군인의 꿈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1941년 12월 만주국 봉천의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하여
제9기로 졸업한 뒤 자무쓰 부대에 배속되었다.
1943년에는 간도특설대로 전근, 3년 동안 이 부대에 배치되어 활약해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고 있다.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백씨는 해방 직후인 1945년 평양에 돌아왔고,
조만식의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권력을 잡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월남 직후 군사영어학교를 거쳐 국방경비대에 입대,
1946년 2월 부산 제5연대 A중대장을 맡았다.
국방경비대가 정식 한국군이 된 이후에는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복무하였으며,
이때 벌어진 여순사건 당시 공산 게릴라 소탕과 주동자 색출 및 처벌의 재판장이었다.
당시 여순사건 이후 남로당 계열의 군인을 숙청하는
'숙군'과정에서 박정희는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이후 1949년 2월 '군병력 제공죄'로 사형을 구형받은 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백선엽은 육군본부에서 정보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김안일 방첩대 과장을 통해 직접 면담한 후
만주 시절 동료 20명으로부터 '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는
보증서를 제출받고 무죄 방면시켜줬다.
뿐만 아니라 백선엽은 불명예 제대한 박정희를
정보국에서 문관신분(현 군무원)의 북한반 상황실장으로 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당시 정보에서 예산 문제로 문관 월급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백선엽은 자신의 판공비 일부를 떼어서 박정희의 월급으로 지불했다.
1953년 박정희를 장군으로 만들어준 이도 백선엽이었다.
경무대에서는 남로당 전력을 문제삼아 제외하려 했으나 인사를 백선엽은 강행했다.
백선엽은 1950년 4월에 대령 계급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하면서 6월 당시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고급 간부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최초 대장 자리에 올랐다.
백선엽은 1953년 12월 15일에 한국군 최초로 탄생한
야전군급 부대인 제1야전군의 초대 사령관을 지냈으며,
1952년(7대)에 이어 1957년에 육군참모총장(10대)을 역임했고,
정권 말기인 1959년에는 합동참모의장(4대)에 부임했다
.이후 백선엽은 4.19혁명 이후인 1960년 5월 31일 예편하고,
7월에 중화민국 주재 대사로 부임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중화민국 주재 대사로 타이페이에 있던 백선엽은
미국 대사와의 면담에서 박정희의 전력을 이유로 사상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직후 중화민국 주재 대사에서 유럽/아프리카 총괄대사로 전임되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캐나다를 떠돌다가 모친 병환을 이유로 잠시 귀국했을 때
박정희를 면담하고 나서도 2년 뒤인 1969년 12월에야 교통부장관으로 임명되어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거의 10년이 지나 군내 인맥이 싹 박정희 충성파들로 교체되고
백선엽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뒤에야, 박정희는 백선엽을 불러들였다.
그래도 과거 남로당 활동 전력을 비호해준 은혜를 배려했는지,
1969년 10월에는 교통부장관(19대)에 임명되었다.
이후에는 당시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핵심 화학기업이던 충주비료(1비) 사장을 맡았고,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호남비료(2비) 사장을 겸직하며
1973년에 한국종합화학공업으로 합병하는 작업을 지휘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종식된 1980년까지 장기간 한국종합화학 사장을 지내다가 퇴임했다.
한편 백선엽은 부동산으로 상당한 자산을 모으기도 했다.
대표적인 자산으로는 강남역 5번 출구 앞의 덕흥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땅값만 공시지가 기준으로 350억원이 넘고,
건물 전체 시세는 최소 2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태원의 자택만 해도 시가 5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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