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원 소피아 화가
모두에게 그렇듯 특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의 삶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여성이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삶에도 중요한 여성 두 명이 있었으니, 한 명은 그의 어머니였고 다른 여성은 그의 부인 ‘이본느’(Yvonne)였다.
그에게 ‘집’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 표현의 결과물이었고, 당연히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두 여인을 위해 집을 지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근본이 되는 말로 묵묵히 아들을 격려해준 그의 어머니를 위해 1923년, 스위스 코르소의 레만 호숫가에 집을 지어 선물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곳에서 36년간 머물러 100세 넘게 살았다. 놀랍게도 이 집은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성에 걸맞은 호화롭고 큰 저택이 아닌 단순미와 본질의 철학이 담긴, ‘최소한의’ 안락을 제공해주는 작은 집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집을 지었을까. 1911년 친구 한 명과 함께 자신만의 건축언어를 찾기 위해 동방여행을 떠나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에서 “가장 본질적 기하학인 정사각형, 정육면체, 구체가 질량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절제미의 결정체인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모습에서는 건축이란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자 감동을 주는 기계”라는 사실을, 그리고 “햇빛 아래 정직하고 지적으로 펼쳐지는 부피의 유희”를 발견한다.
이는 그가 건축에서 담아내고자 한 건축철학의 기반이 되었고 진지한 연구 끝에, 인간에 대한 섬세한 애정을 담은 ‘정신’의 결과물인 모듈러(Le Modular)를 발표했다. 그는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편안한 공간을 찾는 기준을 사람의 ‘몸’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가 건축의 핵심이 되어 최소한의 공간에서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비율을 찾아냈다.
이에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극찬했다. “악을 어렵게 하고 선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배려의 척도입니다. … 나는 당신의 모듈러가 세상을 바꿀만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1950년 그가 사랑한 여인 이본느와 자신을 위해 지은 집으로 그의 모듈러 공식이 온전히 적용된 ‘작은 통나무집’(Le Cabanon)은 이본느의 고향 모나코로 가는 길목, 지중해 해변에 있는 카프-마르텡에 지어졌다. 불과 13㎡(4평)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공간이 상상과 달리 얼마나 안락하고 편안한지 입증해줬다. 이는 그가 설계한 라투레트 수도원(La Tourette)의 수도자 방과 같은 크기였다. 그의 독창적 혁신성은 그와 생각을 함께한 소수의 지식인들은 열광했지만, 다수에게는 혹독한 냉대와 비난을 받는 고독한 삶이었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결국 사유만 남는다.” 그가 사랑하는 두 여인 그리고 자신을 위해 지은 두 채의 작은 집, 그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인생의 본질과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몸소 전해주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사유’, 그 정신에 있다. 인간을 모든 생각의 근본에 두었던 그는 20세기 건축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는 말은 사유의 중심축이 바로 ‘인간’임을, 인간의 편안함과 행복이 없는 집은 아무것도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1957년 36년간 그의 곁을 지켜준 이본느가 세상을 떠나고, 1965년 8월 27일, 작은 통나무집에 홀로 살던 그는 집 앞의 지중해로 걸어 들어가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수평선으로 향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이런 말을 남기고서.
“인간을 되찾아야 한다. 근본 법칙의 축과 만나는 직선을 다시 만나야 한다. 바다의 수평선과 같이 뛰어넘을 수 없는 직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