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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함민복 양태부
두어 달 전인가 ‘내 안의 역사 ― 소금강 鹽河’ 를 준비하는 저녁 모임이었다. 『江華視線』편집부로부터 함민복 시인의 신작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의 서평을 제의받았다. 필자가 평론가가 아니므로 ‘서평’ 씩이나 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당연히 시인과 문학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피력하였었다. 그러나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도 ‘강화도시인’ 의 이야기를 가까운 강화도사람의 시선(視線)으로 바라보는 ‘어떤 형식의 글’ 이라도 의미가 있다” 라는 부탁하는 분의 간곡한 성의와 설득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얼떨결에 반승낙을 하고 말았다. 하기야 한국 현대시 백년의 역사를 ‘김소월부터 함민복까지’ 라고 메이저 신문의 문화면 머리기사가 뜨기도 하는 사정이니, 마음속으로, 누군가 지역사회에서 ‘강화도시인’ 함민복을 한 번쯤 언급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였다. 그날 저녁 이후로 ― 두어 달 동안의 고민과 고통이 시작되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그렇지만 턱없이 능력에 과한 일일지라도 한 번 약속한 일을 못한다는 것은 나와 내 집안의 명예에 관계된 일이므로 어떻게든 한 번 시도는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글을 써야 하는 자의 의무로 『우울氏의 一日』(1990, 제1시집), 『자본주의의 약속』(1993, 제2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6, 제3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제4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제5시집) 들의 함민복 시집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절하고 싶다』등의 산문집과 시화집 『꽃봇대』,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들도 다시 한 번 틈틈이 들춰보았다. 그리하여 시인의 놀라운 은유와 따듯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새로이 음미해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내게는 글을 부탁하신 분의 성의가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온전히 ‘1인칭 시점’ 으로만 구성하는 ‘시인 함민복’ 에 관한 나의 주관적인 글이다. 100억 년 전의 우주 대폭발(Big Bang) 이후로 시간과 공간은 계속 팽창되어왔다. 그 결과 세계와 지식은 광막하게 넓으며, 세상 사람들의 주장과 이론과 이야기들이란 자기가 아는 만큼의, 자신이 믿는 만큼의, 한정된 경험과 인식을 보여주는 지극히 협소한 주관적인 세계이다. 나도 내가 아는 만큼의 함민복 시인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바다와 갯벌이 보이는 화도면 동막리 161번지 버려진 양철집 농가에 그림자처럼 혼자 살던 한 남자 ― 시인 함민복에 대한 지난 세월 동안의 나의 추억이다. 외롭고 그리운 날 내가 혼자 읽어보던 함민복 시의 사적 감상이다. 함민복으로 인해 ‘시’ 와 ‘시인’ 에 대해 각별히 생각해 본 나의 자문자답이다. 그리고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인의 사랑이야기이다. 함민복식의 글쓰기와 세상 읽기의 문법이 우리에게 던진 물음들에 대해 더불어 고민해보자고 청하는 소박한 권유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잠시만 검색해보아도 함민복과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있는데, (그는 아마 강화도에서 그 이름 아래 가장 많은 정보량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거기에 또 한 이야기를 덧붙이려는 시도가 우리 강화도의 시인 함민복을 한 뼘만이라도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필자의 관찰자 시점으로만 쓰여지는 이 글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함민복 시인에게 단 한 점이라도 누(累)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비평을 업으로 하는 분들에게는 행여 폐(弊)를 끼치는 것이나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과 우려에 먼저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시인과의 만남
2005년 겨울이었으니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강화민예총’ 의 창립전시회 행사에 초대받았으나 혼자 가기가 멋쩍다는 지인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전에 보건소로 사용되던 옛 강화미술회관 2층 전시실에는 회화와 조각과 사진과 시가 돌아가며 전시되고, 다과와 떡과 술을 권하며 참여 작가와 관람객들이 모두 분주하였다. 강화의 문화·예술계에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라는 조직이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였다. 거기 전시장의 한 모서리에 함민복의 ‘돌 에’ 라는 시가 걸려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는 소리 내어 그 시를 읽어보았다. 아~,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에 새롭다. 세상에서 처음 대하는 시의 글자들을 한 음절씩 읽어 내려갔을 때의 그 긴장했던 떨림과 울림이 지금도 내 가슴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렇다. 시는 낭송하는 것이다. 입술을 움직여 천천히 낭송하기 시작할 때 ― 시 안의 단어와 단어, 절과 절, 연과 연 사이에 잠자고 있던 어떤 ‘언어의 정령(精靈)’ 들이 서서히 깨어, 살아, 글자 밖으로 튀어나와, 그 정령들이 어우러져 춤추며 만들어내는 복합적 에너지가 이윽고 내 가슴에 미세한 무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나를 둘러싼 공간과 세계를 떨리게 하는 것이다. 대학 시절 『문학의 이론(Theory of Literature)』이란 책에서, 시란 “이미지의 충격으로 인한 존재의 질적 변환” 이라 배운 적이 있는데, 우연히 만난 함민복의 시에서 나는 그런 ‘이미지의 충격’ 과 ‘존재의 질적 변환’ 이란 말을 실감으로 느꼈던 것 같다. 시와 시인이 결국 생태적인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고 염원하는 것이라면, 함민복 시인이 창립전시에 내놓은 시는 그의 그러한 소망과 염원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송덕문도/아름다운 시구절도/전원가든이란 간판도/묘비명도/부처님도/파지 말자//돌에는/세필 가랑비/바람의 획/육필의 눈보라/세월 친 청이끼//덧씌울 문장 없다/돌엔/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놓은/탄탄한 문장 가득하니/돌엔/돌은/읽기만 하고/뾰족한 쇠끝 대지말자 (「돌 에」)
전시장 바깥 복도에서 시인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같이 담배를 피웠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낯가림이 있는지 공연히 쑥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시인의 깊고 그윽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을 만났으니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이미 어느 잡지엔가 발표되었던 그의 절창(絶唱) ‘최제우’ 를 알고 있었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어디로 가는가 기러기 떼/八자 대형으로, /人 자 대형으로/동학군의 혼령인 듯,/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 인자 쓰며/人乃天/하늘을 自習하며 날아가는/기러기/ 저리 살아 우는 글자가 어디 또 있으랴/목을 턱 내밀고 날아 가는 모습이 서늘하다 (「최제우」)
시인의 눈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함민복의 상상력이 강화의 하늘에서 보고 만들어낸 저 메타포는 또 얼마나 절묘한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etica)』에서 “운율(rhythm)은 누구나 배우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은유(metaphor)는 시인만의 것이다” 라 했다더니, 그것은 아마도 이런 은유를 두고 한 말씀이 아니었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번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의 발문에 이문재 시인이 “함민복의 상상력은 우리가 기꺼이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자본이다.” 라 한 말을 떠올려보자면 ― 청각과 시각을, 역사와 자연을, 정서와 사상을, 통감각(通感覺)으로 아우르며 단칼에 베어 갈무리하는 함민복의 이러한 솜씨와 상상력이야말로 진정 우리 ‘정신의 G.N.P’ (만일 이런 용어가 있다면)를 고양시켜주는 자랑스럽고 귀한 자산이 아닌가도 싶다. 그렇지 않았던가? 나는 매양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저 놀라운 광경을 그저 일상적인 관성(慣性)으로만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시 한 번 하늘을 보자. 해마다 강화도의 겨울 하늘에 갑자기 삐꺼덕거리며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 가 난다. 누가 오시려는가? ‘八자 대형으로, 人자 대형으로’ ‘목을 턱 내밀고 날아가는 기러기 떼’ 의 ‘저리 살아 우는 글자’ 들을 올려다보노라면 ― 1864년에 죽었으나 21세기에도 다시 살아오는 동학군의 혼령과 최제우 생각에, 이런 절묘하고도 놀라운 메타포를 만들어낸 시인 함민복 생각에, 나는 언제나 가슴이 서늘하였었다. 그래서 ‘최제우’ 이후 함민복의 시와 문장을 읽는 나의 독후감은 늘 다음의 물음으로 귀결하였다. “시란 무엇이며, 시인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그러므로 ‘참된 역사’ 와 ‘가치 있는 삶’ 이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하늘처럼 섬기는 어떤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은 그러하지 못하다. 늘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사람과 사회를 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포장하고 위장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좋은 게 좋다’ 고 애써 눈 감고 귀 막으며 ‘딴전’ 피우는 사람들의 안락함의 지혜와 무관심 뒤에 숨어 그 이면의 계산은 냉정하고 때론 냉혹하기조차 하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을 권력으로 이용하고 돈으로만 환산하는 듯 싶은, 이 척박하고 황량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 “시란 대체 어떤 효용이 있다는 것인가? 시인이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시인은 무엇인가?
그 겨울을 지나며 나는 함민복 시인의 팬(fan)이 되었다. 때마침 발간된 『말랑말랑한 힘』에 수록된 75 편의 시들은 스펀지처럼 가슴에 깊게 스며들더니 곧 나의 피와 살이 되었다.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함민복의 언어가 지향하고 또 그가 자연과 세상을 읽어내는 문법은 소월이나 청록파나 윤동주, 김수영 등의 한국 현대시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전통을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문학에 관한 나의 독서는 보잘 것 없으되, 적어도 나는 함민복의 시들을 그렇게 읽었다. 강화도의 자연과 자랑스러운 갯벌을 시인 자신의 실제 생활과 경험으로 삼투(滲透)하고 육화(肉化)시켜 이렇게 부드럽고도 장엄하게 노래하는 일은 결코 여느 시인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특별히, 문명(文明)이라 칭하는 세상의 모든 딱딱한 것들에 대한 비판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마지막의 시편은, 마치 요약한 『장자(莊子)』나 칼릴 지브란의 잠언 『예언자』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었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 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소금물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 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사진 : 청옥 박찬숙)
나는 감히 말하겠다. 강화도의 문·사·철(文·史·哲)에서 갯벌과 자연에 대한 이만큼만한 인문적 성찰과 문학적 성취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강화도와 함께 ―, 광활한 저 갯벌과 함께 ―, 함민복이라는 시인의 이름도 거기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새 함민복 시의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게 피와 살이 되는 함민복식의 언어와 문법은 비평가와 또 다른 보편적인 많은 독자들의 피와 살이 되기도 한 것인지 시집 『말랑말랑한 힘』은 2005년 ‘제24회 김수영 문학상’ 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항상 함시인에게 미안하다. 강화의 문화계와 지인들은 수상 자체가 그 지역의 문화적 업적과 영광이기도 한 이 자랑스러운 문학적 성취에 대해 조촐한 축하연 자리 하나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총각 시절의 함민복 시인과 술을 꽤나 많이 마셨다. 술에 관해 인터넷에 올라있는 청년 함민복의 전설 같은 에피소드들을 읽어보기도 했다. 술 마시는 자의 ‘4대不問’ (晝夜불문, 場所불문, 酒種불문, 按酒불문) 이란 말도 함민복에게서 처음 들었다. 나는 알코올이 그의 전신에 스미어 이제 막 취기가 오르기 시작할 때의 함시인의 눈빛을 안다. 그리고 그의 영혼과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어떤 주제와 강박관념들이 술의 힘을 빌어 이성(理性)의 여과 없이 스스로 나오려는 순간들의 독백 같은 웅얼거림과 중얼거림 속에 언뜻언뜻 내비치던 시인의 속마음을 가슴 짠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것은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와 그를 돌보지 못하는 아들의 걱정(‘가을 하늘’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 아랫집 동생의 떠내려간 배는 찾았으나 되찾을 것 하나 없다고 탄식하는 마음(‘한밤의 덕적도’), 많은 문들을 열고 나아가지만 결국은 마지막 죽음의 문을 비틀어 여는 열쇠처럼 생긴 우리의 몸(‘열쇠왕’) 등에 관한 것들이다. 나는 함민복의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어떤 숙성과 여과를 거쳐 활자화된 문장으로 재탄생하는가를 지켜본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꽃 피던 봄날 한 달을, 함민복은 낡은 랜드로버에 가방 하나 메고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열심히 쫒아 다닌 적이 있었다. MB 정권 초기의 F.T.A. 반대 촛불집회였다. 억누르려고만 하는 권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시민들과의 연대와, 자유에 대한 그 나름의 어떤 신념과 역사의식이 그를 매일 서울로 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말하려는 술 마시던 그 날은 ― 아마 함시인이 집회에 나갔다가 진압 경찰의 방패와 군화발에 팔과 머리를 마구 찍히고 짓밟히고 돌아온 후, 3개월 여 강화읍의 한방의원으로 치료 다닐 때였나 보다. 어찌 만나 온수리에서 시작된 저녁부터의 술자리가 길어져 이윽고는 동막에까지 다다랐다. 동막리 푸른 바다 위에는 초승달 하나가 걸려 있었고 술잔을 스쳐가는 밤바람이 싸늘했다.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의 중간이었는데, 문득 작심하고 말하는 듯싶은 함민복의 말에 나는 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형님, 그날 이후로 내 뇌세포가 죽어가나 봐요. 글을 쓸 때 뻔히 아는 단어가... 기억에 떠오르질 않아요. ...명색이 시인인데...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앞으로 글을 쓰면서 살아 가겠시꺄?” 취중이었으나 슬픔과 분노로 이를 악다문 시인의 눈자위가 번질번질해지고 눈동자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나는 ‘시인을 말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고통’ 이 고통스러워졌다. 내 가슴까지 그의 눈물로 먹먹해지는 것 같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촛불집회는 언제나 끝날 것 같아?” 함민복은 내게 말했다. 초승달로 눈물을 끊으며, 그만의 시인의 문법으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게 내게 대답해 주었다. “형님, ‘밝음’ 만이 촛불을 끌 수가 있어요. ...어두우니까 더욱 밝게 촛불이 타오르는 거지요. 세상이 밝아지면 촛불은 제 스스로 꺼지는 거예요.” 요컨대, 촛불을 끄려면 촛불보다 더 밝은 세계를 열어 보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술 마시러 바다에 간다는 그를 꼬드겨 ‘학사재(學思齋)’ 라는 곳에 역사공부를 하러 갔었는데, 마침 강의 나오신 분의 전문 지식과 식견이 참으로 대단하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오니 함민복이 혼자 담배를 비틀어 피우다 말고 내게 하는 말이, “저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는지 몰라요. 맨날 술이나 마시고..., 취해서 빌빌거리면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나 하고... 형님은 강의 다 듣고 오시겨, 나는 그냥 집에 갈라요” 라며 뜻밖의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런 시인의 자조와 자학이 당황스럽고 놀라웠지만 면전이라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서둘러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함시인이야 시가 있질 않아? 함민복의 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는데... 누구나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일이 있으니 이리 자학할 필요가 없어’
나는 그런 날들의 함민복의 눈물과 분노와 자학이 영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인이 저리 고통 받고 있는데, 어디 내 친구 함민복 시인을 위로해 줄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까마득한 내 ‘젊은 날의 독서' 의 한 기억 속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일’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가 만일 한 가슴이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내가 만일 병든 생명 하나를 고칠 수 있거나 한 사람의 고통을 진정시킬 수 있다거나 할딱거리는 울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줄 수만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I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나는 함민복의 눈물과 분노와 자학에 대하여, 언젠가 그를 만나면 에밀리 디킨슨을 들려주고 싶었고, 이제 여기에서 ‘내가 만일’ 을 읽어 줄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함시인이 에밀리 디킨슨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인가? 이 세상에는 ‘시인’ 이라 불리는 어떤 종족들이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어, 그들이 만든 한 줄 시가 ‘한 사람의 가슴이 깨어짐을 막을 수 있다면(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그런 일이야말로 바로 시인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함민복의 시인으로서의 삶은 그럼으로써 이미 오래전에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시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위로와 치유’ 의 사회적 기능 하나만으로도 시와 시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 시와 시인은 세상을 위로한다. 위로를 넘어 병든 세상을 치유하고 또 예방하기도 한다.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 ‘눈물은 왜 짠가’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그림자’ 등을 읽는 일은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늘 따듯한 위로이며 진실된 치유이다.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그림자」)
여기에서 나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의 봄, 나는 암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3시간 반 동안의 죽음이 지나고 마취가 깨기 시작하니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온 사방은 깜깜하기만 할 뿐 고통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혹시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 때 함민복의 시가 생각났다. 아아, 함민복이는 어찌 이런 시를 세상에 남겨 놓았는지... 나는 유서(遺書)와도 같은 함민복의 시를 수십 번씩 외우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하늘, 바다, 산, 태양, 흙, 바람, 달,... 하늘 바다 산 태양 흙 바람 달,... ㅎ ㅂ ㅅ ㅌ ㅎ ㅂ ㄷ...... 지금이라도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함시인! 내가 죽음을 바로 앞에서 만났을 때, 하늘과 푸른 바다를 보여주어 고마워. 산과 태양과 흙과 바람과 달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했다)는 걸 가르쳐주어 정말 고마워. 퇴원하던 날 파란 하늘과 병원 화단의 봄꽃들을 다시 보는 일이 정말로 눈물겨웠다오.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바람은 귓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픈 밤」)
시인의 사랑
삐뚤삐뚤/날면서도/꽃송이 찾아 앉는/나비를 보아라//마음아 (「나를 위로하며」)
꽃 피기 전 봄산처럼/꽃 핀 봄산처럼/꽃 지는 봄산처럼/꽃 진 봄산처럼//나도 누구 가슴/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마흔 번째 봄」)
달빛 찬 들국화길/가슴 물컹한 처녀 등에 업고/한 백리 걸어보고 싶구랴 (「농촌 노총각」)
위는 모두 함민복이 총각 시절에 쓴 시들이다. 압축되고 정제된 단시(短詩)의 진경을 보여주는 시들이지만, 이제금 다시 다르게 읽어보자니 혼자 사는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가 약간은 청승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시는 분들은 다 알다시피 함민복은 이제 동막리 바닷가에 혼자 사는 남자가 아니다. 어느 날부터 그만을 한결같이 믿고 의지하며 사는, ‘사철 발 벗은’ 시인의 아내가 늘 그와 함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는 함민복의 아내가 시인 남편의 시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사랑하는 여인임을 알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그녀가 정말 고맙기만 하다. 그래도 이런 총각류의 함민복 시들을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사실 5~6년 전에 함민복 시인이 동막에서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워 ‘함민복결추위’ (결혼추진위원회) 같은 조직(?)이 꾸며진 적이 있었다. 나도 그 멤버 중의 하나였다. 나는 「나를 위로하며」의 맨 마지막 단어를 ‘민복아~’ 라고 바꾸어 그가 어떤 한 미지의 여인을 찾아 그 여인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주위에 시집.장가 못간 젊은이들이 있으면 그들을 맺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우리 ‘결추위’ 멤버 모두의 인지상정이 아니었으랴. 혹시 결혼생활이란 관성이 ‘자유로운 영혼’ 을 속박하여 내가 사랑하는 ‘함민복의 시’ 를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그가 가장(家長)으로 한 가정을 꾸려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이 될 것인가! 결혼 후에 생활이 안정되면서 더욱 깊이 있고 중후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시인·작가들이 더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하던 어느 날 나는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는 시인으로부터 그의 피앙세(fiance)를 소개받았으니, 이것은 저절로 ‘함민복결추위’ 의 자동해체통보가 되었다. 둘의 나이를 합쳐 백 살도 넘는 이들 커플의 결혼 전 사랑이야기는 나는 모르겠다. 둘의 사랑은 둘만이 알겠지. 혹시 둘의 연애를 잘 아는 가까운 분이 계시더라도 죽을 때까지 침묵해주시길 바란다. 그렇지 않은가? 결혼해서 살아보니 ‘사랑’ 보다 ‘결혼’ 이 더욱 높고 귀하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는가.
육필로 쓴 함민복 시인 부부의 결혼 청첩장을 신랑에게서 직접 전해 받은 영광으로, 그 보답으로 ― 작가 김훈 선생께서 주례를 선 여의도에서의 결혼식에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강화도의 여러분들과 다녀왔다. 나는 그가 가진 단 하나의 지역사회의 직함으로 그가 이사로 있는 ‘강화나들길’ 카페(http://cafe.daum.net/vita-walk)에 그 날의 결혼식 참관 후기를 올렸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저희들 결혼합니다/따듯한 마음으로/등 한번 다독여주세요// 이제 둘이 사람젓가락이 되어/세상에 진 빚 갚으며/더 맛있게 살겠습니다
신묘(辛卯)년 입춘(立春) 지나고 우수(雨水)지나고 ― 2011년 3월 6일 경칩(驚蟄)날, 우리의 늙은 소년 함민복 시인이 장가갔습니다. 소년 시인의 결혼식 소식에 여러 언론이 겨울잠 깬 개구리처럼 술렁거렸습니다. 10년 전 ‘마흔 번째 봄’ 의 봄산을 보며 ‘나도 누구 가슴 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하고 혼자 그렇게 독백을 해쌓더니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렁울렁거리게 만들어 놓고, 둘이서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습니다. 어이~ 함시인! ‘비행기 타고’ 새신랑 되니 기분이 어떠신가? 그대 그윽히 바라보는 제주도의 바다빛깔과 한라산의 봄빛은 또 어떠한가? 늙은 구랑들은 새신랑이 참말로 부러우이. ‘세상에 단 한 사람! 그대의 여인’ 과 함께 시인의 ‘쉰 번째 봄’ 이 진정 아름답길 바라오. 이제 소년은 어른이 되어 오겠지요. 주례선생님 말씀처럼 사랑을 생활로 바꿔가야 하겠지요. 함민복군과 박영숙양의 결혼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입춘대길)
내가 본 시인의 결혼식은 이러하였고, 이제 이들 부부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사는 일만 남았다. ‘사람젓가락’ 부부여, 함민복 아우여, 남들은 다 사위를 보는 나이의 늦은 결혼이니 남은 짧은 삶 동안은 행복해라. 행복해라. 부디 행복하여라. 함민복 시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하여, 대한민국 ‘결혼식 축시’ 를 평정했다는 함민복의 ‘부부’ 라는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나도, 함민복 부부도, ―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도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부부」)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2013. 2월 함민복 시인의 신작 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작과 비평)이 발간되었다. 저자의 자필 사인이 들어 있는 ‘초판 1쇄 발행’ 의 순결한 시집을 읽는 기쁨은 아는 사람만이 안다. 책을 펼쳐보니 시집의 제목이 된 시를 포함한 70 편 시인의 마음 발자국들이 정갈하고 소롯하다.
시인이나 작가의 시집과 작품집들이 모두 그들 정신의 귀한 아들들일 터이지만, 이번 5번째 시집은 그의 결혼 후 ‘첫 아들’ 인지라 더욱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읽어볼 수 밖에 없다. 늦은 결혼이 시인의 생활을 안정시켰음인지 한층 여유롭고 꾸밈이 없는 언어들로 달, 봄비, 고추밭, 도라지밭, 나마자기 등에서 건져 올린 함민복 특유의 서정은 여전하고, 방울, 이가탄, 구제역 이후, 김선생의 환청 들에서는 시인의 정치·사회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줄자, 수평기, 시계, 저울 등의 계측 사물들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들은 이전에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색다르고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 모두에 대하여 서평을 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 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제목으로 단 시인의 ‘눈물’ 과 ‘나이에 대하여’ 라는 시에 대한 짤막한 감상만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우선 시인이 아내를 소재로 쓴 시부터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에게 결혼이라는 사건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라고 끝나는 단 한 편의 시(‘당신’)에 언급될 뿐이었지만, 짧고 단순한 그 물음이 주는 깊고도 긴 여운에서 나는 사람을 대하는 ― 그 사람이 비록 그의 가장 가까운 아내일지라도 ― 그의 존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또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나는 함민복의 1988년 『세계의 문학』등단 데뷔작 ‘성선설(性善說)’ 을 기억한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선설」)
양 손을 들어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선한 것이다’ 라고 함민복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선언하며 문단에 나왔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시세계는 선하지만은 않은 사회와 세계에 맞닥뜨려, 무시로 상처받으며, ‘자본주의’ 의 ‘모든 경계’ 에서 ‘우울증’ 을 앓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의 영혼에 본디 내재되어 있는 ‘어질고 선(善)함’ 이 발자국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 을 피워 사회와 세계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음이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18년 전 강화도에 정착한 함민복은 동막리 여차리 흥왕리의 이웃들과 벗하며, 감나무 호박 초승달 물고기들과 함께 살며, 이웃과 자연과 갯벌의 ‘말랑말랑한 힘’ 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해야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라면 ― 삶과 시가 동일한 그에게 있어 ― 그의 시는 이렇게 ‘존재하는 것’ 과 ‘존재해야하는 것’ 사이의 경계와 긴장을 ‘눈물’ 과 ‘존중과 배려’ 의 마음으로 따듯하게 감싸 안는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해 본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에서 나는 먼저, 함민복의 시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눈물’ 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았다. 눈물이 혹시 어떤 ‘상징(symbol)’ 이 아닐까?
그래도 세계는/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단호하고 깊고 뜨겁게/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눈물이 메말라/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꽃 철책이 시들고/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꽃」)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금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Why tears are salty?”... 여기에서의 ‘눈물’ 이 현실의 눈물을 포함하여 그것으로 또다른 의미를 전하고자 한 시인의 상징이라고 보자면, 우리는 이 눈물(보조관념)에 감추어져 있는 눈물의 원관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현재까지 생각해본 한 그것은 ‘소금(salt)’이었다.
더러는/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 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김현승,「눈물」)
삶의 고뇌와 시련을 통하여 도달된 절대 순수의 세계를 김현승 시인은 ‘눈물’로 형상화한 바 있거니와, 함민복은 김현승의 ‘눈물’ 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 눈물의 핵심성분이 ‘소금’ 임을 주목한다. 그리하여 소금으로 이루어진 눈물이, 삶의 어떤 순간 세계의 표면에 눈물로 나타나는 소금의 썩지 않는 방부(防腐) 역할이 ― 인간과 사회를 정화하고 또 궁극에 가서는 세계를 지탱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시인은 ‘눈물이 메마르면’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진다’ 고 언명(言明)하고, ‘눈물은 왜 짠가’ 의 설렁탕 국물을 다투는 모자와 깍두기 한 접시를 더 놓고 돌아가는 설렁탕집 주인의 살가운 풍경에서 독자들은 ‘눈물과 소금’ 의 미학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정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여기에 함민복의 소금이 있다.
달이 밀어준 물을 태양이 바짝 말린 물의 사리(舍利),/물의 뼈,/바닷물의 정신/죽어도 썩지 않는 (「소금」)
이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에서 함민복 시인은 다시 그 ‘소금’ 으로 정화된 ‘눈물의 세계’ 를 단호하게 자르는 ‘눈꺼풀’ 에 주목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늘 ‘딴전’ 일 뿐 주변 사람들과 수평으로 연대하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실천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딴전 부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죽음을 향하면서도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뜸으로써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한윤정) 함민복의 시에서 ‘눈물’ 과 ‘소금’ 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 에 이르는 은유와 상징을 포획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듯 싶다. 그리고, 그러나, 지금 내가 주장하는 이 연결이 함민복 시인이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그러하나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이란 ‘작자와 작품과 독자’ 3자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와 해석을 통해 ‘작품’ 이 늘 새롭게 깨어나는 것이라고 나는 믿으므로,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을 관통하여 해석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함민복 시인의 ‘눈물’ 의 의미를 추적하여 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이에 대하여’ 라는 제목의 시를 이번 시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특히 마지막 연의 마지막 구절은 마치 선방의 죽비처럼 벼락같은 울림으로 가슴을 때린다.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 나이는 삼백 살이고 한 살이고 새순이고 실뿌리 한 가닥 막 습기에 젖는 순간이다 (「나이에 대하여」)
나무들이 자라 나이가 들면서 해마다 나이테 하나씩을 쌓아 올리며 커 간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시인은 삼백년 된 나무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십년쯤 된 가지가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은 한 살이고 또 새순임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무의 밑둥치를 기단으로 위로 아래로, 줄기 쪽과 뿌리 쪽으로, 상승과 하강의 욕망이 맞부딪치는 부분에서 나무는 삼백 개의 원에서 한 개의 원까지 나이테 탑을 쌓아온 것을 새삼스레 다시 발견한다. 나는 「나이에 대하여」를 「역사에 대하여」로 제목을 바꿔 우리 민족의 역사에 이 시를 한 번 대입시켜 보았다. 놀.랍.게.도! 삼천년 된 우리의 역사가 저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 끝의 새순처럼 확연히 다가오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무에 비유해 본 ‘시간과 역사의 영속성(永續性)’ 이란! 그러하다. 고인돌의 청동기시대도, 고려시대도, 그리고 조선시대와 영욕으로 얼룩진 우리 근·현대의 역사도 함민복 시인의 「나이에 대하여」의 비유에 의하자면 ‘과거에 죽어버린 시간’ 이란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역사 속 모든 시간들이 살아서 ― 저 한 그루 나무처럼 ― 우리 곁에 있다. 시간들은 살아서 온다. 살아서 간다.
나는 일찍이 함민복 시인과 ‘강화나들길’ 을 걸으며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라는 걸 그에게 배운 바 있지만, 나무의 비유를 다시 인용하면 ‘시간들도 다 일가친척’이 되는 것이며,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화엄(華嚴)’ 과 ‘연기(緣起)’ 의 ‘불법(佛法)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한복판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옴마니반메훔! 한 섬광(閃光)처럼 ― ‘지금(now), 여기(here)’ 가 ‘실뿌리 한 가닥 막 습기에 젖는 (역사의) 순간’ 임을 알아채는 나의 이 빛나는 인식은 함민복 시인이 보내준 고마운 선물이리라.
나는 그와 동시대를 동일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겠다. ‘시인 함민복’ 이다.
이제 여기쯤에서 ‘시인 함민복’ 과 그의 ‘시’ 에 관한 나의 사적인 감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천재(天才) ‘모차르트’ 의 음악을 살리에르가 어찌 알겠는가? 지재(地才) ‘함민복’ 의 시를 필자가 조금이라도 언급한 것에 시인과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2013.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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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들 하신지요? 마음 속의 강화나들길만 걷고 있는 입춘대길입니다. 원고량 때문에 '강화시선'에는 글의 뒷부분만 실렸고, 앞의 글들이 있어야 제대로 된 구성이 되는 원고였습니다. 졸필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청옥>님의 사진을 하나 썼습니다. 그리운 길벗님들! 따듯하고 행복한 연말을 보내세요.
저는 원문을 읽어보고 감탄했습니다.
함민복 시인을 이처럼, 이토록 잘 알고 사랑하며 글을 쓴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배움을 주시는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함민복이라는 뛰어난 시인보다 이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일까 그게 더 궁금해졌습니다.
본격적인 평론가는 아니라 했는데, 평론가 이상의 글입니다.
글의 품격도 잃지 않으면서 현학적인 부분도 겸손으로 잘 가렸고, 무엇보다도 함민복 시인에 대한 애정이 깊어 좋았습니다. 이분은 본격적으로 평론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춘대길 양태부 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애 많이 쓰쎴습니다.
원고지 100매 가까이 되는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은 아니지요.
더구나 그 글이 서평임에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 노고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그늘 학습 /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 더 앉아 있어야겠다
미감님! 과한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래도 님의 마음을 감사히, 고맙게 간직할게요.
서평을 이렇게 감명깊게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대충 읽어 보려다 단 숨에 두번이나 정독 했습니다. 함민복 시인이야 유명한 분이니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입춘대길님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대단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란걸 새삼 느꼈습니다.
좋은글 볼수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유하고 싶어 제 브로그와 카페로 가져갈까 하는데 괜찮을런지요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행복하세요
바위솔님! 오랜만입니다. 열심히 걷고 늘 공부하시는 모습을 존경합니다.
졸고를 높이 평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공유하고 싶으시면 그리 하십시오.
참고로, 이전에 몽피선생의 물길.바람길에 올려 놓았구요... <미감>님이 스크랩해 간 것이 있군요.
'오천수'님..
시인의 글 만큼이나 시를 알아보고 시인을 사랑하는 님의 글도 가슴을 울렁이게 합니다.
시인의 마음과 눈물을 얘기하시는데.. 저도 울컥해지네요.
안녕하신지요?
살아가면서 '울컥해지는' 마음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그대의 마음이 아직 아름답다는 말이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언제나 아름다우시길 바랍니다.
'시를 읽는 것은 나의 온몸으로 시의 온몸을 등신대로 만나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요,
입춘대길님의 '시인 함민복'을 그렇게 뜨겁게 읽었습니다.
늘 딴청부리는 현실, 그것을 용인하면서도,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게,
또 눈물겹게,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려 애쓰는, 우리의 함박꽃 '함', 민들레 '민', 복숭아꽃 '복' - 함민복 시인...
흰구름님께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부부와 처음으로 나들길을 함께 걷던 날이 생생합니다.
'하늘이 준 축복 같다' 던 손자님도 이제는 많이 컸겠군요. 님의 가정이 늘 행복하고 화목하시길 기원합니다.
입춘대길님 뵌지 오래입니다. 늘 문학을 좋아하고 아끼시는 열정 남다르신줄은 알고 있었는데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또한 애틋하여 그 마음을 가슴으로 읽게 하시는군요. 언제 어디에 계시든
늘 입춘대길님 사랑하는 문학처럼 사랑하는 친구들처럼 님도 또한 그리 사랑으로 그득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오는 새해 갑오년엔
밝은 빛소식과 함께 예전처럼 나들길위에서 환한 웃음함께 걷는 행운의 한해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ㅎ^~~
그래요. '야생의 춤' 이여!
2013년은 이제 저물어가고, 2014년 "나들길위에서 환한 웃음함께 걷는 행운의 한해"가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함시인의 최근 발표 시를 하나 소개합니다.
무신론자 / 함민복
사람들은 다 죽는다
죽음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가능한 한 죽음과의
약속 시간을 늦추고 싶어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고
대장내시경을 하고
태반주사를 맞고
뒤로 걷고
곰쓸개를 먹고
위장전입을 하고
부동산투기를 하고
강을 파헤치고
원자력발전소를 만들고
부정선거를 하고
독재를 하고
무기를 팔아먹고
전쟁을 하고
난리를 치다가
약속을 어기고 싶어
약속은 없었다고
죽음은 없고
천국과 극락은 있다고
‘고’들을 끼고
영혼을 달래러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약속을 지킨다
* '고'들을 끼고 -> '고'로 끝나는 글자들!
제 주변에 이런 멋진분들이 계신거야~~~~정말인거죠!!!!!!!!!!!!!!!!!!!!!!!!!!!!!
↖(^________________________^)↗
Princess : " Really?"
Safe-Guard : " Sure~ ! You are right !!"
선생님...오랫만에 선생님의 글을 카페에서 보니 너무너무 반갑고 기쁘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좋습니다...
선생님 멋진 글 너무 감사드립니다...보고싶어요...
뵌지 너무 오래됐어요...
언제 뵐까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백석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 생각나는군
그래~ 백석은 나타샤를 만나지만, 나는 배스킨을 기다려야지...
@입춘대길 멋진 댓글입니다.ㅎㅎ
백석에서 함민복까지~~~,
한국 문학사의 처음과 끝을 두루 꿰고 계십니다.
언제 밤새도록 문학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미감 미감작가님과 입춘대길 오천수님의
밤새는 문학이야기
호~기대되는데요~^^*
좋은 글 오랫만입니다.
한~참을 쉬지 못하고
눈물을 자르지도 못하고
들숨 날숨도 아끼고
고고~ 하며 읽었습니다.
시간내서 다시 읽든가
서본으로 내려받든가 해야겠습니다.
건강하신(?)모습 뵈어 반가웠습니다.
웃으며 송년해야죠?
포플러누님! 플러스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유명한 <솔새뜸>의 만두 익는 냄새 좀 풍겨주세요.
온수리 퇴근길, <감목간>에 사는 시인 아우 꼬드겨 집구경 갈께요. 우린 모두 같은 면에서 살아요.
시인 마야코프스키가 '창작에 천재가 있듯이 감상에도 천재가 있다'고 했는데 입춘대길님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시를 멈추고 화가는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지점에서 붓을 멈춥니다. 평론가는 창작자들이 멈춰선 지점에서 그걸 해설하기 시작해야하는 난감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입춘대길님의 글은 창작자가 멈춰선 지점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해설하고 있습니다. 창작자와는 또다른 평론창작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창작자도 평론가의 염감을 보고 자기의 작품을 다시 보게되죠. 내 작품에 이런면이 있었나하구요. 창작자에게도 영감을 줄수 있는 평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 둘, ... 여덟!
구름나그네님의 댓글 - 여덟 문장이
입춘대길의 본문 - 이백 문장을 압도합니다
'人生到處有上手' 라
오늘 밤에는 마야코프스키를 읽어보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이렇게 입춘대길님 열팬이 많은데
제가 흐뭇한 이유는 뭘까요?!
인쇄해서 보관해야 되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노랑저고리>님!
이 여인께서는 왜 이리 늦으시나 했습니다.
늦게라도 들어올 줄 알았다니까요~~! 제가 반가운 이유는 뭘까요?!
김포 CGV 에서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로부터 30년이 지났는데, 한 세대가 지났는데...
그제나 이제나 변한 것은 없고... 속절없는 세월 속에 사람들만 늙었습니다. (영화는 강추!)
ㅎㅎ, 제가 요즘 '시인 함민복' 보는 재미에 카페를 들락거립니다.
달린 댓글들 읽는 재미도 엄청 좋고요.ㅎㅎ
입춘대길 님을 사랑하는 팬들이 나 말고도 이렇게 많구나... 새삼 감탄도 하고 그럽니다.
저도 '변호인' 보러 갈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초대했습니다.
영화표를 예매해 놓았다고, 보고 싶은 사람은 신청을 하라고 해서 저도 신청했습니다.
당첨 되어서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탈락이라면... 일산 메가박스에 가서 봐야지요 뭐.
일산 킨텍스 메가박스 영화관 좋던걸요.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그가 만일
한 가슴이 깨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시인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If He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Poet shall not live in v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