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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주님을 잃어버린 사람들/눅 2:40-45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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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조상호목사
먼저 한 가정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가정의 아내가 식사 준비를 위해 요리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실컷 수다를 떨다보니,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얘, 잠깐만 기다려, 가스 불 끄고 올께!”라고 말하고 부엌에 가서 가스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시간 전에 소금으로 절여 놓았던 김치를 담그었습니다. 한참 동안 김장을 담그다가 갑자기 친구와 통화하던 생각이 나서 전화기를 집어 들었지만, 친구의 전화는 끊어진 후였습니다.
어느 날 이 여자가 은행에 갔습니다. 통장과 도장과 공과금 고지서도 가지고 갔습니다. 이젠 송금만 하면 오래간만에, 정말 아무 일 없이(?) 은행에서 볼 일을 마치게 됩니다.
은행 직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송금하시게요? 잘 쓰셨네요.. 아! 그런데 손님, 전화번호를 안 쓰셨네요. 집 전화번호를 써야죠.."
그러나 그 여자는 그날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송금을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랜만에 이 여자가 미장원에 가자, 미장원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이 여자는 ”네, 덕분에... 오늘 큰딸 결혼식이 있으니까 머리손질 좀 빨리 해주시겠어요? 시간이 없으니까, 30분 안에는 완성해 주세요." 라고 다그치며 미장원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미장원 주인은 "30분 안에요? 네, 알겠어요.“라고 말하며, 한참 손질을 하다가, "이왕 오신 거.. 머리를 마는 게 어때요? 훨씬 보기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훨씬 보기 좋다는 말에 솔깃한 이 여자는 "그럼 어디, 간만에 파마나 해볼까."라고 말하고 머리를 말았습니다. 꼭 3시간이 걸렸습니다. 머리를 만 채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온 이 여자는 집안의 공기가 썰렁하고 험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결국 이 여자는 며칠 후 큰딸의 결혼식을 비디오로 봐야 했습니다.
그 가정의 남편도 아내와 비슷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났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지, 내려가고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려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많지도 않고 달랑 3개 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3개의 칫솔 중에 자기 칫솔이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잊은 것이 있어서 다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애꿎은 우산하나를 가지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하루 종일 햇볕이 쨍쨍 내려 쪼이는 바람에 우산이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서류를 집에서 가져오지 않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전화를 걸려고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핸드폰이 아니라, 집에서 사용하는 무선전화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건망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망증 때문에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지금 누구를 데리고 사는지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잊저버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거라면 괜찮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 되는 것을 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열 두 살 되었을 때에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지난주에 절기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이 세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월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유월절은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하여 나온 그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12살 이상 된 이스라엘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소나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1주일 동안 수 만 마리의 소와 양이 재물로 바쳐지기 때문에, 그 피 냄새가 예루살렘 성의 십 여리 밖에까지 진동하였다고 합니다.
나사렛에 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도 12살 되던 해에 유월절이 되자,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전례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1주일 동안의 유월절 절기가 끝나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무리를 지어서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유월절 절기가 끝나자,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유월절 동안에 일어났던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이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날이 밝아오자, 그들은 친척들과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오던 길을 더듬어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요,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3일 동안 예수님을 잃어버렸던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리아와 요셉처럼 예수님과의 사귐이 끊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 우리 주위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자녀가 되기는 했지만, 날마다의 삶 속에서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와 사귐이 끊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는 있기는 하지만, 주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안일함(Indolence)
첫째로 안일함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안일함이 있었습니다.
43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막연히 ‘친구들과 함께 따라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딘가에 있겠지,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보면, 이처럼 안일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려운 일보다 평안한 일만 추구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국 감리교회의 알렌 목사는 자기 교인을 조사한 후, 그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교인으로 등록은 했지만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체 교인들 중 25%는 기도를 하지 않고 있으며, 35%는 성경을 읽지 않고 있으며, 40%는 일정한 헌금을 드리지 않고 있으며,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고 있으며, 85%는 단 한 사람도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의 교인들이 천당 가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현대 교인들의 신앙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안일함이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남들에게 공격을 당하면서까지 앞장 설 필요가 있나? 봉사하다가 괜히 어려움 당하지 말고 조용히 신앙 생활하는 것이 좋아”라고 말하며 안일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서 안일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신앙자세는 잘못하면 예수님과의 교제를 끊어지게 만듭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어려서는 주일학교를 다니고, 침례도 받고,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을 받았다 할지라도, 저절로 주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도 주님과의 사귐이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잘 압니다. 교회의 여러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을 잃어버린 채,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하루 동안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대충 대충 믿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여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불쌍한 종교인만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마리아와 요셉처럼 자신의 앞길만 신경 쓰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분이 이 자리에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안일한 신앙생활에 빠져 1년이 가도, 5년이 가도, 10년이 가도, 믿음이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는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분주함(Busy) 때문에
둘째로 분주함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종교행사로 바빴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추억을 생각하느라 바빴습니다. 1주일 동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하루 동안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쁩니다. 마치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르다처럼 굉장히 분주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부엌에서 굉장히 바삐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바쁜 언니와 달리,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께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제가 누가복음 10장 40절을 읽겠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우리 말 성경에는 젊잖게 표현되어 있지만, 원래 이 말씀은 매우 거친 표현입니다. “주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주님께서는 저에게 관심이라도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지금 한가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저 마리아를 보면, 쟤는 꼭 정신이 어떻게 된 아이 같습니다. 주님, 지금 마리아에게 빨리 나를 도와주라고 말씀해주세요.”
그 때 주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1~42)
마르다가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 분명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손님 대접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주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마르다는 분주함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잊어버렸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징은 마르다와 같은 분주함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분주함을 ‘도덕적인 게으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쁘고 분주하다보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현대인들이 분주하게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라도 해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남들의 눈에 부러워할 만한 이미지를 보이게 위해서 바쁘게 삽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질문할 때 대개는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가 하는 일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앞에서 주님과 함께 함으로써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민감해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까?
영국 런던에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캠벨 몰간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매일 오후 저녁 무렵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를 산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어느 날, 갑자기 딸이 며칠 동안은 이유는 묻지 말라고 하면서, 아버지와 공원 산책을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그러나 몰간 목사님은 그 이유는 성탄절 아침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께 드릴 슬리퍼를 만드느라 시간이 핗요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이 선물을 받으면서 몰간 목사님은 사랑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무너무 고맙다. 참 고맙다. 이것을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았니?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이 아빠는 슬리퍼 선물보다 네가 나와 함께 더불어 손 잡고 산책하는 것이 좋단다.”
지난 주 시드니에서 있었던 오세아니아총회 기간 중에 성령께서 저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조목사야! 선물은 고맙지만, 나는 이 선물보다 너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너와 대화하기 원한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를 위한 Ministry는 고맙지만, 나를 위한 Ministry보다 나는 너와 함께 대화하기 원한단다.” 사역을 하다보면, 목회자로서 주님의 사역에 분주한 것이 꼭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이번 총회 기간 중에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사역보다, 당신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더 원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마리아와 요셉과 마르다 처럼 분주함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쁜 생활 때문에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보다 주님의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말고, 주님의 일보다 주님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보면 주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48절을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고 나서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근심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아십니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사업이나 직장도 그만 둡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잃어버리면 바로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속에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요셉과 마리아처럼 예수를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자식에게서 복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그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결코 복된 삶을 살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고, 엄청난 권력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결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배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아무리 돈이 없다 할지라도, 아무리 지위가 낮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며 산다면 그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지난 주 시드니에 있었던 오세아니아총회 기간 중 몇 사람과 교제하면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꼭 우리 크라이스트처치순복음교회 성도님들에게 소개해주겠다는 결심을 할 만큼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화요일 오전에 저와 더니든의 김목사님, 인버카고의 이목사님이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오신 분이 시드니순복음교회의 김모집사님입니다. 그 집사님은 개인적으로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제가 1987년 호주 시드니에 처음 도착하여 영어학교를 갔는데, 같은 반에 그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그 분은 오전에는 영어학교를 다니면서 비자 연장을 하고, 오후에는 어느 Take Away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마 한국에 계셨을 때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못하고 어릴 때부터 중국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음식 솜씨가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너무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영어로 대답하는 대신, “미스터 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하면서 저에게 묻곤 했습니다. 또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다보니 피곤해서 공부시간에 공부하는 시간보다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그 분이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처음 아내와 두 자녀는 한국에 놓아두고 혼자 시드니에 와서 영주권도 없이 나중에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1주일에 50불 하는 독신자 플랫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분이 저를 마중나오셨습니다. 공항에서 교회까지 가면서 교제를 하고, 또 마지막 날 금요철야예배 겸 오세아니아총회의 밤이 끝난 새벽 1시에 시드니 시내 차이나 타운의 고급 중국 레스토랑에 가서 야식을 먹으면서 교제를 하면서 그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제가 토요일 새벽 3시까지 야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듣다가 그 분에게 “집사님, 제가 우리 교회에 가서 집사님 이야기를 소개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제안에 그 분이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그 분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현재 그 분은 Hand Car Wash(자동차 손세차장)을 다섯 곳이나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나 잘 되는지 파라마타라는 동네에 있는 세차장에서는 하루 매출이 무려 10만 불이나 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제 머리로 몇 대를 세차해주고, 몇 대를 고쳐주어야만 그 금액이 나올 수 있을까 지금도 계산이 되지 않음). 또 호주에서 한국사람 최초로 ’오폐수 처리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세차장, 자동차 정비공장, 병원, 우체국 등을 2주에 한 번씩 돌면서 청소해주는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소자본을 가지고 오세아니아 전 지역에 있는 Westfield Shopping Cetre나 오피스 빌딩, 등에 프랜차이즈 식으로 한 업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그 분은 이스트우드라는 좋은 동네에 있는 고급 주택에서 살고 있으면서, 시드니공항 근처 바닷가에 200만 불 짜리 주택을 하나 더 장만했습니다. 또 화요일 오전 공항에서 교회까지는 ‘4-Wheel Drive’로, 금요일 저녁 교회에서 차이나타운의 중국집까지는 최신형 벤츠 ‘S 500‘로 섬겨주셔서 알게 되었지만, 그 분이 타고 다니는 두 대의 자동차만 해도 몇 십만 불은 주어야 할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물질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그 분의 따님은 시드니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곧 있으면 변호사가 될 예정으로, 자녀들도 다 잘되었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분은 비록 불법체류자 신분이었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분이셨지만,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분이셨지만,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가까이 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영주권을 신청하여 결국에는 기적적으로 호주 영주권을 얻었습니다. 그 후 북쪽에 있는 이스트우드라는 동네에 중국집을 시작하여 장사가 잘 되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하여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그 사업장을 처분했습니다. 또 부흥회나 집회 등을 인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공항에서 픽업하고 꼭 차이나타운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접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교회에서 남선교회 회장이나 선교위원회 직분 등 교회에서 주시는 직분을 거절하지 않고 순종하며 감당했습니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려고 했고,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지혜를 주셔서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돕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복을 받았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짧은 4일 동안 시드니 체류 기간 동안 분명하게 목격했습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이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되시기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이 땅에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주님만은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주님만은 잃어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제 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아메리카 어느 인디언 부족의 성년식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 부족에서는 성년이 된 소년, 소녀에게 바구니를 들고 옥수수 밭을 걷게 합니다. 긴 밭고랑을 걸으며 ‘가장 크고 탐스러운 옥수수 딱 하나’ 만을 골라 바구니에 담는 것입니다.
단, 이때 이미 지나온 길로는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이미 딴 옥수수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정말 마음에 든 옥수수 딱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년, 소녀들이 어떤 옥수수를 골랐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바구니는 비어 있거나, 맨 마지막에 급하게 딴 초라한 옥수수 하나가 담겨 있기 일쑤였습니다. 좋은 것을 다른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다가, 결국에는 놓치고만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사람은 변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리와 요셉처럼 안일함과 분주함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으로 붙잡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