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잔의 총체적 선교는
신사도 대부 피터 와그너가
정의한 단어이다!
한국에도 WLI지부가 있다?! 없다?!~
NCCK가 WCC의 지부인 것 처험
///
복음주의선교운동 로잔이 나아갈 방향성에 대한 고찰
2024년 로잔 4차 대회를 향한 제언
//
2024년 9월 22-28일
세계 각국에서
약 만여 명의 선교지도자들이
한국(인천 송도)에 모여
로잔 4차 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1974년 스위스에서 1차 대회,
1989년 마닐라에서 2차 대회,
2010년 케이프타운에서 3차 대회를 가졌고,
2024년 9월 한국에서 4차대회가 개최가 열린다.
/
1974년 이래 로잔운동은
전 세계복음주의교회들에게
성경에 기초한 선교의 내용과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길잡이 역할(Road Map)을 해오고 있다.
//
로잔운동의 국제 총재인
마이클 오(Michael Oh)는
“4차 대회가
대한민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특별히 2024년은
로잔운동이
5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진지한 재 헌신에 대해
교회에
도전하고 결집하도록
부름을 받은
전략적 해
라고 믿는다.
세계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며,
모든 민족과
장소에서
제자 삼는 교회들이 세워지고,
모든 교회와
사회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와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의 영향을 보기 위한 비전을
성취해야 한다.
4차 대회에서는
다양한 경청과
모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협력하고 행동할 것을
전 세계교회에
요청하게 될 것이다”
라고 대회의 의미를 밝혔다.
//
현대 복음주의진영 선교운동(Modern Evangelical Missional Movement)인
로잔운동은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잔 스토트(John Stott),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P. Beyerhaus),
해럴드 오켄가(Harold John Ockenga), 그리고
칼 헨리(Carl Henry)
등과 같은
복음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에 의해
1974년 태동하였다.
//
로잔운동이 태동된 결정적 계기를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외부적 요인으로는
첫째,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혹은 에큐메니컬로 표기) 웁살라 대회(4차 총회)를 전후하여
선교개념이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과의 화목’(롬 5장 10절, 골1 장 20, 22절),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됨’ (롬5장 9절, 갈2:16절),
‘죄 사함의 구원‘(엡 1장 7절, 골 1장 14절)이 아닌
인간화(Humanization)의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
둘째,
WCC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의 1973년 방콕대회가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이라는 주제로 모여
폭넓은 구원의 개념을 뿐 논의할 뿐 아니라
‘선교의 모라토리움’(Moratorium for Missions)을 선언하였기 때문이었다.
/
내부적 요인으로는
첫째,
빌리 그래함과 칼 헨리의 리더십 하
1966년 베를린(Berline)에서
세계전도대회(The World Congress on Evangelism)가 개최되었다.
베를린대회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모인대회로
에큐메니컬 선교의 영향으로
잃어버린 복음전도의 비전과 열정을 회복하고자 함이었다.
참석자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향하여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인가?”,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 불변의 복음이 아직도 있는가?”와 같은 이슈를 다루며 1960년대부터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를 비판하며 복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베를린대회는
‘변치 않는 구원의 복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교회가 해야 할 최우선순위는 복음을 전하는 일’임을 천명하였다.
/
둘째,
1968년
WCC 웁살라대회에서
구원의 개념을 인간화로 규정하는
에큐메니컬 선교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를 느낀
독일 튜빙겐 대학((Universität Tübingen))의
선교신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가 작성한
‘프랑크푸르트 선언문’(Frankfurt declaration)이
1970년 3월 4일 발표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칭의라는 바울의 신학이
완전히 인간화로 변질되었으며,
선교의 초점이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바뀌었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에서
이웃과의 관계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선언문은
당시 독일의 주요 교회들과
대다수의 선교단체가
WCC에 가입해 있는 상황에서
독일교회를 향해
에큐메니컬 선교의 비성경성을 알려주었다.
/
특히 선교에 있어서
전도와 사회참여 문제로
양극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야기된 신학적 혼돈 속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성경의 빛 아래서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며,
적응성 있는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온 교회가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헌신할 필요를 느끼는 가운데
1974년 로잔대회는
태동하였는데 이런 점에서
로잔운동은
개신교 현대선교 운동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1960년대
에큐메니컬 선교의
잘못된 선교에
위기의식을 느껴
태동한
로잔운동의 현재는 어떠한가?
3차례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로잔이 점점
‘인간 삶의 전 영역을 선교의 대상’ 으로 삼으므로
처음 태동할 때
‘세계복음화’(World Evangelization)라는
확고하게 정했던 최우선순위가
약화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따라서 4차 대회를 앞두고 연구자는 본 연구를 통해
현대 복음주의교회가
총체적선교(Holistic Missions)를 실천하되
로잔이 태동할 때 정했던
‘복음전파의 우선순위’를 약화시키면서
인간의 다양할 필요들을 대처하려다가
인간중심의 선교로 나아간
에큐메니컬 진영이 범한
실수의 전철을 밝지 않도록
한국복음주의교회 및
세계복음주의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
현재 로잔 내부에서도
로잔이 정했던
‘전도의 우선순위’(Priority of Evangelism)가 약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승오는
“로잔은
2010년 케이프타운대회 이후
로잔이 태동기에 지녔던
복음전도의 우선성과
긴급성을 상실하고
선교의 목표에 모든 것을
같은 중요도로 포함하는
통전적 선교를 추구하면서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
을 우려한 바 있다.
/
케이프타운대회에 참가한 한 참석자는
로잔의 변화를 목격하며
“로잔의 독특성이 어디에 있는가?
대회의 내용이 WCC와 무엇이 다른가?
로잔이 마침내 그 정신을 잃어버렸다”
라고 탄식한 바 있다.
/
세계복음화를 위한 운동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지닌 로잔이
1-2차 대회까지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에 있어서
복음전도가 우선성을 지닌다고 천명하였으나,
그 입장이
로잔 3차 대회 이후 서서히 변화하여
복음전도가 우선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
연구의 절차는
로잔운동이 태동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1966년 베를린대회,
1970년 프랑크푸르트선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4차 대회가
태동할 때 가졌던
로잔의 선교사상과 독특성을 회복하도록
촉구하는 제언을 하고 글을 맺는다. (계속)
//
1. 로잔운동 태동의 초석이 된
베를린대회와 프랑크푸르트선언문
앞에서 언급한 것같이
1974년 로잔운동은
인간중심으로 흐르는
에큐메니컬선교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 중심(God Centered)보다는
인간중심(Man Centered)으로,
하나님의 관심(Theocentric Concern)보다
인간적 관심(Anthropocentric Concern)으로,
영적차원(Spiritual dimension)보다는
인간적 차원(Humanity dimension)으로 나아가는
에큐메니컬선교를 우려하며
‘교회가 할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임을 확언한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
이제부터
로잔운동의 초석이 된
베를린대회의 개최이유,
독일 신학자들에 의해 선언된
프랑크푸르트 선언문의 내용을 살펴봄으로
4차 로잔대회 및
로잔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
1-1. 베를린대회(Berlin Congress on Evangelism)
베를린대회는
에큐메니컬진영을 대표하는 선교잡지
Christian Century와 구분된
복음주의의 신학과 신앙을 대변하던 잡지
Christianity Today
창간 10주년 기념행사로
1966년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대회 공동의장인
빌리 그래함 목사와
칼 헨리의 리더십으로
약100여 개국의
1,200여 명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
베를린대회는 로잔대회 직전 대회였다.
대회의 목표는
‘전도가 무엇인가? 에 대해 재정의하는 것과,
‘전도를 위한 성경적 명령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빌리 그래함은
대회의 목적은
올바른 선교관 정립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고
선교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봉사, 사회참여, 사회개혁 등과 같은 것을
선교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선교의 흐름을 경계하면서
복음선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위해
대회가 개최됨을 밝혔다.
칼 헨리 역시
대회의 최우선적 관심사(Overriding Concern)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신 명령의 절대적 성취”
에 있음을 확인하는 데 있음을 아래와 같이 말했다.
/
”오늘날 많은 신학자 자신들부터
복음화(evangelized)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신학의 발전이란 이름으로
신학을 혼란시키는 장본인이 되고 있다.
일부 신학자들은
세속적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신앙을 적극적으로 파괴하기도 한다.
이것이
베를린대회가 개최된
긴급한 이유다.”
/
베를린대회가 개최된 목적은
일곱 가지였다.
(1)성경적 전도를 정의하는 것;
(2)변치 않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변화하는 오늘의 세상과의 관련성을 밝히는 것;
(3)이 세대 온 세상에 복음 전파의 긴급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4)성경적 전도를
우리 시대에 맞게 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는 것;
(5) 성경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물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
(6) 여러 지역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도사역의 유형들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7) 복음화의 우선순위를
교회로 인식하도록 소집하는 것이었다.
/
베를린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변치 않는 구원의 복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교회가 할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임을 확약하였다.
베를린대회에서 논의된 내용은
두 권의 보고서
「한 인류 한 복음 한 사역」
On Race, One Gospel, One Task 로 출간되었다.
/
박영환은
베를린대회가
WCC에 의해 ‘약화 된 복음전도’를 강조한
반 에큐메컬성격을 가진 대회였음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
“베를린대회는
WCC가 사회적 관심과 활동을
복음전도와 대치하려는 행위로 성경을 거부하는 행위로 보았다.
세상의 문제. 어둠. 혼란. 등은
국가의 힘 군대의 힘 경제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각 개인이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복음을 수용해야 가능하다.
즉 복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지
사회개혁 운동, 사회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천명한 대회였다.”
/
이상 살펴본 것처럼
베를린대회의 개최이유, 논의된 내용,
그리고 선언문은
1974년 태동된
로잔운동의 신학과 선교에 초석이 되었다.
/
1-2. 프랑크푸르트 선언문
프랑크푸르트선언은
1968년 웁살라대회가 ‘인간화’를
WCC의 공식 선교정책으로 채택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과업인
기독교 선교의 성경적 기초가 흔들리는
근본적 위기를 절감하는 가운데 나왔다.
당시 튜빙겐대학 교수로 그리고
대학 내 에큐메니컬 신학과 선교연구소장이던
바이어하우스는
웁살라대회가
인본주의적 선교로 급선회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인간화가 유일한 세계의 소망인가?”(Is humanization the only hope for the world?)라는 선교의 ‘인간화’에 대한 비판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은
독일 여러 대학 신학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공동으로 성경적 선교개념을 밝히는 선언을 발표하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바이어하우스에 의해 초안되고
WCC에 가입된 독일 개신교회소속 신학자 15명에 의해 발표된 프랑크푸르트 선언문의 원 명칭은
“기독교 선교의 근본적 위기에 관한 프랑크푸르트선언”(Frankfurt Declaration on the Fundamental Crisis in Christian Missions)이었다.
‘기독교선교의 근본적 위기’란
1968년 WCC 웁살라대회가 채택한
‘선교의 갱신’(Renewal in Mission) 보고서를 비판하고 대응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WCC 회원 교단
독일 신학자들에 의하여
같은 유럽 땅인
스웨덴 웁살라대회에서
‘선교의 갱신’이라는 이름으로 채택한
‘인간화’(Humanization) 가
‘그리스도의 대속’(Redemption through Christ)을 통한 구원(참고: 엡 1:7, 골 1:14)이라는 성경적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을 확인하고 거부하는 강력한 신학적 선언이라는데
그 중요성과 의미가 있다.
/
1970년 3월 4일
프랑크푸르트 선언문이 발표되자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잡지
Christianity Today가 선언문을
즉각 영어로 번역하여 게재하였는데
이로써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독일 신학자들만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범 세계, 전 복음주의 선교진영의 선언으로 확산되었다.
/
선언문은 웁살라대회가 채택한
새로운 선교개념이 가져올
근본적 위기를 경고하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선교의 거룩한 특권과 의무가
그가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
선언문은 성경을 근거로
‘선교의 필요적 일곱 가지 근본요소’(Seven Indispensable Basic Elements of Mission)를
아래와 같이 천명했다.
/
첫째,
마태복음28장 18-20절(지상명령)에 근거하여
선교는
사도들과 초대 기독교의 증언과 행위를 따라야 한다.
선교는
복음의 본질에 근거한다.
따라서 선교가
사회. 정치적 분석과 비기독교 세계의 요구에 따라
선교의 본질과 과업이 결정되어야 한다
는 주장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교회의 복음적 전도의 의무에
혼란과 혼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둘째,
에스겔 38장23절, 시편18편49절, 그리고 로마서15장 9절의
“하나님의 존대함과 거룩함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사람들이 알게 하라” 하심과
“열방이 주께 감사하며 주를 찬송하게 하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선교의 최우선적이고 최고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화가 선교의 원초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은
그리스도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거듭남의 산물이다.
선교적 관심이
인간과 사회를 향하여만 전개된다면
결국 무신론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셋째,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를 근거로
그리스도 외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을 교회는 증거해야 한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선교의 기초요 내용이요 근거이다.
선교의 목표는
모든 민족에게 그분이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알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WCC 3차(뉴델리) 대회 이후
에큐메니컬 운동 가운데 퍼지고 있는
‘세계의 종교들,
역사적 변화,
혁명들 속에 그리스도는
익명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복음의 직접적인 전달 없이도
그분을 만나며 구원을 받는다“
는 가르침을 반대한다.
/
넷째,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를 근거로
인간의 구원은
단회(單回)적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대속적 죽으심에 기초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적 행위에 대한 신앙이나 지식에 상관없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은 거듭나며,
그리스도와 화평을 이루었다는
보편주의적 구원사상에 반대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회개와 세례를 통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은
구원의 거부를 통해 멸망에 이르게 한다.
/
다섯째,
베드로전서 2장 9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낸 것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근거로
선교적, 기본적, 가시적 과업은
모든 민족에게
메시아적 공동체를 불러내는 것임을 확인하며,
복음전파는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며
교회는
소금과 빛으로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구현하는
실체로 정의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와 사회가 순전히 사회적인
온 인류의 화해를 공유해야 한다는
이 세상만을 강조하는 일방적인 구원
을 거부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교회의 자기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
여섯째,
에베소서 2장 11-12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를 근거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졌고
비기독교적인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참여함으로써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언한다.
따라서
“비기독교적 종교들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같이
구원의 길들”
이라는 비성경적 가르침을 거부한다.
“비기독교인들과의 대화가
복음전도를 대신할 수 있다”
라는 WCC의 주장을 반대한다.
그들의 주장은
종교혼합주의를 낳아
기독교선교를
반 성경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을 경고한다.
/
일곱째,
마태복음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에 근거하여
종말론적 선교를 선언한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며
복음전파를 통하여
나라와 민족들이 그리스도를 믿든지 거부하든지
결정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그리스도의 교회와
적그리스도 세력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절정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최후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 세계 속으로 다시 돌아오시어
사단의 세력을 꺾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웁살라대회가
“종말론적 기대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의
너무나도 긴 지연 때문에
거짓으로 판명되었으므로
이제는 포기해야 한다”
라는 성경적 근거를 벗어난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우리는 반박한다.
메시아적 구원을
세계의 진보와 사회적 개혁 등과 동일시하는
WCC 신학과 선교를 거부한다.
/
베를린대회가
선교의 복음주의적 원리를
천명하는 분명한 자세를 취하였지만,
정면으로
WCC의 선교정책과 선교에 관한 결의를
반박하고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일곱 가지 선언은 조목조목
WCC 선교의 비 복음성과 혼합성을 반박하였다는 점,
그리고
선교의 성경적 근거를
먼저 명시하고
사도적,
초기 기독교적,
전통적 개신교 선교의 원리를
확실하게 천명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WCC의 선교가
어디서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는지 분명하게 지적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 28장 19-20절)에 의하여 시작된 선교가
성령강림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그 사명 외 어떤 사명도
선교의 과업 밖의 또 부속적인 일임을 천명하였다는 점
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
박영환은
선교가 「복음주의 선교여야 하는 이유: 프랑크푸르트 선언문 다시 읽기를 중심으로」에서
“프랑크푸르트 선언문은
선교의 주제가
인간화가 아니고
복음화라는 명확한 정답을 제시해준 제안서며, 설명서이다.
선언문은
작금의 혼돈스러운
복음주의선교입장을 바로 세우고,
에큐메니컬 선교가 던진 과제를
정리해주었다.
복음전도는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며
제일가는 사역이다.
선언문은
세계선교의 정체성으로,
복음주의 선교가
선교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라며 기독교선교에 관한 선언문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계속)
//
2. 로잔운동
1차 로잔대회(Lausann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는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150개국에서 온 2,7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온 세상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2차 로잔대회는
198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170개국에서 약 3,000여 명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를 선포하라:
온 교회가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Proclaim Christ Until He Come: Calling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3차 로잔대회는
2010년 10월
198개국에서 약 4,200여 명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세상과 자기를 화목케 하시는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God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이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2024년 9월 한국(송도)에서
4차대회가 개최가 확정되었다.
/
복음주의 선교운동인 로잔이
1974년에 시작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비성경적 방향으로 흘러가던
에큐메니컬 선교를 우려하던
복음주의자들은
로잔 이전 1961년 휘튼대회(Wheaton Conference),
1966년 베를린대회로 모여
복음주의 선교와 에큐메니컬 선교가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였고
또 다시 1974년 로잔대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유행되던
‘선교의 모라토리엄’ 사상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많은 지역이 있는 상황에서
교회에 맡겨진 선교의 대과제를 확인하고자 했다.
특히 전도와 사회참여 문제로 선교가 양극화되어가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로 야기된 신학적 혼돈(Confusion)에서
복음주의자들이 함께 모여
성경의 빛 아래서 신학적 입장을 정립하며,
적응성 있는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온 교회가 이에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헌신할 필요를 느꼈다.
이 같은 요청으로 모인
로잔대회들이기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
3차에 걸친 로잔대회에서
복음전도와 함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은
동시에 강조되었지만
그런데도 1, 2, 3차 문서를 통해 볼 때
로잔운동의 특징은
변함없이
‘전도의 우선순위’를 강조한다는 데 있다.
로잔운동의 슬로건인
“세상 끝날까지 온 교회(Whole Church)가 온전한 복음(Whole World)을 온 세상(Whole World)에 전하자”
라는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잔의 신학과 선교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1차 대회 후 로잔운동이 지속되도록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위원회(LCWE, The 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가 조직되어 로잔운동은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선교운동으로 정착되었고,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형성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
로잔위원회는 WCC와 같이 회원교회나 단체들의 대표로 구성되는 기구 혹은 조직체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Movemennt)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로잔정신,
즉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를 복음화
(로잔이 말하는 선교비전은
온 세계를 향한 것이며
세계복음화가 선교의 목표다)하려는
뜻에 동의하는 자는
어느 조직(WCC, WEA, 교단들)에 속했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다.
연구자가 보기엔
이것이 로잔운동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취약점)이기도 하다.
/
2-1. 로잔운동의 일곱 가지 공헌
/
20세기 WCC가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향해
‘회개와 믿음’(행 20장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을 전할 사명을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선한 일(Good Deeds)을 하고,
종교 간 대화(Inter-Relgious Dialogue)를 중시하던 시대였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완전한 타락, 복음의 선포, 심판, 지옥,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은 구원의 배타성과 같은 복음적 교리는 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
또한 긴 세월 건강치 못한
제국주의적(Imperialism),
가부장적(Paternalism. 온정주의) 선교,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식민주의(Colonialism)는
‘선교 모라토리엄’ 요청을 부르게 했다.
로잔은
이러한 상황에서 태동하였다.
/
로잔운동은
1차대회이래 지난 49년 동안
긍정적인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다.
로잔위원회(그리고 각 대륙 로잔위원회)의 지도하에
세계복음화 사역에 있어
주요한 이슈들을 다룬
전략회의들(Consultations)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었다.
로잔운동의 일곱 가지 공헌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언약. 선언문. 서약들이다.
1974년 로잔언약은
그 이후의 1989년 마닐라 선언문,
2010년 케이프타운 서약의 기초가 되었고
이 세 가지는
세계복음화를위한 요청,
그리고 복음전파를 위한 협력을 위한 통합문서들이다.
/
둘째,
전도와 교회의 사회책임이다.30)
로잔은 1974년 시작부터
‘전도의 우선순위’(Priority of Evangelism)를 분명히 하면서도
그동안 복음주의 진영에서 소홀히 해온
교회(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함을 강조했다(로잔언약 5항. 마닐라 선언문 8, 9, 18, 21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10항).
20세기 개신교 선교운동은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 간의
‘복음전도와 교회(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슈와 연관된 갈등과 대립 구조로 전개되었다.
로잔이 사회적 책임을 표방한 것은
에큐메니컬 진영의 신학과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의 대응이었다고 하겠다.
/
셋째,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과 10/40Window 개념의 제시이다.
로잔은 선교에서 ‘미전도 종족’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1차 대회 때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미전도 종족(복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람들) 개념을
세계교회에 소개하며
이들에 대한 선교의 시급성과 ’최우선순위‘가 되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전 1930년대의 인도 선교사로 사역하던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가 쓰던
’숨겨진 부족‘(Hidden People Group),
과테말라 선교사 윌리엄 카메룬 타운젠트(William C. Townsend)
‘숨겨진 언어 그룹’(hidden linguistic group)의 개념을 정리하여
감추어지고 전도되지 않은 종족들을
미전도 종족(the Unreached People Group)의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2차 대회에서 선교전략가이자 선교동원가인
루이스 부시(Luis Bush)는 10/40 Window 개념을 제시하였다.
윈터의 미전도 종족선교개념에
부시의 10/40 Window 지역에 대한 선교의 집중화 전략제시는
복음주의교회선교에 강력한 견인차 구실을 하였다.
/
넷째,
다이스포라(Diaspora)선교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3차대회에서 디아스포라 선교가 강조되었는데
세계화와 언어와 문화의 단일성을 넘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이주해 사는
디아스포라 시대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워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이주(migration)는
2015년 9월 70차 UN 총회에서 채택된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에 포함될 정도로
각국의 경제성장을 돕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미치는
막대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디아스포라 선교개념은
다양한 이유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상기시켜주었다.
/
다섯째,
다수의 교회(Majority World Church) 개념이다.
로잔운동은
다양성을 지닌 운동(a Diverse Movement)으로 시작되었으며,
이 같은 방향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로잔운동은
서구 교회로 하여금
다수의 세계(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했다.
그 결과 2010년 3차 대회는
1차 대회보다 다수의 세계교회들의 참석 및 대회에서 역할이 컸다.
/
여섯째,
협력관계(Partnerships)이다.
로잔은
선교에서 국제적 협력관계를 강조해왔다.
교회, 기관, 선교단체들이 연합하여
세계복음화를 위해
함께 동역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
일곱째,
리더십(Leadership)이다.
지난 49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복음주의 리더들이
로잔운동에 동참했다.
로잔은
또한 리더 개발을 위해 청년 리더 모임
(Younger Leaders Gathering, YLG)를 구성해
25~35세의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리더들을 연결하고
기존의 세계리더와 연결하여
다음 세대의 영향력 있는 리더들을 세우고 있다.
그 결과로 로잔운동을 통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선교리더들이 생겨났다. (계속)
//
2-2. 로잔운동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
앞에서 살펴본 것 같이
로잔의 신학과 선교사상은
분명
1961년 휘튼대회,
1966년 베를린대회,
그리고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
1차 대회를 개최할 때
공동의장이었던 빌리 그래함은
로잔대회가 열리는
‘하나의 분명한 주제’(an Agenda for the Lausanne Congress)를 밝혔는데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와 차별화된
‘복음전도에
세계교회가 연합하고
헌신하도록 함’
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로잔을 위한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가길 원한다”라고 했다
(my prayer is that they will re-focus on the mission of God,
to reach all peoples with the good news of Jesus).
/
미국 콜럼비아국제대학(Columb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Intercultural Studies를 가르치는
마이크 바넷(Mike Barnett)은
‘로잔의 슬로건은
온 교회(Whole Church)가
온전한 복음(Whole World)을
온 세상(Whole World)에 전하자’
이지만 로잔의 본질인
“세상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예수를 전하는 일”
을 잃는다면
로잔은 길을 잃는 것이다”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
하지만 현재 로잔은 어떠한가?
3차 대회 이후
흩어진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에큐메니컬)선교적 교회론’(Ecumenical Missional Church)을 외치며
로잔의 본질을 흐리게하고 있다.
3치 대회에서
잔 파이퍼(John Piper)는
이러한 추세를 사전 인지하고 주제강연 시간 그는
인간의 모든 고통,
특별히 영원한 고통(Eternal Suffering)에 대해 우회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
이제부터 연구자는
4차 대회를 앞두고 앞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로잔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
첫째,
로잔운동이 왜 태동했는 다시한번 기억하는 대회가 되길 원한다.
1960년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던 에큐메니컬선교에 대한 대응으로 로잔운동은 태동되었다.
로잔운동이 태동되기 전 복음주의 진영은 이미 1961년 휘튼대회, 1966년 베를린대회, 1970년 프랑크푸르트선언문을 통해 교회(그리스도인)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심판(창 2:17, 롬 5:12, 6:23, 히 9:27, 살후 1:7-9, 계 20:11-15)을 받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라는 대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선교의 회복을 확인한 바 있다(마 28:19-20, 막 16:12-20).
역사적으로 로잔운동은 휘튼대회, 베를린대회, 프랑크푸르트선언문의 결과로 태동된 복음주의자들의 선교운동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1960년대 에큐메니컬선교신학과 선교는
1948년 WCC가 출범할 때 정했던 성경에 기초한 신학 그리고 선교를 이탈하는 오류를 범했다.
1938년 네덜란드 유트레히트(Utrecht)에서 작성된 WCC 헌장(WCC Basis)을 보면
현재의 에큐메니컬선교운동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
“세계교회협의회(WCC)란
성경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친교(Fellowship)이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는
한 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
헌장에서 보듯 출범할 당시 WCC의 신학은
성경에 기초하며,
복음주의적 성격을 명확하게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에큐메니컬선교는
복음전도의 비전과 열정을 잃어버린 불행한 예가 되고 있는데
로잔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도
로잔이 역사적. 신학적. 선교적으로 왜, 어떻게 로잔운동이 시작되었는지 기억함으로
WCC의 변질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둘째,
‘복음전도의 우선순위’을 다시 분명하게 천명하길 원한다.
사실 교회(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은
로잔운동시작부터 논쟁이 이었고
현재도 로잔 내부에서 논쟁이 되는 이슈이다.
1차 로잔에서 채택한 15개 항의 로잔언약 가운데
5항은 복음주의교회가 간과해왔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데 5항의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로잔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책임과 복음전도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게된다.38)
특히 6항에서 로잔은 ‘전도의 최우선성’을 천명하면서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
즉 둘 다 중요하지만,
여전히 복음전도가 더 우선적인 선교의 과제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가 최우선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이다.”(로잔언약 6항)
/
트레빈 왁스(Trevin Wax)39)는
잔 스토트의 자서전 Godly Amibiton을 인용해
로잔언약에 담긴 ‘사회적책임’ 문구를 두고
빌리 그래함과 잔 스토트사이에
긴장과 불편한 관계가 있었음을
아래와 같이 증언하고 있다.
//
대회의 핵심목적은
복음주의자들로
지상명령을 완수토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대회의 주제,
“온 세상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가
로잔대회의 목적을 잘 담고 있다.
로잔대회를 준비하면서
언약초안위원회(the drafting committee) 의장이었던
스토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복음전도는
물론 사회 및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스토트의 이런 생각은
‘복음전도’에 방점이 있는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 아닌
요한복음 20:21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는 구절에 초점을 두어
예수님의 선교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돌보는 것이었던 것처럼
교회의 선교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토트는
하나님께서
예수께 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섬기기 위해서임을 주장했다.
즉 선교를
예수의 성육신적 삶의 모델(빌 2:7)이
우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재현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우리가
대위임령과 대계명의 이중적 부르심에
동등하게 반응하는 것이
선교적 부르심으로 보았다.
그 결과 로잔언약은
스토트의 생각이 반영되어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양면’ 임’을 담았다.
하지만 1차 로잔대회 이후 스토트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로잔언약이 표방한 선교의 양면
즉,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았다.
1975년 1월 후속대회로 모인 멕시코대회 첫날
스토트가 참석한 자리에서
빌리 그래함은
‘우리는 복음전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주제강연을 하였는데
스토트는 그래함의 강연을 생각하며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스토트는 로잔위원회 앞에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함께 가야한다는
로잔언약이 앞으로 로잔운동에 반영되지 않으면
자신은 위원직을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스토트와 그래함은
1950년대 그래함이 영국에서 전도집회를 하던 때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였지만
스토트는 그래함에게 도전했던 것이다.
스토트의 충격적인 말에 위원들 모두가 놀랐다.
15개 항의 된 로잔언약에서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분량이 적었고,
그리고 스토트를 잃으면 로잔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다.
위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스토트와
‘전도’를 강조한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타협(compromise)하여
“교회의 총제적 성경적 선교”(the total biblical mission of the church)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일단 봉합했다.
그래함 역시
오랜 친구 스토트를 잃지 않기 위해
그해 4월 스토트에게 존경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보냄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되었다.
로잔언약에서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단 한 차례 언급되었지만,
마닐라 선언문과
캐이프타운서약에서
사회적 책임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연구자가 보기엔 사실
전도와 사회적 책임 이슈에 대한
로잔 안에서의 갈등은 현재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
지난 49년간 로잔의 주요한 문서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문, 케이프타운 서약은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교회의 사명임을 천명했고,
총체적 선교를 실행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총체적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타락한 인간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사역이다.
온전한 사람이란
영적, 정신적, 육적, 사회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선교를 뜻한다
(대하 7:14 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
연구자는 앞으로
로잔이
‘복음주의적 총체적 선교(Evangelical Holistic Missions)’를 실천하되
이 총체적 선교 때문에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포기 혹은 약화시키거나,
로잔운동이 인간의 다양할 필요들을 채우려다가
WCC가 범한 인본주의적 선교로 나갔던 실수의 길을 밟지 않기를 소망한다.
/
배춘섭은
“복음전도를 우선시하는 ‘우선주의’(Prioritism)가 개혁주의(복음주의)신학에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복음주의)선교는 세상을 변혁시켜야 할 긍정적 존재로 이해하기보다,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멸망의 대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우선주의’ 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
현재도 로잔 내부에서
로잔이 사회적 책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로잔이 복음전도보다
사회적 책임으로 너무 많이 나갔다고 불만을 토론하는 자들이 있다.
연구자가 보기엔
사회적 책임 이슈는 앞으로
계속 로잔 안에서 논쟁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셋째,
로잔은
에큐메니컬운동을 대응하기 위해 태동된
하나의 ‘운동’(movement)이다.
WCC처럼 조직체로서 관리, 통제, 그리고 감독하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 이라는 것이 로잔운동의 특징이다.
이 특징은 로잔이 지니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1차 대회가 끝난 후 로잔은
관리. 감독하는 조직적인 기관(Organizational Structure)이 아닌
세계선교를 위해 촉매(catalyst) 기능을 하는
로잔위원회(LCWE)를 두어 운동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
연구자가 우려하는 점은
신학적 성향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로잔에 참여한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주장하고 관철하려 할 때
운동의 본질은 흐려지고 대회가 진행될 때마다 채택된 겹겹이 쌓인 의제들로 인해
세계복음화에 초점을 두고 태동한 운동이 산만해지고 에너지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참여는 결국 ‘절충과 타협’(Compromise and Negotiation)이라는 방식을 통해
로잔의 분열은 막아주겠지만
운동이 처음 시작된 세계복음화라는 목적을 지키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1, 2, 3차 대회를 거치면서 로잔은
처음 시작될 때 사명을 붙들기보단 대회 때마다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임으로
로잔도
이제 에큐메니컬처럼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의 이슈들을 다루는
만물상회(萬物相會, All Things Market)가 되어버렸다.
크게 낙관은 하지 않겠지만
4차 대회가 1974년 로잔이 왜 태동하였는지 돌아보며,
운동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여
온 교회(Whole Church)로 온 세상(Whole World)을 복음화(Evangelization)하는
순수복음운동으로 재헌신하길 기대한다.
///
III. 나가는 말
1974년 로잔운동이 시작되면서 로잔은 세계선교를 위해 긍정적인 많은 성취를 만들어냈다.
3차 대회를 거치면서 로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Finality of Jesus Christ)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시대를 초월한 유일한 진리임을 천명했다(로잔언약 3항, 마닐라 선언문 2부 3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4항).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강조한 것도 로잔의 공헌이며(로잔언약 7항, 마닐라 선언문 2부 4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8항), (여전히 로잔 내부에서 논쟁적 이슈이지만) 긴 세월 동안 복음주의 진영이 소홀히 여긴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를 한 점도 긍정적인 기여이다(로잔언약 5항, 마닐라선언문. 8, 9, 18, 21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10항),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 대한 전도의 책임(로잔언약 9항, 마닐라 선언문 2부 11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4항), 복음에 대한 타협 없는 가운데 타 종교인들에 대한 사랑, 만남, 그리고 대화(마닐라 선언문 2부 3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C 3장), 전도에서 성령의 사역(마닐라 선언문 1부 10-11항, 2부 5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5장),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로잔언약 1항, 마닐라 선언문 2부 6항), 선교의 동반자로서 여성의 중요성과 역할(마닐라 선언문 2부 6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3장), 다이스포라 선교(케이프타운 서약 2부 5장), 그리고 3차 대회에서는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총 33개), 그리고 신학교육의 중요성 등을 로잔의 선교과제로 삼았다.
3차에 걸친 대회의 결과물인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문, 그리고 케이프타운 서약은 현대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의 핵심을 잘 정리 표현해주었으며 복음주의자들로 세계복음화를 위해 자신들의 헌신을 결집할 수 있는 하나의 ‘깃발’(banner)이 되어주었다.
/
변하는 세상을 향해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지난 49년 동안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운동 로잔의 공헌과 기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4차 대회를 앞두고 연구자는 로잔이 태동할 때 본래 목적을 되찾아 복음의 선포를 진전시켜 세계복음화를 성취하는 참된 순수 복음운동으로 회복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이미 보아온 것 같이 대회가 거듭될 때마다 로잔 내부의 다양한 이해 집단들의 자기주장이 계속될 때 로잔은 너무 많은 선교과제로 인해 ‘복음전도’ 라는 우선순위와 핵심사명을 상실하게 되어 1960년대 WCC의 변질된 모습을 재현하는 불행을 맞게 될 것이다.
로잔이 꿈꾸는 비전은
복음선포를 통한 세계복음화이다.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 14-15절). (끝)
///
한국성서대 김승호 교수
1. 2023. 05. 27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5465
2. 2023. 06. 01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5569
3. 2023. 06. 06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5677
4. 2023. 06. 14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5925
///
http://www.wli.or.kr/main/page.html?pid=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