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배아 유전자가위 연구 허가 신청” -영국 (2015. 09. 21)
http://scienceon.hani.co.kr/321051
인간의 생식세포(정자·난자) 또는 초기 배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새로운 유전자 편집·교정 기법인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두고서 논란이 이는 가운데, 영국 과학자가 ‘인간 초기 배아에 유전체 편집 기법을 사용하는 연구를 허용해 달라’며 관련 당국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프랜시스크릭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는 9월18일 성명을 내어, 이 연구소 소속 캐시 니어컨(Kathy Niakan) 연구진은 관련 당국인 ‘인간 수정·배아국(HFBA)’에 이런 내용의 연구 허가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연구 목표는 인간 배아가 제대로 발달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신문 <가디언(The Guardian)>은 HFEA 위원회에서 실험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면 14일 내 파기한다는 조건으로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법률에 의거해 이 연구가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이 주목받는 이유는, 혁신적인 유전자 조작 기법으로 최근 생명과학 실험실에 널리 확산하는 ‘유전자 가위’, 즉 크리스퍼(CRISPR/Cas9) 기법의 적용 범위를 두고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체세포 수준의 질병 치료 연구나 모델동물 연구에 유전자 가위 기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별다른 논란이 없으나, 인간 생식세포나 초기 배아에 이 기법을 적용해 연구하는 것도 허용할 만한지를 두고서는 다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간 배아에 대한 기초 연구가 허용되면 결국에는 '맞춤 아기' 기술로 나아가는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면' 효과를 초래할 것이며, 생식세포나 초기 배아 단계에서 이뤄지는 유전자 변형은 후세대로 유전되어 예상하기 힘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 3월 이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 일부는 <네이처>에 실은 글에서, 기초 연구용이라 해도 인간 생식세포나 초기 배아에 크리스퍼 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현재 수준에서는 중단되어야 하며, 먼저 전문가와 대중이 참여하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어 미국립보건원(NIH)은 인간 배아 대상의 유전체 편집 연구에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4월에는 중국 연구진이 생육불능 배아들을 대상으로 유전자 가위 기법을 적용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우려와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최근에 국제 생명윤리 전문가모임인 ‘힝스톤 그룹(Hinxton Group)’은 여러 선결 조건을 달면서 ‘안전성(safety), 효율성(efficacy), 관리감독(governance)의 요건이 충족된다면 인간 생식세포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가디언>은 이번 연구 신청이 허용되면 몇 달 안에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진은 크리스퍼 기법을 사용해 초기 배아를 대상으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켜거나 끄는 실험을 수행하고서 이후에 유전자 조작의 결과가 배아 발생 단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함으로써, 그 유전자의 기능을 추적할 수 있다. 이번에 초기 배아 연구 허가 신청을 낸 연구진은 배아 초기에 태반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찾아내어 연구한다면 유산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 기법 연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에 공개적으로 제기된 첫번째 연구 허가 신청이 당국의 어떤 결정으로 귀결될지 주목되고 있다.◑
낯선 ‘유전자 가위’, 논쟁이 필요해
(아래 글은 <한겨레> 9월18일치 지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크리스퍼’(CRISPR)라는 낯선 말이 대중매체에 등장한 건 최근이다. ‘유전자 가위’라는 좀더 익숙한 별명으로도 불린다.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의 디엔에이(DNA)를 찾아 자르는 미생물의 면역반응은 이제 유전자를 다루는 지구촌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2013년 초부터 확산해 불과 몇 년 만에 실험실의 “혁명”, “격변”을 일으킨 기술로 불리니 말이다. 유전자를 다루는 기법은 1970년대 이래 발전해왔으나, 이제껏 없던 방식을 도입한 유전자 가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싸고, 빠르고, 정확한 유전자 조작 기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반인한테는 낯설지만 유전자 가위가 바꿀 세상에 대한 상상은 생명과학계에서 낯설지 않다. 디엔에이 교정 기법이 정확성을 높이면서 유전자 치료는 훨씬 손쉬워질 것이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같은 나쁜 생물종을 몰아낼 수 있는 구상도 제시된다. 생식세포나 배아 단계의 유전자를 바꿔 좋은 형질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유전자 가위 기법의 잠재력이 강조될수록 과학의 힘에 대해 낙관과 비관이 엇갈린다.
너무 혁신적인 기법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과학계 내부에서도 속도조절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 배아에 이 기법을 사용하려는 섣부른 연구를 중단하고 전문가와 시민의 토론이 우선해야 하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최근엔 권위 있는 국제 생명윤리 전문가 모임인 ‘힝스턴 그룹’(hinxtongroup.org)이, 오히려 우려 때문에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기초연구를 멈추게 해선 안 된다는 합의문을 내어 주목을 받았다.
여러 매체가 힝스턴 그룹의 합의문이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가위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했는데, 찬찬히 읽어보면 거기에선 낯선 기술을 다루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프로그램을 읽을 수 있다. 과학 연구와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합의는 어디에서 나올까? 낯선 기술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후대와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가늠하기 힘들 때, 낯선 기술은 기대와 걱정을 자아낸다. 위험과 혜택은 낯선 기술 속에 공존한다.
합의문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답을 구하려는 급한 마음에선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 논쟁이 어지럽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논쟁 절차를 지키는 사회 역량을 신뢰할 수 있다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가로와 세로의 많은 생각과 주장이 새겨진 결론이라면 좀더 넓은 동의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보니 합의문의 여러 대목에서 이미 많은 이들이 민주적인 합의 절차에 관해 고민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장·단기 문제와 다른 성격의 문제 뒤섞지 않기, 쟁점을 골고루 다루기, 위험과 혜택을 두루 따져보기, 전문가와 대중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등은 논쟁에 필요한 ‘게임의 규칙’처럼 여겨졌다.
‘충분한 토론과 논쟁’에 대한 강조도 눈에 띄었다. 때때로 논쟁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천에 걸림돌이 되는 사회적 낭비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신중해야 할 사안이라면, 선택할 길이 흐릿할 때 논쟁은 지혜를 줄 수 있다. 과학 연구와 사회적 가치의 균형을 담금질하기 위해, 다 알지 못하는 위험과 혜택 사이에서 현재에 알맞은 판단을 구하기 위해,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낯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논쟁을 거치며 어떤 모습으로 익숙해질까? 국내에서도 올해의 ‘기술영향평가’ 대상 기술로 인공지능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선정돼, 정부와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토론과 논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문가와 시민의 실질적 참여를 넓히는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한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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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xton Consensus] Statement on Genome Editing Technologies and Human Germline Genetic Modification
http://www.hinxtongroup.org/Hinxton2015_Statement.pdf
Don’t edit the human germ line
http://www.nature.com/news/don-t-edit-the-human-germ-line-1.1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