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으로 보이는 예수님
세상은 이성과 상식이 통할 때 제일 자연스럽고 평안한 것 같습니다.
이 범주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비정상으로 생각하여 판단을 하고 불편해 합니다.
그럴 때 나오는 질문은 “너 제정신이냐?”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잠시 공부를 할 때에도 형제인 사제 교수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교재를 갖고 가지 않은 나에게 “너 정신 나갔냐?”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으니 말입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하여 사람들은 쉽게 정신 나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습니다.
부와 명예와 자기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그것들을 하찮게 생각하고 전혀 새로운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방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단 미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면 당연히 설득이나 격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이 땅에 임한 하늘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난망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마르 3,20-21)은 예수님께서 어떤 집에서 머물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빵을 먹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그런 와중에 친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붙잡으려 나섰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신적인 능력을 드러내는 행적으로 인하여 가는데 마다 소동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철저하게 응답하는 길에 가장 큰 도움도 될 수 있고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가까운 이들일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길을 방해하였다거나 이해하지 못하여 미쳤다는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분으로서 가장 힘 있는 지지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친척들은 예수님을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안다고 생각하여 나섰던 것으로 하느님의 길을 가는데 장애가 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미친 사람은 당연히 격리를 시킵니다.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왜 친척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당시의 기준에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홀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성실하게 목수 일을 잘 하였을 테니 보아줄 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마리아를 홀로 남겨두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목수 일까지 집어치우고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다니는 예수님을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그들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나 율법도 잘 지키지 못한 직업을 가진 어부들을 제자로 이끌고 다니면서 율법규정과 전통을 어겨 정통유다지도자들과 충돌하는 예수님에 대하여 조작된 나쁜 소문에 더욱 그렇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으니 잡아서 가두어두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해서 함께 나섰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삶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학자는 돈 보스코께서 가장 가까이 모시고 공경한 성인입니다.
돈 보스코는 성인의 보호 속에 그분의 영성인 온유와 친절한 애덕의 정신으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을 하기 위하여 수도회 이름도 성인의 이름으로 정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귀족출신으로 최고학부를 나와 24세에 법학박사학위를 받고 안느 시 원로원의 법률가가 되었습니다.
장차 원로원 의원이 보장되는 신분의 제의를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인하여 사제성소로 부르시는 주님께 응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야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관습, 그리고 효도를 생각하면 그는 보장된 출세를 받아들여 집안을 일으키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고 동의를 얻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는 가족과 세속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제가 되어 하느님을 열렬하게 섬겼습니다.
마침내 그는 참으로 겸손하고 애덕에 넘치는 주교와 학자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크게 들어 높여 16세기의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 주교 학자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를 잘 보여줍니다.
세상의 욕망과 자기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성인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잘 응답하여 자기의 신분과 처지에서 성실하게 삶으로써 누구나 성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인간의 상식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하늘나라를 살라는 주님의 초대에 겸손과 용기로 응답하는 이가 하늘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