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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이루기 위해
성경본문 : 느헤미야 6: 1-14
조상호 목사
한국인의 심리를 빗댄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여객기로 개조된 B29 전투기가 운항 중에 그만 엔진이 고장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낙하산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하는데, 다들 겁이나 뛰어내릴 생각들을 안 합니다.
비행기는 곧 추락할 것 같은데 다들 주춤거리고 있으니 안되겠다 싶어 기장이 독일인 승객부터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히틀러의 명령이다. 뛰어내리시오"고 했더니, "하이! 히틀러"하며 뛰어내렸습니다.
기장은 일본 사람에게 "천황폐하의 명령이다. 뛰어내리시오"라고 했더니 일본 사람 역시 "소우데쓰까?"하며 밑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여보시오. 저 아래 낙하산 퍼지는 모습을 보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당장 뛰어내리시오"라고 했더니 두말 않고 뛰어 내렸습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렸으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얼른 뛰어 내리시오"라고 했더니, 역시 군말 없이 미국 사람도 뛰어내렸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기장이 그에게 가까이 오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한국인이 "정말이죠?"하며 뛰어내렸습니다.
여러분, 기장이 뭐라고 했기에 한국인이 당장 뛰어내렸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뛰어내리는 데 돈 안받아요. 공짭니다"라고 그랬답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공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빗대어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공짜를 좋아하는지 옛말에 '공짜라면 똥도 가져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정말로 공짜를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아마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생각 속에 공짜 심리가 팽배하다보니, 모든 것을 공짜로 얻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얻으려고 합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아십니까?
도둑놈이라고 부릅니다.
그러한 심보를 도둑놈 심보라고 부릅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손쉽게 금메달을 딸 수 없습니다. 출전하기 전에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뼈를 깎는 훈련을 합니다. 때로는 가족을 떠나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1년, 2년, 4년, 10년 동안 기다리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한 대가를 통해 금메달이 주어집니다.
한번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이봉주선수가 보스톤의 월계관을 쉽게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터져라고 달리고, 또 달리며 훈련한 대가를 통해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체중감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영자라는 게그우먼이 체중감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성형외과에 가서 지방흡입술을 받았던지, 하루에 음식을 조금만 먹고 살았든지, 매일 달리기를 했든지, 아무튼지 10개월 동안 살을 빼기 위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98Kg의 체중이 63Kg의 체중으로, 44인치의 허리가 29.5인치 허리로, 줄어든 것입니다. 저절로 체중이 빠진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비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 거두기 위해서는 힘써 심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갈6:7).
오늘 본문이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본문 6장에서 가장 중요한 절은 15절입니다.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느헤미야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재건했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비전이 쉽게 성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비전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는 꿈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꿈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느헤미야가 어떻게 해서 그의 비전을 이루었고 우리 또한 우리가 세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에 흔들리지 않아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그 문제의 산이 크든지 작든지 그것을 넘어가지 않으면 결코 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목숨걸고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이제 문짝만 달면 모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완성이 됩니다. 그러면 백성들과 느헤미야는 두발 뻗고 잠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재건의 비전을 성취하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 성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적들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느헤미야는 오노 평지로 나오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4절에 의하면 적들은 한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어 느헤미야에게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벽 재건이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유혹과 음모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느헤미야와 같은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어느 자매님께서 점심식사를 대접해주셔서 다른 집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프로 골프선수인 한 형제님이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에 그 형제님이 골프천재라고 하는 타이거 우즈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제 기억으로는 아마 그 형제님 이렇게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 PGA 골프경기에 나가는 선수들 중에 상위 50위 이내에 드는 선수는 다 우승후보입니다. 이 말은 50위에 드는 선수는 누구나 다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는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가 우승을 합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마지막 홀이나 연장전에 돌입하면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골프채를 잡은 손이 마구 떨려서 퍼팅에 성공을 못합니다만, 타이거 우즈는 연장전이나 막상막하의 경기에서도 어지간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타이거 우즈 선수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비록 저는 골프의 문외한이지만, 골프를 잘 치려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프채를 잡은 그립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어깨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발의 스탠스가 흔들리지 않아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골프뿐만 아니라, 볼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을 굴린 후 계속해서 굴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양궁에서도 활을 쏜 후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세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과 같은 경우에는 School C를 준비하고 있다면, Bursary를 준비하고 있다면, 유혹하는 친구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세운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기말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들은 기말시험 준비를 위해서 '노래방 가자고, 당구장 가자고 유혹하는 친구들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성공하려고 목표를 세웠다면 어떠한 부정적인 말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비전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어떠한 목표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오늘 느헤미야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도전해 오는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문의 문짝을 단 느헤미야처럼, 문제를 극복하여 비전의 마지막 문짝을 다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대로
느헤미야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꼼수를 내려놓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을 따랐습니다.
10절과 11절을 보겠습니다.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자신의 친구이자 선지자였던 스마야라는 사람이 웬일인지 며칠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것이 책략인지 모르고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스마야가 느헤미야를 위해 주는 척 하며, 적들이 너를 죽이려고 하니 성전 안에 들어가서 적들을 피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소나 지성소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민수기 18장 7절 이하에서 여호와께서 레위 자손인 제사장들에게 직임을 맡기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하는 외인은 죽이울지니라."
제사장 외에 다른 사람이 성소에 들어가면 다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소위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느헤미야에게 그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찾아오지 못하게되고 결국 느헤미야는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느헤미야는 죽더라도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합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성전 안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비록 그가 적들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다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 댁을 심방 하다 보면, 강아지를 키우는 가정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서 느낀 것은 요즘 강아지는 정말 호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밥이 따로 있습니다. 옛날처럼 주인이 먹고 난 밥찌꺼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따로 개밥을 사다가 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개가 먹는 간식이 있습니다. 또 심심하지 말라고 개가 먹는 껌도 있습니다. 개털을 빨기 위한 개샴퓨, 개가 가지고 노는 개장난감, 개가 입는 개팬티 까지 정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개가 머리털 손질 한번 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사람 머리 퍼머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고 합니다. 또 개가 새끼를 낳을 때 고통을 덜어준다고 제왕절개 수술까지 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의료보험이 있어도 개는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개를 병원에 한번 데리고 가면 사람이 가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고 합니다. 정말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강아지는 정말 하는 것도 별로 없는데 주인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주는 대로 잘 먹고, 또 그 먹은 것을 잘 싸기만 해도 주인의 귀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와 하나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잘 따르면 우리는 사랑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개가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원리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바로 이러한 느헤미야와 같은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꼼수를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잔머리를 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잔머리 굴려봐야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머리털만 빠지고 골치만 아픕니다. 여러분,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대로 비전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함으로
마지막으로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5~7절을 가만히 살펴보면 적들이 느헤미야를 중상모략을 하고 있습니다. 적들은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선동해서 왕이 되려고 한다. 느헤미야는 성벽 건축에는 관심이 없고 이 일을 통해서 그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악성 루머를 퍼뜨렸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러한 악성 루머 때문에 고통을 당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헛소문 때문에 밤새도록 한숨 자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밤을 지새운 적이 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성벽 건축을 완성시키기는 커녕 동족들로부터 사리사욕을 위해 동족들을 이용한다는 손가락질 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더 이상 그의 비전 성취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중상모략에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그는 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하는 말은 사실 무근이며 너희들이 멋대로 지어낸 유언비어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질구레하게 하나 하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긴 소리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명이나 해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여러분 느헤미야의 기도를 자세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 나의 누명을 벗겨 주옵소서. 저는 억울합니다. 저들이 오히려 음모를 꾸미고 있고 저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저들을 멸망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나에게 맡겨주신 성벽 재건의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14절을 보겠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그는 거룩한 주님의 사역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리 만큼 기도했습니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나쁜 소문을 듣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좌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함으로 비전을 이루어갔습니다.
기도함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기도로 여러분들이 세운 비전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어려움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이 행하는 일은 위험스럽습니다.
일과 기도는 마치 삶이라는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날개 중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삶이라는 비행기는 날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믿음 좋은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보트를 탔는데 그 보트를 젖는 노에 이런 문구를 새겨 놓았습니다. 한 쪽 노에는 "기도하라"고 썼고, 다른 한쪽 노에는 "일하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손자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굳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도하라"고 새겨진 노를 끈으로 묶어 놓고 "일하라"고 씌어있는 노만 젖게 했습니다. 그러자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만하면 이 보트처럼 앞으로 나갈 수 없단다.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지. 또 일은 안하고 기도만 해도 역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단다. 일하고 기도하며,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바른 방법이란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비전은 내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발을 힘있게 하옵소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힘있게 하옵소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세운 비전을 기도로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어려움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시작할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마침내 성의 문짝을 다 달았습니다. 수많은 적들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드디어 그는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비전의 사람일 뿐 아니라, 비전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느헤미야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비전의 사람 느헤미야, 비전을 성취한 느헤미야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꿈을 꾸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목표와 비전을 세우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과 목표와 비전을 성취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전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려야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꿈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의 비전 성취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에 방송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몸무게가 116Kg인 미혼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길을 가다가 한 남성으로부터 "에이 밥 맛 없어"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이 여인, 아니 116Kg의 아가씨는 그 소리에 충격을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이어트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사과 반쪽과 반공기의 식사로 체중을 조절하여 2년만에 60Kg을 줄이는데 성공하여 56Kg의 체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하루의 마지막 식사시간이 오후 3시였다는 고백에 모두 감탄했다고 합니다.
주위에 보면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을 단지 존경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감탄하는데 머물고 있다면, 자신의 체중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해야 본인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전을 성취한 느헤미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처럼 비전 성취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해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효자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기도의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의 사람입니다.
비전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느헤미야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실제로 느헤미야처럼 비전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치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느헤미야처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대가 치르기를 즐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문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을 가지고 기도하셔서 세운 비전과 꿈을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