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30 - 7: 1
가뭄의 메시지 / 한서노회
엘리야 선지자가 소개되는 열왕기상 17장 이하의 문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은 16:34절에서 마치 추신처럼 덧붙여진 "그 시대"에 있었던 여리고성의 건축 사건입니다.
이 구절은 아합이 이세벧을 왕비로 맞이하고서 갖가지 이교 신전들을 건립하고 (16:32-33) 여호와의 언약 종교를 멸시하는 철저한 타락의 한 실례로써 언급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진입할 때에 하나님이 파괴시킨 성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언약 백성들은 그런 죄악의 도시와는 절연해야 한다는 뜻에서 여리고 성을 무너진 채로 방치시키고 재건립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의 기초를 놓고 성문을 달았습니다 (16:34)."그 시대"로 말하면 짓기를 좋아하던 때였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큰 성'을 세우기를 원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무엇을 위해서 그런 대대적인 종교 활동을 벌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물론 말로는 여호와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공연했겠지만 사실은 바알 종교를 위해서, 자신의 왕권신장을 위해서 그리고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 예배로부터 백성들의 마음을 이탈시키기 위해서 일으킨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해서 하나님의 저주까지 도전했다는 것이 여리고 성 재건사업의 실례로 지적되어있습니다.
"그 시대"는 곧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들이 지금 속한 시대일런지 모릅니다 그 시대는 "여호와의 노를 격발"(16:33) 시키고 "여리고를 건축"(16:34)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악한 "그 시대"는 하나님의 사람이 등단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엘리야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길르앗에 우거"(17:1)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르앗의 "디셉 사람"(17:1) 이었는데 이곳은 요단강 북동편으로서 광야와 직결된 곳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악한 "그 시대"에 광야에서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시42:2) 하며 롯처럼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외로운 심령을 상'(벧후2:6-8)하던 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의 가슴속에 여호와의 사심을 (17:1) 선포하고 이를 증시해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골수에 파묻히게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자기의 종을 광야에서 조용히 기르십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의 종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바알의 광태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시대에 자기의 사람들을 광야에서 돌보시며, 부산한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침묵의 기도를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또한 번영의 시대에 자기의 사람들에게 검약과절제의 삶을 익히게 합니다. 이같은 광야의 훈련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며 주야로 의인의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주시며 "그 시대" 를 위한 사명을 고취시켜 줍니다.
그런데 한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 엎드리고 능력의 메시지를 달라고 탄원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말씀은 전혀 기대한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가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 메시지는 야고보에 의하면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약5:17) 하는 일을 전제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메시지와 기도는 얼핏보면 반역자의 메시지이며 무정한 기도입니다.
그렇지만 광야의 훈련을 거친 자들은 조국이나 이웃이나 내 교회의 복지를 앞세우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의 우선 순위를 아는 자들입니다. 이같은 자세는 하나님의 선한 성품과 궁극적인 구원의 섭리에 대한 깊은 신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엘리야에게 가뭄의 메시지가 지닌 의미를 모두 소상하게 다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가뭄을 통해 가르치시고 계시하시며 인도하시고 승리하시는 제반 사건들은 믿음의 전진과 영적 깨우침이 수반되어야 하는 점진적인 구원의 서정속에 담겨진 과정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광야의 훈련이며 믿음생활의 연습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상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두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눈으로 보고 채워야 할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 에 자기의 사람들을 광야에서 기르고 계십니다.
"그 시대"는 각 시대가 지닌 불의한 세상입니다.
당신은 바알이 판을 치고 여호와의 종교가 바알의 축복을 희석하고 밀려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앙망하며 주야로 당신의 광야에서 고통받는 자입니까?우리들의 의로운 심령이 날마다 상하지 않는 한,우리는 결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17:1) 할 수 있는 가뭄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