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유배문학, 기민14장[飢民十四章] ‘굶주린 백성’ 한시 해설. 이학규(李學逵)>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기사시(紀事詩)는 어떤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시(詩)를 일컫는 말이다. 김해∙거제도에서 귀양살이 한 이학규(李學逵 1770~1835) 선생은 기사시(紀事詩)에서 당시 흉년이 들거나, 혹은 관리들의 착취로 인한 민중의 어려웠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다음 이학규의 장편고시 ‘기민14장[飢民十四章]’ 시편을 살펴보자.
기근을 견디지 못해, 뿌리박고 살던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참혹한 정경이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목도한 작가는 그의 현실주의적인 작가의식에서 이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아픔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동정하였다. 그 반면에 그러한 모순된 시대현실을 비판하는 장편고시 14장을 창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에서 굶주림의 대상이 되는 농민은 웬만큼 토지를 소유한 농민층이다. 따라서 이같이 자영 농민층이 굶주린다면 임차농이나 고용 노동자층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데 이때 굶주리게 된 주된 원인은 농사를 망쳐서가 아니라, 바로 과도한 조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관원 대접에 소홀한 까닭에 더욱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것이라 했으니, 결국 농민은 관리들의 횡포에 더욱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백성들이 굶주림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의 또 다른 원인은 위민농정(爲民農政)의 부재와 아울러 앞에서 지적한 부패한 관리 지배층의 발호와 그들이 자행하는 횡포 때문이었음을 지적한다. 시 내용에서 살펴보면 곧 교활한 서리(胥吏)들이 농간을 부려, 본래 구휼을 위하여 설치한 상평창의 곡가를 조작하고 그 틈을 이용하여 삼만 냥이나 포흠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소를 잡아먹으면서 도박판을 벌인 것이다. 결국 그들이 포흠한 많은 돈이나 방탕하게 소비하는 재물은 모두 가난한 백성들에게서 온갖 방법으로 착취한 것이다. 때문에 백성들은 이리저리 법망을 피하여 포악한 짓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이들 아전들을 가리켜 간사한 족제비 같은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다.
곡식도 없고 옷도 없는 비참한 생활에, 야반도주하여 떠나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내팽겨 친 처자식은 고사리 칡뿌리 캐먹어도 굶주림에 죽어간다. 아직 덜 여문 보리밭에서 뿌리 채 뽑은 보리를 삶아 먹는데, 당장 배고픔에 내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런 참혹한 백성들의 기근에도 세금을 내라고 독촉하니 아내와 자식까지 팔아넘길 수밖에 없다. 피눈물을 흘리다가, 마른 눈물에 통곡소리 또한 낼 수도 없는 비참한 생활상이었다.
굶주림으로 죽은 가는 백성이 하도 많아, 시체자루마다 올려 진 몇 푼의 돈도 아무도 건드리질 않는다. 관아에서 구휼한다고 5개의 솥에다 죽을 끓이는데도 성 밖에는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구휼은 더디게도 더디다. 모두가 죽어가는 시신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물죽이라도 먹고 살아난 사람이라도 이미 논밭에는 수풀만 왕성하고 봄갈이할 쟁기나 소 한 마리 없다. 부잣집 식탁엔, 난로회에서 고기 굽는 냄새 풍기고 어포가 여물다고 뱉는 소리 들린다. 화려한 다갈색 모자에 산초계수나무 향기 풍기고 신선한 봄채소 기다린다. 일반백성은 굶주려 죽어가도 권력층과 부잣집의 곳간은 빈틈이 없는 19세기 전반의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이학규는 굶주리는 백성의 이러저러한 형상을 애민적 정감을 가지고 누구보다 애틋하게 표현했다.
烈風不迷舜 순(舜)임금은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九日復警堯 아홉 번이나 앞서 요(堯)임금을 다시 깨우쳤다.
天雲鬱煙火 하늘의 구름에는 연기가 가득한데
金石同時焦 쇠와 돌도 동시에 불에 탔다는구나.
復聞湖嶺間 들리는 소문엔 충청도 경상도 사이에서
冰雹揚䬝飆 우박이 폭풍 속에서 흩날렸다는구나.
湖嶺京師本 충청도 경상도 서울에선 본디
失此民何聊 이런 백성이 떠나가니 어찌하리오.
嗟哉東郭子 가엾어라 빌어먹는 이들이
藿食方蕭條 콩잎을 먹으니 사방이 스산하도다.
焚尩不爲仁 불에 탄 절름발이 어질지 않다하고
走魃不爲祅 가뭄에 떠나가도 재앙이 아니라네.
廟謨不謀野 조정의 일은 민간을 위한 계책이 아니고
庚癸非所料 군량으로도 생각한 바가 아니다.
世祿自致身 대대로 녹봉을 받으며 나라에 신명을 바치는
氣勢承金貂 기세(氣勢)로 금초(金貂)를 이어가누나.
雀餳似甘露 작당(雀餳)은 감로(甘露)와 유사하고
鳳食不害苗 봉황도 어린 싹은 해치지 않는다네.
民災非今日 백성의 재앙은 오늘만이 아닌지라
衢路徒嘵嘵 네거리에선 아옹다옹 시끄럽구나.
種稻一斛強 종자벼는 한 섬이 더 되었는데
穫稻五秉餘 거둔 벼는 다섯 병 남짓
生死在田官 생사가 전관에게 달려 있으니
所願蠲吾廬 우리 집 세금 덜어주길 원할 뿐이네.
井稅且依舊 세금은 예전과 같으니
鷄黍計已疎 대접 소홀할 것 짐작해서인가
傭雇且未報 품삵도 아직 갚지 못했는데
何况爲冬儲 하물며 겨울 저장 할까보냐
飜思上坂田 생각하니 위 언덕 밭에
赤地空荒墟 붉은 땅으로 버려져 있다네.
禍首句龍祀 재앙의 원흉인 토지 신께 제사하는데
厲階倉頡文 창힐(倉頡)의 글자가 빌미가 되었다.
到今姧吏簿 지금에 이르러 관리의 장부를 조작하니
虛實不可聞 거짓과 참을 구별할 수가 없다.
未知上古時 아직도 상고(上古)의 시대를 모르니
亦有租稅云 조세(租稅) 또한 이와 같도다.
租稅苟不出 조세는 진실로 아껴야 하거늘
十口猶未分 열 식구로 가히 나누지 말아야한다.
但恨死無日 다만 하루도 빠짐없이 원한을 품고 죽는 사연엔
不恨徒辛勤 고된 일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官糴在冬秋 관곡은 가을과 겨울에 거두어들이니
轆轆車輸倉 수레소리 요란하게 실어 나르네.
官府有常平 관부에는 상평창이 있는데
姧細以低昂 간사한 무리들이 곡가를 조작한다.
州圖一万戶 고을의 호적에는 일만 호구인데
爾逋三万強 저들은 삼만냥도 더 축냈다네.
中庭椎肥牛 뜰 가운데 소도 때려 잡아놓고
呼盧間吹簧 도박판 벌리면서 풍류도 즐기구나.
十口且安坐 열 식구나 되는 가족도 편안히 살리니
那不化鼠狼 어찌 족제비 같은 자가 아니냐.
穀貴尙爲食 먹을 수 있는 곡식이 귀하니
穀竭無與謀 곡식이 없어 일을 꾀할 수 없네.
抱布已虛還 베를 가져와도 이미 텅 비워 돌아와야 하니
何况易衾裯 하물며 홑 이부자리야 더 무엇하랴.
豪家信餘粟 부잣집은 남은 오곡이 있는데
恐此低價求 아마도 이는 싼값에 구했겠지.
况聞湖南舶 때마침 호남에서 선박이 들어와
百艘依長洲 긴 물가에 수많은 선박이 늘어섰네.
潛糴夜出境 몰래 쌀사려 다른 지방으로 밤에 나가니
城中但坐憂 성(城) 가운데는 오직 근심만 남았네.
食薇苦腳腇 고사리 캐먹고 힘든 다리를 이끌어
采葛至深根 깊이 박힌 칡뿌리를 파낸다네.
棄置與婦子 내버려 둔 처자(妻子)는
生熟那復論 어찌 날것과 익은 것 따지랴만
來歸子城下 작은 성곽 아래로 돌아와
一睡安且溫 편안하고 따뜻이 한 잠을 청한다.
仰當白日照 마침 하늘에선 밝은 해가 비추고
側聞車馬奔 분주한 수레와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呼之久不譍 아무리 불러도 오랫동안 응답이 없으니
謂我已亡魂 이미 죽은 혼(魂)이라고 알릴 수밖에.
靑靑陵中麥 짙푸른 언덕의 보리밭에
連根掇其茁 연이은 뿌리와 그 싹을 거두어
䰞麥救眼歬 보리를 삶아 눈앞의 일을 구원하니
來日非所卹 내일을 걱정할 바가 아니네.
但尋地上葉 다만 땅 위의 이파리만 찾을 뿐,
不見天中日 하늘 가운데 태양을 보지 못하네.
烏鵲滿樛枝 휘늘어진 가지마다 까마귀와 까치가 가득하고
風聲暮蕭瑟 저문 날 바람소리 소슬하다.
誰能卽立死 바로 선 채로 누가 죽으랴만
飢飽永相失 굶주림과 배부름 영영 서로 어긋나네.
差科死卽已 세금부과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不死應遭笞 죽지 않으면 응당 매를 맞는다네.
賣屋尙行乞 집을 팔아서 걸식은 할 수 있으련만
鬻兒當依誰 자식까지 팔아서 누구에게 의탁하랴.
惟有婦子情 아내나 자식 간의 인정이 있기에
生死力相隨 죽든 살든 서로 힘껏 따를 뿐이지
一身去無托 한 몸을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여
行坐且臨歧 가다 앉다 또 다시 갈림길에 다다랐네.
敎婦捻頭蝨 아내에게 머릿속 이를 잡게 하노라니
汪肰雙涕垂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
北門無衣子 북문지탄(北門之歎)에 옷 입은 자식이 없고
中夜有哀聲 한밤중에 슬픈 곡성만 있구나.
四體直且堅 사지(四肢)가 곧게 굳어지니
嗚呼知無生 오호라! 모든 게 무생(無生)임을 알아야 하거늘.
但記城市面 다만 성(城)의 저잣거리 상황을 기록하노니
不識鄕里名 마을 이름은 알리지 못하겠네.
至死有不瞑 죽을 지경에 이르러도 눈을 감지 못하는데
無乃懷至情 어찌 지극한 정(情)을 생각지 않으리.
纍纍㬺囊間 시체자루 사이마다 다락다락 올려진
一錢復誰爭 한 푼의 돈인들 누가 다투겠는가.
髮白未爲醜 흰머리가 추한 것은 아니지만
肉黃眞可悲 누렇게 뜬 살갗은 참으로 슬프구나.
氣短語莫續 가쁜 숨결에 말을 잇지 못하고
意速行不隨 급한 마음에 따라가지 못한다.
骨肉信可念 골육(骨肉)을 사랑해야 함에도
且復提幼兒 다시 어린아이까지 버린다네.
城中五鼎粥 성(城) 안에는 다섯 개의 솥에 죽이 있는데도
施及苦久遲 괴롭게도 너무 오랫동안 더디게 베푼다.
久遲事固肰 지체한 일이 오래되어 당연한 듯이
恐死無移時 잠시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奉盈莫放手 물죽을 바치니 함부로 손을 대지 말라.
執熱當屢吹 뜨거우면 당연히 여러 번 불어 마셔야지.
但知顙有泚 다만 이마에 땀이 남을 알아야하거늘,
不覺涕垂頤 턱에 드리운 눈물도 깨닫지 못하네.
水穀稍下咽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면
枯腸鬱㗀咿 주린 창자에 흐느끼는 소리 울린다.
歸哉府南鳴 돌아오라! 고을 남쪽에다 외쳐도
草根萋已滋 풀뿌리 이미 자라 우거졌다네.
牛犁略盡賣 소로 밭을 갈려 해도 팔아 버렸으니
何事春耕爲 무엇으로 봄갈이를 하려나.
粲粲豪門子 영롱한 호걸의 문지기
朱顔粱肉腸 붉은 얼굴에 좋은 양식과 고기 잡수셨네.
膳㜎雀頭衣 선물로도 과분한 다갈색 모자에
出入椒桂香 산초와 계수나무 향기 드나든다.
中堂煖爐會 어른의 집 난로회(煖爐會)에서
匙筯羣鏘鏘 여럿 숟가락 젓가락소리 쟁쟁 울리는데
持炙已色難 구운 고기 집으면 낯빛이 불편하여
啖鱐反吐剛 어포를 씹다가 딱딱해 뱉는구나.
脂膩不可想 기름때를 생각하지 마시라
苦待春蔬嘗 봄철 채소 맛이 몹시 기대된다네.
匪獸孰率壄 누가 가축을 들판에서 기르며
匪魚孰潛湖 누가 물고기를 호수에 감추랴.
人生懷父母 부모를 그리는 인생이나
旣長偕婦夫 이미 부부되어 함께 살아간다.
在家一身貴 내 집에서는 귀한 몸이나
去家一身孤 집 떠나면 이 한 몸 외롭더라.
日月被我面 세월은 내 얼굴에 미치고
水土榮我膚 풍토는 내 살갗에 성(盛)하네.
同是天之民 우리 모두가 하늘의 백성인데
予生胡爲乎 나는 어떤 이유로 태어났는가?
[주1] 동곽번간(東郭墦間) : 동쪽 성곽의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며 얻어먹는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관직을 구걸하는 행위를 의미함.
[주2] 금초(金貂) : 금초는 황제의 좌우에서 시종하는 신하가 모자에 다는 장식으로 시종신을 뜻한다. 또는 한 나라 때 품계 높은 무관(武官)이 쓰던 관이다.
[주3] 감로(甘露) : 천하가 태평하면 하늘에서 좋은 징조로 내린다는 단맛이 나는 이슬. 작당(雀餳)과 목례(木醴)도 이와 유사한데 작당과 목례는 빛이 깨끗하고 향기로운 구슬처럼 생겼으나 좋은 징조가 아니다.
[주4] 구룡씨(句龍氏)와 기씨(棄氏) : 사(社) 즉 토지신(土地神)과 직(稷) 즉 곡식신(穀食神)을 가리킨다. 구룡은 공공씨(共工氏)의 아들 이름으로, 수토(水土)를 잘 다스려 뒤에 후토지신(后土之神)이 되었다고 하며, 기(棄)는 주(周)나라의 선조(先祖)로서 농관(農官)이었던 후직(后稷)의 이름으로, 뒤에 곡식을 주관하는 귀신이 되었다 한다.
[주5] 창힐(倉頡) :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帝王)인 황제(黃帝) 때의 좌사(左史).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서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들었다고 함.
[주6] 북문지탄(北門之歎) : 북문에서 한탄함이라는 뜻으로, 벼슬자리에 나가기는 했으나, 뜻대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한탄함.
[주7] 무생(無生) : [불교]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空)이므로 생기고 사라짐의 변화란 있을 수 없음. 일체의 미로(迷路)에서 초월한 경지. 다시는 번뇌에 시달리는 중생계(衆生界)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만한 법도가 없게 된 자리의 부처를 이르는 말.
[주8] 봉영(奉盈) : 그릇에 가득 찬 것을 받들고 있음.
[주9] 난로회(煖爐會) : 옛날에, 화롯불에 갖가지 음식을 지지거나 구워 먹던 모꼬지. 흔히 음력 시월 초하룻날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