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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韓醫學)
한의학(간이의서)
본래 한의학이라 표기했던 것을 1986년 대한한의사협회에서 '漢'을 '韓'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고 보건사회부의 채택과 법령개정을 거쳐 결정되었다.
한(漢)의학이란 중국의 한나라 때 형성된 의학이라는 의미이며, 기본적인 이론체계와 임상의학의 제반 내용들은 현재에도 한(漢)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韓)의학이라 바꾼 것은 첫째, 허준과 이제마가 우리 의학을 동의라 했듯이 우리 의학의 독창성과 자주성을 발휘하여 우리나라에 알맞는 의학으로 변형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둘째, 구한말 이후 침체된 전통의학을 중국 중의학이나 일본의 황한의학과 차별화하여 현대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치료기술도 다양화하기 위함이다.
주요내용은 크게 전통한의학과 사상의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한의학은 인체가 하늘과 땅을 본받아 구조와 기능이 이루어졌다는 천인상응이론과 자연계의 생성·변화가 1일 또는 1년마다 규칙적으로 교대하면서 이루어짐을 강조하는 오운육기론·오장육부론·정신기혈론·병인론·병기론·전변론·사진론·변증론·경락론·영위론·본초론·방제론·침구론 등의 세분된 생리·병리·진단 이론과 임상명 및 치료이론들로 구성되어 있다.
둘째, 사상의학은 19세기 후반에 이제마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인간론과 수양론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타고난 체질·기의 강약과 심성을 설명하고 약물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편벽된 성격과 감정의 수양·조절을 통하여 질병을 예방·치료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교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것은 맥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사장사부와 칠정이 아닌 사정을 주장하여 기존의 한의학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독특한 의철학체계이다. 즉 한의학의 핵심이 '병증' 감별에 있다면 사상의학의 핵심은 '체질' 감별에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한의학은 상이한 두 의학체계를 축으로 하여 〈동의보감 東醫寶鑑〉과 향약 관련 제서, 사암의 침구이론, 이규준의 부양론 등에서 축적된 성과들을 바탕으로 새롭고 더욱 정확한 진단, 치료이론의 개발 및 치료 장비·기술·방법들을 혁신하기 위한 과제들을 안고 있다.
1. 한국 전통의학사개요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은 반만년의 민족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끊임없이 보완·발전되어왔다.
때로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고, 때로는 외래의 선진이론을 수용하여 새로운 경지를 이룩했다.
2. 고대
고대는 BC 2000년대의 신화시대와 서기(西紀) 원년을 전후로 한 국가수립 초기이다.
당시의 의료형태는 남겨진 기록이 없어서 그 전모를 알 수 없으며, 후세에 나온 문헌으로 그 개략만을 짐작한다. 이때의 의료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인 특성 중에 하나인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무술형태로 파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초기 의료형식인 단방약(單方藥)의 사용이 태동한 시기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쑥과 마늘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의학문화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를 유지할 만한 근본적인 철학의 부재로, 논리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여, 단순한 민간요법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3. 삼국시대
삼국시대에는 중국 한나라의 체계화된 의학이 수입되어(500경) 그때까지 단편적으로 전래되어오던 의학이 체계화된 의학 속에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즉 그전까지 단순한 경험의 수준에 머물렀던 의학은 이제 이론의 틀을 갖추어 고급의학으로 승화·발전될 조건을 얻은 것이다. 비록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수입된 의학이 민족 전체의 건강을 책임지기에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이때에 삼국은 이미 의료제도의 틀을 갖추어 고구려에는 궁중의 의료를 담당하는 시의(侍醫)가 있었으며, 백제는 내관(內官) 중에 약부(藥部)라는 전문의료기관이 있었고, 교육을 담당했던 의박사(醫博士)와 약을 다루는 채약사(採藥師), 정신의료를 담당했던 주금사(呪禁師)가 있었다.
또 백제는 〈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이라는 우리 민족 최초의 전문의서를 편찬했다.
4.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의학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들어온 인도의학을 수용·융합하여 다양한 의료자원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는 승의(僧醫)들이 많은 활약을 했는데, 그 면모를 〈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국가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발전과 전문의료인의 양성을 도모하고 약전(藥典 : 통일신라시대의 의료행정을 담당했던 保命司를 말함)이라는 의료행정기관과 의학(醫學)이라는 의학교육기관을 설치했다. 당시 의학의 교과과정을 보면, 중국의학을 대표하는 〈본초경 本草經〉·〈갑을경 甲乙經〉·〈황제내경 黃帝內經〉·〈난경 難經〉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책들은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의 저술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현재 동양의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본서적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아주 어렵고 심오하여 학습이나 전수가 매우 어려워, 이들 서적에 대한 연구자료가 남아 있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5.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이러한 중국의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학습은 고려에 들어와 자주의학의 발전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태조 이래로 학교에 '의과'를 설치하여 의학교육을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제도의 실시 초기부터 의업을 별도 과목으로 운용했다. 이는 곧 당시의 의학교육이 이미 일반화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영석의 〈제중입효방 濟衆立效方〉(1147~70)을 필두로, 최종준의 〈신집어의촬요방 新集御醫撮要方〉(1226),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1236) 등이 출현했다.
비록 이러한 책들이 중국의서를 모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처방 내용이 많이 다르고, 약재를 우리 것으로 대체한 것은 곧 자주적인 의학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6. 조선시대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은 자주적 의학 발전의 명제하에 의료제도를 크게 정비했다.
고려 때부터 시행한 과거제도를 확충하여 의료인의 사회적 진출을 확대하고, 효율적인 운용을 위하여 교육제도와 의료기관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교육기관으로는 중앙 및 각 도에 '의학원'(醫學院)을 설치하고 '의학교수관'을 파견했다. 또 '습독청(習讀廳)'을 설치하여 의방서를 정리·연구하여 의학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했다. 의료기관으로는 중앙에 '내약방'·'전의감'·'혜민국'·'동서대비원'·'제생원'·'종약색'(種藥色) 등이 있었고, 지방에는 '의원'이 있었다.
이중 전의감은 주로 왕실의 의료와 아울러 의학교육을 담당했으며, 혜민국은 일반 민중의 치료를, 동서대비원은 전염병과 구호사업을, 제생원은 약재의 채취와 의서의 수집, 민중의 의료를 각각 담당했다.
* 전의감(典醫監)| 정3품아문으로 의학교육·취재 등에 관한 일도 담당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관원으로 제조 2명, 정3품 정(正) 1명, 종3품 부정 1명, 종4품 첨정 1명, 종5품 판관 1명, 종6품 주부 1명, 의학교수 2명, 종7품 직장 2명, 종8품 봉사 2명, 정9품 부봉사 4명, 의학훈도 1명, 종9품 참봉 5명을 두었다. 취재(取才)의 최고득점자와 판관 이상 1명은 구임으로 했고, 구임자 및 교수·훈도(訓導) 외에는 체아직이었다. 1년에 2번 취재하여 차점을 차지한 자는 지방관으로 임명했다. 주부 이상은 모두 과거합격자로 임명했으며,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은 30명을 두었다. 1392년(태조 1) 7월 관제제정 때 고려시대 전의시(典醫寺)를 본떠 설치했으며, 궁중의 의료와 시약(施藥)에 관한 일을 담당했다. 1397년 혜민국(惠民局)과 같이 각 도의 향약재(鄕藥材)를 수납하기 위해 설치된 제생원(濟生院)을 1460년(세조 6) 5월 혜민국에 통합하기 전까지는 전의감·혜민국·제생원을 합쳐 삼의사(三醫司)라고 불렀으며, 내의원은 삼의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직제는 태조대 판사·감·소감·승·겸승·주부·겸주부·직장·박사·검약(檢藥)·조교(助敎) 등을 두었으나, 그뒤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1466년 관제개정 때 검약은 부봉사, 조교는 참봉으로 바꾸었으며, 겸정(兼正)·직장을 없애고 판관을 설치하여 정비한 뒤 법제화했다. 소속의원은 제위의원(諸衛醫員)·육조의원(六曹醫員) 등으로 주요관서에 분속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속대전〉에 의하면, 부정은 없어지고 정원도 의학교수 1명, 봉사 1명, 부봉사 2명, 참봉 3명이 줄었다. 〈육전조례〉에 보면, 관원으로 치종교수(治腫敎授) 1명, 침의 3명, 부사과 1명을 늘리고, 이속으로 서원(書員) 1명, 고직(庫職) 1명, 대고직 1명, 사령 5명, 구종 2명, 군사 2명을 두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태의원(太醫院)으로 고쳤으며, 서양에서 근대의학이 들어오면서 역할이 점점 줄어들었다. 서울 중부 견평방(堅平坊: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해 있었다. ------------------ * 혜민국(惠民局) (요약) 고려와 조선 초기에 일반 백성의 구료를 맡은 기관. 1112년(예종 7) 처음 설치되었다. 충선왕 때 사의서의 관할하에 두어 운영했으며, 1391년(공양왕 3)에는 혜민국을 혜민전약국으로 개칭했다. 조선 개국 직후 처음 관제를 정할 때 고려 때의 이름 그대로 제정했다. → 혜민서 ------------------- * 혜민서(惠民署) (요약) 조선시대 의약과 서민의 질병을 구료하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 원래는 1392년(태조 1) 7월 관제 제정 때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혜민국을 설치하고, 1397년 8월 제생원을 설치하여 혜민국과 함께 해마다 향약재를 각도에서 수납했다. 1460년(세조 6) 5월 제생원을 혜민국과 합치고, 1466년 1월 관제 개정 때 혜민국을 혜민서로 개칭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관원은 제조 2명, 종6품 주부 1명, 의학교수 2명(1명은 문관이 겸직), 종7품 직장 1명, 종8품 봉사 1명, 정9품 의학훈도 1명, 종9품 참봉 4명을 두었다. 양도목이었으며, 취재에서 분수를 많이 받은 자와 직장 이상 1명은 구임으로 하고 구임자 외에는 체아직이었다. 취재에서 차점을 차지한 자는 외임으로 보냈다. ------------------- *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요약) 고려시대 나라에서 운영한 의료구제기관. 개경의 동·서 2 곳에 설치하여 동서대비원이라 불렀는데, 서경에도 하나의 분사가 있었다. 설치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1036년(정종 2) 11월 동대비원을 수리했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원으로 사·부사·녹사가 있었다. 이 기관은 주로 의료사업과 구제사업을 수행하여 병자를 치료해주고, 굶주린 자와 행려자에게 음식과 의복을 나누어주며 돌보아주었다. 조선초에도 도성의 병자를 구제하기 위해 동서소문 밖에 동서대비원을 설치했다. 그뒤 1414년(태종 14)에 동서활인원, 1466년(세조 12)에 활인서로 개칭했다가 1822년(고종 19)에 폐지했다. -------------------- * 제생원(濟生院) (요약)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의료기관. 일반 백성의 질병 치료와 구호사업, 의녀 양성, 향약재 수납, 향약에 관한 의학서 편찬 등의 의료사업을 수행한 기관이었다. 1397년(태조 6)에 좌정승 조준(趙浚)과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혜민국과 같이 각 도에서 매년 올라오는 향약을 수납하게 했고, 1398년에는 고려말부터 사용되어 오던 향약방서에 경험방을 모아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을 편찬하게 했다. 1401년(태종 1)에는 환자의 존귀 여부를 가리지 않고 왕진하여 치료하도록 했고, 1405년에는 병들어 오갈 데 없는 백성을 모아 보살피도록 했다. 1406년에는 동녀 수십 명을 택하여 맥경과 침구법을 가르쳐서 부인의 질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의녀 양성의 시초이다. 1409년에는 별좌를 두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치료하게 했고, 1412년에는 개천 작업에 동원된 역군들이 병이 있을 때의 전의감·혜민국과 함께 약을 지어 치료하게 했다. 처음 설치될 때 지원사·영(令)·승(丞)·주부·녹사 등의 관원이 있었고, 1414년에는 지원사·승·부령·녹사·부녹사 등이 있었다. 1460년(세조 6)에 혁파되어 혜민국에 합쳐졌다. ------------------- *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요약) 1433년(세종 15)에 노중례(盧重禮)·유효통(兪孝通)·박윤덕(朴允德) 등에 의해 완성된 종합적인 향약의서. 85권 30책. 고려 중엽 이후 정치·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일반 백성들은 값비싼 중국 약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향약고방 鄕藥古方〉·〈삼화자향약방 三和子鄕藥方〉·〈동인경험방 東人經驗方〉·〈향약혜민경험방 鄕藥惠民經驗方〉 등의 향약방서들을 간행·보급하여 주위에서 쉽게 풍부하고 값싼 약재들을 활용하도록 했고, 조선 초기에도 이러한 정책이 지속되었다. 실제로 태조는 의료기관인 제생원을 두어 일반인들을 치료하는 한편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을 편찬했다. 향약집성방〈향약집성방〉,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세종은 이러한 향약장려정책을 계승하여 1431년 책의 편찬을 집현전 학지들에게 명하였다. 이 책에는 당대의 과학적인 학문풍토에 힘입어 〈향약제생집성방〉을 기본으로 959종의 병증과 17만 706종의 방문, 1,416조(條)의 침구법, 향약본초, 표제법과 간행 당시의 임상경험 및 모든 향약 등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인용된 의서는 주로 〈태평성혜방 太平聖惠方〉·〈자생경 資生經〉·〈천금방 千金方〉·〈일화자 日和子〉 등이고 〈향약구급방〉과 달리 병의 원인을 설명하고 처방을 달아서 이론적인 연구의 흔적을 남긴 귀중한 책이다. 판본은 1942년 한성도서에서 간행한 활자본과 〈한국의학대계 韓國醫學大系〉 속에 영인되어 있고 북한 과학백과사전 출판사에서 1984년 번역한 것이 유통되고 있다. ------------------ * 의방유취(醫方類聚) 세종의 명으로 1437~39년에 북경에 사신과 역관(譯官)이 파견되어 〈내경 內徑〉에서부터 당·송·원과 명초까지의 의서들을 폭넓게 수집(蒐集)하여 1442~45년에 집현전의 김예몽(金禮蒙)·유성원(柳誠源)·민보화(閔普和)·김문(金汶)·신석조(辛碩祖)·이예(李芮)·김수온(金守溫) 등과 의사인 전순의(全循義)·김유지(金有知) 등에 의해 365권으로 편찬·완성되었다. 그후 세조의 명으로 성종대에 이르기까지(1465~77) 양성지(梁誠之)의 주관 아래 유신(儒臣)과 의관(醫官)이 함께 교정해 도합 266권으로 간행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의방유취〉는 국내본이 아닌 일본판인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加藤]가 다른 문화재와 함께 약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다른 보관본은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일본인 의사 기타무라[喜多村直寬]가 〈의방유취〉 복간본(覆刊本) 266권 2질을 선물용으로 보내오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구입할 수 없었다. 국내의 원간본(原刊本)은 강화본 〈세종실록 世宗實錄〉과 유사한 자체인 을해활자(乙亥活字)로 한백지(韓白紙)에 씌어 있었는데, 이 원본은 지금 일본의 궁내성(宮內省) 도서관에 12권이 사라지고 254권만이 보관되어 있으며, 복간본 2질 중 1질이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는 1965년에 동양의과대학에서 일본의 목활자본을 영인한 〈의방유취〉와 북한의 의학과학원 동의학연구소에서 번역한 것을 국내의 출판사에서 영인한 〈의방유취〉가 있다. 이 책의 체제는 진찰법·처방법 등 의학의 일반이론을 다룬 총론의 3권과 모든 질병을 95문으로 나눈 나머지 263권의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제내경소문 皇帝內徑素門〉으로부터 〈소학의경 小學醫經〉에 이르기까지 153종류의 책들을 시대순으로 인용하여 분야별로 관련 학설과 이론을 모아 싣고 출전을 밝혔으며, 처방은 뒤에 따로 취합(聚合)하여 놓았는데 여기서 의방유취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의학 연구자들에게는 학술적 가치와 아울러 실용적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 -------------------- * 동의보감(東醫寶鑑, 국보 제319호) 요약 16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되었으며, 25권 25책이다. 1596년 선조의 명으로 허준·정작·양예수 등이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허준이 다시 편찬하여 1610년 완성했다. 우리나라의 의서는 물론 중국의 의서까지 모두 활용해서 편찬한 것으로, 현대적 분류방법처럼 병증과 치료방법을 중심으로 나누었다. 내용은 내과의 질병을 다룬 내경편 6권, 외과의 질병을 다룬 외형편 4권, 내과와 외과를 제외한 여러 가지 병증을 다룬 잡병편 11권, 약물에 관한 지식을 다룬 탕액편 3권, 침을 통해서 병을 고치는 방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침구편 1권이다. 목활자로 인쇄된 초판본 완질 25책은 남아 있지 않고, 훗날 전주와 대구에서 목판본으로 출판된 것이 전승되고 있다. 25권 25책. 고활자본(改鑄甲寅字). 16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되었다. 동의보감〈동의보감〉, 목활자본(1613 간행본) 동의보감〈동의보감〉, 목활자본(1613 간행본), 규장각 소장 1596년(선조 29) 선조의 명으로 허준·정작(鄭碏)·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이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필요한 보다 간략하면서도 실제 의료기술에 필요한 의서로서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597년 정유재란을 맞아 중단했던 것을 전쟁이 끝난 후 허준이 혼자 다시 편찬하여 1610년 완성했다. 정작은 승려의사로 권위가 있었으며 양예수는 그당시 조선의 의사들이 존중한 〈의림촬요 醫林撮要〉 13권을 교정한 경험이 있는 의사였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의서는 물론, 중국에서 수입된 의서까지 모두 활용해서 편찬한 것으로, 병증(病症)을 중심으로 한 병문(病門)으로 나누지 않고 현대적 분류방법과 비슷하게 병증과 치료방법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내경편(內景篇)은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혈(血)·몽(夢)·성음(聲音)·언어(言語)·진액(津液)·담음(痰飮)·오장육부(五臟六腑)·간(肝)·심(心)·비(脾)·폐(肺)·신장(腎臟)·담(膽)·위(胃)·소장(小腸)·대장(大腸)·방광(膀胱)·삼초부(三焦腑)·포(胞)·충(蟲)·대변(大便)·소변(小便)·수양(修養)·양노(養老) 등으로 주로 내과의 질병을 들었다. 외형편(外形篇)은 두(頭)·면(面)·안(眼)·이(耳)·비(鼻)·인후(咽喉)·두항(頭項)·배(背)·흉(胸)·유(乳)·복(腹)·제(臍)·요(腰)·협(脇)·피(皮)·육(肉)·맥(脉)·근(筋)·골(骨)·수(手)·족(足)·모발(毛髮)·전음(前陰)·후음(後陰) 등으로 주로 외과의 질병을 들었다. 잡병편(雜病篇)은 천지운기(天地運氣)·심병(審病)·변증(辨證)·진맥(診脈)·용약(用藥)·토(吐)·한(汗)·하(下)·풍(風)·한(寒)·서(暑)·습(濕)·조(燥)·화(火)·내상(內傷)·허로(虛勞)·곽란·구토(嘔吐)·해수(咳嗽)·적취(積聚)·부종(浮腫)·장만(脹滿)·소갈(消渴)·황달(黃疸)·해학(匐)·온역(瘟疫)·사숭(邪崇)·옹저(癰疽)·제창(諸瘡)·해독(解毒)·구급(救急)·괴질(怪疾)·잡방(雜方)·부인(婦人)·소아(小兒) 등이다. 병리와 진단방법으로 보아 내과와 외과에 속하지 않은 여러 가지 병증을 다루었다. 특히 부인과와 소아과가 있다. 탕액편(湯液篇)은 탕액서례(湯液序例)·수부(水部)·토부(土部)·곡부(穀部)·인부(人部)·금부(禽部)·수부(獸部)·어부(魚部)·충부(蟲部)·과부(果部)·채부(菜部)·초부(草部)·목부(木部)·옥부(玉部)·석부(石部)·금부(金部) 등이다. 주로 약물에 관한 지식을 열거했다. 침구편(鍼灸篇)은 침을 놓는 데 필요한 경혈(徑穴)을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한편, 침을 통해서 병을 고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상과 같이 사람의 모든 병증상을 5가지로 나누어서 항목에 따라 치료방법을 자세히 기록하고 치료 근거가 되는 여러 가지 문헌을 들었다.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전해지는 의서에 근거를 둔 기록만을 추린 것이 아니라, 병에 따라서는 민간에 전해지는 이른바 속방(俗方)의 치료방법과 편찬자가 스스로 경험한 비방까지 덧붙여 여러 가지로 참고가 된다. 의서로서 또 하나의 특색은 비슷한 병 중에서도 특별히 여러 사람들이 흔히 체험하는 병증세부터 다루되 손쉬운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한 데 있다. 가령 배앓이 환자들이 흔한데, 이런 환자들은 배앓이 치료를 설명한 조항을 찾아 읽으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활용하기에 편리하도록 편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이 그 어떤 의서보다도 충실하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권위있는 동양의학서로서 일찍부터 일본과 중국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1613년 훈련도감에서 만든 목활자로 인쇄되었는데, 이때의 초판본 완질 25책은 남아 있지 않고, 뒤에 전주와 대구에서 목판본으로 출판된 것이 완전하게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 책으로 이 책만큼 외국에서 거듭 출판된 것도 드문 일인데, 출판된 지 115년 뒤에 일본에서 완질이 출판된 것을 비롯해서 1763년 중국에서도 출판되었으며 일본과 중국에서 모두 7번 출판을 거듭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을 종합해볼 때 의서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 *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요약) 4권 2책. 목활자본. 1893년 편찬된 후 1900년 다시 보충한 것을 1901년 함흥군에서 제자들이 출판했다. 크게 7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상의설이라고도 하는데 심장을 중앙의 태극과 결부시켜 체질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체질별로 나눈 사상으로 치료한다는 사상의학을 확립했다. 성명론, 사단론, 확충론, 장부론, 광제론, 사상인변증론으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독창적인 의서라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동의수세보원(ㅊ)조선 후기에 동무 이제마가 저술한 것으로 4권 2책으로 되어 있다. 4권 2책. 목활자본. 1892년 7월부터 시작해서 1년 만에 3책이 편찬되었다. 1900년 다시 보충한 것을 1901년 함흥군 율동계에서 제자들이 출판했다. 크게 성명론·사단론·확충론·장부론·의원론·광제론·사상인변증론의 7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상의설이라고도 하는데, 주역에 있는 '태양이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낳는다'는 태극설을 따른 것으로서 사상인 태양·이양·태음 그리고 이음에 사장일폐·간·비(脾)·신(腎)을 배합시켰다. 심장을 중앙의 태극과 결부시켜 체질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 각기 병증세로 보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체질로 나눈 사상으로 치료한다는 사상의학을 확립했다. 성명론은 천기를 지방·인륜·세회로, 천시인사를 거처·당여·교우·사무 등의 4종류로 나누고, 천기에는 이목구비의 사관을 배합시켜서 귀는 천시를 듣고 인륜은 냄새를 맡는 것으로 보았다. 사단론은 사람의 내장이치를 다스리는 데 4가지가 있다고 했다. 폐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은 태양인,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사람은 태음인, 비장이 크고 신장이 작은 사람은 이양인, 비장이 작은 사람은 이음인이다. 확충론은 위의 사단론에 있는 태양·이양인의 애노성정과 태음·이음인의 희락성정을 성명론의 천기에 해당하는 여러 사항과 결부시켰다. 장부론은 폐·위·비장·간·소장·신장·대장 등의 자리와 생리기능을 설명했다. 의원론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편작으로부터 역대 중국의 의서를 들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이 들어 있다. 광제론은 유년에서부터 장년·노년의 성격의 차이와 직업에 따른 기질의 차이를 설명했다. 사상인변증론은 많은 사람들을 사상인으로 구별한 결과를 통계적으로 설명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저술한 독창적인 의서라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
이외에 부녀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녀(醫女)가 있어,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봉건사회에서의 부녀자 의료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렇게 완전한 제도를 갖춘 조선은 고려시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먼저 향약연구에 심혈을 쏟아 <향약집성방 >을 조선 초기에 완성했다. 〈향약집성방〉은 모든 병을 망라하여 임상서로서 완전함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로 대치했고, 처방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경험방을 많이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약의 독립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의학이론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연구와 발전을 꾀했는데, 세종 때 중국의 모든 방서를 정리한 작업을 벌이기 시작해 성종대에 이르러 완성한 <의방유취 醫方類聚>는 당시 중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의방의 총서이다. 〈의방유취〉가 비록 중국방서를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한국의학은 수용의 단계를 벗어난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완비하게 되었다.
선조대에 이르러 마침내 허준에 의해 중국의학에 대한 동의학(조선의학)이 탄생하게 되어 우리 의학은 독자성을 가지고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다(이때부터 우리 의학을 동의학이라 함). 동의학이라는 명칭은 <동의보감 東醫寶鑑>에서 유래된 말이다. 허준은 책을 완성하고 중국의학과 우리 의학을 구별할 목적으로 특별히 '동의'의 보감이라 명명했다. 물론 〈동의보감〉이 중국의학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당시 중국에는 동양의학의 기본이론이 되는 음양오행을 우리 〈동의보감〉처럼 완벽하게 소화시킨 책은 없었다.
즉 허준처럼 음양오행을 그대로 완전히 기초에서 임상까지 적용시킨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도가술을 중시하여 의학에 접목시킨 것도 〈동의보감〉의 특색이라 할 것이다. 동의보감은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에도 큰 비중을 두어 예방의 구체적인 방법인 도가(道家)의 양생술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생활방법·음식관계·도인안교·단전호흡 등이 포함되어 있다. 허준이 주창한 동의학은 중국의학의 전통을 이어받았는데, 중국의학이 여러 문파로 나뉘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음에 비해 〈동의보감〉은 모든 문파와 학설을 종합했으며, 중국의학의 정통을 〈황제내경〉으로부터 잇고 있다.
이렇게 외래의학의 수용에 성공한 우리 민족은 조선말 이제마에 이르러 그 꽃을 피워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 >이 탄생하게 되었다. 〈동의수세보원〉은 세계의학 사상 초유의 '체질의학'을 개발하여 동의학의 진가를 한층 높였다. 이 책은 질병의 원인을 외부의 병사에서 찾지 않고 인체의 개별적인 체질의 특성에 따라 해석한 새로운 차원의 질병관을 담고 있다.
즉 인체를 그 체질적 특성에 따라 사상인(태음인·태양인·소음인·소양인)으로 나누고, 체질별로 질병의 원인·증상·치료방법을 각기 다르게 논한 의학이다.
7. 근세
19세기 후반 서양의학의 유입으로 양대의맥(兩大醫脈)을 형성하면서 침체기에 들어간 한의학은 일제의 침략과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책동으로 수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1905년 설립된 동제의학교(東濟醫學校)는 1895년 실시된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전통의학의 교육도 함께 없어지자 그 명맥을 유지하고자 설립된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의학(한의학)은 소멸 일보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8. 현대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한의학은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다.
1945년 조선의사회를 결성한 한의학계는 후진 교육을 위해 재단법인을 결성하고 학교의 설립을 추진, 1948년 지금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전신인 '동양의학대학'(東洋醫學大學)을 개설했다. 현재는 전국적으로 총 11개 종합대학에 한의과대학이 개설되어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9. 한의학 교육개요
현재 전국의 한의과대학은 총 11개교이며, 교육연한은 6년이다.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예과와 본과로 나뉘며, 예과는 2년의 기간 동안 의료인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 본과과정에 대한 예비지식, 교양학문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본과는 총 4년이며 한의학에 대한 기초이론 지식과 임상을 학습한다. 이와 함께 기본적인 서양의학의 과정도 밟아 다른 의학에 대한 의학지식을 넓히고 있다. 교육장소로 기초이론 학습은 대부분 학교를 이용하며, 임상수업은 부속한방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10. 기초분야
한의학의 기초분야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① 의학사 : 의학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그 활동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학은 단순한 경험의 단계를 거쳐 진단과 치료의 초보적 이론을 갖추게 되는데, 이러한 이론의 형성은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반영한 역사적 현상으로 관찰되어질 수 있다.
의학사 분야에서는 의학을 현대의 시점에서 연구하여 의학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②
원전 한의학 서적들은 대부분 당시의 언어로 그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에 현재 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문자적 장벽이 되고 있다. 따라서 원전연구분야에서는 한의학 원서의 정확한 해독을 모색하여 현재 한의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자적 장벽을 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한의학 고전에 현대의 임상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한의학의 이론적 범주를 규정짓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③ 해부학 : 서양의학의 해부학적·조직학적·발생학적 관점으로 한의학 이론과 임상을 연구한다. 현재 조직화학적 또는 면역조직화학적 염색과 영상분석기를 통해 한약재와 침구의 효능을 연구하고 있다.
④ 생리학 : 생리학연구진은 '제3 의학(차세대의학) 창조'라는 기치 아래 한의학의 대상인 인간의 생명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음양오행학설 및 이를 응용한 여러 이론들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에 더하여 실험 등의 여러 측면에서 이 이론들을 확인·보완하여 재정립함으로써, 한의학 각 분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으며, 나아가 미래의 한의학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⑤ 본초학 : 기미론(氣味論 : 藥性을 감별하는 이론적 체계)을 바탕으로 한 약물의 성질·효능과 약물의 산지, 부위, 채취시기, 수치 등에 따른 약효의 변화를 연구하고 약물의 규격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⑥ 방제학 : 약물의 효능을 높이기 위하여 한약의 전탕방법과 복용방법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탕제·산제·환제 등의 전통적인 제형 외에 엑기스제·정제 등 보다 간편한 복용형태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⑦ 병리학 : 병리학자들은 기의 병리, 체질 병리, 내경 병리, 외감병학, 종양, 병중 모델 개발, 동서양 질병화합 등을 주요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⑧ 경혈학 : 침구시술의 목표점이 되는 경혈의 치료효과와 경락의 작용 메커니즘을 규명한다. 또한 고대의 침구요법을 근간으로 현대에 적합한 새로운 침구치료방법을 개발하여 이를 임상에서 보다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연구의 중점을 두고 있다.
⑨ 예방의학 : 동의예방의학과 공중 보건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목적으로 하며 그 특성상 동의와 서의의 예방의학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예방의학은 매우 광범위한 범주를 갖고 있는데, 크게 분류한다면 양생학·면역학·공중(환경)보건학·역학·의료관리학·산업보건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1. 임상분야
전통 한의학을 계승하고 있는 한의과대학 한방병원은 한방의 과학화와 현대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은 세계 최초로 무약물 마취 개복수술에 성공했고, 규모나 진료에서 한의학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약을 산제·환제로 조제하여 복용이 간편하고 약효의 균일화를 이루어 한약 복용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또한 한방병원은 진료 이외에도 원전을 해석하고 메커니즘의 발견 및 과학적 해명으로 한의학의 새로운 입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우리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① 제1내과(간계내과) : 각종 간장질환, 담낭질환, 혈액질환, 허약과 면역(保養療法)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그밖에도 오행설에 근거한 간속물류(인체의 조직·기관을 분류할 때 간에 속하는 간·눈·근육·손톱·담·등을 말함)에 따라 간풍내동(중풍의 발생이, 즉 간풍이 안에서 요동하여 발생하는 것)질환인 뇌실질의 병변, 뇌혈관장애 등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또한 근육질환도 그 대상이 되며 경락이론에 근거한 각종 간병증도 연구하고 있다.
② 제2내과(심계내과) : 한방치료로 뇌혈관계질환인 중풍 및 심장질환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순환기질환에 대한 효율적인 치료법 개발과 아울러 제3의학의 실현에 목표를 두고 있으며 임상 및 교육기관으로서의 발전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
③ 제3내과(비계내과) : 본과는 소화계에 대한 교육·연구·진료를 담당한다.
일반적인 소화계질환 연구는 물론 암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관련약물에 관한 문헌조사, 항암작용 및 면역증강 효과에 대한 실험적 연구 등으로 이루어진다.
④ 제5내과(폐계내과) : 폐계내과학과는 내과학의 한 분야로서 호흡기 질환과 기병증(氣病證)에 대한 병인, 진단 및 치료를 연구하고 있다. 알레르기 및 담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질환에 대한 임상연구로 새로운 치료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⑤ 제6내과(신계내과) : 신계내과학과에서는 그 영역을 비뇨학·신장학·장부학(남성과학)·장정생화학(내분비학)·노쇠학(노인의학)으로 분류하여 분야별로 병인, 병기, 진단 및 치료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⑥ 침구1과 : 진료 면에 있어서는, 한의학적 개념으로 볼 때 중풍·위중·비중 등에 해당하는 뇌혈관질환·말초신경질환·척수신경질환·근육질환과 같은 각종 마비질환에 대한 원인·병리·진단·치료·예후 등을 연구한다. 연구 면에서는, 각종 새로운 침구요법과 침구치료의 메커니즘 및 침술마취에 관하여 실험 및 임상관찰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⑦ 침구2과 :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입증된 침구요법의 진통효과는 탁월하다. 따라서 침구2과에서는 동통을 수반하는 각종 질환 특히 척추 및 관절질환에 대한 심도 있는 임상연구를 하고 있다. 그밖에 수침·전침·레이저침 등 신침요법에 관한 임상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그 결실로 금연 클리닉·근시 클리닉·통풍 클리닉을 설치·운영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⑧ 부인과 : 한의학 기본이론을 운용하여 월경, 임신과 출산 등 여성의 생리적 특성과 여성성기에 관련된 모든 질환에 대하여 연구하며 예방 및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근래 많이 볼 수 있는 냉증·불임증·갱년기질환·여성종양 등에 대하여 집중 연구하고자 각종 클리닉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⑨ 소아과 : 한방 소아과는 소아가 태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건전하게 발육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소아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소아의 여러 질병 중 다음 항목을 중점적으로 연구·수행하고 있다. 즉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허약아의 기초체력을 향상시키고 알레르기성 기침이나 천식, 경련성 질환, 소아야뇨증을 위주로 전문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⑩ 안이비인후과 : 한방 안이비인후과는 눈·귀·코·인후·피부의 영역에 속하는 각 질환에 대한 치료는 물론 그에 대한 연구 및 실험을 통해 한의학의 독특한 이론체계인 내장과의 상호관련을 갖는 내외 상응적 형상의학론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임상에서 볼 수 있는 각각의 중례에 대한 동서 의학적 고찰을 시도함으로써 제3의학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⑪ 신경정신과 : 신경정신과는 여러 신경정신계 질환을 동양의학의 기본이론인 심신일여의 이론을 토대로 치료하고자 하며 더불어 다음과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 한의학적 처치(약·침)를 통한 '스트레스' 극복에 관한 연구, 정신요법을 통한 긴장이완 및 심신의 안정에 대한 연구, 기를 활용하는 명상활용법에 대한 연구, 정신과 질환자에 많은 두통 등 동통에 대한 연구이다.
⑫ 물리요법과 : 물리요법과는 동양의학 중 도인안교와 각종 양생법을 연구·개발하여 전문화와 다양화로, 전신적이고 생리적인 균형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과이다. 진료내용은 근골격계 질환인 상과 영역과 중풍·산업재해·교통사고 등의 후유증을 지닌 신체장애자의 회복을 돕는 재활의학분야, 그리고 식이요법의 일환인 절식요법을 통하여 성인병 및 만성 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⑬ 사상의학과 :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학체계인 사상의학의 이론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임상에 적용하며 효율적인 의학 방법론의 모색을 위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밖에 중풍 센터는 현재 입원환자 약 340명, 연간 입원환자 약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전문진료 센터이다.
심계내과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분야까지 어우러진 종합기구로 구성되어 중풍뿐 아니라 그에 병발하는 여러 가지 질환 및 합병증을 진료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신 의료기기를 통한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 및 처치, 치료약의 개발 및 투약의 현대화, 다양한 치료방법의 입체적 활용 등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질병치료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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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의학(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 , 四象醫學, 사상인변증론)
이제마(李濟馬), 사상체질의학을 창시,우리나라 의학사에 불후의 자취를 남긴 조선말기 한의학자 이제마 선생(1837~1900)
이제마(李濟馬)가 창안했다.
1894년에 저서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 >을 통해 인간은 천부적으로 장부허실(臟腑虛實)이 있고, 이에 따른 희노애락의 성정(性情)이 작용하여 생리현상을 빚으며, 체질에 알맞는 음식과 양생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상의학설은 체질의학의 원전으로서 각자의 체질을 안다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요지이다.
사상의학의 4가지 체질이라 함은 태양인(太陽人)·소양인(少陽人)·태음인(太陰人)·소음인(少陰人)을 말하는 것으로 각 체질에 따른 장부허실이 상대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만일 허한 것이 더욱 허하거나 실한 것이 더욱 실할 때 병으로 나타난다고 하며, 이를 장부의 태(太)·소(少)라고 했다. 여기서 태·소란 해부학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며, 태양인은 폐대간소(肺大肝小), 소양인은 비대신소(脾大腎小), 태음인은 간대폐소, 소음인은 신대비소(腎大脾小)라고 했다.
태양인 체질은 폐가 크고 간이 작기 때문에 목덜미가 실하고 머리가 크다.
얼굴은 둥근 편이고, 살이 비후하지 않으며, 보통 이마가 넓고 관골이 나왔으며 눈에는 광채가 있다. 또한 간이 작으므로 척추와 허리가 약하며,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기대어 앉거나 눕기를 좋아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오래 걷지 못한다. 대체로 몸은 마른 편이며, 여자인 경우에는 몸이 건강해도 자궁 발육이 잘 안 되어 임신을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성격은 남들과 잘 어울리고 과단성·진취성이 강하다. 또한 머리가 명석하고 뛰어난 창의력이 있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연구한다. 반면에 계획성이 적고 대담하지 못하며, 남을 공격하기 좋아하고 후퇴를 모른다.
지나친 영웅심과 자존심이 강하여 일이 안 될 때는 심한 분노를 표현한다. 태양인은 더운 것보다는 차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뜨거운 음식을 오래 먹게 되면 위가 상하거나 식도경련, 식도협착증 같은 것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소양인은 비가 크고 신이 작으므로 비부위 흉곽이 발달되고 허리 아래 관골부(寬骨部)가 약하다. 대개 몸은 비후하지 않은 편이며, 상체가 실하고 하체가 가벼워서 걸음걸이가 빠르다. 항상 먼 곳을 바라보면서 걷고 곁을 잘 살피지 않는다.
머리는 앞뒤가 나오거나 둥근 편이고, 얼굴은 명랑하다. 눈이 맑고 반사적이다. 입은 과히 크지 않고 입술이 얇으며 턱이 뾰족하다. 피부는 희지만 윤기가 적고 땀이 별로 없다. 말소리는 낭낭하고 쓸데없는 이론을 싫어하며, 말할 때는 논리적이지 못하다. 보기에 경솔하고 무슨 일이나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기 때문에 실수가 많고 일이 거칠며, 싫증을 내기 쉬워서 용두사미격이 된다. 여자는 다산을 하지 못하고 남자는 양기부족이 많다. 소양인은 밖의 일은 좋아하지만 가정이나 자신의 일은 경솔히 여긴다.
남의 일에는 희생을 아끼지 않고 그 일에 보람을 느끼므로 자기 일을 돌볼 겨를이 없다. 판단력이 매우 빠르나 계획성이 적으며, 일이 안 될 때는 체념을 잘한다. 의분이 생길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고야 만다. 항상 열이 있으므로 체질상 더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겨울에도 냉수를 좋아한다.
태음인은 간이 크고 폐가 작으므로 허리가 발달하고 목덜미 위가 허약하다.
태음인은 대륙성 체질을 타고났으므로 사상인 중에서는 가장 체격이 큰 편이다. 골격이 굵고 키가 크며 살찐 사람이 많고 특히 손발이 큰 편이다. 피부근육이 견고하고 땀구멍이 성글며, 항상 땀기가 있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여 눈·코·귀·입이 크고 입술이 두텁다. 턱이 길고 두터워 교만하게 보인다. 상체보다 하체가 건장하여 걸을 때는 약간 고개를 떨어뜨리고 앞을 내려다보며 배를 내밀고 발을 땅에 놓아 오리걸음같이 걷는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양반걸음같이 위엄있게 팔을 저으므로 교만한 인상을 준다. 여자의 경우에는 눈매의 자태는 없으나 시원스럽고 남자의 경우는 눈끝이 치올라가서 범상하고 또 성난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몸에는 늘 땀기가 있고 활동을 하면 땀이 잘 흐른다. 찬밥을 먹을 때도 땀을 흘리는 사람은 대개 태음인에 많다. 땀을 흘려도 건강에는 이상이 없고 도리어 신진대사가 잘 되므로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여자들은 겨울에 손이 많이 튼다. 성격은 겉으로는 점잖으나 속은 음흉하여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음이 넓을 때는 바다와 같고, 고집스럽고 편협할 때는 바늘구멍같이 좁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무모하게 밀고 나가려는 우둔성이 있다. 비록 묵묵히 있어도 속으로는 무궁무진한 설계를 하여, 실행에 옮기게 되면 대성할 수 있다. 자기 주장을 말할 때는 남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끝까지 소신을 피력하는 끈질긴 성격이다.
태음인은 비교적 식성이 좋고 대식가가 많으나 성격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므로 때에 따라 폭음폭식을 하여 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많다.
소음인의 체형은 중초비위(中焦脾胃)가 허약하고 신방광(腎膀胱) 부위가 발달되어, 상체보다는 하체가 실하지만 위아래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키는 작은 편이나 큰 사람도 있고, 용모가 잘 짜여 있어 여자는 오밀조밀하고 예쁘며 애교가 있다.
피부가 매우 부드럽고 밀착하여 땀이 적으며 겨울에도 손이 잘 트지 않는다. 몸의 균형이 잡혀서 걸을 때는 자연스럽고 얌전하며, 말할 때는 눈웃음을 짓고 조용하고 침착하며 논리정연하다. 가끔 한숨을 쉬는 일이 있어 남 보기에 고민하는 사람 같다. 성격은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다. 겉으로는 유연해도 속은 강하다. 작은 일에도 세심하고 과민하여 늘 불안한 마음을 갖는다.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고 실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머리가 총명하여 판단력이 빠르고 매우 조직적이며 사무적이다.
자기가 한 일에 남이 손대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남이 잘하는 일에는 질투가 심하다. 또한 작은 일에도 마음을 끓이고 늘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므로 신경증 환자가 가장 많다. 다른 체질에 비해 소음인이 병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음인은 먹은 것이 소화가 잘 안 되고 장이 약하다. 소음인에 이로운 음식은 닭·양·염소·노루·꿩·대추·사과·귤·복숭아·시금치·미나리·양배추·찹쌀·조 등이다.
사상의학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 상태를 각 개인에 맞게 규정한 우수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자의 정확한 체질을 알 수 있는 방법에서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우며, 4가지의 체질로만 분류해 너무 단순하고 서로 중복되는 측면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상의학은 개체의 활동능력과 적응능력을 지배하는 반응능력을 설명하고 유전생물학적인 차이점을 규정한 독창적인 이론이다. 또한 체질의 본질적인 측면과 개체의 특성을 논하여 생리적·심리적 측면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한의학의 전체성 개념을 잘 구현한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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