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1137기가 훈련소로 입대하는 날이다. ‘해병대 입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는 환영 플래카드가 정문 입구에 크게 걸렸다. 입대 병 중에 얼마 전 방영을 끝낸 TV 드라마 주인공 현빈이 있다. 그의 입영 모습을 보려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팬과 취재진이 모였다. 다른 입영자 가족까지 수천 명이나 집결해 포항 전체가 들썩였고 국방부에서 입대 장면을 생중계까지 한 훈련소는 인산인해가 되었다.
탤런트 현빈이 해병대에 입영한다는 것은 그 드라마가 종영된 후 방송했고 신문에도 실렸다. 주인공으로 주가가 오르던 스타가 군 생활이 제일 힘들다는 해병대에 자원했으니 뉴스감이 되었다. 입대를 피하려고 갖은 방법을 쓰다가 탄로 난 연예인이 한 두 명이 아니던 시기에 그의 선택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반듯한 젊은이라고 모두 칭찬했다.
그런데 방송에서 그 사실을 몇 번이나 들먹인다. 인기 탤런트가 군에 간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 그것도 보통의 입대 연령을 넘겨 미루고 미루다 서른 문턱에 입대하는데 말이다. 국방부에서 그가 해병대에 자원했다는 걸 이슈화 시켜, 입영을 기피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바꾸려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이라면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생중계까지 해야 할까. ‘입영자 가족 좌회전 현빈 팬 직진’이란 차별 현수막까지 걸어 둔 입구가 더욱 마뜩찮다.
해병대는 남다른 인내와 긍지로 자원해서 심사를 통과한 청년들이 입영한다. 다른 입대 병도 큰 결심과 자부심으로 이곳에 왔는데 현빈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이 드는 건 아닐까. 2년 동안 가족들과 헤어지면서 선택한 각오가 제대로 계속될까, 배웅 온 지인에게 가슴 속의 깊은 말을 온전히 할 수 있을까.
나는 몇 년 전 941기로 큰 아들을, 다음 해엔 966기로 둘째를 해병대에 입대시켰다. 청년으로 자라 군에 간다는 게 대견하면서도 낯선 환경에서 고생할까 봐 마음 아팠다. 아들과 손잡고 입영소 정문을 지나 올라가며 가슴 속의 말을 쉼 없이 하고, 마지막 손을 놓는 순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잘 해낼 거야.”
큰 아들은 백령도에서 26개월의 군 생활을 마쳤다. 북녘땅이 보이는 혹한의 북쪽 해안에서 밤새워 보초 서고, 포격 훈련 및 며칠을 굶으며 한다는 수색 훈련까지 잘 해냈다. 제대 때는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일주일이나 선창가에서 기다리다 왔다. 군 복무를 마치 곧 집으로 못 오는 마음이 오죽했을까만 “필승!” 우렁차게 신고를 하며 돌아왔다. 큰아이가 해병대에서 근무하니 둘째는 좀 편한 육군 입대를 바랐지만, 그도 형처럼 해병대 입영을 원했다. 백마부대로 김포에 배치받아 북녘땅 앞에서 보초를 섰다. 초소에서 깜깜한 하늘을 보면 부모 생각이 간절하다가도 행군이나 수색 훈련을 하고 나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긴다며 뿌듯해했다.
최전방 해병대에 아들을 차례차례 보낸 어미가 어찌 편히 지낼 수 있으랴. 큰애를 입영시킨 후 우표 백 장과 예쁜 꽃 편지지를 샀다.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네가 많이 자랑스럽다.’고 편지를 써 부쳤다. 그 응원이 2년여의 군 생활에 조금 도움이 되었으리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구호처럼 해병대는 선후배 간에 평생 가족 같은 연대 의식을 갖는다. 제대한 후에도 위 기수는 아래 기수를 보살피고 후배는 선배를 위하며 따른다. 두 살 터울의 아들들은 사이좋게 컸지만, 시댁 식구들의 사랑은 큰아이에게만 쏠렸다. 그게 작은아이의 가슴 속 상처가 되어 사춘기에는 가끔 형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다 형이 상병 때 군에 간 막내는 큰애의 말끝마다 “넷, 그렇게 하겠습니닷.” 부동자세로 존댓말을 썼다. 휴가 와서까지 그러니 큰애가 불편해하며 반말로 하라고 하자 “전 이게 편합니다.” 해서 대단한 군기에 놀랐다. 제대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둘 다 서울에 있으니, 형은 동생을 살피고 동생은 형을 윗사람으로 대접하며 자주 만나고 부산 올 때는 서로 기다려 같이 내려온다.
오늘 아들을 입대시키는 어머니들의 선배로서 그들이 걱정된다. TV 생중계와 현빈 팬들 때문에 너무 번잡해 평범한 아들을 입영시키는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으면 어쩌나. 입대하는 청년 모두가 부모에게는 현빈 이상의 스타이니, 아들이 군 생활을 잘할 수 있게 마음을 흠뻑 주라고 하고 싶다.
근래에는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가 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보다 개인적 신념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다.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요즈음 젊은 날의 황금기를 나라와 자신의 심신 단련을 위해 입영하는 저 젊은이들은 얼마나 훌륭한가. 그들은 모두 세상 어디에서도 빛을 낼 수 있는 별들이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나라 지키는 선봉에 보내는 부모들도 입대하는 스타 못지않게 훌륭하다.
스타가 스타인 것은 많은 이가 우러러보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밝게 만들기 때문이다. 입대병 모두에게 믿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첫댓글 어느 곳 에서나 별은 빛나지요. 하늘에서도, 바다에서도, 부모의 가슴속에서도, 군 입대 장소에서 텔렌트 라고 하여 특별 대우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못나고 잘남이 없이 자식이란 모두가 별이지요.
옳으신말씀.
대한민국의 아들이면 잘난사람, 못난사람 가릴수없지요. 특별대우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잘읽고나갑니다.
찾아주심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