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MIER의 실패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둔 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DFL(독일 프로축구 협회) 사무실은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06-07 시즌부터 3시즌간의 분데스리가 중계권자가 확정, 발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을 바쁘게 만든 건 예상과 다른 발표결과였고, 그 내용은 독일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당연히 중계권자로 결정될 것으로 기대했던 기존 중계권자인 PREMIERE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BskyB가 24%의 지분을 갖고 있는 Pay TV 채널)가 탈락하고, 케이블 TV 회사 Unity Media가 소유하고 있는 ARENA가 앞으로 3시즌 동안의 분데스리가 LIVE(생중계) 방송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 뉴스의 파급 효과는 주식시장으로 바로 이어져 PREMIERE 주가가 당일 반토막이 나는 사태로 이어졌다. PREMIERE는 분데스리가 말고도 2009년까지 UEFA 챔피언스리그와 독일 월드컵 중계권은 물론, 윔블턴 테니스등 주요 빅이벤트를 많이 확보하고 있지만 그 중 어느것도 충격을 막을 완충장치는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파급 효과를 예상했을 PREMIERE가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놓친 원인은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정답은 돈이 아니었다. 올시즌 분데스리가 중계권은 LIVE 방송권, 하이라이트 방송권, 인터넷 방송권등을 모두 포함해 3억 유로(한화 3600억원)였고, 그중 LIVE 방송권은 1억 8천만 유로였다. PREMIERE는 향후 3년간 40%정도를 인상한 연간 2억 5천만 유로 이상의 금액으로 입찰했지만,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것으로 알려진 ARENA가 중계권을 따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돈이 관건은 아니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그 내막은 뭘까?
독일 축구의 힘 “스포츠쇼 (SPORTSCHAU)"
이 사태의 핵심에는 바로 독일 ARD(공중파 방송사로 공영방송 채널)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2시간동안 진행되는 스포츠쇼(SPORTSCHAU)가 있다. 이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독일 프로축구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KICK OFF하는 분데스리가 7경기에 대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스포츠쇼’는 이번 독일 월드컵 본선 조추첨 메인 진행자로 나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인홀트 베크만(사진 오른쪽)과 게르하르트 달링 쌍두마차에 미모의 여성 진행자 모니카 리어하우스가 진행한다.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이 저녁 식사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수십년간 내려온 가장 일상적인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입찰에서 실패한 PREMIERE는 ARENA보다 높은 입찰 가격을 제시하는 동시에 “스포츠쇼”를 토요일 밤 10시 이후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방영시간이 늦춰지면 PREMIER가 보유한 녹화경기의 방송 시간도 벌 수 있고, 한편으로는 채널 장악력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 프로축구 협회는 독일인들의 삶 일부인 “스포츠쇼”의 시간을 옮길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간대 변경으로 공중파 채널에서 방영되는 “스포츠쇼”의 시청률이 떨어질 경우, 결국 각 구단 스폰서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 프로축구 협회는 PREMIERE를 중계권 입찰해서 탈락시키고 그보다 낮은 가격에 입찰한 ARENA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자,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일개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수십억의 돈보다도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니 말이다.
지난해 “제대로 된 공중파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없이 프로축구의 발전은 절대 불가능하다”라는 명제 아래 시작한 <비바!K리그>를 담당PD였던 필자로서는 정말 뼈에 사무칠 정도로 부끄럽고 가슴 찡한 뉴스였다. 지난 시즌 내내 <비바>가 가장 많이 들은 비판이 바로 시간대 변경이었으니 말이다.
스포츠쇼와 비바로 드러난 양국의 현실차
물론 독일과 한국의 현실은 아주 다르다. 올시즌 상반기 독일 분데스리가 평균 관중은 4만 6천명이다. 독일에 있으면서 잠깐(?) 지켜본 분데스리가의 경기력은 상위 5-6개팀을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바이에른 뮌헨 같은 경우 선수들의 경기 임하는 태도가 챔피언스리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중의 열기만은 정말 대단히 인상적이었는데 윈터 브레이크를 앞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경기장이 꽉 들어차 있었다. 독일인들의 프로축구에 대한 열정은 우리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못됐다. 우리가 상암에서 대표팀 경기가 벌어질 때 보여주는 분위기를 거의 모든 프로축구 구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독일에서는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스포츠쇼”를, 우리에겐 평일 새벽시간에 방송되는 <비바>로 나뉘어 반영된 것이 아닐까? 또한 분데스리가는 3천억원 이상의 중계권료를, K리그는 50억원의 중계권료를 거둬들이는 차이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K리그 발전이 진정한 한국 축구 발전, 아니 진정한 축구 문화 생성의 지름길이라는 걸 모두 공감해야 한다. 일년에 많아야 예닐곱번 하는 A매치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한국 축구 문화는 결국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스포츠쇼”같은 “비바”가 생기는 날이 과연 언제쯤이나 오려나.
'스포츠쇼'의 여성진행자 모니카 리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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