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지도 기억을 못하고
주어진 일로 분주했다.
출근하는 나를 따라 남편이 나섰다.
작가실 들어가는 곳의 나무가 너무 자라서 차에 부딪친다고 했더니
기계까지 챙겨실었다.
나는 수업을 하고 남편은 나무를 다듬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서 보니 시원스럽게 다듬어 두었다.
느티나무 한그루와 옻나무 한그루를 베어내야되것다고 해서 스님께 허락 받고 베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두 분 오셨다.
담임하고 교감선생이라고 했다.
학생이 어찌 지내나 관찰차원에서 온 듯했다.
학생은 참 잘 한다.
문제학생 같지는 않는데 아마도 군중심리로 말썽을 좀 부린듯 하다.
예전 같으면 매로 몇 대 때리고 말 일을 요즘은 개도 차원에서 대안학교로 보내는가보다.
학생 한명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물론 나도 그 덕분에 용돈벌이는 하고 있지만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밥을 먹지 못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오후에는 이나라도움에 일을 하려고 하니 잘 안되었다.
상주작가가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사무국장에게 말해서 사용자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가 홀라당 가고 집으로 오는 길
차가 많이 막혔다.
왜 그러지 싶어서 생각하니 어버이날이라고 찾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새삼 마음이 허전? 울적? 심란? 아닌데 암튼 한곳이 텅 빈 것 같은?
다 이 기분을 표현하지 못하겠다.
내가 중얼거렸다.
"어버이날인데 갈곳도 없고 올 놈도 없으니"
그랬더니 남편이 대뜸 "왜 없어?" 하는 것이다.
"어디있어? 오고 싶어도 못 오는 딸? 며칠 전에 서울에서 꽃다발 준 아들?"
말이 없었다.
딸은 오고 싶어도 못 온다.
아들은 시상식장에서 꽃다발 이미 주고 그날 저녁까지 사 주었는데 뭘 더 바랄까?
호주출장으로 미루었던 미팅들이 줄줄이 하루에도 십여건씩 잡혀서 9일은 많이 바쁠 것 같으니
엄마가 서울에 와도 못 볼지 모른다고 해서 나오지 마라고 하였다.
조용히 워크샵만 참석하고 내려 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올 녀석이 어딨어?
그렇게 밀린 길을 겨우 들어 왔다.
마침 주차공간이 있어서 대고 들어오니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후적후적 걸어서 솥밥을 해 주는 곳을 찾아갔다.
"어버이날인데 밥 하는 것 미안하니 맛있게 먹읍시다"
남편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그렇게 둘이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미뤄두었던 참께 모종을 옮겨 심고 나니 9시가 되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밥먹을 지기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