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언론에 관하여]]
1.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2023.5.27)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20일 "대한민국은 심리적 G8 국가 반열에 올랐다"며 한미정상회담을 평가했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미국 국빈방문 당시 '워싱턴 선언'을 두고 "사실상 핵공유"라고 주장했으나 백악관 측은 "사실상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는 반박한 바 있다. [프레시안]
결과적으로 방미 전부터 회자했던 ‘즉시 핵 보복’이나 ‘핵 공유’는 이번 회담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빈방문의 흥분을 거둬내고 워싱턴 선언을 복기하면, 가속기를 누르는 한국과 브레이크를 밟는 미국이 곳곳에 보인다. 안심할만한 수준의 확장억제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동맹이란 억지를 위한 것이고, 전쟁 억지를 증명하는 것이 주한미군인데"(최종건 교수) 과연 종이 문서로서 무엇을 끊임없이 보증받으려 하는 지도 의문이다.
'살인허가증'을 얻으면 살인을 해도 된다는 건가? 너무 비현실적 사고가 아닌가? 영화 <007 살인면허>를 보고서 영화 속에 빠져서 사는 건가?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망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신장식 변호사는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란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이다.
즉, '법치'에 대해 은밀하게 재정의를 한다는 뜻이다. 즉, 사회 공동체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셀프 정의(self-definition)다.
뿐만이 아니다. 합법적 건설 노조를 "건폭"이라 규정하고, 합법적 집회 활동을 "불법 시위"로 G 마음대로 규정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전방위적으로 '은밀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밀한 재정의'란 논리적 오류란 어떤 것인 지 살펴보자.
* 물론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물에 독약치기(원천봉쇄)의 오류',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 등 온갖 논리적,오류들을 거의 망라하다시피 저지르는 윤석열 정부를 보는 중이다.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fallacy of illicit redefinition)] (2021.8.30)
여기서 "illicit"은, 편법 불법 변칙 부정을 뜻한다.
가정(假定 hypothesis)에 의해, 셀프로 정의를 내려놓고서(define), 그로부터 부당한 결론을 내려버리려는 것.
1)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려는 학문이야. 그런데 법칙이 있다는 것은 법칙을 만든 존재가 있다는 말이지. 결국 과학은 법칙을 만든 하느님을 가정하는 거지."
ㅡ 앞의 법칙은 자연법칙, 뒤의 법칙은 하느님의 법칙. 결코 동일시할 수 없는 것임.
2) "세상은 '약육강식'이고 '강자존'이야. 그걸 인정해야 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지. 그러니 사장님의 갑질도 그렇게 봐야지. 어쩔 수 없는거야. 니가 이해해."
ㅡ 인간세상을 짐승세계와 동일시. 자신의 틀린 생각(선입견과 편견)을 남에게 전파하고 이식시키는 결과 초래.
3) "세상은 결국 돈이야. 돈이 만드는 세상이지. 그러니 너의 행복도 거기에 있어. 니가 돈을 무시하거나 혐오하면서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그건 모순이지."
ㅡ 전제나 가정이 잘못되면, 그로부터 도출되는 귀결들은 신뢰성도 정당성도 보편성도 얻을 수가 없음. 어쩌다 맞는 건 그저 '우연'일 뿐.
ㆍ우연(偶然)... chance 기회, luck 행운, accident 사고
ㆍ필연(必然 necessity)의 반대가 우연
ㆍ필연은 증명가능하나, 우연은 증명 불가능
ㆍ네메시스(nemesis) : 천벌, 응보, 복수는 필연.
4) "미니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경기가 좋아지는거래."
ㅡ 이런 식으로 각자가 정의를 스스로 내리지만,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보편적 원리를 찾으려는 생각까지는 가상하나, 우연성(coincidence)에 기대서, 이런 잘못된(증명되지 않은) 신념과 확신으로 모든 문제에 적용하려고 하다보면, 커다란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것.
2. [영명한 아들] (2023.5.27)
[英明한 아들 2]
엄마 "아들아, 너 성적이 이렇게 나빠서 어떡하니?"
아들 "걱정마 엄마. 그래도 심리적으론 1등이야~"
3. [반어적 이해하기] (2022.5.27)
세상을 반어적으로 이해하기!!
오늘은 특별한 얘기를 해볼께. 물론 나의 상상이야. 내 직업은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야. 이상주의에 흐르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에 맞게 초등부터 대학까지의 교과서를 만들려고 해. 그러다보니 기존의 교과서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육의 목표부터 180도 바뀌는 거지. 그럼 이제 나의 상상을 시작해볼께.
교육의 목적은 평화와 행복과 사랑이 아니야. 반대로 파괴와 전쟁과 살인과 방화와 증오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 효과적, 치명적으로 파괴시키고, 어떻게 해야 빠르게, 대량으로 잘 죽이고, 방화의 범위를 어떻게 넓혀서 지속 시간을 늘릴거며, 어떻게 해야 증오나 혐오를 깊게 심어주어서 복수를 안할 수 없게끔 만드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이지.
교육은 또한 정직과 정의와 공정을 가르쳐선 안 돼. 그러면 항상 손해와 피해를 입게 되니까. 그래서 가장 잘 속일 수 있는 거짓말들을 연구케 해야 하고, 정의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줘야 해. 그리고 불공정만이 세상의 법칙이고 상식으로 받아들이게끔 세뇌가 돼야 해.
인간은 도덕적 존재가 아니야. 이기적 존재이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의와 신용을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현명한 생각이고 사상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되는 거지. 남을 짓밟는 것은 기본이고, 나아가서 반드시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가르쳐야 해.
권력은 클 수록 좋고 돈은 많을 수록 좋은 거야. 지닌 권력을 최대한 사용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걸 가르쳐야 해. 가난은 범죄야. 갑질은 기본이고, 단식은 모자란 짓이란 걸 그 눈앞에서 폭식 파티로 알려줘야 해. 폭력과 살인은 일상의 일이란 걸 교육은 가르쳐야 해. 상대가 칼을 들면 총으로 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해. 총기 소지는 무조건적 명령으로 가르쳐야 되지. 죽일 땐 가족 친족까지 다 죽여야 돼.
존경은 약자들의 굴종 심리인 거고, 존중은 쓸데없는 감정적 사치이고, 부모 봉양은 낭비인 거야. 이웃들은 모두가 잠재적인 적이고, 회사 동료들은 현재의 적이야. 우정은 반드시 댓가를 주고받는 거래로 생겨나지. 이런 것들이 교과서에서 빠져서는 안 되지.
천국과 지상낙원은 망상이고 미래는 지옥이라는 걸 가르쳐야 해. 현재는 지옥으로 향하는 연옥인 상태고, 자살 마약 알콜중독 성폭력도 예술적 삶의 부분들이라고 가르치는거지. 그리고 성매매 직업은 최고 품격의 직업이고 성공의 최적인 방법이며, 성형은 필수라는 걸 공통필수 과정에 꼭 넣어야 해.
인간의 삶과 세계는 파괴되어야만 인간은 자아실현을 하게 되는거고,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면 정답이라는 걸 시험을 통해서 자주 심어줘야 해.
이러한 교육 사상을 전세계에 퍼뜨려 더욱 악랄한 교육이 되게끔 발전시키는 것이 이 교과서를 통한 교육의 사명이고 시대의 소명이지.
4. [마음이 자라지 않는다 : 괴물] (2020.5.27)
지독한 편견에 빠져버린 사람들.
맹목적 신앙에 매몰된 광신도들.
각자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사상가들과 그 추종자들.
그들의 마음은 더 이상 자라지 못 했고, 그리하여 그들은 괴물이 되고 말았다.
육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고, 종은 진화를 거듭했건만, 그 어떤 누구도 마음의 무게를 달아보려 한 적 없었다.
의사는 육체와 시체를 다루었을 뿐, 삶과 죽음을 다루었던 적 또한 없었다.
오늘날의 인종차별은 인간의 표피적 종의 구별에 기반한 것으로, 그 편견의 무게를 달아보는 데 전혀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실적 가치와 유의미한 사실이 배제되고, 마음의 무게를 재는 저울조차 자의적으로 선택하려는 법과 법의 정신도 역시 그 자람을 멈춰세웠다.
온전하게 자라는 마음을 인위적으로 가두어 더욱 더 좁은 세계로 들이미는 종교인들은 이미 자의반타의반으로 사이비화되고 말았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그나마 충실히 따르려는 문학과 예술도 자기덫에 빠져 편협과 침묵으로 흐르더니 자가당착 속에서 허우적댄다.
마음의 무게를 감각적으로 잘 캐치한다는 정치는 무작위적인 군중심리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마음이 자라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가 바로 돈이다. 돈과 재물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음이 쪼그라든다.
마음이 잘 자라도록 해주는 토양의 역할을 떠맡은 교육도 돈 앞에서 허물어졌다.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희노애락애오욕(희노애구애오욕)이지만 자유, 행복, 평화를 갈구하면서 마음은 자란다.
커진 마음으로 다스리는 세계는 온전하게 유지되고 발전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은 작고 좁은 마음이 지배하는 세계는 전쟁과 불화와 공포만 있을 뿐이다.
70년간이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 온 92세의 이용수 할머니께 우리는 그 무엇도 바래서도 목적해서도 안 된다. 더더구나 그 어떤 이유로도 욕지거리를 뱉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자라지 않는 괴물이 되고 만다.
존재, 즉 삶과 죽음은 마음의 세계에 있다. 우리 모두는 마음을 키우고 자라도록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이다.
작은 마음을 가지고 큰 마음을 어줍잖게 재단하려 함은 자살 행위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30년의 마음의 무게를 지닌 윤미향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가 않다.
5. [언론의 참뜻] (2019.5.27)
신문과 방송을 함께 가리켜 언론이라 칭합니다.
언론은 영어로 media, press, public opinion 으로 번역됩니다.
언론의 언은 '말씀 언'으로 막말, 허언, 거짓말, 유언비어 등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언론의 '론'은 논리, 논지, 논설, 논평 등으로 다양하게 확장되나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논리성, 정합성, 적확성, 일관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의 참뜻은, 논지를 정확히 세워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앞과 뒤가 일관되게 해서 시중의 모호함과 애매함을 제거하고 정제되고 순화된 말씀들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공기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편향성 배제, 기계적 중립 배제, 임의성 배제, 사적 이익계산의 배제 등이 전제되겠습니다.
또한 언론은 그 자체로 사회 권력이므로 정치 권력까지 넘보아선 안 됩니다.
그리고 언론은 경제적 이익 쟁탈의 당사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방송은 즉시성과 대중성의 성격을 띠겠으나, 신문은 보다 깊이있는 심층 취재로 이루어진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서 장기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언론이 지향하는 특종엔 조작이나 왜곡이 들어서선 안 됩니다.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언론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지켜내야 할 마지막 보루 입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학자보다도 대중의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언론인이기에 누구보다도 언론인은 정직과 신뢰로 먹고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언론인이 언론의 참뜻을 망각하고 사회적 공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른다면 마치 연쇄살인범처럼 간주되어 제거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조선일보입니다.
kjm / 2024.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