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로서 연극을 보니 뭔가 기분도 묘한 것 같고, 뭔가 하나라도 더 깨닫고 싶어서 전투적으로 봤던 것 같다. 사실 난 연극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연출가가 숨겨놓은 복선이나 무언가를 찾았을 때 희열을 느낀다. 찾지 못해서 내 스스로 "그냥 그랬던 건 아닐까?"라고 합리화할 수 밖에 없는 내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그런 맛을 즐기는 것 같다. (뒤가 구린 연극?) 그게 내가 추리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고. 그래서 극 안에서 본 것으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추리극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추리물에서는 떡밥과 그 회수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난 추리물을 찾는 사람들이, 코끼리의 코만 보고 코끼리 그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적은 정보로 코끼리를 가장 비슷하게 그려냈을 때, 추리라는 장르는 그 때의 쾌감을 즐기기 위함이지 않나 싶다. 물론 끝에는 내가 코끼리를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적절히 추리할 수 있는 떡밥을 남겨 최대의 쾌감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추리극은 주 관람층을 설정해서, 최대한 많은 인원들에게 앞서 얘기했던 쾌감을 주는 극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행오버는 떡밥과 관련 없는 인물이 충분히 모를만한 인물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내거나, 바로 연상해내기 쉽도록 직렬적으로 사건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일반인도 쉽게 풀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반면에, 하찮은 지식으로 정기공연 조명/음향 디자인 회의에 참석해야하는 사람 입장에서 음향의 활용은 적절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공부하다보니 "음향이 적절한"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신박하게 좋은 음향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마다 뻔하지만 적절한 음향을 활용한 것이 fun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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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혼자 보러 가려고 했는데 문득 공연인원 생각이 나서 같이 보러 가게 되었다. 티켓 가격도 그렇고.. 아무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을테니 같이 보러 갈 사람을 구하는 식으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그냥 그런 과정들에 시간을 쏟기가 내키지 않아서 필참이라고 했더니 꽤 많은 인원들이 보러 갔던 것 같다.
사실 동아리 인원들이 관극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 '행오버'같은 상업연극이 아니더라도 극회 연합 공연이나, 가끔 단톡에 올라오는 소극장 연극들이라도...... 뭐,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걸 알지만...... 연극이 끝나고 맥주 한 잔 걸치면서 서로 얘기하는 시간이 참 좋다. 자꾸 나만 이거보자 저거보자라고 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부원들도 옆 사람에게 먼저 같이 보러 가자고 하는 동아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