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재 간찰이 2건 있었다. 신독재는 잘 아니까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첫번째 간찰은 아버지 김장생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런데 을축년이면 인조3년이고 신독재가 52세 때이다. 그때는 이미 부여 현감에 재직 중인 시절이므로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을축은 기축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기축년은 1589년(선조22), 신독재가 16세 때이다. 편지 중에 송 직장이 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고 자기들 형제도 참방하였다고 하였으니 그렇듯한 이야기이다. 너무 어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近日炎熱比酷 伏未審/氣候若何 伏慕不已 息伏蒙/遠念 奉親好遣耳 每欲奉書/候 而自抵洛中便信頓絶 一未遂/意 伏歎伏歎 宋直長 巍中初試/ 喜賀喜賀 適聞有歸人 敢此白是/ 伏惟/下鑒 上白是
己丑(1589, 선조22)五月初八日朝 息 集 白是
息之兄弟 亦參/榜末耳
다음 편지는 서질의 상을 당하여 향도꾼을 내달라고 성주에게 부탁하는 편지이다.
寒威斗緊 累日/出入 體氣若何 仰慕區區 就達庶姪/之喪 欲以開月初四日埋葬 而渠之/父 奴婢鮮少 雖資一家人 而多有/不逮者 近面香徒 幸可略爲/題給否 庶弟等前進 擬爲告稟 而適値/忌辰 與公山行次未果 而葬期已迫 雖/卑少喪 而成人壯長者終事 不可太薄/ 略敢此煩稟 令庶弟賫單爲謁矣/ 伏惟/下鑒 謹拜上問狀
壬辰(1652, 효종3)至月二十八日 民 金集 再拜
若蒙/仁恩 則以食于面及赤寺外城等//里 分半出定何如 自/此距葬地 幾一息許/ 客地無賴 敢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