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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의 심판
함석헌
씨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음력 섣달 열이틀 볼록한 달이 천심(天心)에 밝고 땅에는 녹다 남은 엷은 눈이 그 달의 원만한 빛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다는 듯 슬픈 빛을 띠고 눈을 내리깔고 있는 밤에 이 글을 씁니다. 나도 눈을 감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 같은 여러분께 슬픔을 보냅니다.
나는 오늘 마음이 슬펐습니다. 오늘만이겠습니까? 늘 슬프지요, 혼자 입속에
주 세상 계실 때
늘 슬퍼하셨네
읊조려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슬펐습니다.
어제 늦게, 오늘 아침 아홉시 반에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회를 모이겠다는 통지를 받았기에 거기 참석하려고 아홉시에 명동성당 구내에 있는 주교관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때껏 그 모임이 몇 번 있은 것을 나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국민회의는 순수한 씨의 운동으로 이끌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청탁을 아울러 마시고도 그 맑음과 평화에 끄떡이 없는 바다 같은 슬기와 힘이 내게 없는 이상, 나는 내분을 지켜 깊이 생각하여 내 할 책임이 분명해지는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대표위원을 사양하는 뜻을 표하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지난 16일에 중앙정보부 6국에 불려가 6시간 넘도록 국민회의에 대해 조사를 당하고 오면서도 내 마음의 평안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국민투표 한다는 소리가 벼락같이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은 아주 어려워집니다. 이제 그 때문에 회의를 연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도 나는 ‘모른다’ 하고 있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일이 어느만큼 어려운가 그 윤곽이라도 알아보고 근심이라도 같이 나누는 것이 동지로서의 의리라는 생각에 우선 나가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당 구내 정문 앞을 턱 가니, 아무 의심도 않고 갔던 내 눈에 보기에도 벌써 이상한 사람들이 7,8인 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어가려 하자 인사도 없이 “저리 좀 갑시다” 하고 붙잡는 것입니다. “왜 이러시오?” “누구요?” “놓으시오” 항의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나는 그들 눈에 사람이 아니고 자기네 맘대로 처리해야 하는 하나의 물건입니다. 몇 번 몸부림을 하다가 나는 들어가기를 단념하고 돌아 서서 10시부터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구속자와 같이하는 가족들의 기도회에나 참석하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붙잡으려 했으나 내가 결심한 태도로 내 길을 걷기 시작하자 그만두어 두고, 사람만이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을지로를 가로 건너 청계천을 건너 종로로 나가려 하는 즈음에 뒤따르던 두 사람은 다가와서 덮쳐잡고 옆에 다방으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나는 내 나이를 잊고 뿌리치고 장안 사람은 다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왜 이러시오” “당신들 뭐요?” 내 힘이 세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 속에 양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놔주었습니다. 나는 종로 2가 3가 4가를 차례차례 지나 5가까지 갔습니다. 뒤는 돌아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따라왔거나 말았거나 알 바 아니고, 기독교회관까지를 갔습니다. 막 출입문 앞에 서자, 분명히 따라오던 사람은 아닌, 그전 어디서 봤던 듯한 장사가 하나 웃으면서 나타났습니다. (가롯 유다의 키스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지) 그러더니 “선생님 좀 봅시다” 했습니다. 나는 “필요 없어요” 한 마디를 던지고 문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장사는 나를 독수리처럼 움켜쥐었습니다. 옷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암탉이 연약해도 혼으로 항거하는 데는 독수리도 못 견딘다는 법입니다. “비켜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고 옆에 섰던 윤목사님은 문을 열었습니다. 이리해서 나는 예배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서 몸을 식힌 후 명동에 전화 연락을 했더니 이제라도 다시 오라는 것입니다. 가면 들어갈 길이 있다 했습니다. 그래서 문 신부님이 동행을 해 가서 병원 뒷문으로 주교관 3층에 있는 윤 신부님 방까지를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회의를 다 마치고 이태영 박사의 차를 같이 타고 다시 기도회로 가려고 나서니 구내 정문 앞에서 이번에는 아마 몇십 명은 되는 사람들이 몰려와 못가게 하고 차에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용산서외 내 담임 형사가 나타나서 경찰서에 잠깐 들렸다가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싸울 마음은 없어 동의하고 용산서로 가서 정보과장실로 들어갔더니 인삼 한 뿌리를 통으로 넣어 달인 차를 주지 않습니까? 고맙게 받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한시나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 오셨다” 하는 아이들 틈에 앉아 밥상은 대하면서도 마음은 슬펐습니다. 이따금씩 하는 대로 또 한번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인생의 저녁이 어쩌면 이러냐? 젊어서 감명 깊게 읽었던 덕부노화(德富蘆花)의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그와 같이 고요히 바람 잔 저녁에 넘어가는 해를 보는 것은 마치 대성(大聖)의 임종에 되신 듯한 느낌이 있다. 장엄의 절정이요 평화의 극치, 범부도 영광(靈光)에 싸여 육은 녹아떨어지고 영만이 단정히 영원의 바닷가에 섬을 깨닫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은 모름지기 그려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뭐냐? 내가 부족한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나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되고 말까? 이것이 7천 년 문명의 말로냐?
또 다른 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세계 1차대전 후에 한때 유행했던 노래입니다.
인생아 권세 있느냐
있거든 살지며
인생아 권세 없느냐
없거든 죽어라
이 몸이 차라리
청산에 무덤이 될지언정
권세 없이 살기는
원치 않노라
그리 좋은 노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마는 나라 망한 슬픔에 눌렸던 그때의 젊은 가슴을 짐작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로 명동의 큰길이 메이도록 밀려나고 밀려드는 젊은이들은 권세 생각이나마 하는 것입니까, 못하는 것입니까? 그때에 권세라고 했던 것은 민족의 자유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또 북악산 남산에 걸터앉아 그 고기떼 위에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은 무슨 심정일까요? 만일 곤륜산, 부사산, 장백산, 태평양 군도에서 보다 더 흉악한 그물이 떨어져 너 나가 한가지로 솥 안의 운명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때도 그들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누리고 있을까요? 그보다도 더 회회천망(恢恢天網)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양과 염소를 갈라놓는 날이 온다면 어떠할까요? 아니 올까요? 나는 먹던 밥이 목구멍에 걸림을 느껴 젓가락을 놓고 매월당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풍우소소불조기(風雨蕭蕭拂釣磯)
위천어조학망기(渭川魚鳥學忘機)
여하노작응양장(如何老作鷹揚將)
공사이제아채미(空死夷齊餓採薇)
비바람 들이치는 낚시돌 위에 앉아 고기잡이 아닌 낚시질을 하며, 위천(渭川)의 고기와 새에게서 때 잊고 한가히 사는 도를 배웠던 강태공아, 뭐하자고 늙으막에 벼슬이니 뭐니 해서 사나운 장군 돼가지고, 쓸데없이 양심 지켜 깨끗이 살자는 백이 숙제(白夷 叔齊)만 굶어죽게 하느냐?
이것은 그가 친구 서거정이 젊어서 같이했던 선비의 뜻을 버리고 벼슬아치로 떨어진 것을 빈정대서 써준 글입니다. 정치란 따지고 보면 낚시질이요, 사냥질 아닐까요? 제발 씨알을 천지 사이에 놔주어 둬둡시사! 왜 이렇게도 못살게 굽니까?
이 슬픔 언제나 다할까요!
이해는 씨알의 해
그러나 씨 여러분, 나는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 있어서 매우 보람을 느낍니다. 씨은 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깼습니까? 이제 역사의 주인은 씨이란 것을 누가 모를 사람이 있으며, 누가 감히 그것을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아직도 우리가 당할 고난은 많습니다.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인지라, 우리의 지배자들은 그전 어느 때보다도 더 혹독한 방법으로 우리를 학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역사의식과 자주정신을 뺏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인도적으로 학대하면 할수록 그것이 기름이 되어 우리 정신을 불길로 일으킬 것입니다. 고난의 의미는 그전과 다롭니다. 전에 우리가 무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하고, 요나처럼 역사의 뱃마창에 엎디어 잠을 자므로 그 고통을 잊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결정적인 시대의 폭풍은 우리를 깨워 자려해도 잘 수없이 만들었습니다. 이제 모든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경고요 역사의 주인으로 다듬어내기 위한 시련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가지 예언만은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점점 더 인간적으로 깨어갈 것이요, 역사는 점점 더 씨알이 그 주인이 돼갈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난 요나처럼 “나 때문이다. 나를 집어 바닷 속에 던져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다” 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투표라는 말부터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것이 참 의미의 국민투표가 될 리가 없습니다. 국민투표라면 그 의견을 내기를 국민이 하고, 그 절차를 만들기를 국민이 하고, 그것을 진행하기를 국민 스스로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한 모퉁이에서 몇 사람이 만들어가지고 불쑥하고 내밀고 ‘옳다’ ‘그르다’ 말하지 말고 그저 표만 던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 될 리도 없고 국민에 의한 것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름이 국민일 뿐이지 실지로는 국민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배자들은 마음에 없는 그런 일을 왜 할까? 아니할 수 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시대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무엇입니까? 민중의 입김입니다. 옛날에 씨알이 깨지 못했을 때 포악한 지배자만 아니라 소위 어진 임금이었다는 사람들도 민중을 보고, 나는 당신들의 공복입니다 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주 건방지게 나는 천자나 황(皇)이다, 왕이다, 백성의 부모다 하면서 부릴 대로 부리고 짜먹을 대로 짜먹었을 뿐만 아니라 뼈 없고 정신 빠진 학자들을 시켜 그렇게 역사에 쓰게까지 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살아서만 아니라 죽은 후에까지도 지배해 먹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모든 역사는 고쳐 쓰여졌고 그것들은 하나의 불쌍한 죄인이 돼버렸습니다. 오늘의 지배자는 아무리 악독하고 아무리 철면피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네 딴으로는 교묘하게 쓰는 수단으로 실질에서는 예보다 더한 배를 하고 싶으면서도 적어도 입으로는 “나는 여러분의 사환군입니다” 합니다.
시대가 지나간 옷을 입는 것은 웃음거리입니다. 오늘의 독재자들이야말로 광대요, 스스로 자기의 약함과 악함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지배하고 싶으면 당당히 “나는 지배한다” 그러지 무엇을 구차 비겁하게 “나는 신의 종입니다” 합니까?
그러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아직도 씨알은 약하고 지배자는 강한 것 같지만 실상을 말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약자요 우리가 강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 그들은 우리 이름을 빌리지 않고는 도둑질도 해먹을 수는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날까지 소위 국민투표란 것을 두 번했습니다. 할 때마다 우리는 속았지만, 속은 줄 알 때마다 우리는 자라고 힘이 더해졌습니다. 이제 불은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이해는 씨알의 해입니다.
돌이켜봄
길을 잃은 때에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만히 온 길을 돌이 보이켜 그 어디서 헤맸던가를 알아내는 일이요, 또 하나는 어서 바삐 북극성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먼저 이 15년 동안 우리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기로 합시다.
1. 당초에 문제는 5·16에서 시작입니다. 그것은 결코 민중의 혁명이 나왔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 씌우려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어느 혁명도 첨부터 순수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의미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혁명이 되려면 전체 민중의 승낙을 얻어야 합니다. 5·16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날까지 그것을 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실패입니다. 까닭은 분명합니다. 민중의 하는 것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만 하면서 승인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민중은 정직한 것이기 때문에 농락할 수 없습니다. 한 일부분은 속일 수 있지만 전체를 끝까지 속이지는 못합니다.
그 민중의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유요, 정의입니다. 그것을 주지 않고 민중을 제 편으로 얻은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 이날껏 그것을 주려 하지는 않고 그 민중의 이름만을 빌어쓰려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당초의 병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힘으로 사랑을 강요해보려는 버릇입니다. 국민투표 발표를 할 때 나는 “아 변한 것은 하나도 없구나!” 했습니다. 내가 변함없이 남더러만 변하라는 것은 이성이 아닙니다.
2. 둘째 귀절은 민정이양 문제였습니다. 당초부터 민중의 혁명 아닌 것은 자신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민심을 얻으려고 맨첨 한 것이 여섯 조목으로 된 혁명공약이었습니다. 민심은 그것만 충실히 실행했더라면 당초의 잘못된 출발에 눈을 감아주고라도 그것을 혁명으로 지지해줄 태세를 상당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군정을 2년은 해야겠다 할 때, 민중은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연실색(啞然失色)이라니, 오늘까지 말을 못하고 있는 벙어리 민중입니다.
3. 세번째 잘못은 제2 이완용(李完用) 외교입니다. 그들은 정치는 돈이 있어야 한다,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날까? 외국에서 벌어와야지. 거기까지는 잘못이랄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서 돈을 벌어오느냐 하는 데서 잘못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빌어오기로 했습니다. 지난날 주종(主從)시대에 일본말 깨나 배웠고, 개인적으로 사람깨나 안 것이 있어 그랬는지 모르나 하여간 여기서 잘못이 시작됐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하는데 첫째 힘, 둘째 돈으로 판단한데 부터가 길 잘못 들던 시작입니다. 그보다는 국민의 정신, 국민의 성격이 기본이란 것을 알았다면, 같은 돈이라도 일본에서 빌려고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이 소위 한일회담이란 것을 그렇게 반대했던 것은 그 때문인데, 그들이 쥐었던 무기가 그들로 하여금 지나친 자부심을 가지고 이성을 잃게 했습니다. 사실인지 뜬 말인지 모르나 제2의 이완용이가 되면서라도 기어코 하겠다고 했다는 그 소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때는 아직 중공이 사자처럼 되지도 않았고 일본이 감히 대국이라고 뽑낼 정도도 아닌 때이므로 우리가 정신만 차렸다면 동양의 영구한 평화의 한 힘 있는 초석이 될라면 될 수 있던 때입니다. 그때에 정신 차렸어야 가엾은 상이용사들의 손가락 짤르는 부끄러운 일은 없었을 것인데 참 아쉬운 일입니다. 몇 사람이 손가락쯤 자르면 진 빚이 없어지고 외교적 지위가 바뀌어 질까요? 전 국민의 지지없이 재주로만 성공한 외교가 어디 있습니까?
4. 월남 출병이 또 하나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첨에는 반대 아니한 사람 없었습니다. 아무리 공산군에 대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명분이 서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나중 가다가 돈이 약간 흘러들어온다 해서 다소 긍정하려는 태도로 변한 사람도 있으나 대체로 보아서 정부를 위한 싸움이었지 결코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의용의 참전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손해만이 큽니다. 우리보다도 그 종주(宗主)였던 미국의 역사가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피 팔아 고기 사먹는 놈의 짓입니다.
5. 삼선개헌입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또 하나의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을 없애려면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유일의 좋은 길이건만 당장의 부끄럼이나 손해라는 생각에 그것을 못합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정부도 이미 잘못이 어느 정도 커졌기 때문에 감히 고칠 생각을 못하고 이제부터는 점점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 그것을 꿰매가려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거의 운명적이라고 한탄을 하고 싶어집니다.
헌법을 고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다시 정권을 쥐기 위한 수단으로 고친 것입니다.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겉으로는 계획대로 됐다 하겠으나 민심은 완전히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학생 데모가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이해심 때문에 병이 들지 않은 마음으로 본다면 아직 의기에 움직이는 젊은 학도의 일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진리와 인도에 충실하려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정부와 여당만이 그것을 망동으로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탄압일로 로만 나갔습니다. 빈 마음으로 세계의 역사를 보십시오, 나라 일이 어려울 때 청년 학도가 분개하여 일어나지 않는 나라 어디 있습니까? 또 어느 사회가 청년학도들의 경거망동으로 멸망해 버린 실례가 있습니까? 그런데 유독 이 나라 학생놈들만 망나니라는 것입니다.
아, 민족의 힘을 뿌리에서부터 시들게 했던 이씨네의 정치 이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선비 학대를 이리도 하다니 운명입니까? 아닙니다. 결단코 아닙니다. 우리 잘못입니다.
6. 유신체제를 펴게 된 가장 주되는 까닭은 그칠 줄 모르고 일어나는 학생 데모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자는데 있었습니다.
7. 그리고 73년 말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개헌운동은 또 그 유신체제 때문이라고 할 것이고.
8. 지난해에 있었던 긴급조치는 또 그 개헌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 대하여는 시시비비를 말도 하지 말라니 언어도단입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옳고 긇고를 토론하지 않고 사람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슬픕니다.
9. 1974년은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해입니다.
인권 소리에 해가 뜨고 해가 졌습니다. 부끄럽다면 참 부끄럽습니다. 3천년 역사니 4천년 역사니 하면서 이제 와서야 사람을 사람 대접해야 한다고 떠드니 문명은 어디 있으며 도덕은 어디 있습니까? 나 같아서는 외국 나가 노래를 부르고, 그림 자랑, 스포츠 자랑을 할 용기도 아니날 것 같습니다. 아마 내가 잘못 생각이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예술은 무슨 예술이고, 학문은 무슨 학문이냐 할 것 같아서입니다. 나는 아직 구식이어서 그런지 선례후학(先禮後學)이란 공자의 말씀이 좋습니다. “형제와 먼저 화목하고 나서 와서 예배드려라” 하는 예수 말씀이 좋습니다. 정치문제라고만 생각해서 좋을까요? 그러나 이 한해에 씨알은 많이 여물었습니다.
10. 정부가 국민을 외면함으로써 당연히 온 결과가 국제적 고립입니다. 공산진영은 아주 막힌데니 말할 것 없고, 소위 우방들이라는 자유 진영 안에서 우리 형세가 외로운 것은 감출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대 민중간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전 어느 때보다도 굳세게 세계의 씨알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정부와 정부의 외교관계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오늘의 정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하게 생겼지, 우물안 개구리같이 망자존대(妄自尊大)만 가지고는 아니 된다는 일입니다.
11. 이러한데 불행하게도 경제불황까지 덮쳐왔습니다. 나는 이 점에서도 정부의 큰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나는 그 생각을 5·16 사건 직후 소위 농어촌 고리채 정리라는 데서부터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리채 정리하겠다는 것은 옳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아주 졸렬했습니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만 첨부터 그것은 실패한다고 했습니다. 까닭은 그것을 칼로 정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란 미묘한 정의의 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를 살리지 않고 경제 관계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연 실패했습니다.
당초부터 이 정부가 중농(重農)정책을 쓰지 않는다고 나는 단언했습니다. 불행히 그것도 들어맞았습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았던가? 첨부터 그들에게는 사람이 문제 아니고 힘과 돈이 문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근대화 일변도로 국민 학교에까지 10억 불이니 100억 불이니 하는 것을 표어로 하고 내몰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들었던 듯 유류파동이 갑자기 왔습니다. 결단난 것은 근대화 작업이었습니다.
언제나 중심이 낮추 있어야 안정한 것이 철칙입니다. 지구 중력 속에 사는 한 불가피입니다. 그런데 근대화 작업이란 마치 장기쪽 쌓아올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람이 없을 때 잘하면 한 뼘 두 뼘을 쌓아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그만 진동만 오면 왼통 무너질 것은 정한 일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정치 경제만은 가늘고 높게 쌓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민(下民) 대접하는 나라는 튼튼하고, 상부 권력층만 치중하는 나라는 망하는 것이 법칙 아닙니까? 만일 첨부터 서민 계급을 위주하는 경제정책을 썼던들 기름파동이 와도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나 공업주의는 전쟁을 예상하고야 되는 것이고, 전쟁은 무슨 형식으로나 착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소위 대국들의 하는 제국주의입니다. 이제 그 대국들이 당황하는데 대국될 조건 없는 나라에서 그것을 모방하다가 어디로 가려는 것입니까? 언필칭(言必稱) 서구적 민주주의라고 비난하지만 누가 정말 서구식입니까? 서구식 민주주의만 나쁘고 서구적 제국주의는 옳습니까?
늦게나마 생각이 들어 ‘새마을’ 운운하는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하려거든 관료근성 버리고 성의로 해야 할 것입니다. 새마을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알기나 합니까? 부락자치에 있습니다. 부락이 자치하지 않고 경제부흥이 있을 수도 없고, 농촌을 농민의 손으로 하지 않고 농촌자치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소위 영도자의식이라는 국가주의 사상의 찌끼기를 청산하지 않는 한 새마을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지배 정부의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경제불황입니다. 지식인은 또 잡아매 둘 수가 있겠지만 굶주림에 분노한 근로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일분의 실질적 가치 없는 무너진 성벽까지 수리하여 야단을 하지마는 그보다는 호화주택 골프장 유흥장 관광지를 어서 농민에 공개하여 갈아먹게 하는 것이 좋은 길일 것입니다.
12.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할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정치인입니다. 이 시대에는 정치도 하나의 직업입니다. 그 직업을 스스로 택했으면 그 책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간단히 말해서 이 15년 정치에 정치는 정당 사이의 권력싸움으로 타락해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민은 이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환멸을 느꼈습니다. 잘하면 맡겨두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성실히 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불신용(不信用) 해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를 불신사회라 하지만, 그 주되는 책임은 정치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민중은 잘못 없단 말 아닙니다. 민중은 결코 정치인에만 밀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책임도 압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범국민운동이란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하면 아무래도 자기 본위에 치우친다, 그러기 때문에 이 못된 풍토를 고치고 정치를 일신하려면 국민이 직접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 말입니다. 밭이 묵어서 미운 풀이 성해서 도저히 호미로 멜 수 없어진 때는 큰 보섭을 들이대며 갈아 뒤 엎는 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범국민운동이란 민심을 한 번 갈아엎어 새로운 정치풍토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의 길입니다.
심판자인 씨알
국민투표 하자 한 것은 박대통령이 한 말이 아닙니다. 역사의 요청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늘의 명령입니다. 박대통령이 만일 그것을 자기나 혹은 자기를 보좌하는 누구가 생각해 내어서 자기 의지와 자기 입으로 했거니 생각한다면 일은 크게 잘못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정권, 더구나도 거의 완전독재라 할 만큼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국민투표를 해보자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공자가 자기 말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제자들에게 투표해보자 한 일 없습니다. 예수가 자기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승인시키기 위해 제자들께 투표시켜본 일 없습니다. 박대통령도 결코 하기 좋아서 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발표를 하게 됐지.
그럼 그 부득이한 것이 무엇입니까? 15년을 두고 강력 정치를 해왔어도 점점 더 잘되지 않기만 하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결코 잊어서 아니될 것은 국민투표가 이것이 처음이 아니요, 과거에 벌써 두 번씩이나 한일이 있다는 사실, 또 우리나라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그 예가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지난 날에 두 번씩 국민투표를 했을 때 그 결과가 좋았던가? 또 다른 나라의 예는 어떻던가? 그럼 거기 두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좋았다는 것이고 하나는 좋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국민투표한 결과 그 바랐던 목적대로 잘됐다 하는 경우를 생각 해 봅시다. 그때마다 잘됐다 한다면 그럼 또 할 필요를 느끼게 됐을까? 거기 조금 모순이 있습니다. 국민투표란 그렇게 늘 하는 일이 아닌데 번번이 하게 되는 것이 뉘 잘못일까? 여당의 잘못일까? 야당의 잘못 일까? 국민의 잘못일까? 이 경우 마지막 조건만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국민이 잘못했다면 그 국민더러 판단을 해보란 것은 모순입니다. 그담 먼저 국민투표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경우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두 번씩이나 해서 잘되지 않은 것을 알면서 또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번씩이나 국민투표를 하게 되는 것은 전에도 결과가 좋았다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담에 나오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정부에서는 두 번씩이나 국민투표를 해서 바랐던 목적을 달성했다 하는데 국민간에는 또 말썽이 있어서 또 다시 하게 되니 그럼 그 어느 편이 잘못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토론으로 사리를 밝히지는 못합니다. 여기 이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한 인간으로서 될수록 바른 판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맨첨에 말할 때 잃었던 길을 찾을 때는 온 길을 돌이켜보기도 하지만 또 어서 빨리 북극성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사는 세계에서 보는 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오직 북극성 하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방향의 기준이 됩니다.
그럼 우리 생각의 북극성은 무엇일까? 두말 할 것 없이 우리 속에 있는 양심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와 있는 하늘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선천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파 사이의 주장이 엇갈려 나라 일이 어려워졌을 때에 할 가장 어진 방법은 민족적 양심이 발동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같이 입 가진 사람은 다 건에 없는 위기라고 부르짖는 때에 국민투표를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극히 명심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 있습니다. 집권자가 철저히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국민에게 물어보자 한 것은 벌써 겸손해진 일입니다. 그러나 겸손하려거든 철저히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99의 겸손을 하고도 1분의 그만을 뒤에 감추어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드러내논 교만보다도 더 악한 죄악입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대접하려거든 지금까지 맡아가지고 있던 주권을 말만 아니라 사실로 국민에 돌려야 할 것입니다.
양심은 공정한 것입니다. 공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공정을 나타내기 위해 일체의 강제나 수단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은 지극히 연약합니다. 그 연약이 그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명령을 들으려면 모든 사사로운 감정과 힘을 버려야 합니다. 제도나 폭력의 위협이 있는 곳에 양심의 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민투표란, 말이 쉽지 사실은 거룩한 종교적인 행사입니다. 결코 보통의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국민을 심판자로 내세운 것은 곧 국민으로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털끝만큼도 재주의 농락이나 폭력의 위협이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이날까지 모든 나라의 모든 국민투표는 국민을 속이는 간악으로 끝났습니다. 민중처럼 속이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민중은 하나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중을 속이고 끝까지 무사한 권력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갚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권력자도 권모술수가도 이 우주는 도덕법칙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의 제언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정말 정치를 한번 온전히 새롭게 하는 진정한 국민투표가 되기 위해 나더러 제언을 하란다면 옛날 니느웨의 일을 빌어 말하고 싶습니다(구약 요나서 3장 5~8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고 물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림에, 왕이 보좌에게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를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이것을 요약해 말한다면,
1. 이것은 일체 국민에게 맡길 것.
2. 먼저 국민이 자발적으로 하고 그담 정부가 그것을 따를 것.
3. 모든 강제와 폭력을 제거할 것.
4. 국민과 정부가 다 같이 전국적인 근신일을 선포해 일체의 유흥 연락을 중지하고 적어도 하루 동안 단식, 회개, 명상한 후 투표할 것.
이것을 할 마음이 있거든 국민투표를 합시다. 못하겠거든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범국민운동은 바로 이것 하잔 것입니다.
씨알의 소리 1975. 1,2월호 40호
전작집; 8- 241
전집; 8- 183